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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P의 서재

출근길부터 시작하는 아포칼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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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P
작품등록일 :
2023.05.10 22:42
최근연재일 :
2023.05.30 18:00
연재수 :
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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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21
추천수 :
111
글자수 :
122,784

작성
23.05.10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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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7
추천
8
글자
12쪽

새벽

DUMMY

고요한 새벽, 쓰레기 수거차량이 모두가 잠든 서울 거리를 헤드라이트로 밝히며 달린다.

달리는 차량 뒤에는 헬멧을 쓴 두 남자가 매달려있었다.


쓰레기 차량 뒤에 매달린 덩치 큰 남자는 무선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여자 아이돌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흥얼거린다.

3월 초의 새벽 공기는 흥얼거리는 남자의 입가에 하얀 입김을 만든다.


새벽 5시부터 시작된 쓰레기 수거작업에도 지친 기색 하나 없는 그를 보며, 옆에 매달린 중년의 남성이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었다.


"재훈아 너는 지치지도 않냐?"


"제가 왜 지쳐요. 열심히 일해서 빚 갚고 집도 사고 해야죠."


"집이 이렇게 비싸서 살 수 있고?"


"까짓것! 노력해 보면 되죠! 안되는 게 어딨어요!"


올해 입사한 장재훈은 30대 중반에 들어선 두 딸의 아버지였다.


작년까지는 중소기업에서 영업직으로 근무하며 외벌이로 그럭저럭 가정을 꾸려 살아가고 있었다. 산적 같은 외모를 가진 장재훈의 몇 안 되는 자랑거리는 아이돌 뺨치게 이쁜 아내와 엄마를 쏙 빼닮은 두 딸이었다.


하지만, 작년 말 코로나19를 버티지 못한 회사가 사정이 갑자기 어려워졌다며 급여가 한두 달 밀리기 시작하더니 결국 정리해고 통보를 했다. 갑작스러운 실직에 장재훈은 앞으로의 살길이 막막했었다.


아직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도 안된 두 딸을 먹여 살려야 해서 절망한 시간조차 아까웠다. 삼일 밤낮으로 취업사이트 구인공고를 이잡듯이 뒤져 봤지만, 애매한 중소기업 영업직 경력으론 도저히 그간 받던 연봉을 보전할 만한 일자리가 없어 초조 해졌다.


카드 값 상환 압박에 스트레스를 받아 별것 아닌 일에도 부부 싸움이 잦아질 무렵, 아무 보조금이라도 받아볼 것 없나 해서 들어간 구청 홈페이지에서 환경미화원 모집공고를 발견하고 망설임 없이 지원했다. 이 동네에서 오랜 기간 살았고, 나이도 비교적 젊은 편인데다가 힘쓰는 것은 원체 자신이 있었다. 그 덕에 장재훈은 어렵지 않게 환경미화원 공고에 합격할 수 있었다. 일은 힘들어도 급여도 예전 회사보다 훨씬 높았고 정년도 보장이라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감에 시달리지 않아도 돼서 자연스럽게 부부관계도 좋아졌다. 아내와는 벌써 셋째 계획도 논의하고 있었다. 매일이 신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삶에 희망이 보였기 때문이다. 희망은 아무리 힘들어도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그래, 사내놈이 야망을 가지면 좋지! 집 사는 게 대수냐! 열심히 일해서 우리 건물주 되자!"


"오 반장님도 조물주 위 건물주 돼서 손자 손녀 호의호식 시키며 사세요!"


환갑이 얼마 남지 않은 오 반장은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손자 손녀는 무슨 아들딸 두 놈다 결혼할 생각 없다더라."


장재훈은 끄덕이며 말했다.


"요즘 결혼하기 쉽지 않죠. 돈도 많이 들고 누리던 것도 많이 포기해야 하고요."


오 반장은 기가 찬지 웃으며 대답했다.


"어이구, 애가 둘이나 있는 네가 할 소리는 아니지."


장재훈은 멋쩍은지 작게 웃으며 말했다.


"저야 뭐 사고 쳐서 결혼 한 거라서요. 거기다 지금 와이프가 회사 후배였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장재훈은 '결국 그 회사에서 한 명은 임신 때문에 한 명은 경영상의 이유로 퇴사하긴 했지만'이라는 생각을 애써 지웠다. 어찌 되었건 다른 일자리로 먹고살고 있으니 되었다 싶은 마음이었다.


오 반장은 입가에 미소가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그래서 행복해? 안 행복해?"


장재훈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무지무지. 행복해요."


오 반장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대답한다.


"그래 그럼 된 거지."


한참을 웃으며 대화하다 보니 차가 멈춘다.

