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다섯나무의 서재입니다.

선물로 지구를 받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SF

다섯나무
작품등록일 :
2023.01.30 16:25
최근연재일 :
2023.06.10 21:57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7,167
추천수 :
115
글자수 :
675,390

작성
23.06.03 21:07
조회
24
추천
0
글자
22쪽

나일의 여신

DUMMY

하피

이집트 신화

하피(Hapy, Hapi)는 나일강의 주기적 범람을 상징하는 신이다. 나일강의 범람은 퇴적을 땅에 쌓아 기름진 땅을 만들어 주기 때문에, 하피는 농작의 신으로도 여겨졌다.


그리스 신화

여자의 머리와 날카로운 발톱을 달고 있는 새인 이들은 에게 해의 섬들에서 아이들과 인간의 영혼을 잡아먹고 산다.


집을 짓는 과정에서 일어 난 소란은 며칠이 지나자 잠잠해졌다. 다들 생업이 바쁘기 때문에 한 가지 사실에 너무 오래 집착하지 못 한 것이다. 그것이 비록 인간들에게 경이로웠을지라도 말이다. 이집트로 돌아와서 내 인격도 다시 본체로 돌아왔다. 포세이돈의 인격은 너무 경박스러워서 나조차도 닭살이 돋을 정도이다. 물론 클레이토가 변한 내 성격에 적응하기 힘들어했지만 금세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려 한시름 덜었다.


사람들과 부대끼고 싶다는 클레이토의 말처럼 그녀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사라졌다가 저녁에 들어오곤 했다. 그리고 그녀는 정말로 밖에서 각양각색의 사람을 만나왔다. 나일강을 서쪽에 두고 집을 지은 까닭에 일몰을 못 보지만 오전의 일출은 그래도 봐줄만했다. 오늘도 이 일출을 바라보면서 사색에 잠겨 있는데, 클레이토가 무에 그리 바븐지 부산을 떨고 있다. 이 작은 마을이 그녀가 들어오고 난 부터는 제법 큰 마을로 변했다. 나와 그녀를 보러 수많은 사람들이 이주했기 때문이다. 먹을 것을 주는 것도 아닌데, 왜 그리도 몰려드는지 인간들의 뇌 구조가 참으로 의심스러웠다.


“여기요. 나 드디어 결정했어요.”


클레이토가 잔득 상기된 표정으로 내 앞에 섰다. 그녀에게 할 일을 찾으라고 했는데 이제야 결론이 난 모양이다. 그래 너는 어떤 장난을 쳐 줄래. 며칠이라는 시간이 너무 짧다고 느껴지지만 인간의 기준으론 그게 긴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자네가 어떤 결정을 한다고 해도 지지해 줄게. 내가 누구인지는 이제 잘 알거니까.”


인간의 기준으로 원 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상상력의 한계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이건 진이 인간들과 계약을 맺는 것을 봐도 알 수가 있다. 물론 시몬의 무능력 때문에 그 내용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결과를 보면 인간들의 욕심의 한계는 잘 알고 있다. 인간의 욕심은 크게 두 가지다. 재능 아니면 권력이다. 그런 사소한 것을 얻는 대가로 진이 무엇을 얻는지 알 수는 없지만 진도 시간의 소소함을 달래려면 취미생활을 가져야 했기에 더 자세히 알아보지는 않았다.


“핏, 또 그런 할아버지 같은 말투. 그래도 오늘은 용서해 줄게요. 저 결심했어요. 신이 될게요.”


응? 신? 야! 넌 인간이야! 인간이 어떻게 신이 돼? 능력도 없으면서.


“정말? 신도 종류가 많은데, 어떤 신이 되고 싶지?”


이 곳 이집트엔 정말로 수많은 신이 존재한다. 얼마 전 있었던 전쟁의 원인이었던 프타도 신으로 대접을 받았고, 하다못해 내 밑의 안드로이드인 녀석들도 신으로 추앙을 받고 있다. 그 놈들 각기 인간 세상에 뿌리를 잘 내렸다.


“놀리지 마세요? 저 이렇게 큰 강은 처음 봐요. 나일강의 신이 되고 싶어요.”


