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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근남 님의 서재입니다.

반지성주의 마왕의 세계침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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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근남
작품등록일 :
2024.07.01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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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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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세계 충돌 -첫 번째-

DUMMY

세계 충돌은 점진적인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첫째는 차원문이다. 서로 세계를 오갈 수 있는 게이트가 열려서 ‘일방적’으로 공격 부대와 방어 부대를 보낸다.


공격과 방어라고 설명했지만······. 교류를 원할 겸 사신을 보내도 되고, 정찰병을 보내도 되고, 아무튼 서로 교류가 한 번 생긴 다음 차원문 발생 빈도가 빈번해진다.


둘째로 차원통로다. 아예 상대 세계로 영구적으로, 쌍방향으로 오갈 수 있는 통로가 생긴다. 이 통로는 점점 많아지고, 또 넓어진다.


셋째로 차원균열이다. 두 세계의 표면이 서로 접붙으며, 지역 전체에서 서로 넘어갈 수 있게 된다.


넷째가 차원융합. 이제는 상대 세계와의 완전한 공존, 혹은 영원한 전쟁 외에는 선택할 수 있는 게 없다. 이 단계에서 어느 세계의 총합 점수가 다른 세계의 총점의 두 배 이상 되면 자동적으로 승리한다.


나는 이 ‘차원문’ 단계 때 그저 흙젤리 몇 마리를 개조해서 적 세계에 던져넣었을 뿐이다. 3레벨 특성으로 넥타르가 아니라 다른 평범한 유기물도 섭취할 수 있게 바꾼 흙젤리들 말이다.


저쪽에 들어간 내 창조물들도 재밌겠지만, 그보다 내 생태계를 공격해 올 놈의 반응이 궁금하군.


도대체 내 생태계에 들어오고 무슨 생각을 할까?




생각해 보면 대단히 운이 좋았다. 지구 출신 플레이어 오스왈드는 그렇게 생각했다.


평소 폐인처럼 즐기던 게임에서 신이 될 수 있다고 자신을 게임 속 세계로 끌어들이는 것 아닌가. 현세에 미련도 없었고 진짜 신이 될 수 있다는 말에 혹해서 들어갔다.


이렇게 말하면 좀 그렇지만, 자신은 꽤 [더 판타지 월드 크리에이터]를 잘하는 편이었다. 최고 난이도도 손쉽게 깰 수 있었고, 온갖 변태적인 플레이와 전략, 불리한 환경에서도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그리고 더 운이 좋았던 것은 처음 받은 세계의 환경이었다. 맵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깨끗하고 넓은 오아시스와 적절한 평야. 산이나 언덕 같은 지형이 없어서 방어는 불리해도 농사짓고 물고기 낚으며 인구 불려서 문명 건설하기 전략이 최고로 잘 먹히는 공간이었다.


오스왈드는 가장 먼저 자신과 비슷한 인간형 생명체들을 창조한 뒤 식물과 나무, 가축을 주고 농사지으며 먹고 살 수 있게 해주었다.

그들은 인구가 증가하면서 사회를 이루고, 자원을 캐고, 기술을 발전시키고, 문화를 이루며 신비를 깨달아 마법을 만들었다.


그런 오스왈드의 세계는 대충 이런 상태였다.


「생명 LV.0: 56

군사 LV.1: 114

산업 LV.0: 35

기술 LV.0: 50

문화 LV.0: 28

정치 LV.0: 64

신비 LV.0: 18

신앙 LV.0: 25

세계 총점 LV.0: 390」


천사의 말에 따르면 390점이면 평균은 넘는다. 명색이 신을 가리는 게임이니 형편없이 못하는 플레이어가 끼어 있진 않을 테고, 아마도 크게 차이나진 않겠지만······. 그래도 어느 세력을 만나든 한 번 해볼 만했다.


