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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키 님의 서재입니다.

판상츠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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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키
작품등록일 :
2012.09.20 00:09
최근연재일 :
2023.09.29 06:00
연재수 :
29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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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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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498,372

작성
23.09.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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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2쪽

[판상츠모사][16장 “덧그린 모사품” - 17]

DUMMY

[판상츠모사][16장 “덧그린 모사품” - 17]




“참고로 다시 말하지만, 우리 집에 있는 거라곤 소금 정도야.”


“아, 싱싱하네. 이거 사야지.”


안 듣고 있네. 나는 불안감을 안은 채 지나 옆에서 지나가 식재료를 고르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어... 실례하겠습니다.”


그런 다음 둘이서 우리 집으로 귀가.


“나 혼자 산다니까.”


“그래도.”


“들어와.”


그나저나 이거 다 먹을 수는 있나. 둘이 먹는다 생각해도 꽤나 넉넉하게, 보기에 따라서는 과하게 구입한 것도 같은 양의 식재료를 들고 나는 주방으로 들어섰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 집에 있는 거라곤 소금 정도야.”


“그건 아까부터 계속 들었거든.”


“그럼 왜 대답 안 했는데.”


지나는 대답하는 대신 주방 입구에 서서 우리 집 이곳저곳을 흥미로운 듯이 훑어보고 있었다. 요리하러 온 거 아니었냐?


“집 넓네.”


지나의 감상은 뜬금없고 간략했다.


“혼자 살기에는 충분히 넓지.”


그러나 그렇게 대답하고 보니 문득 지나 역시도 좁은 곳에서 살 것 같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명색이 대기업 회장 따님인데 자그마한 단칸방에 살고 있진 않겠지. 어쩌면 우리 집보다 더 넓은 곳에 살고 있을지도 모르... 아니, 당연히 더 넓은 곳에 살고 있는 건가?


“그러게. 혼자 살기에는 넓지.”


아, 얘도 넓은 곳에 사나보네. 지나의 대답을 듣고 나는 확신했다. 혼자 산다고 해서 막연하게 좁은 방 같은 걸 생각했는데 사실 아까 그냥 갔어도 별 문제 없었을 것 같군.


“그럼 너 평소에는 뭐 먹고 살아?”


“급식.”


“...학교 안 갈 때는?”


“나가서 먹거나, 나가기 귀찮으면 즉석 식품. 혹은 지겨우면 배달. 그냥 잠깐 바람 쐬고 싶을 때는 포장해 와서도 먹지.”


“만들어 먹진 않고?”


“음식은 여럿이서 먹을 걸 만드는 것보다 혼자 먹을 걸 만드는 게 더 귀찮다는 말이 있잖아.”


만드는 데는 한참, 먹는 데는 잠깐. 그러다보니 뭘 만들어 먹어보려던 적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오래가진 않았다. 부모님 유산에 사고 지원금까지 있다 보니 끼니마다 뭘 꼭 집에서 만들어 먹어야 할 정도로 궁핍하지도 않았거니와.


“맞아. 혼자 먹을 걸 만드는 건 귀찮지.”


그렇게 대답한 지나는 뒤로 돌아서서 주방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귀찮아도 할 수밖에 없을 때가 있으니까.”


지나의 행동은 생각보다 빨랐다.


“옆에서 이것 좀 씻어줘. 다듬는 건 내가 할 테니.”


“예.”


우리 집까지 와서 뭘 만들겠다는데 손 놓고 앉아있는 것도 이상한 일이지. 나는 잠자코 지나의 지시에 따라 버섯을 가볍게 씻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마저도 별로 길지 않았다.


“이제 됐으니까 저어기 나가서 앉아있어. 이제부턴 내가 할 테니까.”


지나가 손을 들어 거실을 가리키며 그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무심코 주방을 나서려고 했지만, 대충 보아하니 지나가 자기 요리하는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걸 부담스러워 하는 눈치는 딱히 아니어서 나는 적당히 어슬렁거리다 주방에 있는 식탁에 슬쩍 앉았다.