신성 부여가 조금 약하다. 처음이니까 이해는 해 주어야겠지. 어쩐지 요새 사제들이 많이 돌아다닌다 했다. 물론 나 때문에 왔겠지만 나를 못 만나서 이 아이에게 접근했나보다. 그 녀석들이 클레이토에게 바람을 집어넣었겠지.


“나일강의 여신 클레이토라. 나쁘진 않은데.”


신성은 내가 부여해주면 된다. 든든한 백이 있다는 것은 이래서 좋다. 개인의 능력이 아무리 좋아도 나를 만나지 못 했다면 이 아이는 다른 인간들처럼 일만 하다가 지난번 하데스족의 학살 때 다른 인간들처럼 죽어 나갔을 것이다.


“새롭게 시작하려고요.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나일강의 여신 하피(hapy). 멋있죠ㅣ?”


하필이면 골라도 그런 촌스런 이름이냐. 강아지 이름도 아니고. 그래도 얼굴엔 웃음기를 띄웠다. 비웃음이었지만 그런 내색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활짝 더 웃었다.


“그렇지. 행복을 가져다주는 여신이라. 역시 우리 클레이토는 착해요.”

“이제부턴 하피라고요. 그렇게 불러주세요.”


양 볼을 부풀리는 표정도 귀여웠다. 그래 행복이 그리웠을 것이다. 험난한 시간을 보내왔으니. 이제부턴 너에게 행복을 주어야겠구나.


“인간에게 행복은 어떻게 전해 줄려고?”


여러 사람들을 보았으니 그에 따른 계획도 세워 놨을 것이다. 특히나 사제같이 매일 놀고먹으면서 인간들의 피를 빨아먹는 기생충 같은 놈들과도 어울렸으니까. 그래서 쿠푸의 편에 섰던 인간들이 제일 먼저 했던 행동이 바로 사제들을 쳐 죽이는 것이었다.


“여긴 땅이 엄청 좋아요. 제 고향보다. 무엇을 심어도 다 잘 자랄 거예요. 사람들에게 농사를 짓게 할 거에요.”


그건 네가 시키지 않아도 이미 다들 하고 있거든. 네 눈엔 나일강 주변에 있던 농작물이 보이지 않지?


“이제 보니 하피가 생각이 깊구나. 사람들을 생각하는 네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다. 인간들에게 좋은 씨앗을 제공하고 더 좋은 토양을 만들고 농사법을 개량하면 사람들이 다들 널 좋아할 거다.”

“정말요? 너무 좋아요.”


하피의 눈이 반달로 변했다. 그래. 네가 못 하는 것은 내가 지원해주면 되지. 뭘 어렵게 생각을 해. 지구 환경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품종을 개량하고, 주기적으로 나일강의 퇴적물을 옮겨 주면 농사는 내가 말 안 해도 잘 지어질 것이다.


이렇게 해서 클레이토 아니 하피의 신 만들기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그런데 분명히 하피의 컨셉은 농사를 짓는 나일강의 여신이었는데, 이놈들 하는 꼴은 그게 아니었다. 이건 다 사제들의 농간이었다.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사제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농사 관련 작업이 아니라 신전부터 짓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자기 돈으로 하면 얼마나 좋아. 왜 주변에서 성실히 일하는 농민들을 등치는 건지. 인간들 기준으로 신전에 들어가는 돈은 장난이 아닌데. 거기에 이집트 당국도 사제들이 하는 일을 돕고 있었다. 이 놈들은 쿠푸의 영향력 아래 있어서 그저 내 눈치를 보느라 방해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래선 시작도 하기 전에 happy가 아니라 unhappy가 될 확률이 다분하다. 하피야, 넌 이 사실을 알고 있니?


“행복의 여신이 되는 일은 잘 하고 있어?”

“그럼요. 요새 행복이 뭔지 정말 절실히 느끼고 있어요.”


이 죽일 놈의 사제들. 순진한 아이의 눈을 완전히 가리고 있다. 세상은 그렇게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단다.


