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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키 님의 서재입니다.

판상츠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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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키
작품등록일 :
2012.09.20 00:09
최근연재일 :
2023.09.29 06:00
연재수 :
29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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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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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10.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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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판상츠모사][10장 “그녀의 이면, 동전의 옆면” - 18 / 에필로그]

DUMMY

[판상츠모사][10장 “그녀의 이면, 동전의 옆면” - 18 / 에필로그]




딱히 궁금했다기보다는, 머릿속에서 질문을 만들다보니 떠오른 질문이었다. 그리고 그 질문에 아이카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뇨... 부담스럽지는 않은데, 많이 어릴 때 이야기라서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네요.”


“기억나는 것만.”


어차피 기억 안 나는 걸 말하라고 해봤자 무리잖아. 그러나 어쨌든 아이카는 내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을 준비했다.


“아마... 여덟 살인가, 아홉 살이었다고 생각해요. 전쟁이 끝나고 1년 뒤쯤의 일이었으니까... 10년은 됐네요.”


“여덟 살?”


그나저나 꽤나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군.


“어, 그때가 이제 슬슬 이것저것 많이 떠들기 시작할 때잖아요.”


“그래?”


아동의 성장발달단계에 따른 언어사용능력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는 나로서는 공감하기에 뭔가 시큰둥한 기분이 드는 말이었다.


“그래. 그래서?”


“저녁식사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냥 평소처럼 식사를 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술을 한 잔 드시다가 문득 말씀하시더라고요.”


“무슨?”


“우리 딸, 아빠 말에 아니라고 대답하면 아빠가 나중에 인형 사줄게, 라고.”


잠이 살짝 달아났다. 뭐랄까, 근 십 년 지난 기억 치고는... 어쩐지 상당히 구체적인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아이카의 말은 나지막이 이어졌다.


“인형?”


“아버지는 항상 저를 달랠 때마다 인형을 사주겠다고 하셨어요. 어릴 때 인형을 참 좋아했었거든요.”


그리고 아이카는 옛 기억을 떠올리는 듯 잠시 아무 말 없다가, 조심스레 말했다.


“비록 진짜 사주신 적은 거의 없지만.”


뭐... 그거야 부모님들이 대부분 그렇지.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냥 그렇다는 거. 나는 잠자코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어린 생각에도 그걸 알고 있었거든요? 말만 이렇지, 실제로 사주시는 적은 별로 없더라... 하는 거 말이죠.”


“그거야 모든 부모님들의 악의 없는 거짓말이잖아.”


“핀 님 부모님도 그러셨나보죠?”


아이카는 명랑하게 그렇게 물어왔다. 그리고 잠시 후 뭔가 깜짝 놀란 눈치로 말을 이었다.


“아, 죄, 죄송해요. 기억이 없으시죠...”


“아, 응. 뭐.”


나도 조금 당황해서 대답했다. 아, 그렇지. 난 기억이 없는 거지. 나는 작은 낭패감과 작은 안도감을 동시에 느끼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사실... 나는 진짜 부모님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날, 지금도 이해하지 못할... 그러나 아이카는 굳어버린 분위기를 빨리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급히 말을 이었다.


“어, 어쨌든 저는 그때 조금 심술이 나있었거든요. 방금 말씀드렸다시피... 바로 전날에도 아버지는 인형을 사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는데 그것도 안 지키시고는 또 같은 약속을 하시려고 드는 거예요. 그래서 심술이 나서 아버지 말에 완전히 반대로 하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죠.”


그리고 아이카는 잠시 말을 끊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게... 처음이었던 것 같네요.”


아이카의 말이 굉장히 씁쓸하게 들렸다... 별생각 없이 이야기를 주문하고, 그 이야기를 소비하고 있던 나로서는 그제야 내가 뭔가 심한 짓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내가 미처 이야기를 돌릴 틈도 없이, 아이카는 바로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심술로 예라는 대답을 했었지만, 아버지가 갑자기 다른 사람처럼 변하시는 바람에... 첫날은 그저 울기만 했어요. 다음에도 그 질문이 나오면 울기만 했고요. 그렇게 거의 일 년을 갔던 것 같네요. 그동안 아버지는 술에 취해 저를 혼내시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막 애원하시기도 했지만...”