특히 군사력을 100 이상 찍어서 레벨업을 한 게 주요할 것이다. 초창기에는 다들 내정 빌드에 신경 쓰니까. 군사 특성을 하나 찍은 자기 군대는 적 군대를 충분히 박살 내리라. 그리고 상대 종족을 노예로 삼아서 나머지 내정 분야를 충당하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며, 오스왈드는 자신을 믿는 신도들 중 뛰어난 전사들을 가려 뽑은 다음 상대 세계로 파견했다.

공격에 앞서 상대 세계를 먼저 <정찰>하는 게 기본이니까. 처음엔 비슷한 세계만 걸리는 규칙이니 이렇게 잔뜩 보내도 된다.


“어?”


그리고 자신의 전사들을 통해 상대의 세계를 본 오스왈드는 경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게 대체 뭐야.”


세계에 문명이 없다.


어딜 봐도 끈적한 젤리와 그것이 변형한 듯한 기괴한 생명체들. 그리고 모래와 부스러진 돌멩이뿐.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사람도, 동물도, 식물도.


그 어떤 것도 없는 황량한 세계에는 먹을 수도 없는 젤리들만 뽈뽈거리며 돌아다니며, 끔찍할 정도의 햇빛만 내리쬐고 있었다.


“마, 말도 안 돼! 이 세계 뭐야?!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아?! 전부 밸런스가 맞는 땅이라고 들었는데 상대 플레이어는 도대체 어떤 땅을 받은 거지?”


믿을 수가 없어서, 경악하는 자기 전사들을 전진시키며 환경을 둘러봤다.


그리고 머지않아 거대한 호수를 발견했다. 그 역시 미칠듯한 젤리들로 뒤덮여 있었는데. 역시 문명은 없이 젤리들만 가득했다.


“3레벨 넥타르 샘. 잠시만, 미친. 3레벨 넥타르 샘? 도대체 어떻게 세계 충돌 한 번도 없이 넥타르 샘을 3레벨까지 올리지? 아니, 잠시만. 그게 문제가 아니야. 그······.”


호수에 다가가서 그곳의 ‘물’을 떠봐서 맛본 전사는 퉤퉤거리며 그 점액질의 물을 내뱉곤, 공포에 질려선 하늘에 기도했다.


‘신이시여······. 이건 말씀하신 넥타르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의 손에서는 물컹물컹하면서도 딱딱한 젤리들이 꿈틀거리더니 이내 호수로 떨어졌다.


이 세계에 넥타르는 없다.


아니······. 정확히는 마력을 흡수해서 넥타르를 생산하는 샘 자체는 여전히 호수 밑바닥에서 끝없이 넥타르를 생산하고 있지만, 정작 넥타르는 없다.


생산되는 넥타르 ‘전부’ 쓰고 있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젤리들이 모조리 소비하고 있다.

호수에는 분명 미량의 넥타르가 존재하지만, 그와 동시에 대부분이 광물질로 이뤄져 먹을 수도 없는 젤리들로 가득 차 있다.


‘신이시여. 여기서 뭐랑 싸워서 어떻게 이기란 말입니까······? 신이시여! 응답해주십시오!’


오스왈드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내 생태계를 침공한 전사들은 전원 젤리를 섭취하지 못하고 아사했다. 나약한 놈들. <생명>레벨을 올려서 내장을 강화하는 정도의 대비는 했어야지.

그리고 상대 플레이어의 생태계. 사막이지만 거대한 오아시스를 지녀서 농사도 지을 수 있고 문명도 발전할 수 있는 그 땅에 던져넣은 흙젤리들은 오아시스와 그 주변의 비옥한 흙을 모조리 영양가 하나 없는 모래로 만들어버렸고, 그들의 호수는 젤리들로 가득찼다.

그들은 다음 추수철을 견디지 못하고 아사할 것이다.


「상대 플레이어 ‘오스왈드’가 <항복>을 요청합니다.」


“항복? 그런 시스템이 있었나?”

