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글쟁이노야

북해대제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글쟁이노야
작품등록일 :
2023.09.04 02:03
최근연재일 :
2023.10.15 22:43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22,922
추천수 :
587
글자수 :
187,081

작성
23.09.14 20:18
조회
664
추천
19
글자
11쪽

천악성 - 3

DUMMY

#11

천악성




철영은 침상 아래 쿵쿵대는 소리에 황급히 깨어 백연의 방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대답은커녕 일말의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아, 일 층으로 내려갔다. 

그곳엔 내가 바로 이 동네 양아치고 건달이요, 하는 얼굴을 한 사내 셋이 무릎을 꿇고 양 손을 번쩍 들고 있었다.  


자신이 잠든 사이에 무슨 일이 있긴 했던 모양. 

아랫사람을 쉬이 부리지 않는 백연임을 알고 있었지만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래선 호위는커녕, 짐만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너무 안일했던 것 같군요. 앞으로는 이런 일 없도록 조심하겠습니다.”

“응? 아니야. 이놈들이 갑자기 달려들어서 벌어진 일이니 신경 쓰지 말게.”

“······그나저나 저놈들 왜 이마가 저 모양입니까?” 


백연은 얼어붙은 만두 세 알을 손에 쥐고 굴리고 있었다.

지압용 구슬처럼.


“보여줄까?” 


씨익 웃으며 내뱉은 백연의 짧은 물음에 사내들이 필사적으로 그러지 말라며 고개를 저었다. 

빨갛던 그들의 이마는, 시간이 지나 검은 구렁텅이가 생겼다 해도 될 정도로 심각하게 함몰되어 있었다. 

만두피 주름이 그대로 새겨진 채로.


“됐습니다. 보니까 대충 알 것도 같군요.” 

“그래? 나중에 따로 전수해 줄 테니 기회 되면 해보게. 이게 손맛이 장난이 아니야. ” 


말을 마친 백연이 손가락을 튕기자 얼음 만두가 튀어나가 벽에 박혔다.

아슬아슬하게 건달들의 귀를 스쳐 얇은 선혈을 흐르게 했다.

백연은 의자에서 일어나 천천히 걸어 다가갔다.

잠시 침묵을 머금다가, 그들을 내려다보며 진중히 말했다.


“보복한답시고 다시 와서 여주인 괴롭힐 생각은 마라. 내가 이 정도로 넘어가는 것은 타지까지 와서 굳이 피를 보고 싶지 않음이니, 너희는 이미 한 번 죽은 목숨이라 생각하고 행실을 고치도록 해라.” 


장난기 넘치던 표정은 어디 갔는지 갑자기 돌변한 백연의 태도에 당황하며, 건달들이 서로의 얼굴과 백연을 번갈아보며 눈치를 살폈다.


“너희가 말길을 못 알아듣나 보구나.” 


백연이 대노(大怒)함에 따라 몸 주위에서 한기가 뻗쳐 나오니, 건달들은 온 몸에 사무치는 추위에 턱이 주체가 안될 정도로 떨렸다. 

거기에 더해 백연의 발아래서부터 뾰족한 얼음 가시들이 점점 바닥을 타고 다가왔다.

빨리 대답하지 않으면 온몸을 낭자해버리겠다는 듯이.


마치 한빙 지옥의 형량을 정하는 시왕(十王) 중 하나 같았다. 

적당히 넘어갈 상황이 아님을 알아차린 건달들이 기겁을 하며 빌었다.


“이, 이곳에 다시는 얼씬도 하지 않겠습니다! 부디 사, 살려만 주십쇼!” 

“저 저 저 저, 저도 마찬가집니다! 평생 대협의 말씀, 가슴에 새기며 살 테니 한 번만···” 


백연이 되물었다.


“내가 너희의 말을 믿어도 되겠느냐.”

“예, 예예!”


곧바로 건달들의 목 앞까지 치닿았던 가시들이 녹아내렸다.

