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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겸

진천 : 열두번째 마귀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드라마

재필장수
작품등록일 :
2023.10.23 21:52
최근연재일 :
2024.01.19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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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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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53,617

작성
23.12.22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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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63화

DUMMY

"!!!"


"헌데 무공은 감당치 못하고 병법을 주로 가르쳤어. 단, 해존 그놈은 교주를 죽이라는 금영진의 명령을 따를 생각이 전혀 없었다. 재물을 모아서 마교를 벗어나려 했는데... 네놈과 교주가 그리 압박만 하지 않았으면 지금쯤 서역 어디라도 가서 조용히 살고 있었을거야. 네놈들의 마수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걸 알고 방향을 튼 것 뿐이지."


"이제와서 그런 말이 무슨 의미가... 헌데 금영진이 놈의 무공을 감당하지 못했다고? 설마 해존이 현경을 이룬것이오?"


"아니, 금영진은 그때 현경을 이루려고 단전을 부쉈다가 폐인이 됐다. 내가 겨우 목숨줄만 붙여놓긴 했는데 몇년 못버티고 텐자전투 직전에 가버렸어. 고통스럽게 죽을게 뻔해서 내가 편하게 보내줬지."


그말에 구지근이 깜짝 놀라며 끼어들었다.


"...뭐? 금영진이 그렇게 일찍 죽었다고? 허면 지금까지의 무영문은 대체 누가 이끌고 있지?"


염광은 미소지은 얼굴을 가로 저었다.


"아아, 그건 안되지. 누가 개방도 아니랄까봐 호기심은... 아, 그리고 사마교. 나도 질문 하나 하마."


"하시오."


"네놈 소교주가 왜 죽었는지는 알고 있나?"


"..."


"크크! 표정을 보니 죽었는지도 몰랐나보군. 소교주는 교주의 손에 죽었다."


"뭐, 뭐라!!!"


"그날 날 죽이려는 교주의 공격을 소교주가 죄다 받아냈거든. 그런데도 아랑곳 않고 어마어마한 절기들을 쏟아 붓더군. 결국 온몸에 구멍이 뚫린 넝마가 되어 눈을 감았어."


"아, 아, 아니야... 소교주님은 아직..."


덜덜덜덜...


"염광! 당장 꺼져라!!"


온몸을 사시나무 마냥 떨어대는 사마교의 등에 다급하게 손을 얹은 구지근이 호통을 내지르자 염광은 짐짓 무서운 시늉을 하며 문을 확 열어 젖혔다.


"어이쿠!! 크하핫!!"


드르륵- 탁!!


털썩.


염광의 모습이 사라지자 마자 바닥에 쓰러지듯 앉은 사마교의 두 눈은 나무로 깎은 인형마냥 텅 비어 있었다.


"사마교,정신 차려라. 염광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는건 아니겠지."


"...예."


"하아- 실로 심마같은 자다. 저 언변과 간사함은 정말..."


"..."


"헌데 교주님께서 중원을 정복하신다는 건 내게 말하지 않을 생각이었나?"


"죄송합니다. 저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시간이라."


"방주님. 한가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물론."


"방주님께서 기억하시는 교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글쎄, 처음엔 순진하고 바보같은 인사였지. 무공에 대한 지식도, 무림에 대한 경험도 거의 없었어. 머리로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본능적으로 의협을 아는 사내였다."


"...흐!"


"그래, 지금은 많이 변한걸 안다. 허나 무인이란 원래..."


"아니요."


"..."


"방주님, 그때와 지금의 교주님은 껍데기만 같을 뿐, 그 속은..."


점점 몸의 떨림이 심해지던 사마교는 이내 어깨를 크게 들썩이며 눈물을 터뜨렸다.


"이, 이봐. 사마교."


"끄흐흑! 그날, 마도천하를 말하는 그날 교주님의 두 눈은... 사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치... 마치 흰 종이에 시커먼 먹을 먹인 것 처럼... 얇디 얇은 흑두(黑豆) 껍데기만을 붙여 놓은 듯한 그 눈... 방주님. 저는 무섭습니다. 너무 무서워서 차마 어찌 할 생각조차 못하고 죽기만을 기다려야 합니다. 으흐흐..."


"진정해라. 네가 흔들리면 어쩌자는 것이야."


"염광의 말이 틀린게 없습니다. 과거의 교주님은 이미 죽고 그 자리엔 인두껍을 쓴 악마가 들었습니다. 어떻게든 인세를 손아귀에 쥐려는 욕망. 사람과 파리 목숨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그 기괴(奇怪)..."


"허어..."


구지근은 사마교가 느끼는 감정을 모르지 않았다.


