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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키 님의 서재입니다.

판상츠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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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키
작품등록일 :
2012.09.20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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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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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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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상츠모사][10장 “그녀의 이면, 동전의 옆면” - 15]

DUMMY

[판상츠모사][10장 “그녀의 이면, 동전의 옆면” - 15]




생각보다 단호하네. 뭐라 말해야할지 몰라서 나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래. 그럼 그건 됐고... 그래서 대답은?”


“네?”


“왜? 뭐 때문에 갑자기 이런 일을?”


내 말에 다시 아이카는 벙어리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잠자코 아이카를 꾸준히 쳐다보았고, 아이카는 그런 내 눈빛이 부담스러웠는지 고개를 살짝 숙였지만 나는 눈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아이카는 입을 열었다.


“저, 그, 그러니까...”


“그러니까?”


아이카는 여기서도 한참 침묵을 지켰지만, 나는 그에 개의치 않고 아이카를 계속 쳐다보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내 눈빛에 아이카는 결국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고, 고...”


“고?”


“공주...”


“공주?”


“공주님께서...”


“공주님께서?”


공주? 갑자기 튀어나온 직책에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갑자기 공주님이라니? 술기운 때문에 머리가 잘 안 돌아가는 느낌이었지만, 나는 이내 곧 아이카의 말이 의미하는 바를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은 충격적이었다.


“시... 아니, 공주님이?!”


술기운이 확 달아나는 이야기에 나는 깜짝 놀라 그렇게 중얼거렸다.


“네, 넷...”


마치 밀고라도 하는듯한 기분이 들었는지, 아이카의 목소리는 퍽이나 작았다.


“잠깐, 그러니까...”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유시아 공주님이 널더러... 이러라고 시켰다고?”


“네...”


마찬가지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 술기운은 조금 전에 다 달아났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여전히 머릿속이 술로 몽롱하게 차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뭔가 문제가 있다는 의식만은 명확해서, 나는 여전히 누운 자세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왜?”


“그, 그게...”


말을 꺼내기에 앞서 아이카는 내 눈치를 살짝 보았다.


“나, 남자분들에게는 저, 그... 그런 하녀 한두 명쯤 있는 게 좋다고 하시면서...“


아고, 머리야... 나는 시아의 얼굴을 떠올렸다. 너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아니, 그리고 이런 일을 시켜놓고도...


“언제? 오늘 그러던가?”


“아, 아뇨. 오늘이 아니라...”


“그럼?”


내가 다 얼굴이 화끈화끈하다. 아고, 시아를 이제 어떻게 보냐... 그리고 내가 그런 생각에 빠져있을 때였다.


“며칠 전에 절 부르셔서...”


“며칠 전?”


무심코 아이카 말을 곱씹다보니, 그 순간 뭔가 머리를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아, 그래. 부른 적이 있었지.”


그런데 그렇게 말하고 보니, 또 머리를 스쳐가는 뭔가가 있었다.


“아, 설마...?”


“네...”


며칠 전 시아가 아이카를 불렀을 때 간첩이니 사과니 하는 추측을 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래서... 그때 네가 돌아왔을 때...”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래서... 그때 돌아와서는 날 보고 그런 반응을...


“죄, 죄송해요. 일찍 말씀드릴까 하다가...”


아이카는 면목이 없다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그냥... 다, 다 끝나고 말씀드리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조만간 말해주겠다는 말의 의미가 이거였군. 뒤통수를 깔끔하게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다지 좋은 기분만은 아니었다. 나는 어질어질한 의식을 억지로 다잡아가며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물론 답이 나올리는 없었고, 그래서 나는 당분간 어색한 침묵을 지켜야 했다.


“저...”


결국 먼저 입을 연 것은 아이카였다.


“저, 저, 저... 처, 처음이라...”


어쩌라고... 그러나 아이카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나마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뭐, 뭘 어, 어떻게 해야 되는지 자, 잘 모르니까...”


마지막 마디는 거의 들리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좀 더 곤란해졌고, 그래서 잠시 눈을 감았다. 자, 고민해보자. 그런데 사실 고민할 거리가 없다는 것 정도는 이미 알고 있었다. 여기서 내가 어이쿠, 그래? 하고 능숙하게 말할 수도 없는 거잖아!