어느새 그들은 이마에 새겨진 고통 따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조심스레 백연의 눈을 올려다보았다. 


백연이 한 쪽 무릎을 꿇고, 화온공을 두른 손을 들어 한기에 젖은 몸을 스치게 했다.


“이곳을 나섰다고 잊지 말고.”


그들은 갑자기 몸이 따뜻해짐을 느꼈다.  

멈출 줄 모르던 떨림이 잦아들고, 심장 부근이 뭉글뭉글해지는 게 퍽 이상한 느낌이 아닐 수 없었다.

공포를 넘어서서 경외심까지 들 정도였다.

어안이 벙벙해진 건달들은 뭐에 홀린 듯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떠났다. 


백연이 뒤를 돌며 미안한 표정으로 여주인에게 말했다. 


“본의 아니게 일을 키운 것 같아 미안하네.”


어안이 벙벙한 건 지켜보던 여주인도 마찬가지였다.

귀하게 자란 도련님인 줄 알았던 소년이 장정 셋을 압도하는 모습은 눈으로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 기이한 풍경이었다.

그녀는 한참 멍을 때리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허리를 숙여 감사를 전했다.


“아닙니다. 대협이 나서주신 덕분에 궂은일을 면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그럼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여주인은 얼마든지 말하라며 흔쾌히 승낙했다. 

백연이 입맛을 다시며 넌지시 용건을 말했다.


“이미 영업시간이 지난 것 같아 미안하네만, 혹시 만두랑 소면 좀···” 

“푸흡. 알겠습니다. 자리에 앉아 계시면 금방 내드릴게요.”


어느새 정보 단체를 찾겠다는 생각은 완전히 잊어버린 백연이었다.



###



새벽이슬이 마르고, 다음 날이 되었다. 

백연과 철영은 몸을 씻고 가벼운 몸으로 숙소 바깥으로 나섰다. 

조금 외진 곳에 있었기에, 둘은 대로를 향해 걸어가기로 했다.


“자네는 돌아다니면서 거래할 만한 상단을 찾아보게. 여기서 거래를 틀 수 있다면 굳이 대산까지 갈 이유도 없지.”


호위가 호위 대상으로부터 떨어진다는 것이 어불성설인 상황이었지만, 어차피 백연의 무(武)가 자신을 월등히 뛰어넘는다는 사실을, 철영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차라리 둘로 나뉘어 움직이는 편이 밥값이라도 할 수 있겠다고 판단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궁주께서는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나는 정보상을 찾아보겠네. 북천맹은 물론이고 천마신교의 상황에 대해서도 좀 알아봐야겠어. 해가 지면 이곳에서 만나는 걸로 하세.” 


철영이 수긍하고, 둘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흠. 오랜만에 직접 발로 뛰려니 어색한걸.’


대제라고 불리고 나서 이런 일들은 대부분 부하들이 처리했고, 소궁주로 환생하고 나선 바깥에 나와 궂은 일을 해 본 기억이 없었다. 

그렇게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고민하고 있던 찰나, 시선 끝에서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백연은 곧장 달려가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하루 만에 또 보는구만. 어떻게, 간밤에 벌써 나쁜 짓을 하진 않았겠지?” 

“이 씨발, 어떤 놈이 감히···, 히익!” 


어젯밤 백연에게 칼을 휘두르다 혼쭐이 난 사내였다.

확 뒤로 몸을 젖히며 얼굴을 확인한 사내는 바닥에 엎드리며 연신 잘못했습니다,라며 빌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변을 지나던 행인들이 웅성웅성대며 백연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내가 뭐 자네를 잡아먹길 하나, 뭘 하나. 물어볼 게 있어서 그러니 빨리 일어나게.”


사내는 차렷 자세로 냉큼 일어나 긴장이 가득한 채로 몸을 곧추세웠다.

그의 이마에는 아직 솟아오르지 못한 구멍 하나가 여전히 파여 있었다. 


