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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근남 님의 서재입니다.

반지성주의 마왕의 세계침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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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근남
작품등록일 :
2024.07.01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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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1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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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3화. 소비자

DUMMY

‘보호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곧 다른 세계랑 충돌할 텐데’하며 안절부절못하는 천사와는 달리 난 평온했다. 내가 만들어낸 생명체들이 절대 다른 세계의 생명체들에게 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 어쨌든 넥타르 샘-넥타르젤리-바위젤리-자갈젤리-흙젤리로 이어지는 내 생태계에는 한 가지 문제점이 있다.


“문명이 없단 거요?”


아니. 뭐냐면 이 생태계는 최종적으로 흙젤리가 모래를 뱉는 걸로 끝나는데, 바위의 수는 한계가 있으니 머지않아 모래로 가득 차버린다는 거다.


사막 세계가 넥타르 바다와 젤리들이 뽈뽈대는 한여름의 백사장 같은 곳이 될 수도 있는데, 그 때는 이미 내 젤리들은 다 굶어 죽어 있을 거다. 세계를 끝까지 다 파먹는다면 가운데에 모래와 넥타르 바다로만 가득한 생태계가 될 수도 있겠지.


“그 전에 게임에서 탈락하실걸요.”


탈락 안 해. 그리고 이기면 상대 세계를 흡수해서 세계 크기가 커지잖아.


하지만 상대 세계가 내 세계처럼 바위로 가득한 생태계는 아니겠지. 그러니까 난 미래를 대비해서 내 생태계를 더 완벽히 구축해야 한다.


지금 ‘생산자’는 젤리들이고, ‘소비자’는 말하자면 마력을 흡수해서 넥타르를 생산하는 넥타르 샘인데. 여기서 좀 더 제대로 된 소비자를 추가시키는 게 좋겠다.


「[바위젤리]가 [젤리먹는푸딩]으로 진화했습니다.」


젤리보다 조금 탄탄한 몸을 가진 이 육식성 생물들에겐 푸딩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운동성이 심히 미약하고 기어다니는 젤리들을 향해 조금 더 빠른 움직임으로 기어가거나 굴러갈 수 있고, 젤리들을 잡아먹어서 영양분을 습득한다.


“그러면 모래의 생산이 늦춰지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은 안 되잖아요?”


「[젤리먹는푸딩]이 [자갈젤리먹는푸딩]으로 진화했습니다.」

「[자갈젤리먹는푸딩]이 [흙젤리먹는푸딩]으로 진화했습니다.」


“아. 네. 마음대로 만들어 보세요.”


아무런 외부 위협 없이 젤리들이 넥타르를 빨며 살던 평화로운 사막에 난데없이 사악한 푸딩들이 나타났다.

이 포악한 젤리식성 생명체들은 비교적 단단한 몸과 턱으로 젤리들을 처묵처묵하며 번거롭게 넥타르합성 같은 걸 하는 대신 남이 만든 영양분을 손쉽게 갈취한다.


푸딩들의 등장으로 인해 이대로 가면 젤리들은 대폭 수가 줄고, 그러면 푸딩들도 수가 줄어들고, 다시 젤리들의 수가 늘어나며 결국 어느 순간 서로의 수가 평형을 이룰 것이다.


난 그 평형이 오래 가는 걸 바라지 않았다. 나는 인위적으로, 아주 빠르게 젤리들을 진화시킨다.


“지성을 갖추고 문명을 이룩하게 하나요?”


아. 니.


포식자에게 맞서는 젤리들의 전략은 다음과 같다.


첫째. 덩치를 키우기. 자연계에서는 체급이 깡패다. 덩치를 키우는 것만으로도 포식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가장 많은 무기물을 분해하는 바위젤리가 커지고, 자갈, 흙 순서대로 커진다.

하지만 이건 당연히 포식자들의 덩치도 키우는 꼴이 된다. 푸딩들은 커다란 젤리들을 잡기 위해 더 커진다.