“...했지만?”


아이카는 대답하지 않았다. 과거 회상에 어울리는 정적에 나는 숨소리도 죽인 채 아이카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리고 아이카의 답변은 잠시 후 작은 한숨과 함께 이어졌다.


“...결국, 제 입에서 아니라는 말은 나오지 않더군요.”


가볍게 던진 질문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자 자연스레 나는 당황스러워졌다. 그러나 그런 내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카는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사실 저도 혼란스러웠어요. 이게 뭔데 아버지가 이런 모습을 보이시는 걸까, 내가 뭘 어쩌면 될까... 물론 답은 나오지 않았죠. 아니, 답이 나오지 않은 게 아니라 답이 없었죠.”


아이카의 얼굴을 바라볼 자신이 없어서, 나는 가만히 아이카의 목소리만 듣고 있었다. 목소리에 별다른 감정은 실려 있지 않았다.


“뭐... 그래서 그 다음해 겨울인가 그 다다음해 겨울이던가... 아버지가 절 여기 맡기시더군요.”


“맡겼...다고?”


“나중에 데리러 오신다고 이야기는 하셨지만...”


아이카는 무덤덤하게 그렇게 말하고는 잠시 후 약간 체념한 듯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데리러 오시겠죠. 나중에요.”


벌써... 몇 년 전의 일이잖아.


“그 사이에는?”


“네?”


“그 이후에는?”


내 말에 아이카는 조금 기묘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조금 떨떠름한 표정으로 아이카는 대답했다.


“...계속 바쁘신가 봐요.”


젠장... 나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여덞 살쯤부터 하녀일... 나는 그렇게 그 아버지란 작자를 욕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아이카에게는 그 사람이 여전히 아버지인 모양이었다.


“이해해요. 나중에 뵐 날이 있을 거예요.”


“혹시... 어머니는?”


“네?”


“아버지는 그렇다 치고... 어머니는?”


“어...”


난처하다는 듯한 반응. 그러나...


“저... 지난 전쟁에서 돌아가셨어요.”


할 말이 없다. 나는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것은 확실했기에, 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미안.”


“네?”


“물어보면 안 될 걸 물어본 거 같네. 미안해.”


“아, 아니에요.”


아이카는 화들짝 놀라서 그렇게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내 눈치를 살짝 살피는 눈치더니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저... 이런 이야기 다른 사람한테 하고 싶었어요.”


“응?”


“아, 다른 향해자요.”


아이카는 성실하게 정정했다. 그래서 나는 처음으로 뭔가 좀 불편해졌다. 어... 이거 뭔가 내가 아이카를 속이고 있다는 느낌인데.


“물론 향해자인 게 불편했던 적은 한 번도 없지만...”


그리고 아이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말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아마 이랬겠죠? 그러니까 뭐...”


낙천적인 성격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서글픈 느낌의 낙천적인 성격.


“그냥...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집에 있던 인형이라도 들고 왔으면 걔한테 말했겠지만, 그 애는 집에 두고 와서.”


아이카는 살짝 웃으면서 말했다. 그걸 듣고 있는 나는 어쩐지 안타까운 기분이 들었다.


“아이카.”


“네?”


귀 쫑긋.


“너 바다 갈 때 나도 따라 가줄게.”


“네에?”


아이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아니에요! 무, 무슨 그런 말씀을...”


당황당황.


“그, 그리고 곧 바다로 가는 길도 열릴 거잖아요!”


“응. 그러니까 따라 가줄게.”


“저, 저, 저 엄청 늦게 갈 건데요?!”


“응? 그거 네 마음대로 되나?”