“뭐든 여쭤만 보십쇼!”

“아, 일단 이름부터 좀 말해주게. 난 이왕이면 이름을 부르는 게 좋거든.”

“성은 조 씨에 이름은 평세라고 합니다. 형님!”


백연은 속으로 어감이 그다지 좋은 이름은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


“평세 자네, 신교 직속인가?”

“설마 저 같은 게 그럴 리가요. 신강 주민들이 대부분 신교를 믿으니까 저도 교민이라고 할 순 있겠지만 직속 교도는 어림도 없죠.”


순간 백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단순한 물음을 하나 던졌을 뿐인데, 과거 자신이 알고 있던 상식에 많이 벗어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뭔가 머릿속이 뒤죽박죽이군. 일단 천천히 풀어 나가보자.’


초대 천마, 악단강이 세웠던 천마신교는 엄중한 율법을 기반으로 교민들을 다스렸다.

가벼운 도둑질부터 살인, 강간까지. 

무엇 하나 조사를 대충 하는 법이 없었고, 사실이 확인되면 지은 죄의 배 이상 되는 형벌을 치르게 만들었다. 

조사가 충분치 못하면 오히려 조사관을 처벌했다.


대제 시절, 진시황의 법치조차 한 수 접고 갈 정도라고 직접 말했던 기억도 있으니.

중원인들의 상상처럼 광신도적이고 강자가 모든 걸 마음대로 하는, 그런 무법지대 같은 곳이 아니었다.

적어도 백연이 알고 있는 마교란 곳은. 


“내가 이해가 안 돼서 그러는데, 직속 교도가 아니라면 감히 어제 같은 일을 벌일 수가 있나? 그들의 율법대로라면 아녀자를 희롱하는 건 사형감이라고 알고 있는데. 물론 교도였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됐겠지만.” 


조평세는 입을 딱 벌리며 주먹을 손바닥에 가볍게 내리쳤다.


“아! 모르시는구나. 지금 천악성엔 천마신교가 없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스스로 물러났다,라고 하는 게 맞겠죠.”

“신교가 물러났다고?” 


순간 백연의 목소리가 커지자, 조평세는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대며 속삭였다. 


“쉿! 너무 큰 소리로 얘기하지 마십쇼 형님. 이거 여기서 엄청 예민한 문젭니다. 자, 사람들이 지금 왔다 갔다하면서 형님 아니꼽게 꼬라보는 거 보이시죠?”


백연이 나지막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사람들이 힐끗힐끗 인상을 꾸기며 쳐다보는 게 느껴지긴 했지만, 별 생각없이 머리색이 흰 탓이라고 생각했었다. 


“이게 다 신교가 물러나고, 그 자리를 야왕(夜王)이라는 중원인이 꿰차서 그럽니다.”

“야왕(夜王)?” 

“중원에선 유명하다던데 형님은 모르시나 봐요? 뭐, 살수들의 왕이라 불렸다던데.” 

“모르겠군. 거기다 난 중원 사람이 아니야. 북해에서 왔지.” 


주절주절 떠들다 보니 조평세는 간밤에 있었던 일은 아예 잊어버리고 백연의 옆구리를 콕콕 찔러댔다.


“어쩐지 귀티가 나시더라니. 후후.”

“자넨 참 단순해서 좋겠군.”

“아무튼, 사람들 눈에는 중원이고 북해고, 다 똑같은 이방인이라 여기서 지내시면 형님도 여간 불편한 게 아닐 거예요.”

“혹시 신교가 물러난 게 천악성뿐만이 아닌가?” 

“제가 알기로 동부 신강은 전부 철수한 걸로 알고 있는데요? 상인들 말 들어보면 대산으로 가는 길도 다 막아놨다더라구요.”


어찌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을까. 

십만대산으로 가는 길이 막혔다면, 백연으로서는 이곳 천악성에서 거래를 성사시키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어졌다.


“···빌어먹을.” 