하피를 통해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을 만나기로 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일을 꾸미고 있는지. 너희들이 아무리 잘났다고 하더라도 예전의 조르아스터만큼은 못 할 것이다. 하피를 도울 겸 그 사기꾼을 깨울까라는 생각을 진지하게 정말 잠시 고민했다.


“위대하고 위대하신 태양신 라님을 영접하게 되어 감개가 무량합니다. 제 살아생전에 이런 영광이 다시없을 듯합니다.”


내 상념을 깨고 들어 온 이는 이든이라는 늙고 추레한 자였다. 역시 영상으로만 보다가 실물을 보니 느낌이 다르다. 영상 속에는 깨끗한 화면을 잡기 위해 빛을 효율적으로 처리한 각도로 잡아서 고고하고 깨끗한 느낌이었는데, 이건 무슨 시골 영감을 보는 기분이다. 얼굴의 주름도 영상으로만 보았을 때는 철학적인 기품이 보였는데, 지금은 그저 쭈글쭈글한 노인이 있어서 그저 연민만 들 정도였다. 마치 무장해제 당하는 느낌이려나.


“내 아이를 만난다고 들었는데?”


연민이 드는 건 내 사정이고, 물어 볼 건 물어봐야 했다. 이 늙은 사제를 부른 이유도 그것이고. 다른 사소한 질문이나 잡담은 이 사제와 나누면 안 된다는 불길한 느낌이 들어서이기도 했다.


“사제의 본분이 신을 영접하는 겁니다. 신의 복음을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것이 저의 주된 소명이지요. 그렇기에 지상에 내려오신 신을 뵙기 위해 불원천리를 마다하고 온갖 고생을 다 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응? 내가 알던 것과는 미묘하게 다른데? 나를 보기 위해 왔다고? 모시던 신을 믿는 사람들이 없어지고 게다가 공격적으로 바뀌어서 도망쳐 온 주제에? 나를 시험하는 것이냐?


“복음? 네 목소리가 아니고?”


이제는 하피가 된 클레이토를 살살 꼬드겨서 엉뚱한 일을 벌이는 주제에? 기발한 것이나 새로운 것을 했다면 또 모른다. 이미 있는 농사를 짓자고 하는 녀석이? 늙었다고 봐줄 줄 알아? 넌 내가 보기엔 아직 젖도 못 뗀 애기 수준이다.


“제가 미천하여 신의 뜻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저에게 갈 길을 알려 주시면 그대로 따르겠나이다.”


한 번 지른 말에 바로 무릎을 꿇고 저자세를 보이는 이든이었다. 그렇지만 그의 심장 고동 소리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그저 자세만 바꾸었을 뿐 그의 내심은 전혀 변함이 없다는 증거였다. 이 녀석을 어떻게 해야 하나? 불쌍해 보이는 겉모습 속에 숨어 있는 여우를.


“그대에겐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아 있다. 생이 다하기 전에 다른 지역의 사람들도 만나보기를 권한다.”


껄끄러운 녀석은 안 보면 그만이다. 게다가 하피와의 관계도 끊게 해 주니 더 좋다. 근심거리를 가까이 두고 볼 마음도 없고. 내가 아무리 지루한 것을 싫어하더라도 이 녀석은 아니다.


“누구의 말씀이라고 거역하겠습니까. 기꺼이 신의 말씀을 따르겠나이다.”


내가 잘못 본 것인가? 이 늙은 아이. 전혀 요동을 치지 않는다. 짧은 생을 살면서 마음을 어떻게 단련했는지 모를 정도로 강심장이다. 하다 못 해 맥박수도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 멀고 먼 거리를 와서 아무런 성과도 없이 다시 먼 길을 갈 녀석으로는 보이지 않는데.


이든이라는 늙은 사제를 보내고 그가 하는 양을 지켜봤다. 내 말을 어떻게 피해 가는지 그것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거실 한 가운데 영상을 올려놓고 그의 걸음걸음을 지켜보았다.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 내 주변엔 지성체가 없었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지금 이 거실 아니 이 집 안에도 아무도 없었다. 얼마 전에 아트가 북적거리던 때를 제외하고는 지구에 온 이래 거의 나 혼자 생활을 하는 시간들이었다. 내가 이렇게 사회성이 없었나? 스스로 외톨이가 되어서 심심하다고 징징거리던 게 바로 나였던가? 그리고 지금도 나에게로 오는 자를 내치고 있는 것이고? 아! 나도 성격 파탄자였나?


