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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키 님의 서재입니다.

판상츠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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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키
작품등록일 :
2012.09.20 00:09
최근연재일 :
2023.09.29 06: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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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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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판상츠모사][10장 “그녀의 이면, 동전의 옆면” - 13]

DUMMY

[판상츠모사][10장 “그녀의 이면, 동전의 옆면” - 13]




“어? 오늘도 일찍 가냐?”


사전의 질문에 자리에 서서 가방을 챙기던 지나가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병원에서 그러는데, 그냥 당분간은 계속 쉬어주라더라.”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답했다. 그리고 사전이 다시 입을 열기 전에 딱 잘라서 대답했다.


“당연히 허락 받은 거니까 괜한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안 그래도 막 걱정이란 이름의 투덜거림을 꺼낼 참이었는지 사전이 입만 열었다가 다시 스르르 닫고 말았다. 그리고 사전은 한숨을 쉬었다.


“젠장, 나도 자습 빼먹고 도망이나 칠까.”


“잠깐, 나도라니? 누가 들으면 나는 진짜 자습 빼먹고 도망치는 건줄 알겠는데?”


“어, 아니었냐?”


진심으로 묻는 거라는 게 더 슬프군.


“나 간다.”


나는 여유로운 인사를 마치고 지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너도 지금 가?”


가방을 챙기는 모양새를 보니까 지나는 오늘도 집에 가는 모양이다. 내 말에 사전은 지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어? 너도 가는 거야?”


지나는 그런 말을 꺼낸 사전을 순간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았지만, 그렇다고 그게 표시 날 정도로 오래 쳐다보진 않았다.


“응.”


“그래? 넌 왜?”


지나는 표정을 살짝 찡그렸다. 대답하기 귀찮다는 눈치가 역력했지만, 받은 질문을 무시할 수도 없었는지 지나는 슬쩍 입을 열었다.


“나는 그냥.”


입을 열기는 했는데 딱히 설명할 생각은 없었나보군. 나는 둘의 대화가 어색해지기 전에 슬쩍 그 가운데로 끼어들었다.


“안 갈 거야? 갈 거면 같이 나가자.”


“아, 응.”


지나는 그렇게 대답한 다음, 사전을 쳐다보았다.


“먼저 갈게.”


“어... 응.”


애초부터 궁금해서 물어본 질문은 분명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사전의 대답은 약간 떨떠름했다. 그러나 일단 내가 서두르는데다가, 지나 역시도 은근슬쩍 행동을 서두르는 느낌이었기 때문에 사전은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우리는 교실을 나왔다. 그리고 우리는 복도를 걸어가기 시작했는데, 그제야 지나가 꽤 부루퉁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쟨 왜 이렇게 친한 척이야...”


“응?”


무심결에 반문하고 나서야, 나는 그게 사전에 대한 지나의 평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원래 저런 놈이야. 오지랖도 어지간히 넓고, 헛소리도 자주 하고.”


“흠.”


지나는 내 말에 대답 대신 가방끈을 한 번 살짝 고쳐 메었다. 그리고 말했다.


“기분 나빠.”


“오, 그거 사전이 들으면 무지 좋아할 평가 같은데.”


“뭐? 지금 기분 나쁘다고 했는데?”


“사실 저 자식 겉보기에 멀쩡해 보이긴 해도 변태 같은 놈이거든.”


내 말에 지나는 기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아울러 대단히 기분 나쁘다는 표정도. 미안해, 사전. 그런데 우리는 늘 이런 식이었잖아. 예전에 나를 성도착증 환자로 몰아갔던 쓰라린 기억은 아직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그런데...”


어쨌든 지나로서는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주제인 모양이었다. 물론 나도 그것은 마찬가지였기에, 나는 지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병원 입원했었다는 거... 진짜였나 보네?”


“응? 아, 응. 며칠 전에 사고가 좀 있어서.”


“사고?”


“교통사고.”


자세하게 말하고 싶지는 않아서 나는 대충 그렇게 얼버무렸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시아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 않은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이 둘에게 아직 이 이야기는 꺼내고 싶지 않았다. 시아나 지나의 성격상, 만약 꿈속에 등장하는 사람을 또 현실에서 만났다면 깜짝 놀라서 내게 바로 이야기했을 것이다. 물론 그런 이야기는 아직 없었다.


“교통사고?”


내 말에 지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꿈속에서의 리체와 비슷한 모습에 나는 피식 웃었다.


