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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겸

진천 : 열두번째 마귀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드라마

재필장수
작품등록일 :
2023.10.23 21:52
최근연재일 :
2024.01.19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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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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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글자수 :
453,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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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02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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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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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74화

DUMMY

'...이정도면 됐다.'


해존은 전각의 후방 벽면을 기어오르는 내내 자신과 동등한 수준의 고수가 아니라면 느낄 수 없는 미약한 살기를 흘렸지만 누구도 반응하는 이는 없었다.


전각의 가장 꼭대기로 올라선 후에도 반시진이 넘게 전각 구석구석으로 기감을 뻗어 훑은 해존이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사도놈이 있었다면 진작에 달려왔겠지.'


물론 사도가 부러 지켜보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고, 해존도 당연히 그걸 모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렇게 과감하게 무림맹주의 처소로 향하는 것은 사도를 마주친다 해도 충분히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서였는데, 그건 사마교에 이어 무영문까지 아군이 된 덕분에 크게 상승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교주라는 공동의 적이 있는 한 사도들과 나는 한편이나 다름 없다. 무림맹주가 무영문놈들은 쳐냈어도 나는 다르겠지. 또 다른 지원세력을 만들 기회다.'


후욱- 파팍!!


턱!!


스윽-


가장 위층의 복도 끝에 섰던 무인 두명의 신형이 움찔 하더니 곧 해존의 손에 받쳐져 힘없이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파박!!


이어 복도 저편의 또 다른 셋이 순식간에 정신을 잃었다.


'그래, 나는 혼자 싸우는 것이 아니다. 장형, 사마교, 무영문... 이 무림맹에 사도란 놈들까지 모두가 교주의 적. 봉인이 빨리 깨어진 것이 교주의 회광반조(回光返照)였던거다. 이미 대세는 나에게 넘어왔어.'


사실 처음에야 다소 충동적으로 지른 일이었지만, 맹주의 처소가 가까워질수록 일의 타당성을 확신한 해존의 발걸음은 점차 거침이 없어졌다.


저벅.


봄날 산들바람 불듯 고요하게 맹주의 처소로 들어선 해존의 오른손이 왼쪽 허리춤으로 넘어갔다.


철컥. 스릉-


"어이."


"으음..."


낮고도 냉철한 해존의 짧은 한마디에 침상에 누워 단잠에 빠진 무림맹주 주대는 잠시 미간을 일그렸지만 더 이상의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어이."


꾸욱-


주대의 얼굴 앞으로 날을 세웠던 해존의 검이 아예 일(一)자로 주대의 목젖 위를 내리 누르자, 주대의 몸은 그제서야 조금씩 뒤척여지기 시작했다.


"으음... 음?"


스릉-


"헉!!"


잠결에 눈을 뜬 주대는 눈 앞에 아른거리는 시커먼 덩어리와 목에 느껴지는 서늘한 칼날에 경기 실린 숨을 들이켰고, 해존은 그대로 주대의 가슴 바깥쪽 중부혈을 찍어 누르며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흐흐! 아무리 그래도 무림맹주란 놈이 제 목에 칼이 들어가는 것도 느끼지 못하다니... 큰 소리 낼 생각하지 마라. 달려오는 놈들 다 뒤지는 꼴 보기 싫으면."


"누, 누구요."


"하... 이 멍청한 새끼야. 내가 심심해서 복면을 썼겠냐?"


너무도 멍청한 질문에 짜증이 확 치밀어오른 해존이 검에 강기를 불어 넣었다.


"살고 싶으면 묻는 말에 잘 대답하는거 알지?"


"...마교에서 나왔는가?"


"..."


푹.


"커헉!!"


해존의 왼쪽 검지가 주대의 단단한 이두를 뚫고 들어가 뼈를 찍어 눌렀다.


"끄으으윽..."


"이 새끼가 대답을 하랬더니 질문을 하고 자빠졌네. 한번만 더 짜증나게 굴면 죽인다. 알았냐?"