처음 전투를 겪는 무인이나 군인들의 대부분은 바로 자신의 옆에서 동료의 사지가 터져나가고 머리통이 부숴지는 걸 보게되면- 그리고 그들의 뜨거운 피에 전신이 흠뻑 적게 되면 지금의 사마교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전장 한복판에 주저 앉아 울기 마련이다.

구지근은 침통한 얼굴로 두눈을 질끈 감은 채 깊은 침음성을 흘렸다.


"으으음..."


사실 구지근으로써도 전 대륙이 천마신교의 소속이 되는 것은 상당히 껄그러운 일이다.


구지근이 정마대전 당시 개방을 버리고 교주와 함께한 것은 당시 진천의 됨됨이도 있겠으나 결국은 양민을 지키고자 하는 그의 대의에 동의했기 때문.


이제와서 그 대의가 사라진 마도천하라고 하면 더 이상 마교와 협력관계가 되는건 어려울지도 모른다.


'...허나 지금의 중원이 있는것도 다 교주님께서 그 괴물들과 싸웠기에 가능했던 일. 그렇게 지킨 세상에서 이 이상을 바라는 것은 욕심이 아닌가.'


구지근이 혼자의 생각에 빠져 있자니 어느새 마음을 추스린 듯한 사마교의 먹먹한 목소리가 들렸다.


"죄송합니다 방주님,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아니야. 괜찮으니 염두하지 말게."


"허면... 해존 그 아이는 어찌 하실런지요. 방주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네가 살린 아이다. 굳이 나와 뜻을 맞출 필요는 없어."


"..."


"어려운 문제니 네가 나에게 일러다오. 어떻게 하는게 좋겠나?"


사마교의 호흡이 조금씩 거칠어졌다.


"염광의 말은 대체로 믿을 수 없지만, 만에 하나 해존이 무영문의 검이 아니라는게 사실이라면 저는 그놈의 운명을 보고 싶습니다."


"살리겠다?"


"네, 허니 저와 함께 그 진위를 확인해 주십시오."


"...이 이상 그 아이의 정체를 숨긴다면 그건 교주님에 대한 명백한 배신이고 반역이다."


"제 주인은 소교주님이십니다."


"..."


처음으로 구지근의 앞에서 자신의 본심을 드러내는 순간, 사마교는 그 자리에서 목이 잘릴 것 까지 각오해야했다.


그럼에도 속내를 내비친 것은 자신의 목숨을 구지근에게 맡기겠다는 뜻.


그에 구지근은 또 한동안 말을 잃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하아..."


"방주님, 그 아이가 순수한 마인으로써 교주님께 도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염광의 말이 거짓이고 놈이 무영문의 끄나풀이면?"


"허면 그 즉시 목을 자르십시오."


"...좋아, 허면 진위를 가릴 방법은 내가 알아서 하지."


"예?"


지난 수십년간 그림자도 제대로 잡지 못한 무영문이었기에 막상 사마교로써도 해존과 무영문의 연결고리를 어떻게 끌어내고 확인을 해야 하는지는 상당부분 고민이 필요한 문제였다.


헌데 구지근이 그 방법을 가지고 있다니?


구지근이 정보를 수집하고 일을 판단하는 머리는 뛰어났으나 이렇게 복잡하고 민감한 문제를 다룰만큼의 지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떤 방법인지 여쭤도 되겠습니까."


"별거 있나. 놈의 본심을 확인하면 될 일 아닌가."


"..."


그러니까 그 본심을 어떻게 확인하냐고 묻는 사마교의 눈빛에 구지근은 헛웃음을 뱉으며 한껏 무거워진 몸을 일으켰다.


"읏차! 사람이 진짜 제 본심을 드러낼 때가 딱 세번 있는데 말이야."


"네."


"하나는 술에 취했을 때나 자백약을 먹었을 때다. 거짓말을 할 정신도 없을만큼 취하면 저도 모르게 진실을 뱉게되지. 둘은 본능적인 욕구에 집어 삼켜졌을 때야. 식욕, 성욕, 수면욕구에 정신이 무너지면 바른 말이 나오지 않고는 못베기거든. 허나 놈은 북인의 피가 섞인데다 이미 절정을 이뤘으니 이 두가지는 별 소용 없을테고."


"허면 세번째는 무엇입니까?"


"죽기 직전."


"네?"


"크흐! 무슨 말은. 뒤지기 직전까지 팬다는 말이다."



***


참 구지근스러운 단순한 방법에 사마교는 극구 반대를 했지만, 결국 구지근의 손에 이끌려 섬서로 향했다.


그리고 이 시기 진천은 조선 강원지역의 깊은 산중에서 작지만 아주 바른 모양으로 봉긋 솟은 봉분을 마주하고 앉아 있었다.