“그래도... 별로 심각한 건 아니었나보네? 이렇게 움직일 수 있는 걸 보니.”


“아니, 심각했지.”


“응?”


나는 지나가듯 중얼거렸다.


“나는 그때 이후부터 꿈을 꾸기 시작했거든.”


내 말에 지나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넌 언제부터야?”


시아가 언제부터였더라. 리체는 언제부터일까. 그러나 내 질문에 지나는 표정을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


“꿈 이야기하지 말랬지?”


“아니, 그렇게 자꾸 문제를 회피하는 건 도움이 안 된다니까? 논의를 해야 방법이 생기지. 게다가 넌 네가 하고 싶을 때는 마음대로 꺼내잖아.”


사실 논의를 해도 방법이 안 생긴다는 건 변함이 없지만. 내 말에 지나는 표정을 살짝 찡그리고는 나를 쳐다보았다. 무슨 속셈으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걸까... 하는 느낌이랄까. 그러나 그것도 잠시, 지나는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리고는 중얼거렸다.


“정확히는 몰라.”


정확하지 않아도 괜찮은데.


“그리고... 별로 문제를 회피하고 있는 것도 아니야.”


“응?”


“뭘 어떻게 접근해야할지 모르는 거지.”


어딘지 모를 초조함이 느껴지는 그 말에 나는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하긴... 처음에는 시아도 불안해했지. 얘 성격에 대놓고 불안해하지는 않겠지만, 어쨌거나 그래도 여자애인데 불안하긴 하겠지. 천천히 접근하지 뭐.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지나는 어쨌든 이 이야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어쨌든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넌 그냥 얌전히 있어. 괜히 어디 가서 이야기하지 말고.”


이 근거 없는 자신감은 불안하긴 하다만. 그러나 그때였다. 막 건물을 빠져나온 나는, 뭔가 좀 특이한 것을 발견했다.


“음?”


어라, 저 아저씨는... 나는 상체를 약간 숙여 우리에게,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지나에게 인사를 하는 검은 양복의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 운전수 아저씨?


“그럼... 나 간다.”


아, 무려 운전수가 모시러오는 아가씨였지... 어제 보긴 했는데, 아니, 어제 본 거라서 아직 익숙하지가 않다. 어쨌든 지나가 인사를 건네어왔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했다.


“그래, 그럼 있다가 밤에 봅시다.”


“응.”


그리고 잠시 후에 지나는 내 뒤에서 소리를 질렀다.


“야! 그 이야기하지 말라니까?”


물론 나는 이미 그 시점에 유유히 도망치듯 지나 옆을 뜬 상태였다. 집에 가서 잠이나 자야지.






“핀, 핀 님?”


솔직히 말하자면... 사실 요즘은 이 세계에서 깨면 별로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거부감은커녕... 별로 재미도 없는 학교생활보다 여기서 마법 공부나 하고 있는 게 백 배 낫다는 생각까지 든단 말이야.


“핀 님?”


마치 가상현실에 처음 접속했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다. 물론 거기와는 현실감 자체가 다르기는 하지만.


“저, 핀 님?”


귓가로 몇 번이나 스며든 아이카의 목소리에 나는 의식을 찾고 부스스 눈을 떴다. 아이카가 옆에 서서 용건이 있는 듯 두 손을 모은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 벌써 아침...?”


“네.”


사실 시간이 흘러가는 것에 별 의미가 없긴 하지만. 어쨌든 나는 부스스 몸을 일으켰고, 아이카는 그제야 조심스레 용건을 꺼내들었다.


“리체 님이 오셨습니다.”


“응?”


오늘 아침에는 올 일이 없을 텐데? 나는 당황해서 다시 한 번 물었다.


“잠깐, 리체라고?”


“네.”


내 질문에 아이카가 왜요? 하는 느낌으로 대답해왔다.


“지금 나갈게.”


“네.”


서둘러 평상복을 주워 입고, 나는 조금 당황해서 내 방을 빠져나왔다. 거실에는 늘 보던 모습 그대로의 리체가 창가 쪽 책상 옆에 의자를 두고 앉아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리체는 인사를 해왔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으응.”


밖으로 나온 나는 대충 인사를 하면서 매번 앉던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약간의 긴장을 하며 리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니, 바라본 게 아니라 관찰하기 시작했다.


“...왜요?”


리체는 나오자마자 자기의 얼굴을 살피는 내가 어색한 듯, 조금 당혹스러워하며 그렇게 물어왔다.