“아이카.”


“네, 넷?”


나는 나지막이 내 팔을 베고 누워있는 소녀의 이름을 중얼거렸고, 그 중얼거림에 드디어 뭔가 시작된다고 생각했는지 아이카는 화들짝 놀라서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더 난감해졌다.


“공주님한테는 내가 말씀드릴 테니까.”


“...네?”


“그냥 네 방으로 돌아가서 자.”


내가 그렇게 중얼거렸더니 아이카가 눈을 두어 번 깜빡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돌아...가라고요?”


“시... 아니, 공주님한테는 내가 말씀드릴 테니까.”


마음속으로 한숨을 쉬면서, 그리고 눈물을 흘리면서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니, 사실 나도 어쨌거나 남자는 남자고... 게다가 꿈속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 내 말은 분명 말도 안 되는 말이었지만...

하아아아... 나는 시아의 얼굴을 떠올렸다. 얘도 분명 꿈에서 깨고 나면 기억을 할 텐데. 아니, 지금 당장은 기억 못하고 있다고 해도 나중에 아이카에게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물어볼 테니까... 내가 그런 생각에 빠져있을 때였다.


“안됩니다.”


네? 뭔가 머릿속으로 복잡한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라 아이카의 대답은 잠시 후에 해석되었다.


“뭐라고?”


“공주님이 직접 내리신 명령...이라...”


그리고 그렇게 중얼거린 다음, 아이카는 화들짝 놀라서 말을 이었다.


“아, 그, 그렇다고 핀 님의 명령을 무시한다거나 하는 게 절대 아니라요. 물론 방지기로서 주인님의 명령이 가장 최우선인 것은 맞지만... 그, 그래도 이곳이 왕성 안이니만큼 어쨌든 공주님의 명령이 모든 명령에 우선한다고 배워왔...”


목소리는 기어들어가는 주제에 아이카는 매우 당황했는지 아이카치고는 굉장히 긴 설명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내가 그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잠시 후 굉장히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이게 사과할 일인가? 물론 여기에 신경 쓸 때는 아니었고, 실제로 나는 그에 대해 신경 쓰지는 않았다.


“뭐야, 그래서 못 가겠다고?”


아이카는 눈을 한 번 깜빡거렸다. 머리를 굴리고 있어요, 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 그리고...


“죄, 죄송합니다...”


“아니, 사과할 일이 아니라...”


아이고, 머리야. 정말 이렇게밖에 표현이 안 된다...

팔은 저리지, 머리는 아프지, 술은 안 깨지, 아이카는 말이 안 통하지, 이런저런 상황이 겹치다보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보통 때 같으면 그래도 고민이라도 좀 하겠는데, 오늘은 어째 술기운이 있어서인가 도저히 사고가 진행될 성 싶지 않았다. 결국, 나는 상황을 놓아버리기로 했다.


“그래. 그럼 나도 모르겠다. 나는 어쨌든 여기서 잘 테니까 너도 네 마음대로 해.”


“네?”


“잘 자.”


말을 마친 나는 이제까지 옆으로 세웠던 몸을 침대에 털썩 뉘였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팔에서는 아무런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심지어 호흡조차도 느껴지지 않았다. 느껴지는 것은 단지 내 호흡과, 내 숨소리. 물론 잘 거라고 말하기야 했지만 사실 말이 그렇지, 잠을 잘래야 잘 수가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나는 귓가에 신경을 집중한 채 조용히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기다려보기로 했다.


“저, 핀, 핀 님...?”


나는 아이카의 부름을 일부러 못 들은 체 했다. 아이카는 내가 대답하기를 한참동안이나 기다리는 눈치더니 내가 결국 대답을 하지 않자 조심스레, 아주 조심스레 되물어왔다.


“핀...님?”


두 번째 부름도 일부러 무시. 코까지 골면 좋겠지만 그건 너무 티 나겠지. 나는 잠자코 그렇게 누워 아이카가 포기하고 자기 방으로 가길 기다렸다. 그런데... 그 상태에서 한참이나 있다가 나온 아이카의 반응이 좀 이상했다.


