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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하루하루] 산책

산책은 핑계~★


약간의 출출함도 있고 해서, 산책 삼아 가까운 곳에 있는 농협을 다녀왔다. 가기 전에 초록모자 사이트에서 감수성 넘치는 웹툰 하나를 봤더니. 어쩐지 감성적이 되어 버린 상태였다.


평상시 눈을 크게 뜨고 있지 않은 편으로 그러니까 풀로 눈을 뜨진 않은..ㅋ 그런 상태로 다니는데. 대충 이런느낌으로..

etr.jpg


그런 내 눈에뭔가 몽글몽글해 보이는 하얀 뭉치들이 마구마구 땅 위에 솟아있는 게 보였다. 그 솜뭉치가 좀 귀여워 보였는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손으로 만져도 저항을 할 것 같은 땅땅한 비쥬얼을 하고 있었다.


땡글땡글해 보였단 말씀?


근데 웬걸. 손을 톡 가져다대는 순간 뭘까. 그것은 괴물의 눈동자가 서서히 열리며 입을 벌리는 것만 같은 감각이었다. 뭔가 손을 물리는 것 같은 착각에 얼른 손가락을 피했는데. 순간 민망해졌다.

멋대로 녀석의 외형과 내형, 촉감을 상상한 것은 내쪽. 그저 내 상상과 다르다는 것에 꽈드득 소리를 내며 깨지는 선입관이란 녀석 때문에 제법 곤란했다.

내 손에 닿은 그 부드러운 솜뭉치는 민들레 씨앗이 바람에 훅 날아가듯 완벽하던 구체에서 솜털이 ‘호로록’ 빠져나가며 형체를 잃었다.

내가 아니었더라도, 거센 바람에 휘말려 쓸려갈만큼 허약한 생물이었을 터인데. 그런 생물을 보며 괴물을 떠올리다니. 내가 그 아이를 괴물로 만든 건지. 이미 괴물인 내가 그 아이마저 오염시킨건지. 뭔가 조금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돌아오는 길, 약간은 궂은 하늘을 보며 난 생각했다.

어... 어디서 새가 이렇게 예쁘게 우냐.

고개를 들어올리니 처음 보는 새가 전깃줄에 앉아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자유롭다? 아닌가. 어차피 너나 나나 세상이라는 새장 속에 함께 갇힌 꼴이니까 똑같은 가?

나도 내 발 가지고 이리저리 놀러다니고 먹을 것도 사오고 하잖아.

어..? 나오기전에 본 웹툰 덕에 오늘은 내 안에 있던 15세의 감성이 마구마구 물결치네. 하는 엉뚱한 생각을 떠올리며 문득 내가 그때 뭘 했더라. 로 연상이 이어졌다. 소위 말하는 중2병의 시기에 나는. 의무처럼 학교를 오가는 말없는 아이였던 거 같다.

다만, 운동회 때만큼은 그 존재감을 미친듯이 드러내던.. -아 물론 내가 하고 싶어서도 아니고.-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면 칠판에 달리기며 농구며 뭐며, 내 이름이 적혀있는 걸 발견하곤 했다. 앙케이트 같은 걸 하면 대부분 무뚝뚝함 1위 말 없는애 1, 2위 다투고, 터프한애 3위 안에.

아. 그때 반에서 만들었던 문집 아직도 소장중인데. 매우 손발이 오그라드는 중2병에 걸렸던 게 분명한 흔적들이 남아있다.


중2는 나에게 특별하다. 내가 가장 처음으로 친구에 의해서 판타지 소설이라는 장르를 배운 때. 친구는 내게 이영도 작가님의 드래곤 라자를 추천해줬고. 그 작품은 아직도 도무지 잊을 수 없는 잊을 리 없는 감성으로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그때부터였을까. 내가 판타지. 환상이라는 것에 매력을 느끼며 빠져 들었던 것이. 그땐 왜 그리도 그런 것이 좋았을까. 요즘도 종종 그때를 되돌아보고는 하는데. 내 감성은 그때와 하나도 다르지 않은데.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이 쑥쑥 자라난 기분이었다.

4거리의 교차로 사이의 중심점에 홀로 서서 쓰러질 듯 말 듯 휘엉청휘엉청 흔들리는 세상을 보는 감각. 뭐, 누군가에게는 오글거리는 추억을 들추며 술자리의 안주거리를 삼을 이야기. 나에게는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도록 버티게 해준 친구이자 스승이자 그 이상을 뛰어넘는 영혼을 공유한 동지.


어찌 판타지를 , 환상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나는 10분 거리의 동네를 왕복했지만. 나는 그와 동시에 10년이 넘는 시간을 뛰어넘어 과거를 산책하고 15세의 나를 만나고 왔다. 그 아이는 여전히 수줍었지만.




댓글 4

  • 001. Personacon [탈퇴계정]

    16.06.07 03:09

    아아, 멋진 산책을 하고 오셨군요.
    걷다보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거 같아요.
    신도 나고 축 늘어지기도 했다가 다시 기분이 좋아지고.

    중2는 저한테도 참으로 특별했던 듯해요.
    그 짧은 시간에 참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그 일들이 여전히 머릿속에 남아 있어요.
    그 이후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히요!

  • 002. Lv.52 김윤우

    16.06.07 07:42

    맞아요. 산책은 기분전환에 매우 큰 도움도 되지요~
    멋진 산책이었습니다.

    중2. 정말요 세월이 많이 흘렀음에도 손에 가깝거 태엽을 돌리면 다시 그일이 재생되는기분이예요

  • 003. Personacon 이웃별

    16.06.07 12:51

    잔여울님. 저도 운동회 때 존재감을 드러낸 적이 한 번 있어요!
    달리기를 하면 항상 꼴찌였는데, 어느 날, 사람들이 오오옷 1등을 하고 있어!!! 하며 놀라워했지요.
    그 의외의 결과는.. 다음 순서가 달리는데도 저는 여전히 달리고 있었다는.....
    그래서 선두가 되었다는 전설이... ㅠㅠ
    운동 잘하시는 분 너무 부러워요!!! :D

  • 004. Lv.52 김윤우

    16.06.07 13:02

    아하하핫! 별님의 이야기에 반전이 있었네요 :D
    운동에 대한 건 아버지의 피를 물려 받았다고 당당하게 외칩니다.
    핸드볼을 하셨거든요. 헤헤. 어머니를 닮았다면... orz.
    사실 아주 어렸던 초등학교 2학년 쯤의 나이엔 6명이 달리면 6등이 아니면 5등을 했어요.
    그 이유를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었는데.
    달리기 직전 저는 머릿속으로 '아 귀찮아. 이거 뛰어서 이기면 뭐 해.'
    라고 생각했던거 같아요.
    덧붙여 어차피 상품은 필기구 아님 공책일건데요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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