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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성주의 마왕의 세계침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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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근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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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1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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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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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샘의 근원

DUMMY

디저트 사막엔 넥타르 샘이 있는 대신 바위밖에 없다면(그것도 지금 젤리 생명체들에겐 나쁘진 않았지만) 오스왈드 사막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오아시스였다.

오아시스 주변의 생태계는 대단히 풍족했다. 지금은 젤리들 천지지만 넓이는 무려 5제곱킬로미터 정도? 사막이라면서 거의 절반을 오아시스가 덮고 있었던 거다.

오스왈드는 그 축복받은 지형에 힘입어 농사짓고 낚시하고 가축 키우고 하면서 그럭저럭 강력한 군대를 키울 수 있었던 거고.


“이 오아시스 근처에 자생하는 식물들, 오스왈드가 창조한 게 아니지?”

“예. 게임 시작부터 있던 생물입니다. 물고기를 비롯한 오아시스 내 생태계도 플레이어가 조금만 건드렸지 크게 차이는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다 젤리들에게 집어삼켜졌지만.”


즉, 바위 사막밖에 없는 내 세계의 특권이 넥타르 샘이라면, 오스왈드가 받은 사막 세계의 특권은 이 풍요로운 오아시스 자체였던 거다.


나는 슬쩍 오아시스를 확인해봤다. 내 젤리들이 호수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를 죽여버린 건 아닌 듯, 원래부터 존재하던 물고기들과 개구리, 수초, 물풀 등은 여전히 젤리 틈에서 살아남아 있었다.


정작 오스왈드가 만든 종족이 못 먹는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오스왈드는 왜 이런 좋은 세계를 가지고 물풀을 먹고 오아시스에서 사는 수생 종족이 아니라 인간 같은 종족을 만든 거지?

이해가 잘 안 되는군. 나라면 당장 개구리 인간이나 하마를 만들어서 호수의 지배자가 되었을 텐데.


나는 이 생태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신성>을 발휘했다.


<[이름이 붙여지지 않은 어류]가 [젤리먹치]로 진화합니다.>

<[이름이 붙여지지 않은 양서류]가 [젤리먹구리]로 진화합니다.>


“이곳의 물고기와 개구리도 진화시키는 건가요?”

“담수 젤리들은 지금 천적이 전혀 없는 상태야. 심지어 모래로 자신을 보호하는 기능조차 없는, 가장 원시적인 흙젤리와 자갈젤리지. 젤리들의 수를 조절하고 생태계의 다양성을 늘려줄 포식자들은 꼭 필요해.”


이후의 진화는 그저 내버려두었다. 일부 젤리들은 모래들을 이용해서 점점 단단해질 것이고, 젤리먹치는 점점 단단한 치아와 튼튼한 비늘을 가지게 될 것이다.

젤리먹구리는 단단한 놈이 아니라 부드럽고 빠른 젤리를 먹게끔 진화해서 엄청난 헤엄 속도와 소화력을 갖추게 될 것이고 말이다.


앞서 천사에게 설명한 것처럼 여기 있는 물풀은 도태시키는 게 낫다. 순수한 식물에 원한이 있는 건 아니지만, 순수한 식물은 다른 플레이어들이 손쉽게 적응할 것이다. 오리지널 생명체인 젤리들만 살리는 게 가장 적절하다.

<신성>으로 넥타르 오아시스에서 사는 <수초젤리>들을 담수에 적응할 수 있게끔 ‘식물’의 광합성 유전자를 넣었다. 이제 이놈들은 <진짜수초젤리>다.


“원래 수초젤리는 그럼 가짜였어요?”

“생물 작명은 다 이런식이야. 수초젤리는 그냥 수초 같은 생태를 지닌 젤리들이고, 이 진짜수초젤리들은 젤리의 생태에 더해서 엽록소를 통한 광합성을 하지. 식물이면서 젤리라고 할까······.”


진짜수초젤리는 햇볕을 받고, 물을 먹고, 이산화탄소와 마력을 뱉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햇볕을 받고, 이산화탄소와 물을 먹고, 산소를 뱉는다.


결과적으로 물을 엄청나게 먹고, 마력과 산소를 뱉는 생물이 탄생한다. 이놈들이 늘려주는 물속 산소량은 물풀이 없어진 생태계에서 물고기와 개구리가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그리고 당장 먹을 게 없는 [고기먹는푸딩] 같은 육식성 푸딩들은 이런 물고기와 개구리를 잡아먹을 것이고, 물고기와 개구리, 푸딩은 서로 진화를 가속하면서 점차 커지고, 빨라지고, 공격적으로 변하면서 궁극적으론 어떤 물가에 존재하는 생명체도 다 거꾸러트리는 수중 생태계 파괴자가 될 것이다.


