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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키 님의 서재입니다.

판상츠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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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키
작품등록일 :
2012.09.20 00:09
최근연재일 :
2023.09.29 06:00
연재수 :
295 회
조회수 :
60,150
추천수 :
1,923
글자수 :
2,498,372

작성
20.10.09 06:00
조회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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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22쪽

[판상츠모사][10장 “그녀의 이면, 동전의 옆면” - 17]

DUMMY

[판상츠모사][10장 “그녀의 이면, 동전의 옆면” - 17]




뒤통수에 화분 비슷한 걸 맞은 느낌이었다.


“향해...자?”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딱히 기회가 없어서. 그리고 딱히 중요한 것도 아니니까요.”


아이카는 면목이 없다는 듯 그렇게 중얼거렸다.


“어... 그, 그랬구나.”


나는 당황한 기분을 숨기기 위해 그렇게 입을 열었다. 그러나 사실 아이카의 말이 맞았다. 딱히 중요한 것도 아닌 일이었다. 하지만... 뭐랄까, 아이카가 향해자? 사실 별것 아닌 일이었음에도, 어쩐지 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향해자라. 아이카가 향해자라.


“그날 문을 닦고 있는데... 문득 들어보니 그런 이야기를 하고 계셔서요.”


마치 허물을 고백하듯, 아이카는 조심조심 말을 이어나갔다.


“죄송해요. 엿들을 생각은 아니었는데... 듣고 있다 보니 뒤가 계속 궁금해져서...”


또 다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


“그런데... 문에 기대어 있다가 저도 모르게 발을 헛디뎌서...”


끝 부분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물론 사실 듣지 않아도 큰 문제가 없는 부분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에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그럼 그냥 안에 들어와서 듣지.”


“그럴 수는 없잖아요.”


하긴, 아이카 성격에 저도 관심이 가는 이야기인데 같이 좀 들어도 될까요? 라고 할리가 없지. 쩝, 나는 입맛을 한 번 다시고는 중얼거렸다.


“너도 향해자였구나...”


“네...”


아이카는 살짝 의기소침해져서 대답했다. 그러나 잠시 후, 조심스러운 질문이 하나 날아왔다.


“너도...라고 말씀하시는 거면.”


그리고 아이카는 조심스럽게 말을 꾸몄다.


“죄송해요. 이게 예의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사실 저도 들은 적이 있어서요.”


“응?”


“핀 님도... 향해자...시죠?”


갑작스런 질문에 나는 약간 당황했다.


“응? 나? 으응. 향해자지.”


하지만 나는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 대답했다. 이런 걸 따로 확인할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이카니까 물어볼 수 있는 질문 같달까. 그러나 아이카가 이 질문을 꺼낸 의도는 그렇게 내가 생각한 것과 조금 달랐던 모양이었다.


“그렇군요...”


내 대답에 아이카는 뭔가 생각하는 눈치가 되었다. 그리고 잠시 뒤 조심스런 말투로 물었다.


“저어... 그리고 지금 기억도 많이 없으신 거죠...?”


음? 갑자기 이건 왜 물어본담? 나는 고개를 한 번 갸웃했지만, 대답하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기 때문에 선선히 대답했다.


“응. 머리를 다친 적이 있어서.”


“그러...시군요.”


“그런데 그건 왜?”


내 질문에 아이카가 순간 약간 흠칫하는 것이 느껴졌다. 음? 내가 뭐 이상한 걸 물어봤나? 그러나 잠깐 머리를 굴려 봐도, 아이카가 그걸 물어본 거나 내가 그걸 왜 묻냐 물어본 거나 별 차이가 없는 느낌이 들어서 나는 잠자코 아이카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게...”


아이카의 반응은 조심스러웠다.


“핀 님은 기억 못하시겠지만...”


응? 나는 아이카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에 다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저, 옛날에 핀 님을 몇 번 뵌 적이 있어요.”


뭐...? 그러나 내 그런 생각은 말이 되어 나오지는 않았다. 이번에도 뒤통수에 화분을 맞은 기분이긴 했는데, 이번에는 좀 큰 화분이었다. 아까가 집에 가끔 보이는 난초 화분 같은 거라면, 이번 건 학교 같은 곳에 있는 커다란 관엽식물 화분 같은 느낌이랄까.


