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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쟁이노야

북해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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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쟁이노야
작품등록일 :
2023.09.04 02:03
최근연재일 :
2023.10.15 22:43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22,923
추천수 :
587
글자수 :
187,081

작성
23.09.27 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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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산중 의인 - 2

DUMMY

#21

산중 의인




그들 다섯 중 두 명의 바지에 피가 묻어 있었다.

비춰보지 않았으면 흙과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탁한 색이었다. 

혈흔을 가리키는 백연의 손가락은 내려올 생각을 안 했고, 눈에는 힘을 잔뜩 주고 물었다.


“어디 사람이라도 묻고 온 모양이군?”


그러자 이문이 당황한 기색으로 상황을 부인했다. 


“아, 이건 오는 길에 쓸려서 상처가 난 겁니다. 아무래도 이 주변 산세가 평탄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왔다 갔다하면서 부딪히고 넘어지는 거야 흔한 일이죠.”

“왔다 갔다?”

“예, 말씀하신 대로 다친 제자들의 출혈이 점점 심해져서 데리고 걸음을 계속하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소협과 마주친 것이고요.”


이문의 말대로 산에서 상처가 나는 것쯤이야 흔한 일이다.

무림인이라고 해도 전신에 호신강기를 두르고 다니지 않는 이상 눈먼 나뭇가지에 찔려 상처가 날 수도 있는 거고.

백연은 일단 석연찮은 부분을 내버려 두고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럴 수도 있지.”

“믿어주시니 다행입니다.”


납득했다는 듯한 백연의 반응에 이문이 다행이라며 방긋 웃었다.

백연은 꿰여있는 고기 한 점을 베어 물며 앉으라고 손바닥을 내보였다.

주변에 앉을 만한 바위는 이미 백연이 앉아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주변에서 큼지막한 돌을 주워와 바닥에 깔고 앉았다.


“안 그래도 이제 다리가 말을 안 듣는 지경이었습니다. 자, 허락해 주셨으니 다들 앉지.” 


이문을 포함해 네 명이 꼬치 하나씩을 집어 후후 불어 입으로 넣었다. 

걸려있던 꼬치가 총 다섯 개라, 다시 고기가 익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동안 고요한 침묵이 이들을 감쌌다. 


“······”


백연이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니, 먼저 입을 열기가 껄끄러운 분위기였다. 

귀뚜라미 소리도 어느샌가 멎어있었고 이문의 제자 중 하나는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며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다시 걸어놓은 고기가 선홍빛을 잃어갈 때쯤, 백연이 그들에게 물었다.


“그래, 언제부터 사람을 죽였지?”


이문은 당최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며 실없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설명이라면 자신이 분명 전부 다 하지 않았나.

백연은 그에 대해 수긍했고.


“아까부터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단호한 백연의 표정을 보니 절대 농으로 던진 것은 아니라.

심지어 처음에는 의심에 그쳐있던 말투가 어느새 확신을 담고 있었다.

이문의 얼굴엔 당황스러움을 넘어 불쾌한 표정이 드러났다. 


“사람을 죽였다니요. 정 그렇게 불편하시면 저희가 자리를 피하겠습니다. 이런 곳에서 사람을 만나 반가움에 인사를 드렸는데 이제 보니 서로 득이 될 관계는 아니었군요.” 


이 이상 이러쿵저러쿵할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다며.

이문이 몸을 돌려 왔던 곳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리고 그들이 돌아서 스무 걸음을 채 못 걸었을 때. 

백연이 새로 익은 고기를 입에 털어놓고, 빈 꼬챙이를 이문의 뒤통수에 날렸다. 


─슈욱!


그것은 아슬아슬하게 비껴나가 이문 옆에 있는 나무에 박혔다.

눈동자를 살짝만 돌려도 시야에 들어올 정도였다.


“다시 앉아.”


백연이 강압적인 어투로 자신들을 겁박하자, 이문은 섣불리 움직이기를 그만두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자리를 비켜드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왜 이리 못 살게 구시는지요.”

“말로 하면 못 알아 먹나 보군.”


백연이 설하를 검집에서 꺼냈다.

날붙이가 검집을 긁으며 나오는 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설하가 서릿발을 내뿜자, 마치 울음소리같은 것이 들여왔다.