“새로 추가된 기능입니다. 상대 신의 종이 되는 대신 영혼의 소멸을 막습니다.”

“항복을 받아들였을 때 이점은?”

“완벽히 복종하는 노예를 얻죠. 세계가 넓어지면 대신 세세한 부분을 관리하게 할 수도 있고요. 상대 세계의 모든 것도 평화롭게 흡수할 수 있습니다.”

“거부하면 어떻게 되지?”

“어. 뭐······. 그냥 상대 영혼이 소멸하죠.”

“다른 이점이나 손해는 뭐 없나?”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항복을 받아들이라고 만든 시스템이라서요.”


그렇군. 그럼 거부한다.

이 우주에 지성체는 적을수록 좋다.

내 젤리들은 생태계 파괴를 속행했다.


「상대 플레이어 ‘오스왈드’가 <대화>를 요청합니다.」

「상대 플레이어 ‘오스왈드’가 <대화>를 요청합니다.」

「상대 플레이어 ‘오스왈드’가 <항복>을 요청합니다.」

「상대 플레이어 ‘오스왈드’가 <항복>을 요청합니다.」

「상대 플레이어 ‘오스왈드’가 <항복>을 요청합니다···.」


집요하군. 항복 안 받아줄 건데.


“메시지 차단 못하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럼 해줘.”


「플레이어 ‘오스왈드’를 차단했습니다.」


결국, 세계의 시간 흐름으로 1년 뒤. 기분 나쁘게도 인간을 닮은 상대 플레이어의 종족은 모조리 아사했고, 그들의 사막과 호수는 넥타르를 먹지 않는 담수성 젤리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플레이어 ‘오스왈드’와의 세계 충돌에서 승리하셨습니다.」

「플레이어의 세계가 넓어집니다.」


두 세계가 이어 붙여지고 내 사막은 두 배로 넓어졌다. 하나는 녹아내린 바위와 젤리로 가득한 넥타르 샘이 있는 디저트 사막이고 다른 하나는 담수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물풀 등의 습지와 파괴된 문명의 잔해가 남은 오스왈드 사막이다. 두 면적은 비슷하다.


“이겼네요. 이 젤리들 데리고.”

“질 수가 없었으니까.”


문자 그대로 질 수가 없었다. 내가 지려면 적들은 생태계의 근간이 되는 넥타르 오아시스. 그 최초의 생산자인 넥타르젤리를 모조리 절멸시켜야 한다.


그걸 어떻게 하냐? 계속된 확장으로 넥타르 샘의 지름은 1km가 훌쩍 넘는다. 그곳의 표면부터 수심 15미터까지 넥타르젤리로 꽉꽉 차 있다.


뭐, 적들이 광역 마법 같은 걸 퍼붓거나, 아니면 대략으로 독액을 만들어서 뿌리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면 어부들이 그물로 몇 년 동안 내내 방제 작업을 하거나. 여러 방법이 있다.

그런데 높아봤자 1레벨의 문명 수준을 지녔을 세계의 역량으로는 ‘절대’ 할 수 없다. 인력도 기술도 모자라다.


그리고 적의 호수는 내 젤리들의 훌륭한 서식처가 되어주었고 말이다. 보통 이 단계에서 다른 플레이어들은 호수에 물풀이나 물고기 정도나 만들지 무슨 유기물이든 섭취할 수 있는 강력한 포식자 같은 건 안 만들거든.


“그러면 이제부턴 어떻게 하시죠? 보통은 상대 문명을 빼앗고 상대 종족을 노예로 삼는데 너무 전략이 특이해서 뭘 하실지 전혀 짐작이 안 가네요.”

“지금은 내 시작점이 사막이라 상대가 사막 지형으로 잡혔지만, 두세 번만 지나도 상대 지형에서 사막이 아닌 다른 지형이 나오겠지. 그때를 대비해, 넥타르 대신 물풀과 담수를 기반으로 서식하는 젤리들을 진화시킨다. 푸딩들 역시 육식성으로 바꿔서 상대의 생태계에 완전히 침투해서 파괴하는 극악의 외래종으로 진화시킨다.”

