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북경_37. 쾌속의 유령(9)
허구의 역사밀리터리입니다. 동명이인 및 내용은 모두 평행세계입니다.
-9-
드르렁! 드르렁-!
한승범은 잠을 자던 중에 뒤척이는 옆자리의 허일도를 맞이했고, 깜짝 놀라서 정신을 차렸다.
“제국의 영광을 위하라고? 씨파! 좆 까라고 해. 박 소장, 개새끼야! 조선으로 돌아가면 가만히 안 둘 테다.”
잠버릇과 잠꼬대.
얼마나 이가 갈렸는지, 이빨을 갈아대는 통에 잠자리에 눕지 않고 일어나는 한승범.
해가 중천에 있는 광경에 기지개를 켰다.
“대장님, 점심을 준비했습니다.”
이동국이 콩국과 쟁반에 꽈배기를 듬뿍 담아왔다.
청국인이 사는 농가라서 아침 겸 점심으로 먹는 음식을 제공했다. 특이한 먹거리에 고개를 갸웃하는 한승범.
“밀가루를 발효해서 튀긴 꽈배기입니다. 콩국에 찍어서 먹으면 묘하게 속이 편해집니다.”
“그래?”
그때였다.
이반이 콩국이 든 사발에 꽈배기를 잔뜩 넣고 손가락으로 건져 먹으며 다가온다.
“이거 먹을 만합니다.”
딱딱한 군용건빵도 그냥 씹어먹는 괴물의 말.
한승범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꽈배기를 건져서 입에 넣었다.
콩국의 담백하며 달달한 맛이 입안에 감도는 사이 꽈배기가 부드럽게 씹혔다.
“먹을 만하군.”
“모 부대장이 청국에는 책상다리와 탁자를 제외하면 못 먹는 게 없답니다. 빌어먹을 건빵과 말라비틀어진 만두(속이 없는)만 준 것을 생각하면 살이 떨립니다.”
경진철도 전선의 보급은 최악이었다.
뭐라도 배에 꾸겨 넣을 수 있으면 다행이다.
그나마 청국 출신 병사들이 곡물에 잡초를 넣고 양을 늘리는 방법을 쓰지 않았더라면 굶어 죽을 뻔했다.
당시를 회상하는 이반의 진저리를 모를 군인이 없었다.
“소문에 의하면 북경에서 특별한 오리요리가 있답니다. 얼마나 맛있을지 상상도 못 하겠습니다.”
이반이 식사 도중에 어디서 들었는지, 북경의 대표적인 요리 중 하나를 늘어놓았다.
군인들도 입맛을 다셨다.
이하응이 청국으로부터 만주를 할양받은 뒤. 북경오리처럼 중국 특유의 음식문화가 조선으로 흘러들어왔고, 고급 요리에 대한 환상이 시중에 깔렸다.
“본토로 돌아가면 요리사를 초청해서라도 배가 터지도록 사주지.”
“한 대장님, 진짜입니다.”
이반이 웃었다.
다른 사람들도 콩국과 꽈배기를 들며 기름진 오리요리를 떠올렸다.
군인이 되면 식탐이 생기기 마련, 좋은 요리와 술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들었다.
“그나저나 모 부대장은 어디로 갔습니까?”
“칼캐로돈으로 가서 마지막 협상을 조율한다고 했다.”
“잘 돼야 할 텐데.”
이반의 걱정.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죽으면 가족을 건사할 사람이 있다고 해도 삶이 힘들기 때문이다.
몇몇은 아이가 있어서 돌아가고 싶다는 결의를 눈빛에 드러냈다.
“에이! 저 양반도 사람 되기는 글렀습니다.”
저 멀리 모개광이 걸어오고 있었다.
청국 상인의 복장으로 변장해서 오는 터라, 검문을 받지 않는 행색이었다.
“식사하고 계셨군요. 요우티아오와 또우장은 속이 편한 요리입니다. 콩국물에는 콩가루와 설탕, 땅콩과 소금을 넣고 끓인 거라 영양분도 충분하지요.”
농가 아낙네가 가져온 콩국을 마시다시피 해치우며 상의 주머니에서 접은 종이를 꺼냈다.
“로벨리타양이 조직의 이름으로 약속한 증서입니다. 약탈한 총액의 1/10을 지정한 은행에 넣어주겠답니다.”
종이에는 영문과 조선문자를 겸용해서 적었는데, 입금처는 조선중앙은행 요양지점으로 수취인은 이동국이었다.
“제 이름이 여기에?”
“우리 중에 금융 지식이 있고, 외환업무가 가능한 사람을 찾으라면 이동국 병장뿐이다.”
“모 부대장님의 이름으로 하셔도.”
“아니야. 조선으로 돌아가는 즉시, 한 대장님과 나는 수사 대상이라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가 없다. 박수신 소장이 남산감찰대를 맡았으니, 속옷까지 벗기더라도 알아낼 수 있다.”
일행이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들을 지옥으로 빠트린 원흉이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남산의 책임자가 되었다는 말에.
모개광은 개의치 않았다.
이반이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이 증서를 믿을 수 있습니까? 제 할아버지도 차르가 준 양피지 쪼가리를 믿다가 뒤통수를 맞았고, 한 대장님도 박 소장이 서명한 문서를 가졌는데도 배신을 당했잖습니까.”
다들 의심의 눈빛으로 바라본다.
모개광은 그럴 줄 알았다는 투로 말했다.
“이 증서뿐이라면 당연한 말입니다. 혹시 위대한 장터 혹은 거리에 관해서 들어본 사람이 있습니까?”