둘째. 도망치기. 운동능력을 높이기 시작한다. 사막에서 햇볕 쬐며 놀던 시대는 끝났다. 젤리들은 이제 불가사리의 관족 같은 기관을 만들거나, 혹은 조개처럼 팔을 만들거나, 달팽이처럼 기어다니는 운동법 등을 독자적으로 개발해 도망다니기 시작한다. 푸딩들은 당연히 더 날렵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른 도망법도 있다. 바로 적이 들어올 수 없는 곳으로 파고드는 것이다. 하지만 젤리들은 햇빛을 받아야만 하기 때문에 땅이 아니라 햇볕이 들어올 수 있는 물로 들어가서 수생생활을 하게 된다.

몸이 무거운 푸딩들은 호수로 못 들어오지만, 난 굳이 그놈들도 진화시켜서 물속을 헤엄치며 표면에서 젤리를 먹는 푸딩들을 탄생시켰다.


셋째. 독 만들기. 넥타르의 유기물 성분을 잘 조합해서 독을 만든다. 넥타르합성 과정에서 발생된 <마력>을 온전히 발산하는 대신, 마력을 일부 활용해 통해 열기와 냉기를 품는 놈도 있고, 푸딩들은 젤리들을 먹을 때 죽거나 입천장이 터지는 등의 피해를 받게 된다.

당연히 포식자들인 푸딩들은 더 강력한 내장과 튼튼한 입을 만든다.


“마법을 만들었네요? 원시적인 형태긴 하지만요.”

“지능을 쓰지 않는 신비한 메커니즘은 나도 좋아해. 판타지 세계니까 가능한 게 좀 있어서.”

“결국 지능은 안 올릴 거군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넷째. 단단해지기. 젤리들은 외골격을 만든다. 단단해져서 먹기 힘들어지면 당연히 먹지 않게 된다.

젤리들은 젤리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겉표면이 코팅이라도 한 것처럼 단단해지고, 일부는 부드러운 몸에 단단한 껍질을 뒤집어쓰는 조개와 달팽이 전략으로 나간다. 그 외에도 비늘이 달리는 놈들, 성게처럼 가시가 달리는 놈들. 가지각색이다.

당연히 포식자들인 푸딩은 더 힘세지고, 더 단단해진다.


자. 그리고 단단해지는데 공짜로 단단해질 수는 없다. 젤리와 푸딩들은 몸을 단단하게 만드는 재료로 무기물 중 염류 성분을 다 뽑아내고 뽑아내어서 이제 단단하고 쓸모없는 찌꺼기밖에 없는 모래를 이용한다.


“오. 이건 좀 대단한데요.”


석기시대는 돌이 부족해서 끝난 게 아니라고 했던가. 그렇지만 내 생태계의 사막화는 모래가 부족해져서 끝났다.


젤리들의 전략 중 가장 성공적이고 인기를 끈 건 껍데기 만들기 전략이었다. 왜냐면 푸딩들도 부드러운 턱밖에 없는데 단단한 유리질 껍데기가 그것을 방어해줬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푸딩들은 자기들도 단단한 껍데기 부수는 기관을 만들기 시작했다.

단단한 턱, 치아, 그리고 가시, 근육질 촉수. 가히 캄브리아기 대폭발을 연상케 하는 속도로 진화하며, 난 인위적으로 그 움직임을 가속시켰다.


결과적으로 그 많던 모래들이 전부 사라지고, 젤리와 푸딩들은 껍데기들이 생겼으며, 호수에 들어간 생물들은 물속까지 따라온 포식자들을 피해 단단한 비늘과 뛰어난 꼬리와 지느러미들이 생기는 등, 진짜로 수렴진화해서 진짜로 캄브리아기 대폭발 시대의 생명체들 같이 진화한 젤리와 푸딩들이 마구 생겨난다.


“그래서요?”


최초의 젤리인 넥타르젤리도 진화를 멈출 수 없다. 넥타르젤리는 두 가지 방향으로 진화한다.

하나는 여전히 호수 표면을 다닥다닥 채우며 햇볕과 열을 흡수하는 방향이고, 다른 방향은 조금 아래로, 아래로, 결국 호수 바닥까지 내려가 미약한 빛으로 넥타르합성을 시작하고, 일부 푸딩들은 그렇게 바닥에 가득해진 수초형 젤리들을 먹기 위해 진화한다.


