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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화살 님의 서재입니다.

대영천하, 조선만세.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판타지

빛의화살
작품등록일 :
2021.05.31 00:07
최근연재일 :
2023.08.02 11:30
연재수 :
20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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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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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84
글자수 :
1,434,268

작성
21.09.23 11:30
조회
1,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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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글자
18쪽

대기근(大饑饉) 33.

대영천하, 조선만세.




DUMMY

“ 사영형님께서 우리더러 보자고 편지를 보내셨네. 어찌해야겠나? ”


김병한은 민클룬에 있는 김병기가 보낸 서찰을 접으며 옆에 있던 김대건에게 말했다.


“ 여기 상황을 뻔히 아시면서도 믿을만한 사람에게 맡겨두고 와 달라 하셨다니 가봐야 하지 않겠는가? 안젤로. ”


골웨이와 민클룬을 잇는 곳에서 외부에서 실려 오는 구호물자의 관리, 배분과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오는 자원봉사자들의 배치까지 모든 것을 직접 빈민들을 위한 구휼활동까지 하면서 총괄하고 있는 김병기였다. 구휼현장의 사정을 모를 리 없는 김병기다. 그가 사사로운 일로 구휼활동을 하는 이들에게 모이라는 전갈을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김대건은 당장 굶주리고 병든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 생기기는 했지만, 김병기의 청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 그래도 ······. ”


“ 가보시지요. 여기는 제게 맡겨주시고 말입니다. 분명 중요한 일일 텐데. 환자를 돌보는 일이라면 제가 적임이지요. 배고픈 자에게 밥을 주는 것은 저기에 계신 미스터 소이어가 더 적격이고요. 신을 섬기시는 여러분께서 직접 신의 자비를 베푸는 것도 좋겠지만 ······. ”


김병한이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자, 진료를 하던 중 잠시 휴식을 위해 앉아 있던 윌리엄 와일드가 말했다.


“ 그렇죠. 솔직히 말하자면 예수님께서 베푸신 오병이어(五餠二魚)도 맛으로만 치면 제가 만든 음식보다 맛있진 않았을 겁니다. ”


역시 빈자들을 위한 배식을 마치고 잠시 쉬고 있던 소이어도 와일드의 말을 거들며 한마디 했다.


오병이어의 기적에 빗대는 소이어의 말에 와일드는 피식 웃으며, 말을 계속 했다.


“ 어쩌면 당신들의 역할은 이곳에 있지 않을지도 모르지요. 가보십시오. 혹시 압니까? 동방에서 오신 동박박사들을 통해 오병이어의 기적이 다시 펼쳐질지 모르잖습니까? 그러니 이곳은 걱정 마시지요. 제 동료들이 곳곳에 흩어져서 환자를 돌보고 있습니다. ”


분명 와일드는 조선에서 온 선비들을 동방박사(Magi)에 빗댄 러셀 기자의 기사를 읽은 모양이었다. 그 기사에서 동방박사로 비유된 조선의 젊은이들이 무언가 기적이라도 일으켜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들의 등을 떠밀었다.


중요한 일이라면 그들이 이곳에 있는 것보다는 그들의 대표가 있는 곳에 가는 것이 옳다. 환자를 돌보는 것이라면 와일드 자신이 훨씬 낫다. 배고픈 자들이 먹을 음식을 마련하는 일이라면 옆에 있는 소이어 셰프가 조선인 기독교성직자들보다 훨씬 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그들이 병든 자들을 치료하고, 굶주린 자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일을 이렇게 돌아가게 만든 것은 조선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이 이 일에 관한 중요한 일에 참석하는 것이 더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 안드레아 신부께서도 같이 가십시오. 아까 말씀하시는 투가 안젤로 부제만 보내시려는 것 같은데 여기는 우리를 믿고 맡겨주세요. 가셔서 먹을 것과 약을 잔뜩 싣고 오시면 되는 겁니다. 솔직히 어떨 때는 방해만 됩니다. 하하하. ”


소이어가 탁자에 몸을 기댄 채로 팔짱을 끼며 웃어재꼈다.


“ 아, 소이어 셰프. 저도 그렇습니다. 의학전문가로써 솔직히 신을 모시는 분들이 쳐다보면 많이 부담됩니다. ”


와일드 역시 소이어에게 맞장구를 치며 기도하는 시늉을 했다. 환자를 치료하는 자신의 옆에서 위독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를 올릴 때마다 부담스럽다는 듯 말이다.


