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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키 님의 서재입니다.

판상츠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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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키
작품등록일 :
2012.09.20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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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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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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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판상츠모사][16장 “덧그린 모사품” - 19]

DUMMY

[판상츠모사][16장 “덧그린 모사품” - 19]




“쟤는 참 알 수 없는 아이네.”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에서 지나는 투덜거리듯 말했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해.”


“뭐가?”


“이제 네가 꼭 유시아 공주 옆에 붙어있을 필요가 있어? 이제 군단장인 것도 아니고.”


“그 군단장도... 사실 군단장일 필요는 없었지만 말이지.”


내가 그렇게 대답하자 지나는 말실수를 했다는 듯한 표정이 되었다.


“에... 어쨌든. 어쨌든.”


살짝 파닥거리면서 대화를 넘긴 지나는 잠시 후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그럼 그때... 떠난 것도 시아가 떠나라고 해서 그랬던 거지? 그러니까 유시아 공주 말고. 저 시아.”


알아차릴 거라고 생각은 했다만 이렇게 바로 알아차릴 줄은 몰랐는데. 나는 약간은 감탄했다.


“눈치 빠르네.”


“그때 많이 서운했거든.”


우리는 몇 걸음을 걸어갔다.


“아니, 그러니까 내가 아니라. 리체가 그랬다는 거야. 리체가 서운했다고. 그리고 리체만 그랬던 것도 아니고 아이카도 그랬잖아? 그건 그냥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좀 감정적이기도 했고? 물론 나야 그러지 않겠지만 리체는 충분히 그럴 수도 있잖아.”


“알고 있으니까 그렇게 여러 번 말하지 않아도 돼.”


내가 그렇게 대답하자 지나는 막 뭔가 말을 더 이으려다가 스윽 입을 다물었다. 얼굴이 빨간 채였다.


“그, 그러고 보니 아이카는 어떻게 됐을... 아, 맞다. 선배한테 연락 안 왔어?”


말을 돌릴만한 좋은 구실을 찾았다는 느낌이 드는 질문이었다.


“몰라. 그 뒤로 바쁜지... 연락이 없네? 연락 준다고 했었는데.”


“바쁘면 어쩔 수 없긴 하지.”


말은 그렇게 해도 조금 서운하다는 투였다. 그러고 보니 리체가 아이카를 은근히 아꼈었지. 비록 꿈에서 만난 사이라고는 해도, 지나가 리체로서 느꼈던 감정들까지 전부 꿈에 남겨놓고 온 것은 아닐 테니까.


“나중에 연락 주겠지. 좀 한가해지면.”


그러나 서운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지나의 말투를 인식한 순간, 나는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아, 넌 지하철 안 타지? 난 혼자 갈 수 있으니까 너도 이제...”


“아, 아이카 선배? 저예요. 통화 괜찮으세요?”


“에?”


지나의 깜짝 놀란 표정을 앞에 두고 전화기에서 선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미안, 미안. 연락한다고 했는데 면목 없네. 요즘 너무 바빠서 말이야.’


“으음, 그래도 얼마나 많이 기다렸는데요. 잊으셨나 싶어서 연락해봤어요.”


‘아하하하, 이거 미안. 어른들이란 때때로 이렇단다. 네가 좀 이해해주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리 아이카에게서 이런 소리를 듣고 싶진 않았지만.


“리체가 보고 싶어 해요.”


‘아, 정말?’


“엣? 내, 내가 언제? 무슨 소리를 하는...”


‘아, 옆에 있나 보네? 리체도 안녕? 여기 이름이 지나였지?’


“아, 안녕하세요.”


나에게 화를 내려던 지나가 황급히 전화기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대체 어디다 인사하는 거야.


‘아... 그렇단 말이지. 둘이 같이 있다고?’


지나의 목소리를 들은 선배가 전화기 너머에서 그렇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지, 마침 식사 시간이네. 아직 식전이면 우리 같이 저녁 먹으면 어때?’


“아쉽게도 방금 먹었어요.”


‘그거 아쉽네.’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아쉽다는 투였다.


‘그럼 가볍게 차라도 한 잔 하지 않을래?’


“엥, 식사 안 하신 거 아니에요?”