“밤새운 거야?”


“네? 밤요?”


여전히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말투의 대답. 그러나 잠시 후, 내 말뜻을 이해한 듯 중얼거렸다.


“아뇨. 그냥... 좀 잤는데.”


그리고 부끄러운 듯 말했다.


“어제 좀 쉬어도 된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아, 그런 뜻은 아냐. 난 또 결국 기어이 밤을 새서 서류 완성해서 들고 왔나 싶어서 깜짝 놀랐다고.”


리체는 그제야 내 말이 갖는 맥락을 조금 이해한 모양이었다. 리체는 얼굴을 약간 붉힌 채 대답했다.


“아뇨. 어제는 푹 잤어요. 서류는 오늘 완성할 거구요.”


“그러니까 일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니까...”


시아도 현실하고 어지간히 성격이 다르긴 한데, 얘는 한술 더 뜨는군. 시아는 그래도 조용하기라도 하지, 지나는... 으어.


“...그나저나, 무슨 일이야? 이런 아침부터.”


물론 그런 걸 생각하고 있어봤자 의미가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기에, 나는 그렇게 물었다.


“아, 급히 결재해주실 서류가 하나 있어서요.”


“서류?”


“다름 아니라 집무실 변경에 관한 건인데요...”


“잠깐, 너...”


말하는 도중이었지만, 내가 입을 열자 리체는 귀를 쫑긋 세웠다.


“네.”


“하루 사이에 피부 엄청 좋아진 것 같다?”


“가,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예요!”


리체는 내 말에 소리를 빽 질렀다. 거참, 반응 한 번 격렬하군. 그리고 리체는 얼굴을 약간 붉힌 채 시선을 회피하곤 중얼거렸다.


“그냥 좀 푹 잤을 뿐이에요.”


“그거 다행이군. 앞으론 네 피부에도 휴식을 좀 주라고.”


리체는 자기 피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여전히 얼굴을 약간 붉힌 채였다. 그러나 리체가 귀를 기울여서 들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나는 담담히 중얼거렸다.


“어쨌든 오늘 가닐영하고 이야기해서 인원 배치를 할 테니까 너도 좀 천천히 일해. 너무 바쁘게 하지 말고.”


“그렇지만... 마냥 놀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오늘 이 서류 마무리하면 이제 내일은...”


“안 돼애... 제발 그러지마.”


즉각 튀어나온 대답에 나는 눈물을 흘려가며 리체를 만류했다. 그리고 리체는 그런 내 반응에 매우 당황한 듯한 목소리로 내 만류에 화답했다.


“아니, 그러니까 절 그렇게 염려하시지 않아도 된다니까요.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인데요.”


“너 일 많이 하면 내가 힘들어져.”


“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리체는 중얼거렸다.


“어제도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진짜 누가 있기라도 한 거예요? 아니, 설사 그렇다 쳐도 제가 일을 하는데 핀 님이 왜요?”


“음, 누가 있는 건 아닌데... 아쉽게도 상황을 설명할 수는 없고. 어쨌든 그래. 제발 좀 느긋하게 살아줘.”


리체는 그런 내 말에 잠시 내가 왜 이러나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리체는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 중얼거렸다.


“제, 제가 알아서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걱정하실 정도는 아닐 텐데요.”


“아닌 건 무슨... 내가 말 안했으면 계속 밤새서 일했을 텐데, 그게 정상이야? 정상이면 나도 그렇게 할까?”


내 말에 리체는 할 말이 없는지 입을 다물었다. 음냐, 생각을 해보니까 딱히 지나의 말이 아니더라도 그동안 리체에게 너무 소홀했군. 나는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여기서 딱 못을 박고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쨌든 안 돼. 네가 쉬지 않으면 내가 불안해. 지금 수준에서 절대 일 더 늘리지 마.”


“제가 쉬지 않는다고 해서 업무에서 딱히 실수를 하진 않잖아요.”


“업무에서 실수를 해도 좋으니까 그냥 쉬어.”


내 말에 리체는 얼굴을 살짝 더 붉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리체는 금방 변명을 쏟아놓았다.


“그, 그래도 이, 이건 제 일이고... 제가 일을 하지 않으면 딱히 여기 있을 이유도 없고...”


나는 리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리체는 또 어떤 반론이 내 입에서 나오나 하는 눈치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말했다.


“근데 너 피부 정말 엄청 하얘진 거 같다.”


“가, 갑자기 그건 또 무슨 소리에요!”