어라? 하는 마음에 물었더니 아이카가 순간 뜨끔하는 눈치더니 잠시 후 풀죽은 목소리로 대답해왔다.


“저, 그, 그, 그러니까... 그냥 그렇게 가고 싶다고요.”


뭐야, 희망사항이었잖아. 그러나 말을 그렇게 한 주제에 늦게 간다는 말 자체부터가 빈말이었는지, 아이카는 우물쭈물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저... 사실은...”


“사실은?”


“...이왕 가게 될 거라면, 최대한 빨리 가보고 싶어요.”


“응? 어디를?”


“바다요.”


“바다?”


난데없는 이야기에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아이카를 쳐다보았다.


“지금 가면... 황제가 막을 텐데?”


“아, 그러니까 지금 말고요... 이번 전쟁에서 이긴다면, 바다로 가는 길이 열리게 되는 거잖아요.”


“그거야... 그렇지?”


“그럼 최대한 빨리 가보고 싶어요. 시간이 더 지나기 전에.”


목소리에 생기가 묻어난다. 그래서 나는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바다를... 가보고 싶어한다라.


“무섭지 않아?”


“네? 왜요?”


“아니, 그 뭐냐... 그러니까 지금 바다로 가는 건...”


말을 꺼내면 꺼낼수록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된다. 얘가 향해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마음 아픈 일을 겪었는데, 그렇게 되면 바다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 비슷한 게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내 질문의 요지였지만, 이걸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내 머뭇거림을 아이카는 당연히 이해하지 못했는지, 고개를 두어 번 갸웃거리고는 대답해왔다.


“그러니까 더욱 가보고 싶은 거잖아요. 과연 바다가 어떤 곳이기에 나 같은 존재가 생기는 건지 궁금하기도 하고.”


“뭐, 그건 그런데...”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나는 일단 그렇게 인정했다. 그러나...


“...그런데 어차피 그냥 물이 엄청 많은 것에 불과할 텐데.”


“그러니까 더 신기하잖아요. 겨우 그거에 불과한데, 왜 우리가 거기 가고 싶어 하는지.”


...얘는 정말로 그냥 가보고 싶은 거구만.


“...넌 진짜 향해자가 맞긴 한 것 같다.”


“핀 님도 마찬가지시잖아요.”


나는 또 뜨끔했다. 그래서 나는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 모든 인간은 바다를 그리워 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로 내 양심을 달래면서 슬쩍 중얼거렸다.


“바다에 가면... 뭘 하게 될까.”


주어는 없었다. 나야 어차피 알 수 없는 질문이었으니까. 그러나 아이카는 즉각 대답했다.


“저도 그게 무지 궁금해요. 바다 안으로 걸어 들어가지는 않겠죠? 바다는 사실 걸어갈 수 없는 곳이잖아요.”


바다에 가면 뭘 하게 될까. 이건 사실 질문이라기보다는 혼잣말이었다. 점점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걸어가면 닿을 수 있는 곳이 바다지만, 정작 바다는 더 이상 걸어갈 수 없는 곳이라는 게 신기한 일인 것 같아요.”


걸어가면 닿을 수는 있어요. 걸어갈 수 있어요. 스스로가 스스로를 인도할 수 있어요.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들이 머릿속에서 흔들린다.


“향해자들은 바다에 도착하면 뭘 하게 되는 걸까요... 향해자가 아닌 사람들은, 바다로 가는 길이 열린다고 해도 그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을까요?”


“없지는... 않겠지...?”


나는 짧게 대답했다. 한 번 몰려오기 시작한 졸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몰려온 생각은 나를 현실에서 천천히 떼어놓기 시작했다.

우리가 바다를 향해 걸어가는 인간이 아니라, 별을 향해 걷는 인간이라면.

언젠가 들었던 이야기가 재생된다.

닿을 수 없겠지.

내 질문에 후작이 등장해서 대답한다. 아니, 걸어갈 수조차 없겠지. 후작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네는 걸어갈 수 있겠나?