정말로 표현 그대로 거실로 나가서 기다리라는 말은 아니었을 거야. 그렇겠지? 그리고 그런 내 예상이 맞았는지, 지나는 뒤에 내가 앉아있건 말건 별로 신경도 쓰지 않고 부산하게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버섯 듬뿍 넣은 고기볶음을 만들 거야. 그걸 면에 얹을 거고.”


말까지 거는 걸로 봐서는 주방에서 썩 꺼지라는 의미는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지나는 버섯을 들고는 의기양양하기까지 한 태도로 선언하듯 중얼거렸다.


“버섯 좋아해? 싫어한다고 해도 일단은 넣을 거지만.”


“난 못 먹는 거 없어.”


사실 버섯은 좋아하는 편인지라 대답을 거리낄 것도 없었다. 그나저나 싫어한다고 해도 일단은 넣을 거라니 요리사로서는 꽤나 호기로운 발언이군. 그러고 보니 얘는 오이 못 먹지 않았나? 아, 겨울이라 어차피 오이는 없군. 물론 있어도 안 샀겠지만.


“그냥 고기볶음하고 버섯 듬뿍 넣은 고기볶음은 무슨 차이야?”


“버섯 차이.”


칼질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머리를 거치지 않은 것만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아닌가? 내가 머리를 거치지 않고 질문한 건가? 음, 그나저나 칼질 잘하네.


“걱정했는데 식칼은 괜찮네.”


그야 거의 안 썼으니까. 나는 대답하는 대신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면서 턱을 괸 채 그렇게 지나가 요리하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냄비 같은 거 있어?”


“냄비는 거기 밑... 응, 거기.”


이미 수납장을 뒤지면서 물어보는 질문이었기에 자리에서 일어설 것도 없었다. 그나저나 어째 즐거워 보이네. 요리를 잘하는지는 아직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어쨌든 요리하는 걸 좋아한다는 것 정도는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너는 평소에 전부 직접 만들어서 먹어?”


“아니, 가정부 아줌마가 있어.”


으, 설마 했는데 진짜로 가정부가 있는 집이 있구나. 그나저나 혼자 사는데 가정부라.


“너도 혼자 산다고 하지 않았나?”


이미 알고는 있지만 대놓고 묻기엔 어쩐지 민망한 기분이 드는 질문이었기에 나는 그렇게 슬쩍 돌려 물었다. 그리고 그렇게 돌려 물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나는 내가 무엇을 묻고 싶은지 바로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하루 종일 있는 건 아니고 나 있을 때 잠깐만 왔다 가셔. 혼자 사니까 청소도 빨래도 요리도 할 게 많진 않거든.”


요리에 신경을 쓰고 있어서인지 대답은 매우 담백했다.


“사실 내가 전부 해도 되는데 집에서 보내는 거라서. 요리라도 내가 할까 했지만 내가 뭘 하면 오히려 아줌마 입장에선 곤란한 모양이더라고. 그래서 내가 하는 일은 거의 없지.”


“그래?”


“응.”


요리하는 사람하고 대화하는 것도 나름 괜찮네. 나는 고기를 다듬기 시작한 지나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이제 고기를 볶을 거야.”


그건 그렇고, 얘는 왜 혼자 사는 거지. 나는 여전히 턱을 괸 채 오랫동안 외면해왔던, 미뤄뒀던 질문을 드디어 꺼내들었다.

가족이 어디 멀리 사는 것도 아니고... 당장 후... 아니, 아빠만 봐도 그때 바로 달려온 걸 보면 근처에 살고 있잖아? 그런데 왜 혼자 사는 걸까.

사실 이 자체가 질문할 거리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당연히 복잡한 사정이 있겠지. 다만 나는 그 복잡한 사정이 무엇인지 궁금했던 것이고. 나는 주방에서 퍼지기 시작한 좋은 향기를 맡으면서 그 복잡한 사정이란 게 과연 무엇일지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생각해보았다.