“죄, 죄, 죄송...합... 끅...”


어?


“끄윽... 저, 저는 단지... 끅...”


“아, 아이카아?!”


아이카의 목소리에 울음소리가 섞여나오기 시작하는 바람에 결국 상황은 나의 패배로 끝나고 말았다...


“하아...”


내 팔에 얼굴을 묻고 울기 시작한 아이카를 어르고 달래는데 또 상당한 시간...


“죄, 죄송합니다. 화, 화나시게 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화난 거 아니니까 사과할 필요 없어.”


나는 두 손으로 눈물을 훔치는 아이카를 외면한 채로 퉁명스레 중얼거렸다. 얘 우는 건 또 처음 보네. 그나저나... 이걸 어떻게 한담? 하아, 나는 한숨을 쉬었다.


“아이카.”


“네, 넷?”


이번에도 화들짝. 이런 거에도 화들짝 놀라는 주제에 명령은 대체 왜 받아들인 거야... 물론 그걸 따져봐야 의미가 없다는 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나는 본론을 꺼냈다.


“진짜로 화난 거 아니니까, 네 방 가서 자면 안 될까?”


아이카는 대답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조건을 또 덧붙였다.


“물론 공주님한테는 내가 말해줄 테니.”


그러나 이번에도 대답은 없었다. 나는 잠시 기다렸지만, 이내 그 침묵이 고민이라기보다는 거절에 가깝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결국, 나는 아이카를 설득하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하아...”


“죄송합니다...”


풀죽은 목소리의 아이카.


“아냐. 네가 죄송할 일이 아니지.”


공주의 명령이란 게 그렇게 절대적인 건가. 뭐, 나야 잘 모르겠지만 내가 모른다고 해서 그걸 남한테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 그럼 그냥 이렇게 자자. 하지만 난 어쨌든 아무 짓 안할 거고, 그러니까 너도 뭐 억지로 뭘 하겠다고는 생각하지 마.”


하긴 말 안 해도 아이카가 뭘 억지로 한다는 건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지만.


“어쨌든 그럼 공주님 명령은 제대로 지키는 셈이잖아? 여기서 자고 오라고 했다며? 그렇지?”


“어, 네...”


“좋아. 그럼 상황 정리 끝. 그럼 이제 자자.”


피곤하진 않았지만, 그리고 피곤을 느낄 수가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렇다고 이 상황을 계속 붙잡고 있느니 그냥 침묵하고 있는 게 낫겠다 싶어서 나는 서둘러 이야기를 끝냈다. 그리고 그를 증명이라도 하듯, 아이카 쪽을 향했던 몸을 다시 침대에 눕히고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말했다.


“잘 자.”


“아, 네.”


끄응... 머리가 아프다. 젠장, 시아 얘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나는 속으로 시아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렇게 투덜거렸다. 그저께 그러니 저러니 이상한 이야기를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되는데.

물론 알아본다고 해봐야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은 없었겠지만 그래도 일단 지금은 그렇게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하필이면 어째 보내줘도 아이카를... 음, 물론 그렇다고 아이카가 아닌 다른 하녀를 보내줬으면 이야기가 달라졌다는 말은 아니지만...이 아니라.

어라, 나는 눈을 뜨지 않은 채로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사실 생각해보면 조금 이상한 상황이기는 했다. 잠깐,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 거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이카가 오든, 아이카가 아닌 다른 하녀가 오든 어차피 상황은 똑같다. 사실 정상적인 내 나이대의 남자라면야... 여기서 눈을 떠서 아이카를 쳐다보는 건 차마 할 수가 없었기에 나는 잠자코 머리로만 사고를 전개했다.

사실 말이 안 되는 상황인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사실 여기서 내가 아이카를 거절할 이유는 없지 않나? 말이야 말이지, 사실 시아가 학교에서 날 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손 쳐도 뭐 어때. 어차피 지금 이 자리에 시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여긴 현실이 아니라, 물론 굉장히 현실적인 느낌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깨고 나면 그만인 꿈속이...


“...핀 님?”