넥타르 샘. 그 순수한 생명력 에너지의 원천을 생산해내는 곳은 곧 생명으로 넘치는 호수가 되었다.


표면에는 수많은 젤리들이 부레옥잠처럼 마구 번식했다. 가장 번식이 빠르고, 가장 빨리 죽는다. 이놈들은 수표면에 계속 떠 있어야 하기 때문에 가볍고 번식력이 빠르게, 그리고 그들을 잡아먹는 생명체도 많이 먹고 많이 번식하게끔 진화했다.


표면 아래 부유형 젤리들은 이동능력이 점차 발달해 물고기나 해파리처럼 진화하거나, 아니면 번식력을 대폭 늘려서 천 마리를 낳고 999마리가 죽어도 1마리 살면 다시 천 배로 불어나는 분열형 미생물의 삶을 이어간다.

가장 성공한 생명체는 아노말로카리스와 같이 ‘눈’을 가지고 지느러미 여러 개로 헤엄치며 조개고 달팽이고 껍데기를 부수고 그대로 으깨 먹는 아노말로카리푸딩이다.


바닥에는 바다나리와 불가사리, 조개, 달팽이 등을 연상케 하는 수많은 생물들이 서식하며, 서로 끝없는 방어 전략과 공격 전략의 투쟁을 이어나간다.

가장 성공한 생명체는 불가사리형 푸딩이다. 성게와 달팽이, 조개처럼 단단한 껍데기를 갖춘 젤리들을 힘으로 쪼개고 내용물을 먹는다.


소비자도 생산자도 수가 어마어마하게 다양해졌다. 그리고 여기서 나는 세 번째 유형의 생명체를 창조한다.


「[겔]을 창조했습니다.」


젤리보다도 물렁물렁한 생명체다. 이놈들은 덩치가 커질 수가 없다. 그저 작은 크기의 세균인데, 하는 일은 아주 간단하다. 죽은 생물의 시체를 뜯어먹는 것이다.

이놈들은 젤리와 푸딩들의 시체를 분해해 영양분을 얻고 원초적인 마력으로 바꾸며, 또 겔을 먹는 다른 생물들에게 잡아먹힌다.


변화는 이어진다. 푸딩들 중 덩치가 큰 것들은 이제 잡기가 너무 힘들어진 젤리들 대신 다른 푸딩들을 노리기 시작한다. 2차 소비자가 된 것이다.

육상의 젤리들은 빨리 이동하는 것과 느리게 이동하는 것으로 나뉘었고, 느리게 이동하는 것은 이제 식물과도 같이 변해서 외골격을 단단히 형성하고 마치 잎사귀와 가지처럼 넓게 모래를 분해해서 만든 유리가지와 이파리를 뻗어 햇볕을 섭취하고, 본체는 지하로 파고들어 식물과도 같이 가만히 머무르는 생물로 변한다.

빠르게 이동하는 젤리들은 점차 지면을 파고 바위와 돌 등을 찾아먹는, 일종의 초식동물, 아니 암식동물(巖食動物)과도 같이 진화했다. 그리고 그들을 먹는 젤리식성 푸딩들은 더욱 커지고 빨라지고 포악해진다.


이것으로 생산자, 소비자, 분해자가 완벽한 균형을 이루었다. 완벽한 생태계다.


“솔직히 멋지긴 한데요······.”


그래. 이 멋진 생태계의 이름을 디저트 사막(Dessert desert)이라고 불러야겠다. 끝내주는 이름이군. 다음에 창조할 생명체들도 그런 느낌으로 만들어봐야겠어.


「세계의 <생명> 점수가 441점을 넘어 레벨이 3으로 상승했습니다. 이제 새로운 특성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시스템 메시지도 날 축복해 주는군. 그러면 세 번째 특성을 정해볼까.


천사를 바라보고 어서 특성 카드를 보여달라고 손짓했는데, 천사가 잠시 머뭇거렸다.


뭐지. 렉인가. 버그 걸렸나. 로딩중인가. 왜 이래.


“저기. 실례지만, 곧 있으면 보호 시간이 끝난다는 걸 인지하고 계신가요?”