“이건 다 됐고.”


당연하지만 평범한 그림이 그려지진 않았다. 내가 이 나이에 혼자 산다고 하면 주위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았듯, 얘도 그런 시선을 많이 받아왔겠지.


“이제 면이랑 같이 볶으면 끝.”


정신을 빼놓고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지나가 내 앞에 커다란 접시를 내려놓았을 때에야 나는 비로소 음식이 완성되었음을 깨달았다.


“자, 먹어봐.”


식탁에 두 개의 접시를 내려놓은 지나는 팔짱을 끼고는 의기양양한 태도로 나를 내려다보았고, 나는 접시를 내려다보았다. 겉보기에는 생각보다 멀쩡한... 아니, 이정도면 멀쩡한 정도가 아니라 꽤 잘 만들었잖아.


“어차피 집에서 먹는 경우는 별로 없다니 놔두고 먹을 수 있는 걸 만들어봤자 별로일 것 같고, 그냥 지금 바로 먹을 수 있는 걸 만들었어. 이걸로도 충분히 내 솜씨는 증명될 테니까.”


“그러니까 의심한 적이 없는데요.”


네가 멋대로 증명하겠다고 한 거잖아. 그러나 이런 요리를 앞에 두고 시시콜콜 그런 걸 따지는 것도 이상할 것 같아서 나는 잠자코 있기로 했다.


“뭐해? 안 먹고?”


“너는?”


“나도 먹을 거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가 그렇게 묻지 않았다면 계속 서있었을 것만 같은 기세였다. 내 중얼거림에 지나는 자리에 앉기는 했지만, 여전히 자기 그릇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이거 대놓고 은근히 부담스럽네.


“분명히 말해두지만 직접 만들었다고 해서 내가 적당히 좋게 평가할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만든 성의를 봐서 억지로 맛있다고 평하는 건 당장 듣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실은 너를 기만하는 행위나 다를 바 없지. 고로 어디까지나 객관적인 관점으로 이야기할 테니까, 설사 네 입장에선 좀 냉정하게 들리더라도 요리 실력을 더욱 갈고 닦기 위한 계기로 삼고 앞으로도 더욱 정진할 수 있게끔 수련을 게을리 하지 말...”


“시끄러워. 식으니까 빨리 먹기나 해.”


“네.”


일단 이렇게 말해뒀으니 적당히 무르게 말해도 입에 발린 말이라고 생각하진 않겠지. 나는 여전히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는 접시를 바라보았다.


“잘 먹겠습니다...”


그나저나 이거 어디서 본 적 있는 것 같은데. 갈색으로 볶은 면 위에 가느다랗게 채 썬 고기, 그리고 버섯들. 그 이외에도 채소가 들어가 있기는 했는데 아무래도 겨울이다 보니 반드시 넣어야 했기 때문에 넣었다기보다는 색감을 내기 위해 넣었다는 느낌이었다.


“어?”


그렇게 내가 외양에 대한 관찰을 하면서 입으로 면을 가져갔을 때였다.


“후후후, 어때?”


굳이 입에 발린 말을 할 필요까지도 없었다. 음식 만든 사람을 눈앞에 두고 냉랭하게 평을 할 자신은 없었기에 적당히 가산점을 줄 생각은 있었지만, 그런 걸 생각할 필요 없이 맛있잖아? 오히려 냉정하게 평가하고 싶어도 감점을 줄 구석을 찾기 힘든 느낌이었다.


“어... 그, 머, 먹을 만하네.”


오히려 맛이 없었다면 얼마든지 맛있다고 말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실제로 맛이 있으니까 정작 대놓고 맛있다고 말하기 좀 민망한 느낌이랄까. 그러나 그런 내 대답에서 이미 지나는 내 심리를 읽어낸 모양이었다.


“정말? 그 정도밖에 안 돼?”


윽...


“기껏 만들었는데 맛이 없다니 미안하게 됐네.”