리체는 소리를 빽 질렀다.


“아니, 진짜로 좀 하얘진 거 같아서.”


“잠을 많이 잤다니까요.”


리체는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 대답했다.






왕국에서의 오후는 드물게도 약간 한가했다. 군단 실무는 가닐영 대사관이 집행해주고 있는데, 가닐영 대사관은 리체와 달라서 그런지 수많은 사람들 틈에 둘러싸여 일을 하고 있었다.


“사람 많네.”


“조직 업무야 일할 사람이 늘 많아서 괜찮습니다. 그러라고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내게 해야 하는 주 업무는 가닐영이 가져다주는 진척사항의 확인과 군단 운영에 대한 검토였다. 그리고 그 외 비정기적인 회의 참여 정도.


“그럼 대충... 이정도로 결정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오늘 회의의 의제는 기본 전투계획의 재검토 및 확정. 이제까지의 계획을 종합하고 완성하는 단계였기에 시간이 많이 걸릴 줄 알았으나 별로 그렇지도 않았다. 몇 가지 변수에 대한 점검만 끝내고 났더니, 회의는 금방 끝이 났다. 물론 금방 끝났다고는 해도 생각보다는 금방이란 이야기지만. 게다가 곧 연회도 있고 말이야.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연회 있는 거 다들 알고 계시죠?”


회의를 진행했던 가닐영 참모장이 서류를 챙기면서 그렇게 중얼거리자 분위기가 살짝 부풀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사령관님도 참석하시면 연회가 아니라 업무의 연장 아닌가? 안 가면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가야지.”


“술 마시는 그런 업무라면야 얼마든지... 아, 술이 무슨 술이냐에 따라 좀 다르긴 하겠지만 말입니다.”


실없는 농담에 분위기가 와하고 웃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가닐영은 웃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딱딱하진 않은 말투로 말을 이었다.


“네. 술은 좋은 걸로 준비해두었으니 걱정 마십시오. 잠시 후 저녁식사 시간이 되면 식당 옆 2연회실로 오시면 됩니다.”


그리고 가닐영은 서류를 들어 올리면서 말했다.


“그럼, 오늘 회의 마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가닐영 대사관의 말에 고위 지휘관 및 휘하 부하들이 전부 자리에 일어선다. 그리고 제일 고참이라는 부사령관... 음, 힐로 위사가 말없이 경례를 올려붙인다.


“사령관님 조금 있다 뵙겠습니다.”


“아, 그럽시다.”


나는 짐짓 여유 있는 척 대답했다. 부하를 대할 때 반말까지는 아닐지라도, 어쨌든 하대를 하는 게 좋다는 것은 가닐영 대사관의 이야기였다. 그게 당연한 거고, 그래야 저들이 그걸 당연하게 여길 것이고, 그래야 나중에 위급한 상황이 올 때 명령이 제대로 하달된다는 것이었다. 틀린 말 같지는 않아서 그냥 어색하게나마 써보려고 해도 물론 그게 입에 잘 붙지는 않았다.

그래도 쓰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나중에 봅시다... 가닐영.”


“네.”


“가지.”


“네.”


회의실을 나서자 문 앞을 지키고 있던 경비병들이 즉각 경례를 해왔다.


“그래. 돌아가지.”


“알겠습니다!”


가닐영이 대동해온 경비병들은 군기가 바짝 들어있었다. 대충 봐도 나보다 나이가 많을 것 같은데.


“가닐영.”


“네.”


“방에서 옷 좀 갈아입고 갈게. 조금 있다 가면 되지?”


“네. 그럼...”


“내 방까지 따라올 필요 없어. 그리고 알아서 갈 테니 얼른 돌아가 봐.”


그러지 않아도 막 내 뒤를 따라오려 생각했는지 가닐영이 움찔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가닐영은 고집을 피우지는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가닐영도 말없이 경례. 나는 고개를 한 번 끄덕해주고, 천천히 여유 있는 걸음으로 혼자 복도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다녀오셨습니까.”


내가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아이카가 쪼르르 달려와서 꾸벅 인사를 했다.


“차가운 물 한 잔만 줄래?”


“네.”


창가의 책상으로 다가가면서 내가 그렇게 말했더니, 아이카가 즉각 그렇게 대답하고는 쪼르르 자기 방으로 달려갔다. 후아, 나는 책상으로 다가가서 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고, 아이카는 금방 물 한 잔을 챙겨들고 나타났다.


“여기 있습니다.”