“인지하고 있다만.”

“그러면 묻겠는데. 이 젤리들로 도대체 어떻게 이길 생각이죠? 물론 알아요. 넥타르 샘도 커졌고, 그에 따르는 생명체들도 엄청나게 늘었어요. 첫 보호 단계 때 무슨 분야든 3레벨을 달성한 경우는 저도 극히 드문 것으로 알아요.”


그렇지. 원래 레벨 올리기 더럽게 힘든 게임이니까.

0레벨을 시작점으로 해서, 세계가 서로 충돌할 때마다 레벨 1단계씩 오르는 게 기본이고, 그것도 모든 분야를 올리진 못해서 어느 하나가 앞서면 어느 하나는 크게 뒤떨어지는 세계가 되기 마련이다.


그러면 난 이렇게 질문하겠다.


“그렇다면 내 점수는 지금 몹시 부족하겠군?”

“당연하죠. 자. 보세요. 평균 모든 플레이어 평균 점수가 300점인데, 비인님은 지금 생명 점수만 따져서 441점이니까 상위권으로 보이지만요. 사실상 생명 점수밖에 없으니······.”


하고 말을 이으려고 하던 천사는, 내 생태계의 상태창을 보고 완전히 굳어버린 듯했다.


“뭐야. 이거. 어떻게 이 수치가 나와.”


「비인의 세계

생명 LV.3: 441

군사 LV.0: 62

산업 LV.0: 25

기술 LV.0: 0

문화 LV.0: 0

정치 LV.0: 0

신비 LV.0: 40

신앙 LV.0: 0

세계 총점 LV.0: 568」


“진짜로 어떻게 이 점수가 나와! 문명도 없는데 군사 산업 신비 점수가 어떻게 나오냐고!”


군사점수는 내 생태계의 포식자들의 전투력 총합일 거고.

산업은 바위를 모래로 만드는 일련의 과정 때문일 거고.

신비는 그냥 원시적 마법을 계속 발달시킨 젤리들과 넥타르 샘 때문에 나왔다.


그리고 나머지는 다 0이다. 지성체가 없으니까.


“아니, 잠시만. 이거 좀 다르네요. 사실 군사력이 62로 보이지만 모든 생명체의 전투력을 총합한 거니까. 실제로 군사력 강한 세계와 싸우면 사냥감밖에 안 돼요. 신비와 산업도 말이 신비와 산업이지 대단한 마법을 익힌 게 아니라 원시적 마법을 익힌 생물들이 그냥 엄청나게 많아서 이 수치고.”


맞다.


“그리고 정치도 0. 신앙도 0이니까 생명체들을 플레이어님 의지대로 컨트롤하는 것도 불가능해요. 그런데 다른 세계와의 충돌에서 어떻게 이기죠?”


천사는 걱정하는 건지 항의하는 건지 모를 말투였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이봐. 천사. 방금 네가 나한테 ‘도대체 어떻게 이길 생각이냐.’라고 했으니, 질문을 바꿔보지.”

“?”

“이 게임은 상대 세계와 충돌한 이후 완전한 협업, 혹은 완벽한 점령을 이룩하면 이긴다.”

“그렇죠. 이 젤리들론 불가능하잖아요.”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질문은 이거다.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하면 질 수 있지?’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 봐.”


천사는 이놈이 대체 뭐라는 건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소스라치며 기겁하고 말았다.


깨달았군. 천사가 바보는 아닌데, 상상력이 모자라.


「곧 세계 충돌이 시작됩니다. 살아남은 플레이어만이 다음 라운드로 진출합니다.」


그러니까 3레벨 특성 카드나 보여줘라. 난 지금 지고 싶어도 질 수가 없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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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6화. 샘의 근원 +9 24.07.02 327 31 12쪽
5 5화. 산호구미 +8 24.07.02 338 30 13쪽
4 4화. 세계 충돌 -첫 번째- +13 24.07.01 386 33 13쪽
» 3화. 소비자 +7 24.07.01 355 33 13쪽
2 2화. 생산자 +10 24.07.01 377 32 12쪽
1 1화. 인간은 쓰레기다 +8 24.07.01 497 2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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