“자애로우신 하피 여신님이시여~ 제가 부덕하여 더 이상 여신님을 모실 수 없게 되니, 그 깊은 슬픔을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부디 강건하시고 원하시는 데로 세상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시옵소서. 저는 이만 먼 길을 떠나가야 할 듯합니다.”


조금 전에 생각한 거 취소다. 내가 한 말을 바로 달려가서 고자질 하는 놈이라니. 네가 믿는 구석이 바로 이거였구나. 그래서 내 말에 전혀 흔들림이 없었고. 하피가 네 편을 들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하피는 바로 내 아내라고. 이제 만난 지 겨우 한 달도 안 된 녀석보다는 나를 더 신뢰한다고.


두 번 다시 이든이라는 녀석을 볼 일이 없어서 영상을 껐다. 필요 없는 일에 신경을 쏟을 만큼 난 한가하지만 말이다. 시원한 강바람에 몸을 맡기려고 정원에 나와 해먹에 몸을 누이려는 찰나 쾅 하는 소리와 함께 하피가 달려 나왔다. 하마터면 해먹에 몸을 누이려다가 땅 바닥에 몸을 누일 뻔 했다.


“정말 그러시기 에요? 당신도 다른 남자들처럼 여자는 집에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하세요? 그러면 왜 저보고 할 일을 찾으라고 하셨나요?”


야? 그 이야기가 왜 그 쪽으로 넘어가? 내가 언제 네가 하던 일을 말린다고. 난 찬성이야. 대찬성. 네가 무슨 일을 하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줄 거라고. 그런데 사기꾼 하나 떼어 놓는다고 그렇게 득달같이 달려 나와? 주변에 사제가 그 놈 하나뿐이냐고? 그리고 어떻게 그 놈 편을 들 수가 있어? 넌 비록 포세이돈의 인격과 맺어졌다지만 형식상으론 내 아내라고.


그녀의 도발에도 그윽한 눈으로 하피를 쳐다봤다. 다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어렸을 적에 잠시 배운 연기가 이 순간에 빛을 발하다니. 말을 하던 하피도 내 표정이 이상하게 변하자 멈칫거린다. 설마 포세이돈의 인격이 다시 나왔나 하는 걱정 반 기대 반의 표정이었다.


“내 너를 위해서라면 무엇인들 못 할까? 수족처럼 부릴 든든한 아이를 내가 준비해뒀지. 이든이라는 사제도 훌륭하지만. 보라고! 그도 이젠 늙은 몸이야. 이제는 편하게 여생을 보내야지. 안 그래?”


이든 흉내를 조금 내 봤다. 같은 말이라도 표현만 바꾸었을 뿐이지만 느낌 자체는 다르다. 쫓아내는 것과 쉬는 것은 분명 다르지만 결론은 같다.


“그게 그 뜻이었어요? 이든이 말한 것하곤 다른데...”


고개를 더 숙여 하피의 얼굴과 가깝게 했다. 그리고 눈동자를 맞추고. 어색함이 속에서 올라오고 있지만 이든을 떼어내기 위한 연극은 계속해야 했다.


“하피가 착해서 그래. 그래서 이든도 하피랑 헤어지는 게 서운했을 테지. 수 많은 사람을 생각하는 하피의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알아?”


말을 하면서도 닭살이 올라 와 주먹을 꽉 쥐어야만 했다. 몇 십 년을 연기 연습을 했건만 나는 이 분야에 소질이 없다. 내 몸이 내 명령을 거부하는 것을 보니. 그래도 절반 이상은 성공했다. 그녀의 마음에 동요의 파장이 흘러나오는 것이 느껴진다. 이제 마지막 쐐기만 박으면 이 아이는 나에게로 완전히 넘어 온다.