“만약 전쟁에서 이기게 되면, 아, 물론 이기겠지만. 어쨌든... 그렇게 되면 바로 바다로 가볼 생각인데, 이건 하녀장님도 이해해주시겠죠? 어, 그런데 그 향해성이라는 게 나중에 가서 또 발현되면, 바다에 한 번 갔다 왔어도 또 갔다 와야 되는 거겠죠?”


“글쎄... 그건... 잘 모르겠는데...”


졸려서 대답은 부정확하다. 생각은 여전했다. 아이카의 아버지는 아이카를 이곳에 버리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이카의 어머니를 제국원정 중에 잃은 게 영향이 없지는 않았겠지? 그리고 그런 아버지에게 버림받으면서 아이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또 가야되는 거면... 음, 경비가 만만치 않게 들 텐데... 그냥 좀 기다렸다가 가는 게 낫겠네요. 흠, 그래도 바로 가보고 싶긴 한데... 하긴 그래도 전쟁이 끝나고 나면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게 되기까지는 좀 걸릴 테니까.”


별빛 품은 둥지 속에, 비늘 품은 알이 있어. 이번에는 시아가 등장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안에 있어. 이렇게도 중얼거렸다.

사실 모든 것이 갖추어진 풍요로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지만, 그건 둥지 안에서 누리는 행복일 뿐.

둥지? 내 독백에 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둥지를 벗어나지 않으면 안 돼. 비록 지금은 이곳이 아늑하고 포근한 보금자리일지라도... 그리고 시아는 말을 이었다.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은 이곳이 아니야.

하지만 우리는 새가 아니잖아. 내 지적에 뜬금없이 시아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우리는 새가 아니지. 그러나 그 대답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래서 깃털 품은 알이 아니라, 비늘 품은 알이라고 하는 거야.


“제가 향해자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그냥... 저는 이번에 꼭 모든 사람이 바다를 볼 수 있게 되면 좋겠어요.”


우리는 새가 아니라, 날개 달린 뱀이죠. 리체가 등장해서 갑자기 그렇게 중얼거렸다. 시아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황당해했다. 그러나 그런 내 반응을 아랑곳하지 않고 리체는 중얼거렸다.

바다에 가면 우리는 무엇을 하게 될까요. 그 질문에 나는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고, 그러자 리체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착하고 나면 알 수 있겠죠. 그런데 저는 처리할 업무가 있어서 이만.


“저, 핀 님...?”


향해자라는 존재는... 왜 있지. 향해자라는 존재는... 무슨 의미가 있지.


“핀...님?”


라미는... 자신의 손으로 핀 아이켈을 죽여야 했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옆에서 우웅하고 볼멘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그에 반응하지 않았다. 아, 그러고 보니... 아이카가 지금 내 이름을 불렀군. 그러나 어째 입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잠깐만 있다가 대답하지 뭐... 아주 잠깐만 있다가. 지금 당장은... 아니, 딱히 졸려서 그렇다기보다는 좀 귀찮아서... 아니, 술이 아직 안 깨서...


“안녕히...”


귓가에 작은 목소리가 속삭이듯 들려온다.


“안녕히 주무세요.”


응, 너도. 이것도 같은 이유로 조금 있다가 말할 예정. 다시 말하지만 딱히 졸려서 그런 건 아니다.


“...오늘 감사했어요.”


뭐가? 물론 이것도 좀 있다 말해야지. 그나저나... 왜 이렇게 졸리지. 아, 하긴 졸릴 만도 하지. 술도 마셨겠다, 잘 시간도 넘었겠다... 많이 어질어질하다구. 그나저나 아이카 말에 대답을 해줘야 할 텐데. 지금 대답하지 않으면 잠들어버릴 거라고.

그런 생각이 드는 바람에 나는 살짝 잠이 깼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나는 그 상태 그대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콩콩콩, 소리라고 하기에는 조금 둔탁한 울림이 느껴졌을 때에야, 나는 내가 잠들어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콩콩콩, 다시 한 번 울림. 그러나 나는 잠에서 깬 게 아니라 잠들어있었으므로 그 울림에 반응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어쨌든 그것은 신경 쓰이는 울림인 것만은 확실했다.