“나...를?”


나는 심히 당황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핀 아이켈을... 본 적이 있다고?


“아주 옛날이야기예요. 만약 기억을 잃지 않으셨다고 해도, 절 기억하시진 못하셨을 거예요.”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어... 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다행히 결론을 내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기억 상실... 그것만 잊지 말자.


“그거 언제 이야기야?”


“그냥... 몇 년 전 정도? 공주님께서 가끔 왕궁에 오시면, 같이 오시곤 하셨거든요.”


엑, 뭐야? 그럴 때가 있었어? 나는 순간 당황했지만, 아이카는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듯 조금 느려진 말투로 말을 이었다.


“하긴 그렇다고 해서 개인적인 이야기 같은 걸 했다는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제가 그때 공주님이 묵으시던 귀빈실 청소를 할 때라.”


다행이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다행이란 느낌이 들었다. 그냥 지나가다가 몇 번 봤다 정도지, 개인적으로 서로를 알 정도는 아니었구나. 사실 내가 핀 아이켈이 아니라는 걸 바로 들킬 뻔한 셈이었기에 나의 안도감은 컸다. 그러나 그 안도감 이후에, 나는 신경 쓰이는 사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또 기억하고 있네?”


안도한 김에 나는 슬쩍 질문을 던졌다. 듣자하니 서로 친한 사이는 아니었던 것 같고, 말도 거의 나눠보지 않은 느낌인데 그걸 기억하고 있는 게 조금 이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내 질문에, 아이카는 금방 대답했다.


“그야 당연하죠. 향해자니까요.”


“응?”


“향해자가 흔한 사람이 아니니, 자연스레 관심이 갈 수밖에 없잖아요. 향해자냐고 물어볼 수도 없으니까요.”


아... 그런 관점이 있었군. 작은 충격에 내가 미처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더니, 아이카가 고개를 한 번 갸웃한 다음 자신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혹시 저만 그랬던 걸까요?”


“응? 아, 아냐. 나도 아마 네가 향해자라는 걸 알았으면 당연히 신경 썼겠지? 지금 기억이야 안 나지만.”


아이카는 내 대답에 조금 안심한 듯한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비밀스런 이야기를 털어놓듯 조심조심 중얼거렸다.


“사실... 향해자가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꺼림칙하게 생각하는 느낌이 없잖아 있잖아요. 전 사실 그게 늘 부담스러웠거든요. 정말로요.”


아이카가 저리 말할 정도면 정말로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이해가 안 갈 일은 아니었다. 아이카 같은 그런 섬세한 성격에 그런 시선은 매우 부담이었겠지. 아니다. 그런 일이 성격을 이렇게 만든 건가? 뭐, 어쨌든 감수성도 한참 예민할 나이에 얼마나 상처를 많이 받았을까.

아이카의 말은 이어졌다.


“그런데... 그때의 핀 님은 별로 그런 것에 신경을 쓰시는 것 같지도 않고... 매번 그냥 조용히 있다가 가시곤 했어요. 사실 별로 신경을 안 쓸 수도 있구나... 하는 건 그때 처음 알았기 때문에 도움도 많이 됐었고.”


“도움?”


“그냥 뭔가 초탈한 태도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게 있었어요. 저한테는 그게 큰 위안이었거든요.”


어이, 핀 아이켈 씨. 뭔진 잘 모르겠지만 네 모습이 위안이 됐다는군. 그러나 그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카는 계속 쫑알거렸다.


“사실 그때 이후로 처음 뵙는 거라... 처음 뵐 때는 못 알아봤어요. 하긴 몇 년 지나기는 했지만 외모도 성격도 꽤 많이 바뀌셔서 진짜 그때 그 사람 맞나... 싶은 생각도 몇 번 했거든요.”


“그, 그렇지? 지금 한참 성장기라서... 남자들은 잠깐 눈 떼면 확확 자라잖아?”


나는 진땀을 흘리면서 그렇게 대화를 수습했다. 아이카의 눈썰미가 생각보다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성격은... 그러고 보니 핀 아이켈은 꽤나 내성적인 성격이라고 했던가. 음, 이것도 좀 고쳐야 되나 그럼?