"끄윽..."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주대는 그 어둠속에서도 밝게 띄일 정도로 하얗게 질린 얼굴을 세차게 끄덕였다.


하긴, 생살을 뚫은 손가락 끝의 손톱이 자신의 뼈를 긁어대고 있는데 그게 어디 보통의 고통이겠는가.


그 와중에도 부하들의 목숨을 생각해 비명을 꾹 참고 있는 것만 봐도 확실히 보통은 아니긴했다.


"좋아, 바로 본론이다. 진짜 무림맹주가 누구지?"


"끅... 진짜라니. 그런건 없소. 무림맹주는 나요."


"그래? 네놈이 혼자 무림을 규합해 무림맹을 세웠다 이거지?"


"그, 그건 다른 문파들의 수장들과 함께..."


"지랄하네. 뒤지고 싶으면 그냥 말을 하지. 사람 귀찮게."


기잉-


해존의 검에 뭉툭하게 둘러졌던 강기가 칼날처럼 예리하게 벼려지며 주대의 목젖을 파고 들었다.


"끄륵...자, 잠깐..."


"왜?"


"무림맹주는 진짜 내, 내가 맞소. 다만 내게 길을 알려주고 다방면의 지원을 해준 고수가 있소. 그자를 말하는 거라면..."


"오? 그래! 이렇게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대답을 하란 말이야. 그놈은 얼마나 고수지?"


"그... 자가 말하길 자신이 현경을 이뤘다 했소."


주대가 의외로 순순히 정보를 꺼내 놓자 해존은 눈을 게슴츠레 좁혔다가 다시 질문을 이었다.


"...역시 얼마전 천마대 다섯을 죽인 놈이 그놈이겠군. 역시 사도지? 아니면 염광이란 자인가?"


"그자가 천마대를 죽인 것은 맞지만 사도나 염광은 아니요."


"뭐?"


주대의 대답에 해존은 잠시간 머리가 멍해지며 눈알을 빠르게 양옆으로 굴리기 시작했다.


'사도나 염광 외에 이 중원에 또 다른 현경의 고수가 있다는 말인가? 뭐지? 그럴만한 자가 있다면 천마신교나 무영문에서 모를리가 없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교주나 소군사님에게서 언급조차 없을 수는 없는데...'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고 기억을 더듬어봐도 예상되는 고수는 도저히 없었기에, 해존은 다시 주대를 향해 서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놈이 누군지 말해라."


"...모르오."


"이봐, 난 굳이 널 죽일 생각은 없어. 허나 네가 말을 하지 않으면 그놈을 끌어내기 위해 널 죽일 수 밖에 없다. 난 시간이 많지 않거든."


"난 정말 아는게 없소. 그자는 항상 복면을 썼고 자신에 대해 어떤 정보도 알려주지 않았소."


"...이봐, 이런 말 까진 안하려 했는데 난 너의 적이 아니야. 나도 교주를 죽이려는 쪽이다."


"..."


제법 부드러운 해존의 회유에도 주대는 입을 굳게 다문 결의가 가득한 안광을 번득였다.


'말 할 생각이 없군.'


해존이 무림 경험이 적다곤 해도 지난 십여년 가량을 살수로 살았다.


그간의 경험으로 지금 주대의 눈에 결코 말하지 않겠다는 강인하고도 분명한 의지가 담긴 것을 알아챈 해존은 착잡한 입맛을 다시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무위가 낮다는 이유로 너 또한 무인임을 잠시 잊었다. 사과의 의미로 고통없이 보내주마."


"...고맙소."


스륵-


가로 누웠던 해존의 검이 수직으로 떨어지며 주대의 심장 위로 올라섰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없소."


"음."


뻐걱.


미련없이 떨어져 내린 해존의 검이 주대의 뼈를 부수고 심장을 꿰뚫었다.


새로운 무림의 희망으로 떠오르던 무림맹주 주대는 그렇게 품었던 큰 꿈을 펴지도 못한 채 향년 39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



다음 날 아침.