“ 알겠습니다. 무슨 일인지 들어보고 최대한 빨리 해결하고 돌아오겠습니다. ”


김대건은 둘의 너스레를 보면서 선선이 다녀오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김병기가 오라할 정도면 중요한 일일 것이다.



•••••••••••••••••••



“ 형님, 애란에 있는 우리 선비들이 더블린에 있는 소석을 제외하고는 모두 모였습니다. ”


애란에서 구휼활동을 한 후로 줄곧 보좌역할을 하고 있던 김병학이 김병기에게 알렸다.


“ 소석이 오기에는 너무 멀긴 하지? ”


소석은 더블린에 잔류하여 그곳에서 운영하고 있는 장젓고와 덕장을 운영하며 그곳 유력자에게 후원받는 일을 하고 있는 조병기의 호였다.


“ 예, 이제 말씀하시죠. 다들 맡은 일이 있어서 여독을 풀고 할 시간이 없지 않습니까? ”


“ 그래도 다들 지쳤을 텐데, 괜찮겠는가? 많이 피곤하면 오늘 푹 자고, 내일 아침에 모이는 것도 괜찮지 싶은데? ”


김병기는 자신의 호출에 급히 달려온 선비들에 대해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그동안 애란 백성들을 구휼하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했을 사람이었다. 하룻밤이라도 푹 재우고 말을 해야 할까 싶었다.


“ 글쎄요? 김대건이나 병한 형님은 빨리 돌아가야 한다며 빨리 모여서 이야기할 것은 이야기하고, 정할 것이 있다면 빨리 중지를 모아서 정하자 합니다만? 어찌 하시겠습니까? ”


“ 그러냐? 다른 이들 의견은 어떻더냐? 마찬가지더냐? ”


“ 그냥 쉬고 싶어 하는 이들이 대다수지만, 아무래도 마음이 편치 못한 것은 매일반입니다. ”


처음에는 자의반 타의반, 조선에서 주상전하께서 보내온 구휼곡을 직접 나눠주고는 끝낼 일이라고 생각한 이들이었지만, 대부분이 20대 초반인 조선 선비들은 백성들의 고통을 목도하고는 그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진심을 다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잠시 쉬는 시간마저도 아깝다며 빨리 백성들에게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 그래 내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 하는 것보다는 빨리 듣고 밤새 생각을 해보는 것도 괜찮겠지. 알겠다. 모두 여기로 오라 하도록 해라. ”


김병학의 말을 듣고는 김병기는 차라리 자신의 말을 미리 듣고 쉬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예, 그럼 모두 모이라 하겠습니다. ”







임시 가설 천막에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러셀은 휘파람은 분 후 떠들어댔다.


“ 오우~, 조선에서 오신 선비들께서 모두 모이신 것은 오랜만에 봅니다. ”


“ 러셀씨, 당신은 부르지 않았는데? 차라리 소이어 셰프를 도와주기 위해 현장에 남아있지 그러셨소? ”


그런 러셀을 쳐다보면서 김병기가 말했다. 사람 손이 하나라도 모자랄 텐데, 부르지도 않은 사람이 이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 불편했다. 그가 지금 선비들에게 할 이야기는 부렬전 사람인 러셀은 이해하지 못할 일일수도 있었다.


“ 여기 온 김에 봉사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원래 제 본분은 제가 일하는 신문사의 독자들을 위해 새 소식을 취재하는 것입니다. ”


팔짱을 낀 채로 뻔뻔스런 얼굴로 말하는 러셀이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취재를 위해 출장을 온 김에 구호활동에도 손을 거든 것이었다. 당연히 뭔가 기사거리가 생긴다면 그곳을 들쑤시는 것이 기자 본능이었다.


“ 어련 하시겠소. ”


이 작자와 더 말해봤자, 본전도 건지지 못할 것이란 것을 잘 아는 김병기는 피식 웃으며 모여 있는 선비들을 둘러보았다.