잠에서 깬 허일도가 구시렁거렸다.
“장터? 국밥 파는 곳 말입니까?”
조선이 개화하며 많은 신조어가 생겼으나, 시장을 장터로 부르며 온갖 음식을 팔았다.
모개광은 무시하고 계속 말했다.
“언제부터 생겼는지 몰라도 대략 100여 년쯤. 세상에 없는 것을 구할 수 있고 구하지 못하는 게 없다고 알려진 장소가 호사가의 입을 타고 흘러나왔습니다.”
한승범은 어디서 듣던 내용이라 고개를 갸웃했다.
사촌 형 한기범이 우스갯소리로 고대 유물을 사고, 파는 장소가 장터라며. 런던 뒷골목의 ‘뾰족탑의 거리’와 오스만튀르크의 수도 이스탄불 ‘황금 모스크의 골목’에 다녀온다고 했다.
‘조선에도 뾰족탑과 황금 모스크에 버금가는 어둠의 장터가 있다고 했지. 거래를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라를 가리지 않고 여러 화폐도 받아준다고 했다.’
조선의 ‘원’과 영국의 ‘파운드’를 포함한 현지의 돈을 전신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체계를 갖춘 곳이라는 내용도 귀띔해 준 것을 기억했다.
“3대 거리? 3대 시장? 본론부터 말합시다.”
허일도가 초를 친다.
이반과 이동국 등이 눈총을 주자, 슬그머니 입을 다물고 한승범의 뒤로 숨었다.
“약간의 설명을 곁들어야 이해될 곳입니다. 3곳의 명칭은 런던에 있는 ‘뾰족탑의 거리’와 오스만튀르크에 있는 이스탄불의 ‘황금 모스크의 골목’, 조선의 위대한 왕이 만든 ‘어둠의 장터’이며 고객이 뜻대로 지정한 국가의 은행에 입금해 준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습니다.”
한기범과 모개광의 설명이 일치했다.
한승범은 침을 삼키면서 묻고 싶은 것을 참았다.
대화 속에 비밀을 더 듣고 싶기 때문이다.
“저희 측에서 지급 방식을 의심하자, 로벨리타양이 가장 가까운 어둠의 장터 사람을 부르기로 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내일뿐입니다.”
오늘 새벽에 부른다고 해서 당장 나타난다는 보장이 없다.
조선과 청국의 거리는 둘째치고, 양국이 국경과 바다를 통제하는 상황에서 도착한다는 게 어불성설이다.
“정확히 내일까지 온다고 했습니다.”
“속이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녀의 조직이 아무리 대단해도 어둠의 장터 앞에 조족지혈입니다.”
그러면서 칼캐로돈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당시 모개광의 의문에 샨체스가 연합국과 함께 종군기자로 온 ‘마녀의 카페’의 사람을 보증인으로 세우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에 톰이 화를 내며 반대했다.
-폭력과 사기에 능한 비공식 3대 장터의 일원, 마녀의 카페를 추천하는 것은 미스터 한과 불화를 쌓는 일이야. 차라리 아시아 최고의 공신력을 가진 어둠의 장터에 의뢰하자.
한승범은 귀를 쫑긋 세우며, 비공인 3대 장터에 관한 기억을 찾아냈다.
사촌형의 입에서 사기꾼이 판을 치는 탐욕과 마계 때문에 골머리를 싸맨다고 했다.
‘광저우에 있는 마계 도박장과 일본 나가사키 항의 탐욕의 거리, 법국(프랑스) 파리에 있는 마녀의 카페는 비공인 장터로 유명하며 사고가 빈번하다고 했지.’
일부 악랄한 장사치는 구매가를 후려치고 판매가를 속이며 돈을 회수할 목적으로 도적까지 보낸다고 했다.
이외 달리 3대 공인 장터는 소속 상인이 불공정 행위를 하는 순간, 척살대가 지옥 끝까지 추격해서 죽인다는 소설과도 이야기를 들려준 게 한승범의 뇌리에 떠올랐다.
“톰과 로벨리타의 주선으로 탈취한 재물을 현장에서 처리하자고 했습니다.”
“어떤 방식인지 몰라도 확실하게 하면 됩니다.”
이반이 으름장을 놓았다.
이동국이 얼떨떨한 얼굴을 했다.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허일도가 한승범의 등 뒤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호탕하게 웃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이 병장은 가능해. 지난번에 쓱싹한 것도 잘 관리하는 중이잖아.”
갑자기 냉랭하게 변한 분위기.
그제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내뱉은 허일도가 손으로 입을 막았다.
“언제부터 촉새가 되었습니까.”
이반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한승범은 한숨을 내쉬었다.
‘허일도에게 단단히 말해둬야겠어. 로벨리타 일행이 타고온 열차를 파괴하면서 녹아버린 은화를 드럼통에 숨겨두고 이동국에게 관리를 맡긴 사실을.’
모개광이 무시하고 계속 말했으며, 경진철도의 생존자 18명을 대신해서 이동국이 자금관리를 맡도록 했다.
“이 병장, 자네가 자금을 관리하고 운용해.”
“알겠습니다.”
“무엇을 하든 상관하지 않겠지만, 죽은 동료의 가족이 굶지 않도록 도와줘.”
조선의용대에 속한 무리의 처우가 알려지지 않은 지금, 고통받을 가족들을 생각하는 배려.
모두 울컥했다.
허일도가 주먹을 쥐었다.
“씨파! 절대 죽지 않을 것입니다. 살아 돌아가서 박 소장 새끼의 멱살을 잡고 따질 것입니다.”
표지는 인터넷임시발췌...문제시 삭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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