“오스왈드 사막에 존재하는 식물이나 동물은 어쩔 거예요?”

“식물은 절멸시킨다. 식물을 먹는 동물은 개조해서 젤리들을 먹게끔 한다. 문명이 이용할 만한 것을 파괴하고 오로지 내 디저트 군단이 다른 모든 생태계를 압도할 수 있게끔 한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끝까지 문명은 안 만드시는 거죠?”


어. 안 만든다.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 <생명>발전 하나에 모든 것을 몰아넣어서 완벽한 생태계로 어쭙잖게 기술이나 마법 같은 거 배운 문명을 파괴한다.


「승리 보상으로 신규 세계 특성을 획득합니다. 세계 특성은 스스로 창조한 모든 창조물 및 외부에서 유입된 모든 창조물에게 제공됩니다.」


“그렇다면, 비인 님의 세계에 다음과 같은 특성을 제안하지요.”


천사는 내 눈앞에 세 가지 특성 카드를 띄웠다.


『공사 전문가: 창조물이 토목 공사에 능숙해집니다. <산업> 발전에 유리해집니다.』

『기술 영감: 창조물에 강력한 기술적 영감이 깃들어 <기술> 발전에 유리해집니다.』

『고지능: 창조물의 지능이 대폭 상승합니다. 지능이 높은 종족은 <정치>와 <기술> 발전에 유리해집니다.』


이 천사가 지금 나한테 시비거나?


“아닙니다. 그저 가장 플레이어님의 ‘문명’에 도움이 되는 선택지를 꼽았을 뿐입니다.”


그런 거 안 키울 거라니까. 도대체 왜 내 완벽한 생태계에 불결한 지성체들을 끼워넣으려는 거지?


나는 선택지를 좀 보다가, 하나 궁금한 게 생겨서 물었다.


“공사라는 건 어디까지 해당되는 거지?”

“당연히, 외부의 자재를 이용해 구조물을 만들거나,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지형지물을 지성체의 목적에 따라 다른 형태로 바꾸거나 제거, 생성하는 행위가 공사입니다.”


그 정의를 듣고 난 재차 물었다.


“비버의 댐 건설은 공사에 해당되나?”

“네? 어······. 네. 지능은 낮지만, 명백한 토목 공사입니다.”

“그럼 지성이 없는 산호들이 군집을 이뤄서 거대한 산호초를 만드는 건 공사에 해당되나? 외부의 영양분이라는 자재를 이용해, 자신의 신체라는 구조물을 발달시켜서 다른 생명체들이 거주할 수 있는 새로운 지형지물을 만드는 행위인데.”

“······.”

“······.”

“잠시 상부에 연락 좀 해보겠습니다.”


내 시야에서 사라진 천사는, 잠시 뒤 나타나 조금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로 답했다.


“네······. 완벽히 생물학적인 메커니즘이지만, 토목 공사에 해당한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그럼 『공사 전문가』 특성을 택하도록 하지.”


특성을 얻은 나는 이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새로운 생명체를 창조했다.


「[해면푸딩]이 [산호구미]로 진화했습니다.」


넥타르 오아시스는 너무 빈약해. 목표는 넥타르 바다다.


넥타르 바다에 수많은 젤리들과 푸딩들, 그리고 아름답고도 웅장할 구미 대보초가 존재할 것을 생각하니 절로 흥분되는 것 같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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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5화. 산호구미 +8 24.07.02 331 30 13쪽
» 4화. 세계 충돌 -첫 번째- +13 24.07.01 382 33 13쪽
3 3화. 소비자 +7 24.07.01 348 33 13쪽
2 2화. 생산자 +10 24.07.01 371 32 12쪽
1 1화. 인간은 쓰레기다 +8 24.07.01 489 2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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