“이 게임이 원래 생물들도 맘껏 진화시켜서 노는 게임이긴 한데, 외래종 침투를 이렇게 적극적으로 전략으로 사용하는 플레이어는 처음 보네요.”

“극단적인 <생명> 빌드에선 이것말고는 초반에 할 게 없으니까. 그리고 어차피 이것도 한계가 있어.”


그러자 천사는 어이가 없다는 듯 날 쳐다봤다.


“이게 한계가 있는 빌드라고요?”

“어느 지점을 넘어가면 <기술>이나 <신비>를 통한 문명의 발달이 <생명>의 성장률을 능가한다. 생명 중심 빌드는 딱 하나에 특화해서 성장하면 정말 강하고 효율적이지만, 기본적으로 종들을 진화시켜서 더 강력한 종으로 만드는 것이 전제되기 때문에 즉각적인 방향 전환이 대단히 어려워. 나 역시 <신앙>이 하나도 없어서 진화시키고 싶은 생명체들이 많은데도 지금 상당수는 방치하고 있는 형국이고.”


결국 언젠가는 내가 뿌린 젤리 군단도 문명의 자체적인 역량으로 파괴할 수 있는 시점이 온다.

물론 지금은 아니다. 다음 세계, 어쩌면 다다음 세계까지는 젤리 군단 투하로 상대 생태계를 다 박살내고 이기겠지.

하지만 네 번째부터는 약간 힘들고, 다섯 번째부터는 아슬아슬하며, 여섯 번째부터는 거의 확실하게 그 세계의 문명이 자체 역량만으로 젤리 군단의 침입을 막을 수 있을 거다.

일곱 번째 충돌, 그러니까 대충 평균 레벨 7에 높은 레벨은 8~9. 낮은 것도 5는 되는 그 시점에서는 그 어떤 문명, 세계라도 젤리 투하로 인한 생태계 파괴에 대응하기 어렵지 않다.

인력을 투입해 노동력으로 다 밀어버리든.

마법을 사용해서 제거하든.

기술의 발달로 젤리들의 구조를 해석하거나, 혹은 제거할 방법을 찾든.

하다못해 신성력으로 젤리의 천적을 진화시켜서 대응하는 방법도 있다.


“그럼 멋지게 생태계를 구축한 다음 7번째 싸움에서 화려하게 지겠다는 소리는 아닐 거고. 문명을 드디어 세우나요?”


아. 니.


문명 건설에 왜 그렇게 집착하는 거야. 생태계 파괴로 승리하는 것만 전략이 아니다. 그때는 또 다른 전략이 있어.


아무튼, 난 담수 생태계 조성에 꽤 공을 들였다. 물풀들을 제거하고 수초젤리들을 투입하면서 기존 생명체들이 떼죽음 당하지 않게 조절하는 게 꽤 번거로운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넥타르 오아시스 상태도 확인해야 하고, 그곳의 생태계가 서로 교류하면서 악영향을 끼치면 또 안 되고, 기존에 물풀 먹던 가축들 제거하고, 오스왈드 사막에 원래 자생하던 동물이나 새들 조금 개조해서 젤리 먹을 수 있게 해주고······.


그렇게 젤리 제거 작업을 하다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저기. 갑자기 궁금한 게 생겼다만. 이 오스왈드 오아시스는 물이 어디서 들어오는 거지? 이렇게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데 말라붙어야 정상 아니야? 마법인가?”

“일단 확실히 하자면 공식적으로 ‘마법’이 아니라 ‘신비’라는 용어를 쓰고 있고요.”


마. 법.


“아무튼, 그 해답을 드리자면······. 신의 시점을 조절하셔서 지하를 확인해 보시면 답이 나올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시점을 내려서 지하를 봤다. 그리고 난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원래 오아시스라는 건 사막에서 수만 년 동안 비가 내려서 누적된 지면의 지하수가 사막 위로 솟아오르는 거다. 규모는 다르지만 ‘샘’이나 ‘온천’하고 메커니즘에 별 차이는 없다.


오스왈드의 세계에는 그런 거대한 지하수층이 있었다.


《대수층 LV.1: 《지하》에서 <물> 자원을 저장하는 지형입니다. 세계 전체에서 쏟아지는 비, 혹은 <물> 속성 마력을 저장합니다. 세계가 넓어질수록 자연스럽게 성장하고, 많이 퍼내면 줄어들기도 합니다.》


허어. 오스왈드, 정말 지형 하나는 끝내주게 받았군. 게임 끝날 때까지 물 걱정은 없었을 거다.


“정작 그 게임 한 판만에 끝내셨잖아요.”


그건 중요하지 않다. 물이 이렇게 많이 있다면 장기적으로 볼 때 넥타르 오아시스와 이 오스왈드 호수를 합치는 것도 좋겠는데.


그러면 거대한 습지가 생기고, 습지의 한쪽은 담수에 극도로 희석된 넥타르. 그리고 다른 쪽은 그나마 농후한 넥타르로 가득한 생태계가 형성될 거다.