처음에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러나 내 사고는 순식간에 얼어붙었고, 내 의식은 내가 누워있는 침대로 돌아왔다. 나는 내가 들은 것이 진짜 아이카의 목소리인지 알 수가 없어서 잠자코 있었다.


“...핀...님?”


대답을 하지 않아서 그런가, 조금 전보다 더 작은 목소리. 잘못 들은 게 아니었구나.


“응?”


“주, 주무시고 계셨나요?”


아이카는 약간 당황.


“아니, 그냥 생각 좀 하고 있던 참이라.”


나는 간단하게 대답.


“왜?”


나는 대답과 동시에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렸다. 이미 시야가 어둠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기 때문에, 방안으로 스며든 얼마 안 되는 달빛으로도 아이카의 얼굴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아이카는 잠시 우물쭈물하더니 입을 열었다.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질문?”


갑자기 웬? 그런 느낌은 있었지만... 거절할 이유는 딱히 없었다.


“뭔데?”


“저...”


이번에도 좀 우물쭈물. 그러나 별다른 할 일이 있는 것은 아니었기에 내 기다림은 조급하지 않았다. 나는 느긋하게 아이카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갑자기 질문이라니, 뭘까.


“저... 여, 여자로서 매력이 없는 건가요?”


“콜록, 콜록!”


침이 숨구멍으로 넘어가는 바람에 나는 두어 번 격렬하게 기침했다.


“괘, 괜찮으세요?”


“아, 응. 벼, 별거 아냐.”


방금 들은 말에 비하면 이건 정말 별거 아니다.


“그, 그런데 뭐라고?”


“저... 그, 그러니까...”


다행인 것은 내가 당황하는 만큼 아이카도 당황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니, 다행이 아닌가? 그러나 어쨌든 아이카는 진땀 비슷한 걸 흘리는 느낌으로 우물쭈물하더니 조금 더 작아진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저... 여, 여자로서 매력이 없는 건가 해서.”


다행히 이번에는 침이 숨구멍으로 넘어가진 않았다. 물론 숨구멍이 턱 막히는 기분은 들었지만.


“가, 갑자기 그건 왜?”


“그, 그야...”


아이카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보, 보통 이런 경우... 거, 거절당하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다고 들어서...”


“거절?”


어... 그런데 말해놓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거절...이지? 아이카 입장에서는.

막상 그렇게 생각하니까, 갑자기 내가 굉장히 나쁜 놈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고, 그래서 나는 화들짝 놀라서 대답했다.


“아냐아냐. 저얼대 매력 없지 않아. 아니, 오히려 넘치면 넘쳤지. 그러니까 그건 염려하지 않아도 돼. 내가 보증할게.”


“가, 감사합니다...”


아이카는 폭포수처럼 튀어나온 내 대답에 순간 당황한 듯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내 대답은 거짓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매력이 없다 쪽은 저얼대 아니었으니까. 나는 시야에 들어오는 아이카의 얼굴을 슬쩍 훔쳐보았다.

일단 보고 있으면 즐겁다. 사실 이제까지 별로 의식을 안 해서 그렇지, 실제로 찬찬히 생각해보면 대충 봐도 굉장히 귀여운 편에 속하는 외모다. 아름답다고 표현하기는 뭐한 게, 아직 소녀티를 벗지 못한 그런 앳된 느낌이 들어서랄까. 생각해보면 고작 이런 하녀복을 입혀놓는데도 이렇게 잘 어울리는걸 보면...

그런데 여기에 성격마저도 외모와 비슷한, 그러니까 영락없는 소녀 같은 성격. 그것도 발랄하거나 이런 쪽이라기보다는 섬세하고 연약한 쪽에 많이 가까워서, 조금만 일이 틀어져도 끼잉 풀이 죽는, 마치 아직 세상을 잘 알지 못하는 새끼 강아지 같다. 그런 주제에 일은 또 뭔가 잘하려 하고 뭔가 열심히 하려고 하는, 앳된 외모와는 약간 비스듬히 어긋나있는 성숙한 직업관. 그 미묘한 불균형이 또 한 번 소녀를 미소와 함께 바라보게 하...

그리고 그때였다.