무림맹주가 시신으로 발견되자 당연하게도 발칵 뒤집힌 무림맹은 사건 조사와 긴급 회동을 위해 모인 각 문파의 무인들로 북새통을 이루게 됐다.


"대체 어떤 놈이... 이건 필시 마교의 짓이오!!"


"맞소! 지금 사천성 북문 밖에 주둔하고 있는 천마대가 분명하니 당장 보복을 해야 합니다!"


"한장로님 말씀이 옳습니다! 천마대원 다섯을 죽인 그 고수가 우리를 도와 줄 것이오!"


"좋습니다. 그자만 있다면 충분히 싸워볼만 하오! 당장 그 자에게 연통을 넣어야 합니다!"


"저, 헌데 혹시 그자가 누구인지 아시는 분 계십니까? 아니면 연락을 하는 방법이라도..."


"..."


단아한 도복을 갖춰입은 도사의 말에 좌중은 순간 찬물을 끼얹은 듯 한 정적에 휩싸였다.


"...백장로님, 모르시오?"


"그... 그야 당연히 북방의 사도란 자들 아니겠습니까?"


"역시 그렇지요? 허면 연통은 어떻게 넣는지는 아시는지..."


"아! 맹주님을 모시던 종남파의 도사님들이 알지 않겠소?"


"그, 그런가? 허면 어서 불러서 물어 봅시다! 이봐라!"


그렇게 무림맹의 장로들은 서로의 불안한 눈빛을 애써 모른 척 하며 목소리만 점점 높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각 무림맹 전각의 동쪽으로 40여장 거리에 있는 창고.


평소엔 잘 쓰지 않는 소도구나 큰 솜이불 등 잡동사니를 보관하는 작은 창고였기에 인적이 거의 없는 그곳의 가장 안쪽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그 모든 대화를 엿듣던 조인은 착잡한 얼굴로 서서히 눈을 떴다.


'역시 무림맹 놈들이 도망가지 않고 모인 이유가 있었군. 사도들의 존재를 알고있어. 헌데 아무도 접선 방법을 모른다라... 진짜 무림맹주 한명만이 그자와 소통했던 것인가? 그래도 다행이다.'


그간 무림맹이 무영문을 밀어낸 것이 다른 미지의 누군가가 아니라 온전한 주대의 뜻이라 여긴 조인은 내심 안심을 했다.


'이제 주대가 사라졌으니 무림맹과의 연합이 가능할지도 몰라. 후- 근데 맹주를 죽인건 대체 누구지? 사도가 있을지도 모르는데 천마대가 이렇게 과감하게 일을 벌였다고? 일단 시체를 봐야하는데... 젠장.'


전혀 예상치 못했던 문제에 답답해진 조인이 괜히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창고의 문을 열고 나서던 그 때.


"어어?! 나쁜 사람이다!!"


"...??"


"아저씨! 여기 나쁜 사람이야!"


'뭐야? 저 반푼이가 왜...'


난데없이 조인을 향해 삿대질을 하는 수염 덥수룩한 반푼이의 말에 당황한 조인이 두 눈을 껌뻑이자니, 그 반푼이를 데리고 다니던 중년 무사도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반푼이를 향해 물었다.


"으응? 쇠돌아, 저 치가 왜 나쁜 사람이야?"


"저 사람 맨날 없어진다! 일 안하고 숨어서 사람들 말 엿듣는다!"


"뭐? 엿들어?"


"응! 막 숨어서 훔쳐보고 몰래 어디 갔다가 오고! 우리형이 게으름 피우는건 나쁜거라고 했어!!"


"흐음..."


반푼이의 말을 들은 무사가 조인을 향해 날카로운 의심의 눈초리를 쏘아 보냈고, 그에 조인의 얼굴엔 순식간에 비굴하고도 능글맞은 미소가 가득 들어찼다.


"어억! 무사 나으리! 엿듣다니요! 아닙니다!"


"아니라고? 우리 쇠돌이가 머리는 모자라도 없는 말 지어낼 놈은 아닌데... 그래, 지금도 이런 구석 창고에 있을 일이 뭐가 있다고? 수상한 놈이군. 이리 와라. 일단 기사부로 가자."