흥선군을 따라왔다 서역의 지도작법과 지리를 배우고 싶어 그대로 부렬전에 눌러앉은 고산자 김정호를 제외하면 자기네 안동 김씨 자제들을 비롯해서 풍양 조씨, 반남 박씨, 달성 서씨 등 경반 세도가의 자제들이었다. 대부분 어릴 적부터 몇 번이라도 교류가 있는 지라 처음 보는 얼굴은 없었다. 거기다 입조사를 따라 오는 동안 서로서로 의지하며 친분은 오히려 더 돈독해졌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리저리 얽힌 혼맥으로 다들 피로 연결되어 있기도 했으니 이렇게 친해진 것이 이상할 것도 없었다.


저 사람 중 상당수는 자신의 종제 김병룡 마냥 초시나 합격하면 다행이라는 안팎의 평가를 받는 이들도 많았다. 안동 김씨를 제외하고는 입조사에 따라온 이들은 각자 가문에서 그런 이유로 부렬전 경험이 후일 인생에 도움이 될까 해서 억지로 밀어 넣은 이들이었다.


“ 모두 모였는가? 내 긴히 할 말이 있어서 다들 모이시라 했네. ”


“ 무슨 일로 애란에 있는 우리 선비들을 모두 모이라 하신 겁니까? ”


평소 조용하게 김병기가 내리는 지시에 따르는 김병덕이 이유가 뭔지 물었다. 그는 대가집 자제답지 않게 조선에 있을 때부터 백성들의 고단한 삶에 대해 관심이 많았었다. 그런 성품이었기에 애란의 백성들이 겪는 고통에 공감하고 묵묵히 구휼에 임하고 있었다.


“ 사실 지금도 각지에 있는 백성들은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긴히 하실 말이 있다하여 오기는 했습니다만······. ”


“ 맞습니다. 애란인 의원들과 구휼을 위해 온 부렬전 선비들에게 맡겨두기는 했지만, 모든 일을 우리 조선선비들이 주도하고 있었기에 서둘러 되돌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


“ 일단 다들 서둘러 와서 몸이 곤하니 어서 말씀하시고 하룻밤 쉬게 해주시지요. 내일도 또 일을 하기 위해서는 말입니다. ”


기근에 역병이 겹쳤다. 비록 조선은 아니지만, 논어의 안연편(安淵篇)에서도 '사해지내(四海之內)이니 개형제야(皆兄弟也)'라 하지 않았던가? 사해가 모두 동포나 마찬가지인데, 고통 받는 백성들의 참상에 측은지심이 생겨 외면할 수 없었다. 김병기가 하려는 말을 어서 듣고 다시 백성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려는 듯 조바심을 내는 선비들은 김병기를 재촉했다.


“ 부족한 내가 조선선비들을 대표하여 여러 가지 일을 취합하고 돌보고 있자하니, 이일이 끝이 없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말이오. ”


김병기는 그런 선비들의 재촉에 잠시 눈을 감고 어떻게 말할까 궁리한 끝에 입을 열었다.


“ 그럼 구휼을 중단하고 하던 공부를 하러 다시 윤경으로 돌아가자는 말씀이신지요? ”


김병덕의 물음이었다. 그의 표정에는 구휼을 이제와 중단할 수 없다는 표정이 가득했다.


“ 그것이 아닐세. 난 태후제 폐하께서 친림하셔서 애란의 참상을 잠재울 방도를 만들어달라는 주청을 드릴 생각일세. 그래서 폐하께 올릴 상소를 써서 윤경의 황궁에 접수하기 위해 직접 갈 생각일세. 그러니 지금 내가 하는 일을 대신 맡아할 이를 새로 뽑자는 뜻에서 모두를 모이게 한 것일세. ”


김병기는 잠시 자신이 쓰고 있는 갓이 비뚤어진 것 같다는 생각에 갓끈을 고쳐 매고는 왼손으로 자신의 입 주변을 훑은 후에 말을 계속하였다.


“ 별 것 아닌 것으로 바쁜 모두를 불러들였다고 날 탓할 수도 있겠지만, 윤경에 계신 효정(孝貞, 조병준)을 제외하면 다들 나이도 비슷하고 해서 내 독단으로 나를 대신할 사람을 지정하기에도 애매해서 이렇게 다 같이 모여서 정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모두를 모이라 한 것일세. 그러니 내가 애란을 떠나 윤경의 황궁에 가는 동안 내 대신 일을 할 적임자를 정하도록 하세. ”


“ 누가 그 일을 대신 하겠습니까? 차라리 상소를 써서 적당한 사람에게 대신 태후제 폐하께 올리도록 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


이번에는 김병학이 깜짝 놀라 말했다. 그간 김병기가 하던 일은 크게 티는 나지 않아도 백성을 직접 돌보는 한편, 부렬전 조정의 유력인사에게 도움을 청하고, 조선과 부렬전에서 들어오는 구휼물자의 관리까지 아주 많았다.