콩콩콩, 의식이 살짝 각성한다. 으... 무슨 소리야? 뭔가 귓가에서 들리는 것도 아니고, 저어 멀리서 들려오는 그런 느낌인데.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만족스럽게 수면에 빠져들...려던 참이었다.


“...핀 님?”


좀 뭉툭한 느낌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울림이 아니라 목소리였다. 그것도 상당히 신경 쓰이는 내용. 따라서 내 의지와 관계없이 의식이 불숙 반응한다.

핀 님? 어... 내용은 둘째치더라도, 어디서 들어본 거 같은 목소리인데.


“핀 님?”


조금 더 선명해졌다. 그러나 조금 더 선명해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뭉툭하다. 비유를 하자면, 마치 벽을 한 겹 사이에 두고 듣는 목소리 같달까. 그러나 그것도 이내 곧 들리지 않았다. 대신 저 먼 곳에서 뭔가 끼익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끼이이익... 탕. 그리고 뭔가가 사뿐사뿐 걷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핀 님?”


굉장히 선명한 끼이이익 소리. 마치 문 열리는 소리 같달까. 그리고 그 소리 뒤에 이어진 목소리는 또 다시 나를 신경 쓰이게 했다.


“저, 핀 님?”


그나저나... 많이 들어본 목소린데.


“저, 실례하겠습니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그 말과 함께 발자국 소리를 두어 번 남겼다. 찰칵,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난 순간에야 나는 내 의식이 생각보다 많이 각성해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라, 뭐, 뭐지...? 그리고 그 각성한 의식을 타고 발소리가 흐른다.


“핀 님?”


“응?”


귓가에 그 목소리가 들리는 바람에 나는 나도 모르게 눈을 떴다.


“저, 리체인데요.”


“...리체?”


내 목소리는 볼품없었다. 어라? 리체? 잠이 덜 깨서 아직 멍하기도 하고, 갑작스런 리체의 등장에 조금 놀라기도 해서 나는 좀 멍한 표정을 하고 리체를 바라보았다.


“저, 이른 시간인데 죄송합니다. 급하게 결재해주셔야 할 서류가 하나 있어서요...”


그리고 리체는 변명하듯 중얼거렸다.


“저, 제가 멋대로 깨울 생각은 아니었는데... 아이카가 지금 자기 방에 없네요.”


“응? 없어?”


잠이 덜 깬 와중에도 나는 아이카가 없다는 말에 반응했다.


“네. 하녀실에라도 내려갔는지...”


“그래?”


뭐, 그럼 좀 있으면 올라오겠지? 그건 리체도 알고 있는지, 리체는 서둘러 용건을 다시 꺼내들었다.


“저, 서류에 결재 좀 해주실 수 있을까요? 좀 급한 거라.”


“아, 응.”


경황은 없지만 일단 결재는 하자. 나는 조금 당황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려고 했다.


“음?”


뭔가 팔을 붙잡고 있는 느낌이랄까.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팔에 뭔가 붙어있는 느낌이랄까. 물론 그 두 가지 느낌에 정확히 무슨 차이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그런 느낌이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음냐, 뭐지? 실밥에라도 걸렸나? 나는 별생각 없이 고개를 돌렸다.


“...어?”


리체의 목소리가 귀로 들어온 것과, 내가 이불 위로 살짝 삐져나온 머리카락을 본 것은 거의 동시의 일이었다.


“어?”


나도 중얼거렸다. 내 머리카락이... 이렇게 길었나? 그런데 그 생각이 얼토당토않은 것임을 깨달은 것은, 내 머리카락이 그렇게 길지 않을 뿐더러 거기에 있는 것은 아무리 봐도 머리카락이 아닌 머리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본능적으로 그 머리를 가리고 있는 이불을 뒤로 넘겼다. 그리고...