"악야."


후우웅-


주변으론 부드러운 바람이 지나며 수만개의 나뭇잎이 서로의 몸을 부대꼈고, 그 포근한 마찰음에 진천은 살며시 눈을 감고 깊은 숨을 내쉬었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네. 다시 당신을 만날 때 까지 얼마나 걸릴지 모르거든. 다음 생일지, 그 다음 생일지 아니면 마지막의 생일지..."


혼잣말을 중얼거린 진천의 손이 봉분의 한켠에 닿자 청색의 공력이 봉분의 안쪽으로 흘러들었다.


"이렇게 하면 당신을 느낄 수 있어. 혼은 없을지언정 당신의 체취는 아직 남아있거든."


스스스스...


진천의 팔에서 봉분으로 스며들던 공력이 서서히 흩어지는가 싶더니, 이번엔 무덤의 안쪽에서 새하얀 운무가 빨려나와 진천의 손바닥으로 스며들었다.


"봉인되던 그 순간엔 그런 생각을 했어. 만약 내가 깨어났을 때 당신이 죽고 없다면 사도놈들은 물론이고 이 대륙에 있는 동인이란 동인은 모조리 죽이겠다고. 흐흐! 싸움에 져서 갇히는 주제에 악만 고래고래 질러댔지. 근데 깨어나서 생각해보니 그러면 당신의 다음 생도 없어지는 거잖아."


"그래서 다른 방법을 선택한거야. 아, 참. 갇혀있는 동안 딱히 답답하진 않았어. 그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았거든. 정확히는 내 선대의 기억을 살았지. 노인으로, 어린 아이로, 때로는 서역인으로, 심지어 거북이랑 말도. 크크! 당신이 들으면 참 재밌어 할 텐데. 특히 노인일 때는 진짜 힘들더라구. 늙었을 당신 생각도 많이 나고... 미안해, 내가 당신을 그렇게 실망시켜선 안됐는데..."


저벅.


"..."


순간, 공터를 둘러싼 숲의 북쪽에서 들린 발자국 소리에 진천은 한참 떠들던 입을 멈추곤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저벅. 저벅.


퍼서석!!


곧 숲속에서 나타난 중년인이 진천을 보곤 입술을 일그렸다.


"진즉에 오라니까 안오더니 왜 이런 변방에 오라마라야?"


"오랜만에 본 아들한테 할 말이 그게 다요?"


"오랜만 같은 소리 하고 있네. 헛소리 말고 어서 가자."


"악야의 묘요."


"..."


"생전에 시아비 노릇 한번 못했으면 죽어 누웠을때라도 인사나 한마디 건네주시오."


진천의 말에 그의 아버지 호문은 감정이라곤 티끌만큼도 찾아 볼 수 없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필 저런 놈을 만나 버겁게 살다 갔구나. 편히 쉬거라. 연이 닿으면 또 만나자꾸나."


"그리 될 것이오."


"뭐?"


"다시 만날겁니다. 내가 꼭 다시 찾을거니까."


"...그러든가 말든가 네놈 알아서 하고 빨리 나서. 어르신 기다리신다."


"지금가면 유예됐던 그때의 징벌을 내리는 것이오?"


"그건 가서 들어라. 근데 대체 너는 뭔 생각으로 겨우 그깟 힘이나 얻자고 심장을 뽑은거냐? 그 지랄을 해서 원래 원래 쥐었던 힘의 백분지 일도 안되는 잔재주를 얻으니까 좋더냐?"


"그 잘난 힘 다 뺏어간게 아버지요. 그러니 내 벌을 조금만 유예 해주시오."


"뭐라?"


"사도놈들이 내게 한 짓을 아시지 않소. 사도도 아닌 염광을 지키기 위해 날 봉인 시켰소. 그리고 그 힘은 동족수장이 빌려준 것이지. 이미 내게 한번의 벌을 내린 것과 같으니 그 기간을..."


"시끄러!!"


"..."


"할일은 무슨! 또 염광놈하고 죽이니 살리니 하며 더 큰 죄나 만들지 말고 당장 붙어!!"



호문은 더 이상 답답함을 참지 못하겠단 표정으로 몸을 튕겨 진천의 쇄골을 덥썩 움켜쥐었다.


후웅!


턱!!


"큭!!"


팍!!


그리고 그와 동시에 진천과 호문의 신형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채 사라져 버렸고, 그 자리엔 진천이 흘리던 짙은 미련만이 남아 악야의 묘 주변으로 무겁게 가라 앉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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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70화 23.12.28 4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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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64화 23.12.22 4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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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57화 23.12.15 45 0 12쪽
57 56화 23.12.14 5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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