그걸 바로 옆에서 돕던 것이 김병학이었다. 모두의 중지를 모은다고 하지만 모두들 그걸 알기에 김병기의 빈자리를 김병학더러 대신하라 할 가능성이 높았다. 김병학은 자신의 힘으로는 그만큼 하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 그렇습니다. 어찌되었든 상소만 올리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적당한 사람이 윤경에 있는 상국조정에 상소를 접수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


“ 내 그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이 아니네. 하지만 상국은 태후제 폐하께서 추거를 통하여 택현된 사대부들이 공화(共和)를 하도록 하고 폐하께서는 긴급한 일이 아니면 조정의 사소한 일에는 관여를 하시지 않는 것이 법도라 하지 않던가? 먼 원방인 조선이 사대의 예로 상국을 섬긴다고는 하나, 조선의 조정 대신도 아닌 일개 선비인 내가 올리는 상소가 태후제 폐하께 닿기나 하겠는가? ”


김병기는 다른 이를 보내 상소를 접수하자는 말에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 아니 백성들이 병들고 굶주려 죽는 이 사달이 어찌 사소한 일입니까? 응당 태후제 폐하께서 직접 나서야 하는 중대한 일이 아닙니까? ”


“ 그렇습니다. 지금 형님께서 비운 자리를 누가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


“ 아니네. 누군가는 나서야 하네. 미약한 우리만으로는 그저 백성들이 죽는 시간을 늦출 뿐이지. 만백성의 어버이이신 태후제께서 직접 나서지 않고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일일세. ”



“ 안됩니다. 지금 사영께서 자리를 비우시면 대신할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


“ 맞습니다. 절대로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을 시켜 상소만 접수하도록 하시지요. ”


“ 자네들이 무얼 두려워하는지 알겠네만, 내가 가야하네. 그래도 난 저기 러셀씨를 통하여 여러 곳에 글을 올리기도 해서 나름대로 유력 인사들과 연줄이 있지 않은가? 다른 이를 대신 보내는 것보다 내가 직접 움직이는 것이 나을 것일세. 그래야 태후제 폐하께 내가 올린 상소가 닿지 않겠는가? ”


김병기가 자신을 보며 말하자, 듣고 있던 러셀은 어깨를 으쓱했다. 조선인들이 조선말로 말하는 통에 어떤 말을 하는 지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자신을 쳐다보는 것이 무언가 자신이 언급된 것은 느꼈다.


이들이 모이면 당연히 자신이 알아듣지 못하는 조선어로 말할 거란 걸 알았어야 했다. 평소 같으면 옆에서 통역을 해줄 안젤로나 안드레아 마저도 심각한 표정으로 논의에 참여하고 있어서 논의의 전개를 알 수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선인 평민 천주교신자 아무나 한명 데려올 것인데 ······. 기사를 쓸 수가 없다. 나중에 안드레아나 안젤로가 말해주지 않는다면 말이다.


“ 그렇다면 우리 모두 같이 가서 황궁 앞에 엎드립시다. ”


“ 맞습니다. 조선 선비들의 의기를 보일 거면 우리 모두가 다 같이 가서 황궁 앞에 엎드려 청원합시다. ”


“ 좋습니다. 이왕 할 것 도끼를 등에 매고 지부상소(持斧上疏)를 올리는 것은 어떻습니까? ”


누군가 김병기를 따라서 버킹엄 궁에 엎드려 청원하자는 의견에 선비들은 자기들끼리 서로 이야기를 하더니 누군가가 도끼를 등에 매자는 소리를 하자 여기저기서 찬동하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여기 앉아 있는 선비들 대부분은 아직 피가 끓는 이십대의 나이다 보니 후끈 끓어오르는 열정에 흥분했다.


“ 다들 의기는 알겠지만, 그러면 이곳의 일은 어쩝니까? ”


김병덕이 선비들의 열기를 잠재우고자 말을 했다. 모두가 윤경의 황궁 앞에 엎드려 청원한다면 이곳의 백성들은 누가 돌보겠는가?