“나만 믿으라고. 하피, 네가 원하는 건 뭐든지 들어줄 수 있어.”


갑자기 그녀의 두 눈이 초롱초롱 빛난다. 내가 무슨 실수를 한 거야? 내 연기력이 아무리 떨어지더라도 인간의 수준은 넘어섰는데?


“정말이죠? 저 결심했어요. 사람들을 정말정말 행복하게 해 준거에요. 우선 이든부터요. 그의 몸을 건강하게 해 주세요. 그러면 쉴 필요도 없잖아요.”


야? 이야기가 왜 그 쪽으로 흘러 가. 그러면 안 되지? 내가 조르아스터를 만나봐서 아는데, 그를 만나는 건 너의 불행의 시작이라고.


“얼른 갔다 올게요. 이든에게 이 기쁜 소식을 얼른 전해줘야겠어요.”


왔던 것만큼이나 재빨리 하피가 사라졌다. 야? 너 여신이라고? 여신이 저렇게 경박해서야. 그녀에게 해 줄 일이 하나 생각났다. 신이면 신답게 신비로워 보이게 해 줘야겠다. 텔레포트 장치를 달고. 음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특수효과도 좀 줘서 향수를 주변에 뿌리고 후광 조명도 조금 넣고. 응?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함장님도 실수를 할 때가 다 있네요? 흐흐흐”


뒤에서 음침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보나마나 루시퍼다. 다 보고 있었냐? 이 창피한 순간을? 그런데 갑자기 번득 이 모든 일의 배후가 루시퍼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이든이 여기까지 오는데 걸린 시간이 너무 짧았다는 생각도 들고. 그렇단 말이지? 네가 꾸민 계략이라면 네 기꺼이 빠져주마. 넌 나를 실망시켜 준 적이 없으니까는 아니군.


“실수라니. 이건 다 고도로 계산된 전략이라고.”

“어련하시겠어요. 그래서 그 쉬운 최면술이나 기억 제거라는 방법도 안 쓰고 말로 하셨군요?”


야? 넌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에게 최면술을 쓰냐? 그건 재능 낭비라고. 애완동물을 좋아하는 이유가 뭔 줄 알아?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에 좋아하는 거야? 그런데 내 마음대로 조종을 하면? 얼만 안 가서 내 손으로 지구상의 인간종을 모두 쓸어버릴 수 있다고. 왜? 재미 없으니까.


“네가 나의 깊은 마음을 어찌 알겠어. 요새 하는 일은 잘 되고?”


내 일에 끼어들 만큼 한가한지 물어보는 거였다. 지난번 내기의 조건. 내가 질 경우 인간의 숫자를 줄여 놓으라는 주문을 이 아이가 얼마나 성실히 수행했을까 물어보았다.


“하, 너무 심한 조건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내기에 져 놓고선 오히려 일을 시키다니요? 설렁설렁 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시간제약은 없잖아요? 가끔 가다 생각날 때 한명씩 죽이고 있답니다.”


자식, 이젠 게으름도 피울 줄 알고. 한가하네? 이 녀석에게 떠넘길 일이 없을까? 아니지. 그러면 이 녀석이 다시 다른 곳으로 가 버리지. 그러면 곤란하고.


“이든은 왜 이리로 보냈어?”


시간 낭비하기 싫다. 네가 이든을 보낸 거냐고 물어본다면 아니라고 발뺌을 할 녀석이다. 그만큼 이 녀석은 영악하다.


“이든요? 누구죠?”


응? 이런걸 나를 닮으면 안 된다고. 내 연기력이 어설프다는 건 나도 알아. 그렇지만 인공지능의 연기력이 그렇게 어설프면 어떻게 하냐고? 눈에 힘을 주고 루시퍼를 쏘아 보았다. 마치 레이저를 쏘는 것처럼.