이문이 따지는 목소리는 점점 다급해지고 커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저희가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물며 의원의 몸에 피좀 묻은 것이 무어 그리 이상하단 말입니까!”

“그건 내가 원하는 대답이 아니야. 진짜 동보감 제자들은 어디 있지? 이미 죽였나? 죽였다면 어디에 있지?” 

“진짜라니요! 지금 여기, 당신 눈앞에 있지 않습니까! 아까부터 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대화는 나누는 도중에도 바닥에 깔린 나뭇잎이 바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백연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이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아무리 변명을 해봐도 애초에 들을 생각이 없으니 갑갑할 노릇.

이제는 더 이상 방도가 없겠다 싶었다.


“살면서 별의별 정신나간 놈들은 다 만나봤다고 자부하지만, 그중에서 제일 악질이 너희 같은 놈들이었어.”


이문은 옆에 서 있는 제자에게 고개를 돌려 신호를 보냈다.

제자 중 하나가 품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숲 사이를 비집고 내리쬐는 달빛을 반사시키며, 손잡이를 지나 넓적한 날이 보였다.


─서겅.


그 순간 목이 땅바닥으로 떨어지고 그가 꺼내려던 식칼은 힘 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백연은 허튼짓 하지 말라며, 이문의 목에 검을 겨누며 그들의 정체를 밝혔다.


“사람을 먹는 인간 백정들.”

“······”


나쁜 짓을 들킨 사람의 행동은 두 가지로 나뉘기 마련. 

당황해서 변명하거나, 씨익 웃으며 ‘어떻게 알았지?’ 같은 말을 뱉거나 둘로 나뉜다.

후자는 이미 갱생이 불가능한 자들이 보이는 반응이다.

그들은 잠시 동안 눈을 깜빡거리더니 이내 끅끅대면서 웃었다.

  

“어떻게 알았지?”


굳이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백연이 되물었다.


“진짜 동보감 제자들은 어떻게 했지?” 


그러자 이문과 나머지 네 명이 낄낄대면서 웃었다.

그는 손바닥을 세워 자기 목에 가져다 대더니 슥 긋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켁!~”

“낄낄낄.”

“아니, 나는 걔내가 불쌍해 죽겠다니까. 평생 공부만 하다가 남의 뱃속에 들어가게 생겼잖아.” 

“형님, 아니지 아니지. 목이 아니라 여기지.” 


이번에는 다른 놈이 발목을 살짝 들더니 뒤를 긋는 시늉을 했다.

일부러 제 숨을 틀어 얼굴을 창백하게 했다.

그는 정말로 숨이 넘어갈 때까지 제 목을 조르다가 한계에 이으러서야 그만두었다.

눈빛은 충혈되고 침을 질질 흘리면서 일어나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어허, 셋째야. 네가 표현력이 참 좋구나. 낄낄”

“에이, 나는 형님 연기력을 보고 오줌을 지릴 뻔했다고. 어떻게 점잖은 척을 그리 잘하오?”

“저놈, 영감님한테 데려가면 안 돼요? 나 좀만 더 살고 싶은데?” 


영감이라, 호칭이라 미루어 짐작하건대 근처 어딘가 우두머리가 거처를 잡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아마 동보감 제자들도 거기 있을 거라는 추측까지 이어졌다.

백연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아무리 봐도 무공을 배운 것 같진 않은데, 이겨볼 생각이라면 그만 둬라.” 


그러자 갑자기 이문이 으르렁대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백연에게 욕지거리를 뱉으며 성을 내기 시작했다.


“닥쳐! 궁금해 죽겠으니까 어떻게 알았는지나 얘기해. 알려주면 나도 알려줄 테니까.” 


백연이 지긋이 이문의 얼굴을 살펴봤다. 

방금 전에 형, 동생 하던 자가 죽어나갔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이미 자신들이 떼로 덤벼도 백연을 못 이긴다는 사실도 알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본색을 드러낸 그들이 보이는 반응은 결코 일반적이지 않은 것이라, 말 그대로 정신병자들 같았다.  


‘심지어···’


표정을 보니 진짜 궁금해 미치겠다는 표정이었다. 