"히익! 나리! 그, 그것이 아니라 사실 소인이 일이 힘들어 조금 요령을 피우다 보니 그만... 혹시 들켜서 혼쭐이 날까 싶어서 그랬습니다요!! 누가 오나 안오나 눈치를 보느라 소리를 들었을 뿐입니다!"


"뭐야? 헛, 참! 뭐 이런놈이 다 있어? 뼈 빠지게 일하는 사람이 수두룩인데 그 틈에 껴서 돈을 날로 먹으려고 해?"


"아이쿠! 죄, 죄송합니다요! 제가 워낙 몸이 약해서 그만..."


"뭐어? 장정이 따로 없구만 약하긴 개뿔! 자네 이름이 뭔가! 내 당장 관리부에 말해서 내쳐야지!"


"헉! 안됩니다! 근래 기근이 심해 가족들이 삼일에 한끼만 먹습니다요! 이 일 마저 없어지면 저희 가족 다 굶어 죽습니다!"


"떽! 그런놈이 일을 그딴식으로 해? 시끄러! 빨리 이름을 말해라! 안하면 내 직접 네놈을 끌고 가주랴?"


"어, 어이고야... 어머니..."


"어허! 어머니고 나발이고 어서 이름을 말하래도!"


"나, 나리. 허면 잠시만! 잠시만 이쪽으로..."


"엉?"


"헤헤, 잠시면 됩니다요."


"...크흠! 어험!"


갑자기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품속으로 손을 집어 넣는 조인의 행동에 뭔가를 눈치챈 중년무사가 슬쩍 조인을 따라 창고의 안쪽으로 들어섰다.


"아, 이사람 뭘 주려... 아니, 뭘 하려고."


"헤헤! 이거 별건 아니지만..."


"음?"


빠악!!!


털썩!


조인의 품속에서 나온건 무사의 기대와는 달리 불벼락 같은 주먹이었고, 그것에 머리통을 강타 당한 무사는 눈깔이 뒤집히며 볏집이 깔린 창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미안하지만 난 이곳에 더 있어야 해서 말이야. 며칠만 누워 있어라."


턱,탁,탁!


조인이 정신을 잃은 무사의 점혈을 마침과 동시에 저 밖에 서있던 반푼이가 양팔을 퍼덕이며 무사를 향해 뛰어 들었다.


"어, 어! 아저씨! 어!"


후다다닥!


덥썩!


"아저씨! 아저씨이!! 눈 떠라! 말해라!"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는 무사를 끌어안은 반푼이는 금세 울먹이기 시작했고, 그를 내려다 보던 조인의 손이 반푼이의 목 뒤를 향했다.


"쯧. 모자란 놈이 쓸데 없이 일을 만들어서는... 너도 같이 잠들어 있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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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81화 24.01.12 29 0 12쪽
81 80화 24.01.11 38 0 12쪽
80 79화 24.01.10 41 0 13쪽
79 78화 24.01.08 38 0 12쪽
78 77화 24.01.07 36 0 13쪽
77 76화 24.01.04 38 0 12쪽
76 75화 24.01.04 43 0 12쪽
» 74화 24.01.02 33 0 12쪽
74 73화 23.12.31 41 0 12쪽
73 72화 23.12.30 37 0 12쪽
72 71화 23.12.29 38 0 13쪽
71 70화 23.12.28 42 0 12쪽
70 69화 23.12.27 4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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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67화 23.12.25 47 0 11쪽
67 66화 23.12.24 45 0 13쪽
66 65화 23.12.23 40 0 11쪽
65 64화 23.12.22 42 0 12쪽
64 63화 23.12.22 46 0 12쪽
63 62화 23.12.20 44 0 12쪽
62 61화 23.12.19 4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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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59화 23.12.17 4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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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57화 23.12.15 45 0 12쪽
57 56화 23.12.14 5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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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54화 23.12.12 4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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