“고마워.”


꿀꺽꿀꺽. 회의장에도 물이야 있었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마시는 물은 또 다른 맛이었다.


“후아.”


“한 잔 더 가져다드릴까요?”


“아니, 괜찮아.”


나는 아이카에게 잔을 돌려주었다. 후아, 시원하게 한 잔 들이키고 났더니 좀 살 것 같군. 아니, 식당에 내려가서 맥주나 한 잔 마실 걸 그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생각해보니 곧 연회였고 연회에서 술을 얼마나 마실지 알 수 없었기에 나는 곧 그 생각을 접었다.


“저어...”


“응?”


나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저어, 아까 살짝 들었는데요.”


빈 잔을 받아든 아이카가 머뭇머뭇하면서 그렇게 말을 걸어왔다.

응? 무슨 할 말이라도 있나? 묘하게 초조해 보이는 아이카가 약간 이상하다 느껴졌지만, 나는 별 생각은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뭘?”


“저, 오늘 저녁에 연회가 있으시다고...”


“응. 있지. 왜?”


내 말에 아이카는 조금 긴장한 얼굴이 되었다. 음? 왜 그러지?


“왜?”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이카의 질문이 뭔가 싱겁게 끝나는 바람에 나는 고개를 한 번 갸우뚱거렸다. 얘가 이런 실없는 질문할 성격은 아닌데.


“뭔데? 말해봐.”


뭔가 일이라도 있나 싶어 나는 아이카를 재촉했다. 그리고 그런 내 재촉에 아이카는 조심스레 나를 쳐다보았다.


“저, 그, 그냥 질문 드리는 건데요...”


...그냥 질문이 아닌 것 같은데? 안절부절못하는 아이카를 보며 나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어쨌든 나는 아이카가 입을 열길 기다렸다.


“저, 술... 드시나요?”


“...응?”


뜬금없다, 난데없다 이런 느낌이 아니라... 뭔가 어이가 없다? 그런 느낌의 질문이었다. 이걸 왜 묻지? 라는 느낌이 아니라, 무슨 답을 원하는 거지? 하는 느낌이 든달까.


“술?”


“네, 넷.”


잘못 들은 건 아닌가 싶어 다시 확인했더니 긍정의 대답이 돌아왔다.


“아마... 마시기야 마시겠지? 연회니까.”


딱히 이 세계에 미성년자 구분 같은 건 없는 것 같으니까. 게다가 실제로 이제까지 많이 마시기도 했고 말이야.


“그런데 왜? 뭐 때문에?”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질문 드려 봤어요.”


예상대로 아이카는 화들짝 놀라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아이카는 살짝 내 눈치를 살피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마, 많이 드시는 편이신가요?”


“응? 아니, 뭐... 그런 건 아닌데.”


그런데 그렇게 대답하고 보니 이건 장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야 그냥저냥 있으면 마시고 없으면 말고 하는 식이었지만.


“글쎄, 그런데 이런 자리는 또 처음이라. 얼마나 마실지는 잘 모르겠네?”


내가 그렇게 대답했더니 아이카는 뭔가 잠시 생각하는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 머뭇거리면서 물어왔다.


“아예 못 드시는 건... 아니라는 거죠?”


“그거야... 그렇지?”


학교에서 여행 가서도 술병 잡고 꽤 버텨본 적이 있는데 하물며 꿈속에서야. 그리고 이쯤 대답하고 나니 뭔가 대답할 건 다 대답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나는 아이카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왜?”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아이카는 그렇게 외치고는 쟁반을 들고는 두어 번 뒷걸음질 치더니 후다닥 몸을 돌려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뭐지?”


뭔가 폭풍이 지나간듯한 느낌에 나는 나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내가 뭐 이상한 말이라도 했나? 아닌데. 그냥 묻는 말에 대답한 거밖에 없잖아? 여기까지 생각한 나는 자연스레 아이카의 질문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술 마시냐고? 그건 왜 물어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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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판상츠모사][10장 “그녀의 이면, 동전의 옆면” - 15] +1 20.10.07 93 5 19쪽
158 [판상츠모사][10장 “그녀의 이면, 동전의 옆면” - 14] +2 20.10.06 85 7 28쪽
» [판상츠모사][10장 “그녀의 이면, 동전의 옆면” - 13] +1 20.10.05 118 5 20쪽
156 [판상츠모사][10장 “그녀의 이면, 동전의 옆면” - 12] +1 20.10.04 120 5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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