‘차 마시면서 과자 먹으면 돼.’


어, 음... 나는 여리여리한 체구의 아이카를 떠올렸다.


‘너 지금 무례한 생각하려고 하는 거 아니야?’


“아닌데요.”


당황해서 거짓말을 해버렸다. 아니, 당황하지 않았더라도 이건 거짓말했겠지만.


‘아, 참고로 미안하지만 나 멀리는 못 가. 회사 근처면 좋겠는데 괜찮을까?’


이 사람 퇴근할 생각이 없는데?


“회사 근처요?”


‘응. 오늘 밤에 회의가 있어서 회사에 있어야 되거든. 약속 장소를 멋대로 잡아서 미안하긴 한데 너희가 직장인 좀 이해해주라. 그리고 이왕 이렇게 이야기 나온 김에 만나는 게 낫지 않을까? 오늘 아니면 또 흐지부지될 것 같고.’


지나와 같이 듣고 있었기에 나는 고개를 들어 지나를 쳐다보았다. 지나는 그런 내 시선을 받아들고는 순간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그 응시가 무슨 뜻인지 알아차린 모양인지 곧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럼 어디로 가면 될까요...?”


‘너희 학교에서 별로 안 멀어. 지하철 타고 와. 여기가 어디냐면... 아니다. 주소는 내가 찍어서 보내줄게.’


“네.”


‘그리고 혹시 일찍 도착하면 내 이름 달고 주문해. 회사에서 운영하는 곳이라서 직원 관계자도 주문이 무료거든. 자리 미리 잡아둘 테니까.’


그러고 보니 좋은 회사 다닌다고 했었지. 심지어 거기서도 직급이 좀 거창했던 것 같은데... 으음, 뭐였더라? 들었는데 왜 기억이 안 나냐.


“네. 도착하면 연락드릴게요.”


‘아참, 누구 찾아왔냐고 물으면 아이카 만나러 왔다고 하면 돼.’


“알겠습... 네?”


‘왜?’


“아이카...요?”


으레 말실수이겠거니 생각할 법도 했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라 선배라서 그런지 말실수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아하하하, 맞아. 아이카야.’


그를 증명이라도 하듯, 선배는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리 회사, 업무용 이름을 따로 쓰거든. 그래서 여기서도 나는 아이카.’


어, 그래...? 생각해보니 그런 회사가 있다고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아니, 그런데 그게 문제가 아니고.


“아니, 업무용 이름으로 아이카를 쓴다고요...?”


게다가 생각해보니 그거 내가 지어준... 아니, 줄여준 이름이잖아.


‘응. 예전에는 아이주 센레카라고 했는데 그러니까 아이주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고 센레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어서 말이지. 그런데 이렇게 쓰니까 좋더라?’


“아뇨. 그게 궁금했던 게 아니라요...”


‘어쨌든 나도 지금 일 적당히 마무리하고 내려갈 테니까 조금 있다 도착하면 연락 줘. 혹시 조금 늦어도 기다려주고~’


“아, 네...”


뚜, 뚜, 뚜. 왠지 일방적인 느낌이었던 대화는 통화와 함께 끊어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아는 그 아이카가 아닌 것 같아...”


“실제로 그 아이카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만.”


물론 아이카가 조금 활기찼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은 있긴 하지만... 이건 너무 과하게 활기차잖아?


“어쨌든... 선배 지금 마침 시간이 된다는 거지? 너는 시간 괜찮아?”


“딱히 바쁜 일 없어서. 너는?”


“그건 좀 전에 물어봤어야지 이제 와서 물어보면 뭐해. 아, 그리고 내가 언제 아이카 보고 싶어 했다고 그래?”


“보고 싶어 했잖아.”


“내가 언제?”


“그럼 보고 싶지 않았어?”


내가 그렇게 되묻자 리체는 불만스러운 듯이 날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냥 소식이 궁금했을 뿐이야.”


“후후후, 그것이 바로 보고 싶다는 감정이란다.”


“그 동화책에서 할아버지가 할 것 같은 말투 하지 말아줄래?”


그렇게 중얼거린 지나는 몸을 휙 돌렸다.


“나도 늦게까지는 못 있어. 빨리 가자.”