“물론 오실 때마다 조금씩 바뀌시기야 하셨지만... 이번에는 몇 년이나 못 뵈었으니 그 정도도 좀 큰 것 같네요.”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생각보다 꽤나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던 모양이군. 어, 그런데...


“그런데 오실 때마다...라니?”


“네?”


마치 핀 아이켈이 가끔 왕궁에 오는 사람이라는 듯한 느낌의 표현이었다. 왕궁 안에서 일하던 사람이 아니었나?


“아, 그러니까... 핀 님이 항상 공주님 시종으로 있으셨기 때문에 왕궁에는 안 계셨잖아요.”


그리고 아이카는 내가 기억 상실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냈는지 살짝 정정했다.


“안 계셨었어요. 항상 공주님이 계신 별장에 계시다가 한 해에 한 번 정도, 공주님이 궁에 오실 때만 따라오신 거고.”


“아, 그래?”


아... 이건 또 처음 듣는 사실인데. 아니, 들었는데 내가 기억을 못하는 건가? 뭐, 어쨌든 그렇게 썩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나는 슬쩍 말을 돌렸다.


“그랬군. 이거 뭐 기억이 없으니...”


“언제쯤 돌아오실까요?”


아이카의 진심어린 걱정에 양심의 가책이 약간.


“뭐... 이건 약이나 치료 같은 걸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니까, 언젠가 돌아오겠지. 딱히 지금 없다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편한 점은 없으니까.”


“모르니까 불편한 점이 없는 것 아닐까요. 그래도 소중한 기억들일 텐데.”


아이카가 제법 야무진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나와는 별로 관계없는 이야기라 나는 아무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말을 마친 아이카는, 잠시 후 조금 쓸쓸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물론... 그 모두가 꼭 소중한 기억인 것만은 아니겠지만요...”


응? 별안간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이야기에 나는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뭔가 문맥상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드는데... 뭔가 우중충한 느낌이 든단 말야. 그러나 그런 내 생각은 곧이어 이어진 아이카의 말에 금방 끊기고 말았다.


“...사실 핀 님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었는데.”


“나한테?”


“몇 년 전부터요.”


응? 고작해야 간단한 질문 정도를 예상하고 있던 나는 그런 아이카의 말에 눈을 살짝 크게 떴다.


“묻고 싶은 거?”


“그냥... 향해자시니까.”


아이카는 꼼지락거리면서 눈을 마주치지 않고 답했다.


“향해자?”


“...다른 사람에게 향해자인지 물어보는 건 금기잖아요.”


어, 그러고 보니 그랬지?


“하지만 핀 님은 처음부터 향해자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으셨으니까...”


아, 그래? 핀 아이켈이 자기 입으로 그렇게 말하고 다니기라도 했나?


“향해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듣고 보니 구체적인 답을 원한 게 아니라, 향해자라는 존재에 공감해주고 같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사람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이런 말하기는 그렇지만... 참 소녀답달까.


“향해자에 대한 이야기라...”


아이카는 음~ 하는 표정이 되었다.


“글쎄요... 그런데 뭘 하고 싶어서 간다기보다는 그냥 가게 된다고 하니까...”


그리고 아이카는 여기서 뭔가 생각난 듯 중얼거렸다.


“어, 그것도 궁금했어요. 아무 이유 없이 그냥 바다를 향해 가고 싶어진다는 게 도저히 이해가 안 가거든요. 지금도요.”


나도 이해가 안가는 건 마찬가지다. 물론 나야 향해자가 아니니까 그렇다손 쳐도...


“아이카.”


“네?”


“너, 바다를 그리워하고 있습니까? 같은 질문을 들으면 무슨 생각이 들어?”


“생각이요?”


“그냥... 너는 어떤 느낌이 드나 궁금해서.”


“느낌이면...”


아이카는 잠시 생각하는 표정이 되더니, 이내 중얼거렸다.


“...물어봐주시겠어요?”


“응?”


“질문을요. 그럼 생각해볼게요.”


아이카는 진지한 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표정에 나는 잠시 당황했지만, 그러나 곧 당황할 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물었다.


“너, 바다를 그리워하고 있어?”


아이카는 말이 없었다.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 그리고 그렇게 대답 없이 아이카는 약간의 시간을 생각에 투자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아이카는 찬찬히 입을 열었다.