“ 여기 서학 훈도를 하시는 두 분이 계시지 않습니까? 힘드시겠지만 두 분이 우리가 지부상소를 올리는 동안 여기 일을 맡아주시면 어떻겠습니까? ”


서학훈도는 김대건 안드레아와 김병한 안젤로를 말하는 것이었다.


“ ······ ”


자신들을 지목하는 소리에 아무 대답 없이 묵묵부답하는 김대건과 김병한이었다.


“ 그게 나을 것 같습니다. 비록 우리가 외양으로 보이는 생김새가 이곳사람들과 많이 다르기는 하지만, 그래도 야소를 섬기는 분들이 이곳 사람들과 일하는 데 더 낫지 않겠습니까? ”


성리학과 성현의 말씀을 받드는 조선선비들과는 달리 야소를 섬기는 서학을 믿는 김병한과 김대건은 이곳 사람들과 더 빨리 친해졌다. 같은 믿음의 울타리에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이질적으로 생긴 외모는 상관없었다. 애란에서는 국교회로 개종한 김병한을 꺼려하는 이들도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자신들에게 이곳의 일을 맡기려는 선비의 말에 찬찬히 입을 열어 대답을 하는 김대건.


“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이대로는 안 된다는 사영의 말씀에 크게 공감합니다. 하지만 이곳에 남아 일할 사람들은 우리 외에도 있습니다. 애란 사람들을 돕기 위해 온 의원(醫員)들도 있고, 부렬전에서 우리와 함께하기 위해 온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 애란 사람들도 스스로 일어서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


김대건은 윌리엄 와일드가 자신들을 김병기의 호출에 응하도록 떠밀면서 했던 말을 하며 대답했다.


“ 더블린에서 왔다는 와일드라는 의원이 제게 말하더군요.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병자를 보살피는 것은 자신이, 빈자를 먹이는 것은 소이어 셰프에게 맡기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등을 떠밀더군요. ”


“ 제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영형님께서 태후제 폐하께 상소를 올리기 위해 직접 윤경에 가신다니 저희들도 가겠습니다. 부렬전의 중심인 윤경에서 각자 힘이 닿는 곳에 청원을 넣고, 아까 누군가가 말한 대로 황궁 앞에 자리를 깔고 엎드려 지부상소를 올려도 좋을 겁니다. 우리가 떠난다 해도 우리를 돕던 다른 이들이 남아서 우리가 하던 일을 대신해줄 겁니다. 그들을 믿고 저희는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


김대건의 말을 옆에서 듣던 김병한 또한 김대건의 말에 동조했다.


“ 그래도 누군가는 남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


“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와 뜻을 함께하는 이들을 좀 더 믿어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 조선 선비들 모두 다 같이 부렬전, 태후제 폐하께서 계신 윤경으로 가도록 합시다. 그곳에는 분명 우리 조선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겁니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말입니다. ”


김대건은 묵주를 잡고 있던 오른손에 힘을 주며 선비의 말에 대답했다.




영국조선) Union Jack 휘날리며, 孔子曰.


작가의말

* 김병덕은 김흥근의 자식으로 청렴함으로 이름이 높은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원래 대기근편의 중심인물 중 하나로 등장이 더 많을 예정이었지만 김병룡으로 대체한 에피와 고난에 눈물흘리는 그런 류의 에피를 모두 포기해서 등장이 없었습니다. 뜬금없이 등장한 것은 이렇게라도 등장시키고 싶었어요. 그런데 김좌근이 집안 청년들 모두 모아서 부렬전에 보낼 때 나왔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공기가 될 줄은 몰랐지요. 그때는...


  여러모로 초보 이야기꾼의 미숙함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할 뿐입니다.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도 부탁드릴게요.


* 긴 연휴덕에 오늘 하루 직장에서 실수하신 분들 많겠네요. 어떻습니까? 다음에 실수를 만회하면 되는 거지요. 모두들 좋은 하루되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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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2

  • 작성자
    Lv.79 ph******..
    작성일
    21.09.23 11:37
    No. 1

    조선이 영국에 지부상소를 풀었다!
    이제 의회에 손도끼파가...!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9 zx******
    작성일
    21.09.23 11:50
    No. 2

    드디어 대역갤에서 나왔던 지부상소가 소설에서 처음으로 나오는건가?

    폭소 예정이넼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좀 미안한 말이긴 한데 대기근 파트부터 확실하게
    소설의 재미가 줄어들고 그저 스토리를 읇을뿐이라는 생각이 드네....