“그래. 오히려 우리가 늦을지도 모르겠네? 선배는 우리가 지금 학교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던데.”


“회사 위치가 어디야? 여기서 가까워?”


“그건 지금 봐야 알... 아, 왔다.”


마침 절묘하군. 나는 발걸음을 옮기며 화면에 찍힌 지도를 눈으로 훑었다.


“학교에서 두 정거장이네. 멀지는 않아.”


다만 여기서 가는 거니까 시간이 좀 더 걸리긴 하겠지만.


“예약은 해뒀으니 아이카 이름 대고 들어가 있으면 된대.”


“그래?”


회사 업무상 사람 만날 때 쓰는 곳인가 보군. 일단 목적지가 정해지자 사고에 살짝 여유가 생기는 느낌이었다.


“그나저나 여기서도 아이카라니... 그거 독특하네.”


“왜? 쓸 수도 있지. 우리 아빠 회사도 업무용 이름 써.”


“엥? 그래?”


물론 나는 업무용 이름을 쓴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는 게 아니라, 업무용으로 굳이 아이카라는 이름을 쓴다는 게 신기한 거지만.


“요즘 회사 중에는 이렇게 하는 곳 더러 있는 모양이야. 그렇게까지 흔하진 않은 것 같지만.”


“그야 당연히 이런 방식이 흔하진 않겠지... 어라? 혹시 선배, 너희 아빠 회사 다니고 있는 거 아냐?”


“그런 생각할 시간 있으면 빨리 걷기나 해. 이러다가 늦겠다.”


지나가 이상한 소리하지 말라는 듯이 대꾸해왔다. 물론 나도 그냥 해본 소리긴 했지만...


“어? 잠깐.”


그러나 나는 나도 모르게 자리에 멈춰 섰다. 멈춰선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멈춰 있었다.


“또 왜?”


지나가 몇 걸음 앞에서 재촉하듯 중얼거렸을 때야 나는 비로소 내 발걸음을 잡아놓은 사실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선배... 특채로 취직했다고 하지 않았어?”


“특채?”


“대학 안 가고 바로 취업했다고 했잖아. 무슨... 개발자라고 했던 것 같은데.”


우연치고는 공교롭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런 공교로운 우연 역시도 결론만 맞지 않다면 공교롭다고 부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지나는 기억을 되살리는 듯이 표정을 조금 찡그렸다.


“그렇게 들었던 것 같긴 한데... 그게 왜? 개발자면 어때서?”


“그게 아니라 우리 학교... 네 아빠 회사 재단이었지?”


몰라서 물어보는 질문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뻔한 확인에 지나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물론 살짝 굳었든, 많이 굳었든 어차피 굳는 것이지만.


“...그거 듣고 보니 묘하네.”


물론 선배가 어디 취직해있든, 취직해 있으면 안 된다는 법은 없으므로 지나 아빠네 회사에 취직해있다고 해서 뭔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요즘... 어쩐지 공교로운 일이 지나치게 많이 일어나는 것 아닌가?


“회사 주소 보여줘 봐.”


지나는 한숨을 쉬고 손을 내밀었고, 나는 그 손에 내 전화를 들려주었다. 지나는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손을 거두어 가만히 화면을 쳐다보았다. 딱히 눈동자도 움직이지 않았다.


“하아.”


약간 시간이 흐른 후에, 지나는 한숨을 쉬었다.


“공교롭네.”


다시 한 번 똑같은 이야기.


“여기... 우리 아빠 회사야.”




*




“아이카 이름으로 예약되어 있다고 들었는데요.”


“안녕하세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아이카, 아이카.”


노련한 접객 솜씨를 앞에 두고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네, 확인했습니다. 19번 자리로 가시겠어요? 음료는 이쪽에서 주문하시면 되고요.”


그래, 큰 회사라면 이런 곳도 있어야겠지. 생각은 하고 있었고 존재도 알고 있었지만 방문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가서 먼저 앉아있어.”


나는 불안한 시선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는 지나를 보고 그렇게 말했고, 지나는 화들짝 놀랐다.


“으, 응.”


여기 들어선 이후 지나는 눈에 띄게 불안해하는 눈치였다. 장소를 바꿀까 생각도 했지만 아이카 선배를 생각하면 그것도 좀 이상한 것 같고. 지나도 그럴 것까진 없다고 하긴 했지만...