그러면 어디보자. 바위젤리 계열의 생명체들을 이용해서 둘 사이에 존재하는 사막이란 물리적 장벽을 뚫어볼까. 운하를 건설하는 거지.


“문명을 키우면 금방 할 수 있는데······.”


아. 이런, 그런데 이거 안 되겠군. 나는 지금 <신앙>도 <정치>도 없어서 생명체에게 명령을 내릴 수가 없다. 그냥 자연적인 확장으로 두 고립된 생태계가 합쳐치는 걸 기다릴 수밖에 없겠군.


“그냥 신앙심 투철하고 사회성 지닌 종족 창조하시면 안 되나요?”


괜찮은 소득을 얻었다. 나는 이 사실에 만족하며 나의 좁은 생태계를 둘러보았다. 아직 세계 충돌까지는 시간이 꽤 남았으니 조금만 더 관리하면 될 텐데······.


그런데 문득, 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오스왈드의 오아시스는 사실 지하에 대수층이 있어서 위로 물이 솟아오른 거였다.

그러면 《넥타르 샘》은 무슨 원리로 넥타르를 생산하는 거지?

게임에서야 자연스럽게 레벨업하기 때문에 그냥 그런 존재가 있나보다 싶어서 넘어갔고 아무 신경 안 썼지만 생각해보면 되게 부자연스러운 지형이잖아.


나는 지하를 투시하는 기능으로 넥타르 샘을 생산하는 근원을 살폈다.


《넥타르 샘 LV4: 넥타르를 생산하는 지형입니다. 주변의 마력을 빨아들여 지속적으로 넥타르를 정제합니다.》


이렇게 피상적인 설명 말고, 아예 이 지형이 넥타르라는 고밀도 에너지원을 생산하는 원리를 알고 싶다. 게임과는 달리 원리가 존재한다면 어쩌면 활용할 수 있을지도?


<신성>을 응집해서 원리를 살핀다. 그리고 알아낸 원리는 경악스러웠다.


《넥타르 샘 LV4: 넥타르를 생산하는 지형입니다. 주변의 마력을 빨아들여 지속적으로 넥타르를 정제합니다.

세부 설명: 생명의 에너지를 담은 순수한 정수. 넥타르를 생산하는 지형입니다. <마력>이라고 하는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에너지를 <생명>이라는 에너지로 전환한다. 신이라고 불리웠던 존재의 파편으로, 그 신체가 조각난 지금도 신의 육체에 공급될 에너지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이거 진짜냐.”


천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했다.


“예. 신의 파편입니다. 넥타르 뿐만 아니라 세계의 많은 신비와 신성이 그렇지요. 플레이어가 지닌 <신성> 권능은 전부 그 진정한 신의 모방에 불과합니다.”


아니. 그걸 두고 한 말이 아닌데. 진정한 신이고 그 파편이고 자시고는 관심이 없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이거 생물학적인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 기관이라는 거 아니야.


나는 넥타르 샘을 향해 써볼 생각도 못했던 기술을 사용했다.


“어? 잠깐만. 플레이어님? 지금 뭐 하세요?”


<진화>.


빛이 뿜어졌다. 내가 가진 신성력이 모조리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탐욕스럽게 신성을 빨아들인 넥타르 샘은, 이윽고 내가 넣은 빛보다 더 많은 빛을 내었다.


번쩍! 하더니.


「<진화>를 쓰기에 적절한 대상이 아닙니다.」


신성이 돌아왔다. 난 조금 실망했다. 천사가 뒤에서 ‘상식’아니냐는 듯 지껄였다.


“당연히 못하죠. 본체에서 분리된 장기를 진화시켜서 새로운 생물로 만들진 못하잖아요?”

“식물은 꺾꽂이가 되는데.”

“이건 안 돼요.”


나는 많이 실망했다. 대단한 사기 빌드가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럴 바에 차라리 지성체나 창조하셔서······.”

“아? 잠시만.”

“뭐죠. 갑자기 또 뭔가 흉참한 생각을 하신 것 같은데.”


흉참이 뭐야. 흉참이.


나는 게임 내내 아마 쓸 이유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기능을 떠올렸다.


생물학적 메커니즘 말고도 판타지에서 존재하는 이상한 개체들을 설명할 수 있었던 기능이다.


이 기술의 조건은 대상이 <신비>를 보유했거나, 혹은 <생명>, 그에 준하는 것일 것.


나는 다시 <신성>을 대량으로 소모해서 기술을 사용했다.


「《넥타르 샘》에 <지성 부여>를 사용합니다.」


“엥?”


천사의 당혹감과 함께 내가 가진 신성력이 다시금 모조리 빨려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꿈틀─!


넥타르 샘이 신성력에 반응하며 박동하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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