“아, 알았다고요. 장난도 못 쳐요? 그 있잖아요. 조르아스터. 감히 원시지성체인 인간인 주제에 저를 종처럼 부려 먹으려고 했던 그 녀석이 갑자기 떠으르더라고요. 제가 이런 생각을 하면 함장님도 같은 생각일 거라는 추론이 나왔죠. 그래서 이든의 기억을 살짝 조작하고 조르아스터의 성격도 살짝 부여해서 보냈어요. 이왕 사업을 벌이려면 크게 벌이셔야죠. 그래서 클레이토에게 바람을 조금 집어넣어서 하피 여신님으로 모시게 했죠.”


인공지능 주제에 내 아내를 클레이토라고 불러서 다시 눈에 힘을 줬더니 얼른 여신님이라고 호칭을 바꾸는 루시퍼였다. 그래, 그렇게 눈치가 있어야지.


“그래서? 그 다음은?”


설마 아무 생각 없이 이 일을 벌인 것은 아닐 테고?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네? 그 다음이라뇨? 그딴 건 없어요. 조르아스터란 인물이 함장님에게 많은 영향을 줘서, 돌을 한 번 던져 본 거에 불과해요. 파문이 일어나나 안 일어나나 그저 보고 싶었던 거죠. 큭.”


마지막에 나온 비웃음 소리가 눈에 거슬린다. 이 놈의 루시퍼. 하라는 일은 안 하고. 각 대륙에 퍼져 있는 인간 숫자를 절반 정도만 줄여주면 딱인데. 전염병 몇 개만 풀어놔도 되는 쉬운 일인데, 그 짓도 안 하고 있다. 그 대신에 나랑 놀려고 시도하다니. 이건 분명히 직무유기에 직권남용이다.


“그렇단 말이지? 그럼 나를 건드려야지. 왜 착한 하피를 건드리지?”

“조르아스터만큼이나 함장님에게 영향을 많이 준 인간이 스쟈님 아니겠어요? 과연 그 둘을 만났을 때 함장님이 어떻게 변하는지 확인도 하고 싶었고요.”


음. 너 , 너무 나대는 것 아니야? 감히 하찮은 인공 지능 따위가 그 주인의 행동을 넘봐? 폐기를 시켜야 하나? 내 눈동자의 깊이가 진해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함장님의 행사를 방해하려는 건 전혀 아니죠. 제가 원하는 건 함장님의 소소한 즐거움이에요.”


응? 어쩌자고 루시퍼가 꼬리를 내렸다. 그럴 녀석이 아닌데. 내 표정이 조금 무서웠었나? 아니, 인공지능 따위가 내 표정을 읽었다고? 내가 그렇게 감정을 얼굴에 잘 나타내는 존재였어?


“그래서 이든을 여기 계속 머물게 하겠다?”


내 표정은 표정이고 루시퍼의 의도나 알아야겠다. 그래도 아쉬울 때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인공지능인데 폐기하자니 조금은 아깝다.


“제 손을 떠난 문제죠. 이제. 성격 주입이야 이미 끝냈고, 아마 이든은 자신의 최후 소명을 여기서 마무리 지을 겁니다.”


골칫거리가 하나 늘었다. 하피 때문에 내가 이든을 쫓아 보내는 건 이제 무리다. 명색이 그래도 내 와이프인데, 그 와이프의 제대로 된 첫 소원을 아주 무시할 수도 없다. 루시퍼가 처리해 주길 바랐지만 이 버르장머리 없는 녀석이 내 말을 순순히 들어줄리 없다. 내 말을 듣는 척 하면서 무언가 일을 꾸밀 녀석이다.


“성격 주입만 했고?”

“뭐 다 알면서 왜 그러세요? 소소한 것 몇 가지 더 해 놓았지요.”

“건강 상태는?”

“제가 아쉬운 것이 바로 그거에요. 최대한 불쌍하게 보이려고 그 부분을 못 고쳤어요.”


결국은 내가 손을 써야 하는 거군. 미운 놈을 위해 이런 수고를 해야 하는 내 처지가 한탄스럽다. 그래도 딸 같은 아내를 위해서라면 뭔 짓을 못 할까?


“참, 그리고 기쁜 소식이 하나 있는데 아직 모르시는 것 같아서 말 해 줄까 하는데요?”


응? 기쁜 소식? 나에게도 그런 게 있었어? 뭔데 얼른 말 해 봐.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다? 내가 모르는 기쁜 소식이라니? 뭔데?”