차가 멈춘 곳은 불법주차가 잔뜩 되어 있는 강남역 뒤편 식당가 1차선 도로였다. 그곳 담벼락 밑에는 노선조가 모아 놓은 쓰레기 더미가 산처럼 쌓여있었다.

두 사람은 매달려가던 쓰레기 수거차량에서 내려 쓰레기를 힘차게 차량으로 들어 올렸다.


오 반장은 100리터 쓰레기봉투를 들어 올리며 볼멘소리를 했다.


“이놈의 100리터 봉투는 없어져야 해.”


“하하, 제가 들게요. 반장님 허리도 안 좋으신데. 이리 주세요.”


싹싹한 장재훈을 보며 오 반장은 내심 기특한 마음이 들어 장재훈의 엉덩이를 한 대 치며 대답했다.


“됐다 이놈아! 젊은 놈 허리 망가지면 네 와이프한테 욕먹어 됐어. 다른 쓰레기도 많으니까 부지런히 움직여.”


장재훈은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 반장님 아파요!”


밤새 강남역 앞에 쌓인 쓰레기는 그 양이 어마어마했다.

한참을 차량에 싣고 있으니, 어느새 뒤에 다가온 택시가 경적을 울린다.


빵-빵


새벽의 고요한 거리를 울리는 경적소리에 오 반장은 진정하라는 듯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금방 하겠습니다. 좀만 기다려 주십쇼!”


창을 내린 택시 기사는 머리를 빼꼼 내밀어 소리친다.


“아 거 빨리 빨리 좀 하쇼! 시간이 돈인 사람이요!”


장재훈은 순간 욱하는 마음이 들어 택시 기사가 들으라는 듯 웃으며 외쳤다.


“하하, 쓰레기가 많네! 누가 내려서 도와주면 빨리 끝날 거 같은데!”


택시 기사는 뭐가 그리 기분 나쁜지 장재훈 쪽을 바라보며 카악 하더니 가래침을 뱉는다.

순간, 장재훈은 화가 잔뜩 나 택시 기사 쪽으로 다가가려 했으나, 오 반장이 제지하며 작게 말했다.


“참아 참아. 애들 생각. 와이프 생각!”


장재훈이 진정되는 기미가 보이자 뒤에서 기다리는 택시 기사 쪽으로 고개를 숙이며 말을 건넨다.


“사장님! 저희가 노력하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십쇼.”


택시 기사는 짜증 난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지만 마지못해 대답했다.


“알겠수다. 서둘러 주쇼.”


오 반장과 장재훈은 서둘러 쓰레기를 싣고 다시 차에 매달린다.


“오라이 오라이”


오 반장의 외침을 들은 차가 천천히 움직였다.

뒤따르던 택시는 작은 사거리가 나오자 빵 하며 경적을 울리고 쓰레기 차량을 추월해 간다.

차량에 매달린 오 반장은 지나가는 택시를 향해 혀를 차며 말했다.


“저놈 새X 성질머리 으휴.”


택시를 앞으로 보낸 쓰레기 차량은 천천히 달려 다음 쓰레기 더미에 도착한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쓰레기의 산이 쌓여있었다.


두 사람은 매달린 차량에서 내려 다시 쓰레기를 차량에 싣는다.


장재훈이 뚱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없이 쓰레기를 싣고 있자 오 반장은 너스레를 떨며 말을 걸었다.


"재훈이 너 지금 라디오 듣지? 귀에 낀 거 하나 줘봐. 뉴스 좀 듣게."


장재훈은 퉁명스럽게 한 팔을 뻗어 오 반장에게 무선 이어폰 한쪽을 건넨다.

오 반장은 건네 받은 이어폰을 한쪽 귀에 꽂았다.


"...네메시스 갈색 왜성이 관측되면서 2600만년 마다 반복된 멸종의 비밀이 풀릴지 학계의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고거 말고. 교통방송"


"네."


장재훈이 스마트폰을 주머니에서 꺼내 라디오 채널을 돌리자 교통방송에 새벽뉴스가 흘러나온다.


"서울시에서 실종자가 한 달 사이 벌써 150명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가급적 늦은 시간 귀가를 삼가시고 안전에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 반장은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 무슨 일이 벌어지길래. 실종자가 저래 많아. 우리도 조심해야겠다. 어두운데 다니지 말고. 응?"


장재훈은 입을 삐죽이며 대답했다.


"어두운데 다니면서 쓰레기 치우는 게 저희 일인데 어떻게 그래요."


오 반장은 장재훈의 뒷통수를 가볍게 치며 말했다.


"농담이지 인마. 큰 차에 성인 남자 셋씩이나 몰려 다니는데 무슨 일이 있겠어. 그래도 전쟁 통도 아닌데 실종자가 너무 많긴 하네. 저 실종자들 대부분이 혈흔만 발견되고 사람이나 시체도 발견 안됐다지?"