“...네.”


그리고 아이카는 누운 채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미묘하네요.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도 결국은 그 말을 할 수 없는 그런 기분이네요.”


“그래?”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도 결국 그 말이 안 나오는 그런 기분?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는 쉬웠지만, 그 말의 합리성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냥 아니라고만 하면 향해자가 아니라는 말인데... 이 질문에 대한 긍정과 부정이 무슨 의미가 있지? 만약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향해자가 등장한다면, 그 사람은 향해자인가, 향해자가 아닌 건가? 아니, 향해자가 아니게 되는 건가? 나는 살짝 복잡해지려는 머리로 질문을 단순화했다.

대체 향해자라는 것은, 이 세계에서 무슨 의미가 있는가.


“저...”


“응?”


“저, 저도 물어봐도 될까요?”


“뭘?”


내 말에 아이카는 눈을 똑바로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이미 어둠에 눈에 많이 익숙해진 이후라서, 스며드는 달빛 약간만으로도 아이카의 얼굴이 명확하게 보인다. 그런 하얀 얼굴을 하고, 아이카는 천천히 입술을 움직였다.


“저, 핀 님은 바다를 그리워하고 계세요?”


아, 이 질문 말인가. 청개구리 비슷한 심보가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나는 여기서 아니라고 말해보면 아이카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하긴 했지만 이내 그 생각을 고쳐먹었다. 아이카를 놀리기 위해 하는 행동치고는 위험도가 크다. 나는 아니라고 말해보고 싶어서 근질근질한 입을 살짝 다물고는 목구멍에서 다른 대답을 준비했다. 그리고 그걸 꺼내들었다.


“응.”


“우웅... 핀 님은 어떤 느낌이세요?”


내가 말할 수 있는 것도 아이카와 똑같아야하겠지.


“나도 마찬가지야.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정말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말이 안 나오네.”


“핀 님도 그러시군요.”


아이카는 반쯤은 신기한 듯, 반쯤은 실망한 듯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게 궁금했나보지?”


“저는... 서로 궁금한 걸 물어볼 수 있게 향해자 친구가 한 명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아이카는 아무런 주저도 없이 그렇게 답했다. 이런 답이 금방 튀어나오는 걸 보면, 정말로 생각을 많이 했었나보다. 아이카는 이 이야기도 꽤 하고 싶었는지 재잘재잘 말을 이었다.


“만약 그런 친구가 있다면, 친구가 바다를 향해 떠날 때 저도 따라갈 거라고까지 생각했어요. 딱히 제가 가고 싶지 않아도요.”


“그럼 친구는 네가 떠나게 되면 같이 따라 와주고?”


그거 좋은 우정인데. 그러나 내 질문에 아이카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는 떠나게 되면 친구에게 말하지도 않고 몰래 떠날 거예요.”


“그럼 친구가 슬퍼할 것 같은데.”


“편지를 남기면 되지 않을까요? 친구가 저를 따라오는 바람에 세상에서 잊혀지면 그건 슬프잖아요.”


“...너는 괜찮고?”


“저야...”


우웅...하는 느낌으로 아이카는 대답을 주저했다.


“...그런 친구가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좋으니까.”


아이카의 대답에 나는 순간적으로 조금 감성적인 기분이 되었다.

이런 아이였구나. 단순한 하녀가 아니라, 생각하고 감정을 느끼고 살아 숨 쉬는 한 명의 인간. 사실 어차피 깨고 나면 그만인 세계인지라, 하녀로 데리고는 있지만... 이 아이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나를 매우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지. 이불의 서늘한 촉감도, 아이카와 나의 숨소리도 이렇게 생생한 순간에서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나는 과연 지금 어디에 있는가. 정말... 정말 이 세계는 깨고 나면 그만인, 그런 세계에 불과가. 나는 아이카를 쳐다보았다. 만약 꿈에서 깨고 나면 그만인 세계라면,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아이의 존재는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아지엔...”


“네?”


“아, 미안. 혼잣말이야.”


아지에나스, 갑자기 문득 그 이름이 떠오르는 바람에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고, 그래서 아이카가 고개를 갸웃했을 때에야 나는 내 실수를 바로잡았다. 아지에나스와 아이카. 두 명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면서 나는 알 수 없는 기분에 젖어들었다.