“하피님이 왜 행복을 추구하는 걸까요?”


무슨 자다가 물 마시는 소리야? 하피가 뭐? 뜸 들이지 말라고? 빨리 본론을 꺼내. 이 망할 놈의 인공 지능아.


“그래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어? 나를 만나서 기쁜 거겠지.”


일부러 심드렁한 톤으로 대답을 했다. 내가 네 속셈을 다 안다. 감히 나를 놀려 먹으려는 허튼 수작은 안 통한다고. 하피의 행복은 나를 만나기 전과 후로 나눈다고.


“이래서 남자라는 생명체는 여자라는 생명체를 모른다니까요? 무심한 남성체들 때문에 속이 타는 건 여성체들뿐이죠?”


뭐냐? 너도 지금 남성체라고. 아니 늙고 추레한 꼴로 나타나서는 뭐? 넌 남자도 여자도 아닌 제 3의 성이야.


“말하기 싫으면 가 봐. 나도 너랑 말장난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아쉬운 건 나도 없다. 시몬에게 물어보면 금방 답이 나오는데 필요 없는 일에 정신력을 소비하는 것은 질색이다.


“이래서 혼자 사는 외톨이는 대화가 필요해요. 아니 대화의 기술이 필요하죠. 뭐 저도 쉽게 가죠. 남자와 여자가 같이 있다 보면 아이가 생기는 건 당연한 거죠.”


응? 아이? 설마? 하피가 임신을? 그런데 왜 나는 몰랐지? 시몬은 왜 가만히 있었던 거야? 이런 중요한 사실은 바로 보고를 해야지. 아니 그건 그렇고 시몬도 모르는 일을 이 녀석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아니 알 수도 있지. 이 녀석의 능력이라면. 시몬아, 너는 언제쯤 제대로 된 능력을 구사할거냐.


“하피가 임신을 했다고?”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선물로 지구를 받았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3 신성제국으로 가는 길 23.06.10 12 0 12쪽
42 조르아스터의 귀환 23.06.06 19 0 48쪽
» 나일의 여신 23.06.03 25 0 22쪽
40 포세이돈의 로맨스 23.05.30 25 0 36쪽
39 2차 지구 내전 23.05.22 25 0 42쪽
38 루시퍼 게임 +1 23.05.16 26 0 52쪽
37 외전. 쿠푸와 대마왕 23.05.15 22 0 3쪽
36 고인돌 23.05.13 26 0 30쪽
35 일대 일 교육 23.05.09 29 0 43쪽
34 아이들의 반격 23.05.06 31 0 34쪽
33 굴려라 23.05.01 38 0 36쪽
32 2. 프롤로그 (2부 시작) +1 23.04.30 40 1 2쪽
31 천족의 반격 23.04.20 40 1 61쪽
30 북벌 23.04.13 58 1 68쪽
29 제국을 향한 첫 걸음 23.04.09 50 1 37쪽
28 미친 놈 VS 또라이 23.04.06 48 1 39쪽
27 전쟁 속으로 +1 23.04.02 44 1 41쪽
26 서바이벌 게임 23.03.27 47 0 62쪽
25 작전명 "타이탄 제거“ 23.03.24 65 2 45쪽
24 필사의 도주 23.03.21 59 2 36쪽
23 외전 - 영혼 연구 +1 23.03.20 59 2 6쪽
22 별빛이 반짝이는 길 아래에서, 스타 라인 +1 23.03.20 55 3 44쪽
21 외전 - 가장 성공한 천족 23.03.16 70 2 5쪽
20 아수라장 2 +1 23.03.15 62 3 46쪽
19 샛별 경주 23.03.09 66 3 63쪽
18 아후라장? 아수라장! +1 23.03.07 85 3 62쪽
17 소녀와 아빠 +1 23.03.04 92 1 31쪽
16 지그라토 +2 23.03.01 81 3 25쪽
15 새로운 터전 +2 23.02.28 85 2 45쪽
14 방주와 조르아스터 +1 23.02.25 95 1 5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