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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무희 님의 서재입니다.

파륵오륜담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바람무희
작품등록일 :
2009.10.20 17:47
최근연재일 :
2009.10.20 17:47
연재수 :
8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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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41
추천수 :
240
글자수 :
622,045

작성
09.10.07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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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8쪽

연 - 6

DUMMY

나예는 안절부절못하고 슬며시 고개를 기울였다가, 주저앉았다가 일어섰다가 혼자서 그러고 있었다. 그녀가 서 있는 문의 안쪽에는 해솔이 머무르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제자이자, 장래 예의 주인이다. 게다가 잘생기기까지. 입고 있던 옷도 자신이 갖고 있는 제일 좋은 천보다 훨씬 좋은 걸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고 곱이진 매듭이 눈에 선했다. 그녀의 눈이 심히 반짝거렸다.

한편 해솔은 그걸 가만히 구경하고 있었다. 문을 열지 않아도 움직이는 그림자가 비쳐 들어오고 있었다. 우습기도 하고 어여쁘기도 하여 흥미롭게 바라보다 마침내 문을 열었다.

벼락 맞은 듯 놀라는 모습에 해솔은 저도 모르게 미간의 주름을 풀고 엷게 미소 지었다. 정말로 싱그러운 소녀의 자태였다.

“무슨 곤란한 일이라도 있으신지.”

그러자 곤란한 표정으로 우물쭈물한다. 그 속뜻을 모를 해솔이 아니나 시치미를 떼고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둘러댈지 궁금했다.

“제 동무가 홀로 산속에 사는데.. 걱정이 되어서요.”

중간에 말이 좀 끊기긴 했지만 훌륭한 임기응변이다. 웃음이 새어나올까 해솔은 걱정하며 고개를 약간 숙였다. 나예는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한 해솔의 자세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가까이서 본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비스듬히 보이는 얼굴의 선이 마을의 우락부락한 남자들의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럼 함께 가볼까요. 오랜 동안 방안에만 있었더니 몸이 찌뿌듯하군요.”

“하지만…….”

마치 말리듯 앞으로 한 발자국 퍼득 내딛는 나예를 쳐다보며 해솔이 고개를 갸웃했다.

“흉한 것을 보시게 될 텐데요. 저, 저 해솔님은 그런 것에 익숙하지 않으실 거예요.”

해솔은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그래서 조금 전까지 한울의 말을 생각하며 고뇌하던 기운이 갑자기 진짜로 떨쳐져버렸다.

“백성을 다스려야 할 저입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봐야 하지 않을까요.”

순간 나예는 마음이 녹아내림을 처음으로 경험했다. 태양을 배경으로 우뚝 선 청년은 실로 눈이 부셨다.


“벗어.”

불퉁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연을 보다 한숨을 내쉬며 단야는 무릎을 굽혀 앉아 눈을 맞추었다.

“썩는 내가 난다고. 너보고 하라는 것도 아니잖아. 내가 빨 거라고.”

말이 땀이지, 그건 보통의 땀이 아니었다. 몸속의 불순물이 녹아나온 악취 나는 찐득거리는 물질인 것이다. 그것이 보름이 넘도록 배긴 옷은 도저히 말로 형용할 수가 없었다. 그냥 태워버리려는 걸 연이 하도 완강히 반대하는 바람에 빨기로 한 것이다.

“휴…….”

나와 문을 닫고 하늘을 바라보며 숨을 내쉬었다. 이런 사소하고 별 것 아닌 일로 골치를 썩여야 한다는 것이 참으로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연과 제대로 대화를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점점 골치가 아파지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정말로 불가사의한 생물이었다. 말수도 그다지 많지 않고 이상한 곳에서 고집을 부리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묘한 배려나 미소를 보이곤 했다. 이러한 상황이 정말 이상했다. 자신이 자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점점 망가지고 있었다. 연과 소통하면서 자신이 영향을 받고 있었다.

벌컥 열리더니 새하얀 팔이 나왔다. 솜털이 보송하게, 흰 살결이 돋보이는 손목 안의 여린 피부를 보다 발등에 무엇이 닿는 걸 느꼈다. 연이 입고 있던 옷을 벗은 것이었다.

“으.”

엄지와 검지로 들어 올리고는 고개를 돌려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버리든지 빨든지 이걸 더 이상은 이런 상태로 자신의 근처에 둘 수가 없다. 서둘러 냇가로 뛰어가서 물속에 던지려다,

“아, 도저히 안 되겠다. 물고기들이 불쌍해. 다 죽을 거야.”