사실 정말 어떻게 흘러가든 내 알 바 아닌 세계라면, 이미 오래전부터 내 행동이 꽤나 쾌락 충족적인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여기서 내 욕망이 이끄는 대로 움직인다고 해도, 그게 현실의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내 욕망이 이끄는 대로 움직여도 될 정도의 여건이, 지금 이 꿈속에는 잘 갖춰져 있다.

그러나... 나는 날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아이카의 얼굴을 보고는 조금 혼란스러워졌다.


“아이카.”


“네?”


“너 여자애 같다.”


아이카의 표정이 응? 하는 상태에서 멈췄다. 그리고 잠시 후, 방안으로 스며든 조악한 광량의 달빛 아래에서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아이카의 얼굴이 화악 붉어지기 시작했다.


“가, 가, 갑자기 무슨 말씀을...”


“아니, 칭찬인데.”


“치, 치, 칭찬이 아니라요!”


아이카는 당황해서 그렇게 허둥지둥 중얼거렸다. 딱 내가 예상한 만큼의 반응이라 나는 피식 웃었다.


“친구라. 향해자 친구라.”


아이카는 귀를 쫑긋 세운 채 내 말을 해석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귀를 살짝 접어내린 강아지 같은 모습으로 아이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모든 인간은 바다를 그리워 할 권리가 있다고 했지. 나는 리체의 말을 떠올렸다. 한 소녀의 꿈을 지키기 위해서 잠깐 거짓말 좀 하도록 하겠습니다.


“거 잘 됐네. 마침 나도 향해자잖아.”


“네?”


“앞으로 그런 거 이야기하고 싶으면 나한테 말해. 내가 들어줄 테니까.”


아이카는 멍한 표정이었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언뜻 해석하기 어려워하는 표정. 그러나 잠시 후...


“노, 노, 노노노농담이 지나치세요. 저, 저 같은 것이 감히 어떻게 핀 님과...”


“그게 부담스러우면 그냥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이야기 정도는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으니까.”


내 말에 아이카는 멍청히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당혹스러운 듯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 저, 저!”


“응?”


“핀, 핀 님이 만약 바다를 향해 떠나시게 되면, 저, 저, 저저도 같이 가드릴게요!”


뜬금없는 제안에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러나 아이카는 매우 진지한 모양이었다.


“노, 농담이 아니에요!”


“아니, 농담이라고 생각한 게 아니라...”


“그, 그럼요?”


“너 참 여자애 같다.”


“꺅?!”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카는 황급히 얼굴을 두 손으로 가렸다. 그리고 잠시 후 조심스레, 아주 조심스레 손가락을 벌려 나를 쳐다보았다.


“노, 농담이 지나치세요.”


“농담 아닌데.”


“어, 어쨌든!”


어쨌든은 뭐가 어쨌든이야. 그러나 그걸 일일이 지적하다간 대화가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아서 나는 아무 말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아, 그러고 보니 아이카.”


“네?”


“부탁이 하나 있는데.”


“부탁...이요?”


아이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뭔데요?”


“별 건 아니고.”


나는 그렇게 먼저 부담을 덜어주었다. 실제로도 별 것 아닌 일이었다.


“팔이 좀 저려서 그런데.”


“네?”


팔? 갑자기 튀어나온 단어에 아이카는 또 다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죄, 죄송합니다!”


즉각 사과. 그리고 이어진 당황. 그리고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모습. 나는 아이카가 머리를 바로 들어 올린 틈을 타서 내 오른팔을 회수했다. 으... 피가 꽤 안 통했을 것 같은데. 조금 지나면 풀리겠지? 나는 팔을 두어 번 접었다 펼쳤다 하고는, 한숨을 쉬며 자세를 고쳐 누웠다.


“죄, 죄송해요...”


“네 잘못 아니잖아?”


이게 다 시아 때문이지. 아고, 시아 얼굴을 어떻게 보나. 아니, 솔직히 나는 상관없는데 시아가 나를 어떻게 보냐... 시아가 이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베개를 붙잡고 통곡을 할 게 눈에 선하다.


“...뭐, 어쨌든 밤이 깊었으니 너도 이제 건너가서 자. 늦었다.”