“덥지 않...”


아, 교복이 드러나 있으면 오히려 눈에 더 띄겠군. 쟁반을 들고 온 나는 중얼거리다 말고 조심스레 입을 닫았다. 외투를 입고 있는 편이 낫겠지.


“선배한테 연락했어?”


“응.”


당연하지만 지나는 후작이나 로디토를 만날까봐 긴장하고 있는 눈치였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심지어 여긴 너무 뻥 뚫린 자리인데. 저기 옆쪽에 칸막이가 있는 자리도 있는 모양이니 아이카 선배가 내려오는 대로 자리를 좀 바꿔봐야겠군.


“야.”


“응?”


지나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조용히 말했다.


“...선배한테 우리 아빠 이야기는 하지 마.”


“...응.”


왜냐고 묻지는 않았다. 왠지 그렇게 말할 거라는 것도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예상하고 있었고. 물론 설마 그 높은 사람들이 이런 곳에 등장할 것 같지는 않다만.

으아, 그래도 빨리 내려왔으면 좋겠는데... 언제 오는 거야?


“리이체에~”


“꺅?!”


그리고 그때, 가뜩이나 경계심을 가득 품고 있던 리체를 누군가 갑자기 덥석 끌어안는 바람에 실내에 작은 비명이 울려 퍼졌다.


“아, 나야, 나.”


아이카였다. 아니, 아이카 선배였다. 언제 다가왔는지 모를 정도로 소리 소문 없이 다가온 선배가 리체를 반쯤 끌어안은 채 해맑게 웃고 있었다.


“아, 서, 서, 선배...?”


조금만 더 놀랐으면 울겠는데. 지나는 그제야 간신히 살짝 상황을 이해한 모양이었다.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경계심을 풀었다고 생각했는지, 아이카 선배는 지나를 다시 한 번 끌어안았다. 리체는 이번에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지만, 이미 질러놓은 비명이 있었던 탓에 주위 시선을 끌어 모으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음... 이거 안 좋은데. 아, 보기는 좋지만.


“핀도 안녕.”


“언제 오셨어요? 깜짝 놀랐네.”


“그냥 평범하게 방금 왔는데?”


작아서 못 본 건가? 그 순간 선배가 내 정강이를 톡 걷어찼다.


“아욱! 아야, 갑자기 뭐예요?”


“너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 표정에 다 보인다?”


“죄송합니다...”


나도 모르게 사과하고 말았다. 아니, 그런데 이 사람 내 생각을 어떻게 읽은... 아,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저, 선배.”


“응? 아, 괜찮아. 내건 내가 직접 주문할게.”


“아뇨. 그게 아니라... 저희 자리를 좀 옮기면 안 되나요?”


“자리?”


지나와 나는 입구 쪽에서 등을 돌린 채 앉아있는 참이었다. 지나는 당연한 일이고, 나도 혹시나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 저기 안쪽 칸막이 있는 자리로?”


“왜애?”


이 사람 이럴 때는 또 어린 척 하네.


“그... 그냥 저희 이야기 주위에서 들으면 좀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아서요.”


“별 상관없을 것 같은데. 여기 다 업무용 이름 쓰는 사람들이라 이상하게 안 봐. 너는 리체, 너는 핀, 나는 아이카.”


...방금 어디서 한 잔 하고 온 건 아니겠지?


“그게...”


나는 지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렇지만 너희가 신경 쓰인다면야 바꿔야지. 하긴 너희는 그럴 때고.”


이유야 어쨌건 간에 바꿔주겠다는 말만 귀에 들어왔다.


“잠깐만 기다려. 자리 바꿔올 테니까.”


“아, 네.”


어쨌거나 자리를 바꿀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바꾼 자리에 선배는 쟁반을 받아와서 앞에 내려놓았다. 쟁반에는 홍차뿐만 아니라 아까 이야기를 증명이라도 하듯 과자 여럿 담은 접시도 하나 있었다.


“자, 이건 같이 먹자.”


선배는 찻잔보다도 과자를 먼저 집어 경쾌하게 바삭 깨물며 말했다.