“어라?”


아이...카? 아이카가 옆으로 누운 채 두 손을 모으고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노곤하게 자는 것도 아니고 곯아떨어진 것도 아닌, 새근새근 자고 있다는 표현 외에 다른 표현은 불가능한, 그런 느낌의 수면.


“...아이카 여기 있었네?”


아, 하녀실에 내려간 게 아니었구나. 나는 별생각 없이 리체의 동의를 구하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리체의 동의는 나오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상체만을 일으킨 채 리체를 쳐다보았다.


“아이카 여기 있는데?”


“네...”


그런데 어째 리체가 혼란스러운 표정이었다.

음, 뭐야. 아이카가 발견됐는데 왜 혼란스러워하는 거지?


“저.”


“응?”


“아이카가...”


“응?”


“아이카가 왜 여기 있는 거죠?”


“응?”


리체의 말에 나는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그리고 새근새근 자고 있는 아이카를 쳐다보았다. 그거야 당연히... 당연히...


“...어라?”


순간적으로 등골에 소름 쫙. 어, 어라? 나는 순간적으로 정신이 들어 리체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리체의 표정을 본 나는, 이 일을 빨리 처리하지 않으면 본능적으로 골치 아픈 뭔가가 벌어질 거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아, 아이카?”


“우응...”


나는 아이카를 깨웠지만 아이카는 일어나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어깨라도 흔들어서 깨우고 싶었지만, 리체가 보고 있는 마당에 그러기가 쉽지 않아서 나는 소심하게 베개를 흔들어서 아이카를 깨우기 시작했다.


“아이카? 아이카?”


“우웅...”


다행스럽게 효과가 없지는 않았는지, 아이카는 잠시 뒤 눈을 떴다. 그리고...


“안 돼! 잠들지 마! 일어나! 일어나봐!”


“아, 네...”


이름을 부르는 게 아니라 명령을 했더니 아이카가 그제야 반응을 보였다. 부스스하다고 표현할 필요는 없었지만, 아이카는 어쨌든 약간 멍한 상태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어?”


아이카의 입술이 움직여 소리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도 잠시, 아이카는 태평하게 인사를 건네왔다.


“안녕하세요, 핀 님.”


“아니, 지금 그런 이야기를 할 때가 아니라고!”


내가 다급하게 외치자 아이카는 눈을 조금 더 크게 떴다. 그리고 그걸 시작으로, 아이카는 주위를 살짝살짝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라?”


아이카가 화들짝 놀라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리체... 님?”


그리고 그제야 아이카는 다급히 주위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방, 나, 리체, 방, 나, 리체. 그리고...


“꺄, 꺄아아아아악?!”


...아이카의 비명에 오히려 놀란 것은 내 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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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판상츠모사][11장 “동전의 이면, 그녀의 옆면” - 1] +1 20.10.12 86 6 23쪽
163 [판상츠모사][11장 “동전의 이면, 그녀의 옆면” - 프롤로그] +1 20.10.11 133 6 2쪽
» [판상츠모사][10장 “그녀의 이면, 동전의 옆면” - 18 / 에필로그] +2 20.10.10 87 6 21쪽
161 [판상츠모사][10장 “그녀의 이면, 동전의 옆면” - 17] +1 20.10.09 94 5 22쪽
160 [판상츠모사][10장 “그녀의 이면, 동전의 옆면” - 16] +2 20.10.08 87 6 17쪽
159 [판상츠모사][10장 “그녀의 이면, 동전의 옆면” - 15] +1 20.10.07 93 5 19쪽
158 [판상츠모사][10장 “그녀의 이면, 동전의 옆면” - 14] +2 20.10.06 85 7 28쪽
157 [판상츠모사][10장 “그녀의 이면, 동전의 옆면” - 13] +1 20.10.05 117 5 20쪽
156 [판상츠모사][10장 “그녀의 이면, 동전의 옆면” - 12] +1 20.10.04 120 5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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