누가 봐도 과장된 말투였지만 저렇게 이야기하는 데야 입을 다물고 있을 수는 없었다.


“아뇨. 맛이 없다고 말하지는 않았는데요.”


“그냥 먹을만하다는 건 맛이 없다는 거지. 만든 사람 성의를 생각해서 먹어준다는 느낌이잖아?”


이거 아무래도 입장이 뒤바뀐 것 같은데.


“그... 맛있네요...”


“뭐? 작아서 잘 안 들리는데.”


윽... 내가 생각해도 소리가 작긴 했다.


“마, 맛있...”


“작아서 안 들린다니까.”


“맛있다고.”


“후후후, 그렇지?”


그제야 지나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기에 나는 한숨을 쉬었다.


“어... 그런데 솔직히 좀 의외네요.”


“자꾸 실례되는 말 할래?”


“아니, 사실 맛이 없어도 맛있다고 할 생각이긴 했거든.”


“오히려 그게 더 기분 나쁜데.”


“평범하게 예상외로 맛있어서 놀랐어.”


“그러니까 나 요리 잘한다니까... 내 입으로 말하기는 좀 그렇긴 하지만.”


내가 솔직히 말했더니 그제야 지나도 슬쩍 민망했는지 시선을 옆으로 돌리며 대꾸했다.


“그나저나, 이거 왠지 익숙한데.”


지나도 자기 몫의 음식을 먹기 시작했기에 나는 다시 한 번 차분히 내 접시를 바라보았다. 그제야 드는 생각이었지만, 왠지 어디서 먹어본 것 같은...


“어? 잠깐, 이거?”


“이제 알았어?”


지나가 입을 살짝 오물거리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맞아. 이즈린느 왕국풍 특제 볶음면.”


“으왓, 진짜로 왕궁에서 먹던 그 맛이네?”


물론 완전히 똑같지는 않았지만, 분명 어디선가 본 것 같다 했더니.


“지금은 겨울이라 완전히 똑같이는 안 만들었지만. 요즘 채소 많이 비싸잖아? 그래서 대신 버섯으로 대체.”


지나는 면을 입으로 가져간 다음 설명하듯 말했다.


“아... 그런데 이걸 어떻게?”


“뭐가?”


“거기서 먹어본 걸 이렇게 바로 만들 수 있어?”


“요리 처음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힘들 거야. 왜? 직접 만들어보게?”


“아니, 그런 게 아니고. 그냥 신기해서.”


그냥 먹어본 것만으로 이걸 이렇게 똑같이 만들 수 있다고? 지나의 말처럼 요리를 해보지 않은 사람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나는 속으로 약간 감탄해서 고개를 들었다.


“너... 정말로 요리 잘하는구나.”


“칭찬 듣자고 만든 거 아니거든. 네가 자꾸 못 믿으니까 만든 거지.”


칭찬이 계속 이어지자 지나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 그렇게 말을 흘리긴 했지만 내심은 슬쩍 부끄러웠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 정도는 너도 할 수 있어. 너도 아예 감이 없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나?”


“방금 한 입 먹고 바로 알아맞혔잖아. 이게 왕궁에서 먹었던 요리라는 걸.”


칭찬이 부담스러웠는지 지나는 살짝 빨개진 얼굴이었다.


“그야... 이런 음식은 왕궁 아니면 내가 접할 일이 별로 없으니까?”


“어쨌든 식으니까 빨리 먹어.”


“네.”


좀 더 칭찬해줄만하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지. 그러나 지나가 그렇게 말했기에 나는 잠자코 식사에 집중하기로 했다.


“잘 먹었습니다.”


“아, 그릇은 거기 놔둬. 기름 묻은 건 따로 씻을 거니까.”


“설거지는 내가 할게.”


“아냐. 아직 할 거 남았으니까 놔둬.”


“아, 뭐 더 만들게?”


그러잖아도 아직 재료가 꽤 남아있었기에 슬쩍 신경이 쓰이던 참이었다. 내가 이걸로 뭘 만들어 먹을 것 같진 않으니 지금 저걸 써버리는 게 낫긴 할 텐데.