장재훈은 오 반장에게 맞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뚱하게 대답했다.


"뭐, 어제 뉴스에서 보니까 그렇다데요?"


장재훈의 퉁명스러운 말에 오 반장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이구 우리 재훈이 삐졌어?"


장재훈은 다시 살짝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래도 뒤통수는 좀 아니죠."


그 모습이 내심 귀여웠던 오 반장은 좀 더 놀린다.


"아이고아이고 아재가 선 넘었다. 미안해 미안해. 우리 재훈이가 액면가가 있어서 엠지 세대인 걸 가끔 까먹는다. 하하"


장재훈은 어느새 기분이 풀렸는지 웃으며 대답했다.


"비겁하게, 팩트로 공격하지 마십쇼. 반장님!"


쓰레기의 산을 하나 또 해치운 두 사람은 차량에 매달린다.

오 반장의 신호에 차량은 다시 천천히 움직인다.


쓰레기 수거차량이 골목을 빠져나와 대로로 진입하자 아까 경적을 울리며 추월해 갔던 택시가 불법주차 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장재훈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저 X끼 아까 그 난리를 치고는 저기다 차버려 놓고 어디 갔데요?”


오 반장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대답한다.


"허허, 일일이 그런 거 맘에 담아 두지 마. 우리일 하다 보면, 더 한 꼴도 많이 본다.”


장재훈은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뭐, 괜찮아요. 각오 안 한 것도 아니고 그냥 태도가 좀 기분 나빠서 그렇네요. 욱해서 죄송합니다.”


“괜찮아. 나한테 사과할 거 있나 뭐.”


대로변에는 골목에 두 배는 되는 쓰레기봉투가 쌓여있었다. 오 반장은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유흥업소 전단지와 군데군데 보이는 토사물을 보며, 노선조가 좀 고생깨나 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이구 언제다 싣냐.”


“반장님! 맡겨만 주십쇼.”


그새 기분을 회복한 장재훈은 싹싹하게 말했다.

장재훈의 말에 웃으며 오반장이 쓰레기 더미에 다가려는 순간, 도로 안쪽 맨홀 뚜껑이 열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도로 쪽 맨홀이라 사람이 빠질 일은 적었지만 어둠 속에서 홀로 움직이는 환경미화원 노선조들은 얘기가 달랐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쓰레기를 한곳으로 옮기다가 자칫 빠질 수 있겠다 싶었다.


오 반장은 맨홀 뚜껑 쪽으로 걸으며 장재훈을 불렀다.


“저거 저러면 노선조 사람들 위험하겠다. 재훈아 일로 좀 와봐.”


“네! 갑니다요!”


순간 달려오던 장재훈이 맨홀 앞에 멈춰서 안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위험해 인마!”


오 반장은 장재훈에게 타박을 한 뒤 시선을 돌려 맨홀 뚜껑을 잡았다. 철로 된 맨홀 뚜껑은 혼자 힘으로 들기 버거워 등 뒤의 장재훈을 불렀다.


“재훈아! 뭐해 좀 거들어.”


하지만 등 뒤에서는 아무런 소리가 들어오지 않았다.

오 반장은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어 뒤를 바라보았다.

맨홀 앞에서 안을 바라보던 장재훈은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오 반장은 장재훈이 맨홀 안에 빠졌나 싶어 다급하게 맨홀로 달려가 그 안을 바라보았다.


바라본 맨홀 안에서는 일렁이는 붉은 원 두 개가 보였다.


[그르르르]


쇳소리와 짐승의 울음소리가 뒤섞인 소리가 조용한 밤거리에 낮게 울려 펴진다.

도저히 같은 생물의 울음 같지 않은 그 소리가 고막을 스치자 오 반장의 몸은 공포에 얼어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오 반장은 두 눈만 굴려 어두은 맨홀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일렁이는 붉은 원은 짐승의 형상을 무언가의 두 눈 이었다. 오 반장이 태어나서 처음 보는 형태의 존재였다. 그 두 눈은 이윽고 오반장과 시선이 마주쳤다.

순간, 맨홀 안 어둠 속에서 무언가의 하얀 이빨이 보였다.


오 반장은 움직이지 않는 입을 뻐끔거리며 차량에 앉아있는 다른 동료를 다급하게 부르려 했으나 날카로운 무언가가 자신을 꿰뚫는 느낌을 받으며 의식이 암전되었다.


축 늘어진 오 반장은 무언가에 끌려가듯 맨홀 속으로 금새 사라졌다.


3월의 새벽, 서울의 고요한 밤이었다.


작가의말

안녕하세요. 

잘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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