“...하지만 보증한다고 하셔도.”


...내 느낌인가? 어째 약간 뾰로통한 느낌의 목소리였다. 느낌이겠지?


“응?”


“정작 그렇게 말하시는 분이...”


아이카의 말뜻을 이해한 것은 잠시 후의 일이었다. 어라? 잠깐, 이야기가 그렇게 되나?


“어... 아냐아냐. 그건 그러니까...”


내 중얼거림에 아이카가 살짝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 당황했지만, 아쉽게도 별로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뭔가 말을 꾸며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나는 잠시후 약간 낭패한 느낌으로 중얼거렸다.


“그냥... 이유가 좀 있어서.”


뭘 어떻게 말해야할지 알 수가 없어서 나는 그렇게 대충 둘러대었다. 그런데 정말로... 뭐라 말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지 않아도 방금 전에 그걸 생각하고 있지 않았던가. 거기에서조차 내가 왜 지금 아이카를 거절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지 않았나.


“이유요?”


“어, 그러니까...”


입을 열기는 했지만, 사실 딱히 이유라고 할 것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곧 혼란에 빠졌다. 날 지금 이런 제약에 묶어놓는 것은 무엇인가. 도덕? 아니, 도덕은 아니다. 흔히 말하는 도덕이니, 규범이니 하는 것들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지금 여기는 꿈속이니까. 무슨 일을 해도 괜찮은 꿈속이니까. 그런데 나는 왜...


“...하긴.”


뜬금없이 아이카가 그렇게 중얼거리는 통에 이유를 찾고 있던 나는 생각에서 깨어났다. 뭐라고? 하긴?


“...하긴이라니?”


“저 같은 것보다 더 예쁜 분들이 주위에 얼마든지 있으시니...”


저는 눈에 안 차실만 하겠죠, 라는 말이 생략된 듯한 중얼거림이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너 굉장히 예쁘다니까?”


혹시나 조금 전 대답으로는 부족했나 싶어서 그렇게 중얼거렸는데, 조금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일단 공주님도 그렇고.”


“뭐?‘


“리체 님도 그렇고.”


툭하고 던지는 이름에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뭐라고요? 공주님? 그리고 리체?


“...그리고 아라미르님도 그렇고.”


다행히 그 세 명 말고 다른 이름을 더 댈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혹은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 생각했던가. 나는 다소 황당한 이야기에 잠시 멍한 기분이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세 명의 모습을 그려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하긴, 걔들은... 일반인이라고 하기도 뭐할 정도로 예쁘장하지. 아, 그렇다고 아이카가 거기에 뒤처진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것 보세요.”


아이카는 할 말이 없어서 내가 침묵하고 있다고 해석한 모양인지 여전히 뾰로통한 목소리로 톡 쏘았다.


“응? 아, 아냐. 걔들도 예쁘긴 한데... 아니, 근데 갑자기 걔들 이야기는 왜 나와?”


“...주위에 그런 분들밖에 없으니까 눈이 높으시다는 거죠.”


미묘한 피해의식. 아니, 이걸 피해의식이라고 불러야 하나?


“아니, 그게 아니라...”


말을 다듬기 위해 나는 잠시 말을 끌었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네가 못 생겼다거나 하는 이유는 아니야. 실제로 못 생기지도 않았고. 예쁘다니까? 정말로.”


강세를 좀 넣어서 말했더니 아이카가 입술을 살짝 모으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믿어야 되나? 한 번 믿어줄까? 하는 느낌이랄까.


“...그런데요?”


“그런데... 음, 물론 나한테는 매우 좋은 일이지만... 뭔가 좀 아니다 싶달까. 너도 일단은 여자니까,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한테 그... 아니, 그러니까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하고 어떻게 되고 싶진 않을 거 아냐? 그래서...”


“...일단은 여자니까라는 건 무슨 뜻이에요?”


“아무 뜻 없어. 확대해석하지 마.”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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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71 정체무실
    작성일
    20.10.07 06:23
    No. 1

    오. 제가 역시 맞았군요.
    ㅋㅋ. 그나저나 아이카도 현실에 존재하면 정말 볼만 할거같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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