    스토리가 재미가 없는건 아닌데 너무 구호 일색이라 단조롭다고 해야되나...

    찬성: 6 | 반대: 0

  • 작성자
    Lv.99 하후묘재
    작성일
    21.09.23 11:58
    No. 3

    드디어 나오는 군요
    지부상소
    언제 나오나 했는데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6 한라야
    작성일
    21.09.23 12:34
    No. 4

    드디어 핵심 에피인 자부상소가 나오네 그런데 홍선군이 인도가서 한탄하는 프롤로그 나올려면 저 환갑잔치 할때쯤 될듯....이게 다 매일매일 안올리고 하루에 2만자 이상 안써서 그럼. 아메리카에서 노예주는 사람을 시켜서 일 못하는 흑인들은 나무에 매달고 등을 짧은 회초리로 때렸다는데

    찬성: 1 | 반대: 1

  • 작성자
    Lv.46 한라야
    작성일
    21.09.23 12:35
    No. 5

    콩고에서는 고무채취 하는게 느린 흑인은 왼손을 잘랐다던데

    찬성: 1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39 빛의화살
    작성일
    21.09.23 13:53
    No. 6

    글써야 되니 손목은 냅두시고, 주거와 밥만 제공해주시면 노예생활을 할 수는 있습니다만.....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60 in******
    작성일
    21.09.23 17:25
    No. 7

    이 소설은 절반으로 압축했으면 유료화 노려볼만 했다.

    찬성: 9 | 반대: 2

  • 작성자
    Lv.31 응우옌꾸억
    작성일
    21.09.23 18:17
    No. 8

    재미는 있는데 파트가 너무 길어...

    찬성: 3 | 반대: 0

  • 작성자
    Lv.16 Nickname..
    작성일
    21.09.23 23:42
    No. 9

    건필해주세요. 너무 재밌게보고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3 wj******..
    작성일
    21.09.25 13:46
    No. 10

    오늘도 잘보고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0 썬오브비치
    작성일
    21.10.14 23:01
    No. 11

    길다길어 ㄷㄷ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25 케륵케륵
    작성일
    22.03.16 01:38
    No. 12

    구호 일색인 건 대기근 파트라 그렇다쳐도 앞에 설명한 얘기를 하고 또 해서 넘 늘어져요. 함축의 미가 없달까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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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 크림반도의 조선인 27. +6 22.01.11 905 59 15쪽
195 크림반도의 조선인 26. +8 22.01.09 903 61 13쪽
194 크림반도의 조선인 25. +15 22.01.08 879 51 15쪽
193 크림반도의 조선인 24. +6 22.01.06 893 51 13쪽
192 크림반도의 조선인 23. +6 22.01.05 852 50 16쪽
191 크림반도의 조선인 22. +10 22.01.04 848 47 13쪽
190 크림반도의 조선인 21. +7 21.12.30 915 43 14쪽
189 크림반도의 조선인 20. +4 21.12.29 837 51 15쪽
188 크림반도의 조선인 19. +2 21.12.28 854 50 13쪽
187 크림반도의 조선인 18. +4 21.12.26 891 53 13쪽
186 크림반도의 조선인 17. +2 21.12.25 872 48 16쪽
185 크림반도의 조선인 16. +7 21.12.23 903 55 13쪽
184 크림반도의 조선인 15. +3 21.12.22 927 58 14쪽
183 크림반도의 조선인 14. +10 21.12.21 983 62 17쪽
182 크림반도의 조선인 13. +6 21.12.19 1,020 52 14쪽
181 크림반도의 조선인 12. +9 21.12.18 1,049 50 15쪽
180 크림반도의 조선인 11. +6 21.12.16 981 53 13쪽
179 크림반도의 조선인 10. +4 21.12.15 958 50 17쪽
178 크림반도의 조선인 9. +17 21.12.14 1,078 51 15쪽
177 크림반도의 조선인 8. +11 21.12.12 1,022 61 14쪽
176 크림반도의 조선인 7. +10 21.12.11 986 56 15쪽
175 크림반도의 조선인 6. +11 21.12.09 998 49 15쪽
174 크림반도의 조선인 5. +6 21.12.08 995 53 16쪽
173 크림반도의 조선인 4. +6 21.12.07 1,015 5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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