“뭐 만들 건데?”


“그건 생각하는 중.”


사실 배는 적당히 찬 느낌이라 꼭 뭘 더 만들지는 않아도 될 것 같지만. 그렇다고 냉장고에 넣어버리면 말라비틀어지기 전에는 저걸 꺼낼 것 같지는 않단 말이야?

흠, 쓰다 남은 재료라서 누구 줘버리기도 그렇고. 하긴 누구 준다고 해도 그럴 사람이 근처에 없긴 하...


“아, 맞다.”


“응?”


“시아는 뭣 좀 먹었나.”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내가 그렇게 중얼거렸을 때였다. 어라, 설마?


“그래. 버섯죽으로 해야겠다.”


머리를 스친 생각을 뒷받침하는 중얼거림이 이어졌다.


“시아 가져다주게?”


“응.”


역시 그랬구나. 확인 차 던진 내 질문에 지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걔 버섯 싫어하진 않겠지?”


“과일절임 아니면 괜찮을걸.”


“갑자기 웬 과일절임?”


“언젠가 자기 입으로 그러던데. 과일절임은 별로 안 좋아한다고.”


내가 그렇게 대답했더니 지나는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를 잘 못하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진짠데.


“그래... 어쨌든 그런 걸 죽에 넣지는 않을 테니까. 여기 없기도 하고. 있더라도 안 넣을 거지만.”


“그렇게 두 번씩이나 강조 안 해도 되는데.”


“죽이라면 놔뒀다가 먹어도 되니까. 너도 냉장고 넣어놨다가 출출할 때 먹어.”


지나는 내 대꾸를 얌전히 무시하고는 자기 그릇을 마저 비웠다.


“도와줄 건 없어?”


“없어. 넌 그냥 앉아있으면 돼.”


왠지 도와주는 게 더 번거롭게 만들 것 같군. 물론 지나가 그런 의미로 말하는 느낌은 아니긴 했지만 나는 그렇게 해석하기로 했다.


“요리 꽤 어릴 때부터 했나보네.”


칼을 쓰고 있을 때는 말을 걸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나는 한참이나 지나 지나가 자리로 돌아온 이후에야 그렇게 입을 열었다.


“어릴 때... 응. 어릴 때부터 했어.”


자리에 앉은 지나는 끓기 시작한 냄비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그리고 그렇게 가볍게 턱을 괸 채 앉아있던 지나는 지나가듯 말을 이었다.


“그때는 할 수밖에 없어서 하긴 했지만. 엄마가 일하느라 워낙 집에 늦게 와서, 식사 준비가 내 몫이었거든.”


아, 역시. 처음부터 취미로 배운 건 아닐 거라고 생각했고 아마도 그럴듯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막상 예상과 맞아떨어지니 오히려 당황스럽군.

게다가 지나가 엄마를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도 처음인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해서 어머니에 대해 묻는 것은 어쩐지 좀 꺼려졌다. 막연한 느낌이지만 어째 좀 복잡한 사정이 있을 것 같다고 해야 하나.

물론 이제까지의 정보를 종합하자면 짐작이 가는 바가 없진 않았으나 그렇다고 해서 질문을 던질 정도는 아니었기에 나는 입을 다물고 있기로 했다.


“시아에게 연락해봐.”


다만, 지나는 혼자 산다고 말하긴 했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말하진 않았다. 그게 묘하게 마음에 걸렸다.


“뭐라고?”


지나도 이 이야기를 별로 하고 싶어 하는 눈치는 아니고 말이지. 당장 중요한 것도 아니긴 하니까.


“그냥? 뭣 좀 먹었는지 물어봐.”


“이미 거의 다 만들었잖아... 어차피 갖다 줄 거지?”


“아무 것도 안 먹었으면 바로 먹고. 뭐라도 먹었으면 놔뒀다가 먹고. 냉장고에 넣어두면 되니까.”