조평세는 버려지고 낡은 좌판 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으쓱거리며 대화를 이어갔다. 


“이게 신교가 물러났다고 해서 몇 백 년 동안 지켜오던 율법이 어디 갈 리도 없고, 여기 일상도 크게 다를 게 없었어요. 근데 어느 순간부터 집집마다 아이가 없어지거나, 사람이 칼에 찔려 죽거나 하는 일이 많아지지 뭡니까.”

“야왕이란 자가 신교의 율법을 지워버리기 위해 자작극을 벌였다는 건가?”


백연이 묻자 그는 입을 쭉 내밀며 어깨를 들썩였다.


“저 같은 건달이 거기까지 어떻게 알겠습니까만 은! 그래도 야왕 입장에선 적잖이 배알 꼴릴 상황이란 건 확실하죠. 말은 안 해도 다들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을걸요?” 


말하는 와중에도 지나가던 주민 하나가 백연 옆에 침을 뱉고 갔다.

조평세는 주먹을 올리며 어디 이게 우리 형님한테,라고 외쳤지만 침을 뱉은 이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봐요, 적개심이 장난이 아니라니까요. 저야 형님과의 찐한 인연이 있으니까 상관없지만.”


백연이 손을 들어 머리를 싸매며 조평세의 말을 가로챘다.


“아, 잠깐. 잠깐. 이거 좀 골치가 아파졌는데···” 

“왜요?”


조평세가 고개를 까딱거리며 물었다.

백연은 자신이 왜 북해에서 천악성까지 오게 되었는지 그에게 이유를 설명했다. 


“자네 말이 다 사실이라면 이곳에서 이방인과 거래할 상단을 찾는다는 건ㅡ”

“불가능하죠. 야왕 모가지라도 따지 않는 이상.”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북해대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중단 공지 +1 23.10.16 190 0 -
공지 연재 시간 변경 공지 22:30 +1 23.10.02 71 0 -
공지 후원 감사 공지. +1 23.09.22 304 0 -
36 백의선인 - 5 +3 23.10.15 217 5 11쪽
35 백의선인 - 4 +1 23.10.14 268 6 11쪽
34 백의선인 - 3 +2 23.10.13 303 8 12쪽
33 백의선인 - 2 +1 23.10.11 306 7 13쪽
32 백의선인 - 1 +1 23.10.10 291 6 11쪽
31 빈민촌 - 3 +2 23.10.09 311 7 12쪽
30 빈민촌 - 2 +1 23.10.07 313 6 13쪽
29 빈민촌 - 1 +3 23.10.06 328 5 14쪽
28 창산 조가 - 5 +3 23.10.05 360 11 13쪽
27 창산 조가 - 4 +1 23.10.04 337 10 11쪽
26 창산 조가 - 3 +1 23.10.03 352 8 12쪽
25 창산 조가 - 2 +1 23.10.02 391 10 13쪽
24 창산 조가 - 1 +1 23.09.30 412 10 14쪽
23 산중 의인 - 4 +1 23.09.29 411 14 12쪽
22 산중 의인 - 3 +1 23.09.28 430 14 13쪽
21 산중 의인 - 2 +2 23.09.27 429 11 11쪽
20 산중 의인 - 1 +1 23.09.26 476 13 12쪽
19 귀가 - 3 +2 23.09.24 522 17 12쪽
18 귀가 - 2 +1 23.09.23 525 14 11쪽
17 귀가 +2 23.09.21 542 17 11쪽
16 마신제 - 3 +1 23.09.20 533 14 12쪽
15 마신제 - 2 +2 23.09.19 531 17 11쪽
14 마신제 - 1 +1 23.09.18 561 16 11쪽
13 천악성 - 5 +1 23.09.16 582 14 14쪽
12 천악성 - 4 +1 23.09.15 626 16 12쪽
» 천악성 - 3 +2 23.09.14 665 19 11쪽
10 천악성 - 2 +2 23.09.13 724 2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