“여기면 괜찮지? 원래 여기는 좀 조용한 이야기할 때 앉는 곳이거든. 사업상 살짝 중요한 이야기하는 자리?”


“용도가 다른 거군요.”


“아무래도 회사다 보니까. 이런 자리도 있고, 저런 자리도 있지. 저어기 안쪽으로는 아예 따로 방으로 된 곳도 있어. 거긴 진짜로 중요한 사람들만 쓸 수 있는 공간이지.”


어, 뭐야. 그럼 설마 후작이나 로디토를 마주칠 수도 있다는 건가? 나는 불길한 상상을 했다.


“왜? 거기로 갈래?”


“네?”


“나도 그 방 쓸 수 있거든.”


“진짜로 중요한 사람들만 쓰는 곳이라면서요?”


“내가 진짜로 중요한 사람이니까.”


설마 이렇게 즉답할 줄은 몰랐는데.


“잊었어? 나 학교 가서 나 이렇게 잘난 사람이노라 광고하는 사람이란 거? 그것도 첫 번째로 광고할 정도라고?”


“그건 알지만...”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누가 나 보러 온다고 해서 시간 다 내줄 수 있는 사람 아니야.”


대충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정도일 거라고 생각은 안 했는데.


“물론, 너희는 내게 있어 좀 특별하니까 예외지만. 아, 참고로 으스대는 거 아니다?”


거기까지 말하고서 선배는 싱긋 웃었다.


“그리고 리체?”


“네?”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무슨 일...요?”


“아까 보니까 덜덜 떨고 있어서. 혹시 너한테 핀이 무슨 나쁜 짓이라도 했니?”


“왜 가만히 있는 저 가지고 그러세요.”


“그래서 혹시 했냐고 물어보는 거잖아.”


“가정이라고 해서 그게 전부 면죄부가 되는 게 아니라고요...”


우리가 그런 실없는 대화를 주고받은 덕인지, 리체는 그제야 비로소 살짝 긴장을 푸는 눈치였다.


“아뇨. 아무 일 없었어요.”


하긴 이제는 안전한 자리로 옮긴 시점이기도 하니.


“그래? 그럼 괜찮지만.”


“...저도 괜찮은지 물어봐줘야 하지 않아요?”


내 투덜거림에 대한 대답으로 선배는 가볍게 홍차를 홀짝거렸다.


“그래... 어쨌든 그동안 연락 못해서 미안. 나 요즘 어마어마어마하게 바쁘거든. 더 많이 표현하고 싶지만 그래봤자 내 입하고 너희 귀만 아플 테니까 표현은 생략.”


“직장인들이 다 그런 거예요, 아니면 선배가 특히 바쁜 거예요?”


“후자야. 요즘 우리 회사 신작 개발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나도 내가 요즘 뭘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


“신작?”


“어, 혹시 우리 회사가 뭐하는 회사인지는 알아? 그, 리체 너는 여자애니까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남자애들은 엄청 많이 하는 건데... 그렇지, 너는 안 해? 음, 제목이 뭐냐면...”


“알고 있어요. 그리고 저도 해요. 물론 요즘은 좀 뜸하지만.”


선배가 설명을 도와달라는 듯한 눈치였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말했다.


“그나저나 신작 나오긴 해요? 그거 개발 중이라는 말만 있고 정보 공개를 하나도 안 하던데.”


“아, 그러고 보니 이거 아직 비밀이었지. 업무상 회의인줄 알았네. 이거 어디 가서 비밀이다?”


“어라, 잠깐. 지금 후속작을 선배가 만들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신작 이야기는 아직 비밀인 거다? 제대로 이해한 거지?”


선배는 다시 한 번 그렇게 나에게 다짐을 받았다. 그제야 나는 선배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갑자기 실감나기 시작했다. 물론 개발자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여기서 일하는 개발자인줄은 몰랐지.


“어쨌든! 이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그렇다 치고.”


급히 말을 돌린다는 느낌도 없잖아 있었지만.


“우리 이야기를 좀 할까?”


“우리 이야기요?”


“어디까지 갔어? 이제 전쟁 시작했어?”


어쨌든 중요한 건 이쪽 이야기겠지. 그러나 잠시 후에 나는 그 질문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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