“그야 그렇지만.”


내가 시아에게 전화를 거는 동안, 지나는 가볍게 냄비를 몇 번 저어주었다.


“안 받는데?”


“집에 없나?”


“어디 벌써 돌아다닐 정도로 회복하진 않았을 텐데.”


그렇다고 시아가 이 시간에 자고 있을 것 같진 않고.


“직접 가보면 되겠네. 그랬는데도 없으면 어쩔 수 없지.”


“그럼 죽은 어떡하고?”


“네가 다시 가지고 오면 되잖아. 여기서 시아 집 별로 안 멀다며?”


질문을 위한 질문이었기에 나는 대답에 재빨리 수긍했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거 이제 다 씻는다?”


설거지에까지 손을 뻗치려는 지나를 죽 조리에 전념케끔 쫓아낸 후에 나는 이리저리 식기를 정리해나갔다.


“으와, 너 설거지 서투르네...”


그야 요리해본 적이 거의 없으니 설거지해본 적도 거의 없으니까...

죽 냄비 앞에 선 채 질린 눈으로 나의 설거지 솜씨를 관망하고 있던 지나는 잠시 고민하는 눈치였지만 결국 나를 도와주진 않았다.


“깨끗한 것부터 먼저 씻는 거야. 기름 묻은 것들은 마지막쯤에. 아, 그리고 따뜻한 물로.”


“그건 알고 있는데.”


“그런데 왜 그렇게 안 해?”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기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알면서도 왜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꾸할 말이 있을 리가 없지. 어쨌든 나는 그런 지나의 지도 편달에 따라 서툴게나마 접시를 씻어나갔다.


“끝!”


“여기도 끝.”


나는 작은 그릇에 죽을 덜어 맛보는 지나의 옆모습을 힐끔 쳐다보았다.


“어때?”


“좀 먹어볼래?”


지나는 그릇을 통째로 내게 넘겨주었다.


“음... 맛있긴 한데, 죽은 죽이네.”


“그 미묘한 평은 뭐야?”


“아, 맛이 없다는 게 아니라 평소에 죽을 먹어본 적이 별로 없으니까. 마땅한 비교군이 없다는 이야... 아.”


무심코 그렇게 중얼거린 순간에 떠오른 기억이 있었다.


“왜?”


“아, 아무 것도 아냐.”


시아가 죽을 끓여준 적이 있었지... 그러나 그 기억을 그렇게 얼버무린 것은 오답이었다.


“흐응...”


지나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물론 내가 무슨 생각을 떠올렸는지는 알 수 없겠지만, 내가 뭔가 숨기고 있다는 것은 발 빠르게 간파한 모양이었다.


“아니, 그냥 나 최근에 교통사고 났다고 했잖아. 그때 죽 먹었던 게 떠올라서.”


그리하여 나는 자백하듯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급히 주절거렸다. 물론 말하지 않아도 큰 문제는 없었겠지만, 만에 하나 그 먹었다는 죽을 누가 만들었는지 물어보기라도 한다면...

응? 그런데 물어봐도 별 상관없는 것 아닌가? 난 뭘 신경 쓰고 있는 거지?


“교통사고? 아, 그랬다고 했지.”


그러나 다행히도 지나의 관심은 내 의도대로 살짝 다른 곳으로 흘러가주었다. 으음, 사실 시아가 만들었다고 말해줘도 상관없겠지만... 아, 그렇지. 지나라면 혹시나 누가 만든 게 더 맛있냐고 물어볼 수도 있잖아. 적어도 지금의 내게 있어서는 아빠가 좋냐, 엄마가 좋냐 하는 질문보다 더 곤란한 질문이었다.

흠, 사실 아빠든 엄마든 좋아해볼 기회가 없었던 나로서는 당연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잠깐, 혹시...”


그렇게 내가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부모님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응?”


윽, 그러고 보니 이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은...


“부모님, 사고로 돌아가셨다고 했었지...?”