슬슬 졸음이 오기 시작했기에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 말을 듣는 아이카의 표정은 약간 시무룩했다.


“저...”


“응?”


“저... 그, 뭐냐, 그러니까 저... 핀, 핀 님께서 그... 그러니까...”


응?


“저, 그, 그러니까 저를 배, 배려해주시긴 했는데!”


아, 표현 찾는 중이었냐. 나는 느긋하게 아이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그, 그래도 저, 고, 공주님께서 명령하신 건...”


“명령?”


“어, 어쨌든... 여기서 자고 오라고 하신 거라서...”


아이카는 우물쭈물 그렇게 중얼거렸다. 뭐냐, 그래서 여기서 자겠다고? 이건 고지식한 정도가 아니라 거의 무슨 바보 수준이잖아... 나는 다소 어이가 없어 뭐라 한마디 할까 하다가, 어차피 그래봐야 아이카가 들을 것 같지 않았기 때문에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래서 나는 마음속으로 한숨을 쉬고 말했다.


“그래. 그럼 그냥 여기서 자. 됐지? 그리고 내일 아침에는 이제 네 방으로 가고.”


“새, 새벽에 갈게요!”


“아, 그리고 팔베개는 안 해준다.”


“아, 안 해주셔도 되요!”


당황한 아이카. 그러나 잠시 후...


“가, 감사합니다.”


어쨌든 쫓겨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사실에 아이카의 얼굴이 밝아진다. 나 참, 저런 말 듣고 기뻐하는 건 장담컨대 아이카밖에 없을 거다. 어쨌든 나는 누워있었고, 아이카는 잠시 우물쭈물하더니 조심스럽게 내 옆에 몸을 뉘였다. 베개는 내 것 하나밖에 없었지만 처음부터 크기가 그리 작지 않은 거라서 둘이 쓰기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침대 자체는 그리 넓지 않아서 우리는 몸을 살짝 맞댄 상태로 자리를 잡아야했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가만히 대화 없이 누워있었다. 기분은 난감했다. 음, 뭐랄까. 딱히 이상하다는 건 아닌데... 여자애랑 같이 침대에 누워있다는 자체가...


“아이카.”


“네?”


결국 차선책으로, 나는 이 뭔가 낯 뜨거운 분위기를 전환시킬 계책을 시행에 옮기기로 했다.


“향해자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이야기 좀 해봐. 아, 혹시 부담스러우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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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 [판상츠모사][11장 “동전의 이면, 그녀의 옆면” - 6] +1 20.10.17 68 6 15쪽
168 [판상츠모사][11장 “동전의 이면, 그녀의 옆면” - 5] +1 20.10.16 68 5 16쪽
167 [판상츠모사][11장 “동전의 이면, 그녀의 옆면” - 4] +1 20.10.15 77 5 28쪽
166 [판상츠모사][11장 “동전의 이면, 그녀의 옆면” - 3] +1 20.10.14 72 5 14쪽
165 [판상츠모사][11장 “동전의 이면, 그녀의 옆면” - 2] +2 20.10.13 81 6 19쪽
164 [판상츠모사][11장 “동전의 이면, 그녀의 옆면” - 1] +1 20.10.12 85 6 23쪽
163 [판상츠모사][11장 “동전의 이면, 그녀의 옆면” - 프롤로그] +1 20.10.11 133 6 2쪽
162 [판상츠모사][10장 “그녀의 이면, 동전의 옆면” - 18 / 에필로그] +2 20.10.10 85 6 21쪽
» [판상츠모사][10장 “그녀의 이면, 동전의 옆면” - 17] +1 20.10.09 94 5 22쪽
160 [판상츠모사][10장 “그녀의 이면, 동전의 옆면” - 16] +2 20.10.08 87 6 17쪽
159 [판상츠모사][10장 “그녀의 이면, 동전의 옆면” - 15] +1 20.10.07 92 5 19쪽
158 [판상츠모사][10장 “그녀의 이면, 동전의 옆면” - 14] +2 20.10.06 85 7 28쪽
157 [판상츠모사][10장 “그녀의 이면, 동전의 옆면” - 13] +1 20.10.05 117 5 20쪽
156 [판상츠모사][10장 “그녀의 이면, 동전의 옆면” - 12] +1 20.10.04 120 5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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