그것을 순수한 호기심이라고 표현해도 될진 모르겠지만.

그들은 눈깔을 희번덕거리고, 입술에 침을 바르며 백연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섣불리 저들과 수 싸움을 벌이려 했다간 광기에 말려들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차라리 저들의 호기심을 해결해 주는 게 더 나은 판단이라 생각하고 백연은 입을 열었다.


“아까 네 입으로 왔다 갔다 했다고 했지. 일반적으로 타지로 먼 길을 거쳐 온 사람이 할 말은 아니었다. 근처 어딘가에 거처를 마련해놓고 움직이는 사람이 할 말이지. 거기다 바지 밑단에만 피가 흥건하게 묻어 있는 경우는 하나밖에 없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아들었다. 

바지 밑단에 피가 고이는 경우는 발목 뒤를 잘라 피를 빼는 경우뿐이란걸. 

백정들이 짐승을 잡으면 매달아 발목 뒤를 긋는 것과 같은 행위였다. 

이문은 자신조차 눈치채지 못한 말실수를 짚어낸 백연을 놀랍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호오, 내가 그런 실수를 한 줄은 꿈에도 몰랐어. 근데 고작 그걸로 명문가 도련님이 냅다 칼을 휘두르기엔 모자라지 않나?”


신강에서 조평세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이들도 백연은 명문 정파의 후기지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완전히 만족하지 못하겠다는 이문의 표정을 본 백연이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눈에 띄는 복장을 굳이 따라 하고 다녔다는 건 아마 동보감 제자들의 마지막 행보를 다른 곳으로 옮겨버리려던 거였겠지. 그럼 이곳에 있던 너희는 아예 의심을 받지 않을 테니까.”


말을 마친 백연이 이문을 노려보며 대답을 요구했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당장 목을 베어버리겠다는 듯이.


“이제 네 차례다.”


이문은 가소롭다는 듯이 콧방귀를 끼며 말했다.


“저어기 중턱쯤 가면 갑자기 푹 파인 지형이 하나 있거든? 거기 내려가 보면 동굴이 하나 나올 거야. 거기 나이든 영감님이 하나 있는데, 그 사람이 인두귀(人頭鬼) 야.” 

“인두귀(人頭鬼)?” 

“뭐, 왜 그렇게 불리는지는 직접 가보면 알 거고. 근데 우리 살려주면 안되냐?”


백연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쳐다보자, 그는 김이 샌다는 듯이 조소를 내뱉었다.


“알았어. 알았다고.”


그리곤 갑자기 품에 있는 식도로 자신의 목을 그어버렸다.

나머지 세 인간 백정들도 똑같았다. 


“키, 킥···”


백연이 느낀 감정은 당혹스러움이었다.


“이게 무슨···”


제정신이 아닌 줄이야 진작 알았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삶에 대한 미련이 집착이 전혀 없지 않은가. 

이런 일은 백연도 처음이라,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감이조차 오질 않았다. 

그들은 꺽꺽대다 목에서 분수를 뿜고 얼마 안 가 털썩 쓰러졌다.


“··· 순수와 악이 합쳐지면 저렇게 되나.”


피로 물들어가는 백의와 백건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픈 사람들 보살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의행(醫行)을 떠나 곤혹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그들이 떠올랐다.


“하아.”


이런 식으로 모든 일에 간섭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쉬이 눈길을 돌릴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자신의 행동이 좋은 굴레로 돌아가겠지,라고 생각하는 수밖에.


‘그래, 동보감에 빚을 져두면 언젠가 도움이 되겠지. 나중에 북해에 의원도 좀 파견해달라고 하고.’


백연은 거의 타다시피한 마지막 고기를 입에 넣으며 이문이 알려준 장소로 발걸음을 뗐다.


그때였다.


─쿵! 


“아이쿠!” 


소란스럽던 인간 백정들 탓에 미처 눈치채지 못한, 여지껏 상황을 관망하고 있던 자가 나타났다. 

그곳은 달빛이 애매하게 닿아있는 곳이라, 백연은 모닥불을 쓸어담아 손에 불꽃 하나를 피우고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설마 너는···”


그곳엔 야생의 개방 거지가 나무에서 떨어져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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