대화의 흐름상 응당 나올 법한 질문이었기에 그렇게 껄끄럽진 않았다. 오히려 지나의 말투가 퍽이나 조심스러운 게 더 신경 쓰인다고 할까.


“아... 그거. 그거랑은 다른 거야.”


지나가 무엇을 궁금해 하는지는 뻔히 눈에 보였기에 나는 그렇게 답했다.


“다르다고?”


“우리 부모님은 엄청 어릴 때 돌아가셨고. 내가 당한 교통사고는 최근이고. 둘은 별개, 별개.”


나는 과장스럽게 손을 내저어가며 대답했다. 별것 아니라는 느낌도 주고 싶었다.


“아, 그렇구나... 혹시나 싶어서.”


무엇보다, 그게 무슨 사고인지는 지나가 묻지 않았으면 했었다.


“어디 보자... 그릇이... 아, 여기 담아가면 되겠네.”


내가 찬장에서 그릇을 꺼내 지나에게 건네자 지나는 엉겁결에 그것을 받아들었다.


“얼른 가자. 그 사이에 시아가 뭘 만들어 버릴지도 모르니까.”


“으, 응.”


그리고 나는 자리에 서서 지나가 죽을 옮겨 담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남는 건 네가 먹어. 어디 덜어다 둘까?”


“됐어. 갔다 와서 내가 알아서 할게.”


“그래, 그럼.”


지나는 조심스레 덜어낸 죽을 내려놓았다. 여전히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죽 그릇 뚜껑을 닫고...


“종이가방 같은 거 없어?”


저거, 그냥 들고 가긴 뜨겁겠지. 그 생각을 한 참에 지나가 입을 열었기에 나는 주방을 둘러보았다. 종이가방이 있었나? 아니면...


“아, 잠깐만.”


나는 식탁 위에 올라와있는 검은 봉지를 집어 들었다. 여기 뭐가 들었더라? 분명 뭐가 들어있었는데. 어쨌든 얘를 빼놓고 쓰면...


“아.”


그러나 다음 순간, 나는 슬쩍 당황해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시 봉지를 갈무리했다. 그러나 지나는 그 사이 봉지 안에 든 내용물을 확인한 모양이었다.


“...무슨 약인데 그렇게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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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 [판상츠모사][16장 “덧그린 모사품” - 18] 23.09.24 34 1 14쪽
» [판상츠모사][16장 “덧그린 모사품” - 17] 23.09.23 29 1 22쪽
289 [판상츠모사][16장 “덧그린 모사품” - 16] +2 23.09.22 31 1 14쪽
288 [판상츠모사][16장 “덧그린 모사품” - 15] 23.09.21 29 1 20쪽
287 [판상츠모사][16장 “덧그린 모사품” - 14] 23.09.20 29 1 20쪽
286 [판상츠모사][16장 “덧그린 모사품” - 13] 23.09.14 34 1 19쪽
285 [판상츠모사][16장 “덧그린 모사품” - 12] +1 23.09.09 32 2 26쪽
284 [판상츠모사][16장 “덧그린 모사품” - 11] 23.09.08 28 1 23쪽
283 [판상츠모사][16장 “덧그린 모사품” - 10] +1 23.09.03 31 2 21쪽
282 [판상츠모사][16장 “덧그린 모사품” - 9] 23.09.02 31 1 22쪽
281 [판상츠모사][16장 “덧그린 모사품” - 8] 23.09.01 31 1 21쪽
280 [판상츠모사][16장 “덧그린 모사품” - 7] 23.08.30 35 2 21쪽
279 [판상츠모사][16장 “덧그린 모사품” - 6] +1 23.08.29 35 2 27쪽
278 [판상츠모사][16장 “덧그린 모사품” - 5] 23.08.28 38 2 17쪽
277 [판상츠모사][16장 “덧그린 모사품” - 4] 23.08.27 34 2 19쪽
276 [판상츠모사][16장 “덧그린 모사품” - 3] +1 23.08.26 35 2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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