그러곤 손끝에서 불을 내어 태워버렸다. 분명히 삐져서 밥 안 먹겠다고 떼를 쓰겠지만, 내 뜻대로 하는 것도 있어야지. 등이 신경이 쓰여 조심조심 마치 예전의 천녀들이 자신을 떠받들었던 것처럼 신경을 쓰고 있었다. 물론 그건 그의 생각이었으므로, 그 정도에 있어서 실제 얼마만큼의 차이가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단야는 자신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고, 이제 슬슬 연에게 소홀해져도 좋지 않을까 여기고 있었다.

전에도 생각했지만, 어차피 연은 인간이고, 자신은 천신(天神)이다. 언젠가 헤어져야 할 인연이라면 복잡한 건 안 만들어 놓는 게 좋다. 서로 있어도 없어도 아무런 차이가 없는 그런 존재가 되는 것이 단야가 생각하는 가장 편안하고 서로에게 안락한 관계였다.


“..여긴가.”

마지못해 내뱉은 말이었다. 그 떨떠름한 기색에 나예는 매우 후회했다. 전과 달리 벽에 구멍은 없었다. 그래도 부귀를 아는 사람 눈에는 얼마나 초라해 보일까. 갑자기 속상했다.

“불쌍하죠? 제가 이것저것 가져다주고 있어요.”

자신과 그 애는 다르다고 말하고 싶었다. 친구라고 동무라고 말하면 모두들 ‘아이고, 마음씨 착한 우리 나예님.’ 이라고 말해주었기 때문에 지금 그녀는 당황하고 있었다. 그러나 만약 진짜로 한 무리로 취급된다면 불쾌하여 참을 수 있을만한 일이 아니었다. 침묵을 지키고 있는 해솔을 힐끗 보고는 일부러 크게 외쳤다.

“꼽추야! 나와! 나 왔어!”

문이 와락 열렸다. 반가운 기색이 가득한 몸짓이었다. 표정도 환했다. 나예가 놀라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사이에, 해솔이 바짝 다가서며 말했다.

“너는.....?”

주황색의 비단에 솜을 넣어 누빈 준의(繜衣)를 입고 있었다. 매우 낡아 솜이 삐져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허리 위 높게 매듭지어진 청색 비단띠가 아직도 광택을 띠고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당황하여 얼른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연이었지만,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무슨 일이야? 너희들은 누구냐.”

허름한 차림새로 나타난 사내가 연을 바라보며 묻고 자신들을 향해 윗사람인 것처럼 오만하게 말했다. 나예의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어떻게 여기에 있지? 저 사람은.”

말을 끊으며 연이 다급히 말했다.

“한울님이 허락하셨어.”

그 순간 해솔의 눈빛이 번뜩였다.

‘어리석도다! 어리석도다! 어리석어! 진정 실망스럽구나!’

아직도 한울의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하게 울리고 있었다. 잔뜩 힘을 주어 크게 말했다.

“나는 한울노인보다 더 높은 사람이다. 내가 허락하지 않겠다면?”

느닷없는 불청객에 단야는 연을 한번 다시 쳐다보았다. 그리고서 어깨에서 힘을 뺐다.

“..어떻게 하면 되는 건가?”

나예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웠다. 그리고 연에게 걸어가 나직하게 말했다.

“내가 입던 옷이 잘 안 맞는 것 같아.”

귓가에 연 외에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원래 입던 것을 입으면 더 어울렸을 걸.”

하지만 단야는 들었다. 연의 몸이 가늘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그 순간 단야는 연이 몇 개의 옷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기어코 누더기와 같은 자신의 옷을 버리지 않으려고 했던 이유를 깨달았다. 그리고 잘 태워버렸다고 입술을 비틀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생구가 되어야하는 것을 이렇게 숨기다니. 지금까지 난 너를 좋아했지만 정말 실망했어. 게다가 사내라니. 창피스러워라.”

연은 옷자락을 꼭 움켜쥐었다.

“걱정하지 마. 내가 도와줄게. 친구잖아.”

등을 쓰다듬으며 말하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너, 등이!”

나예는 전에는 느껴본 적이 없는 기이한 감정이 연의 옆모습을 보며 솟아오르는 것을 알았다. 꼽추에게는 항상 자신을 자극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 등을 보면 착한 마음이 되곤 했다. 게다가 자신의 옷을 입은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아무리 헌거라도 자신의 것을 입었다. 그리고 등이 보통사람과 같아졌다. 울컥거리며 더러운 흙탕물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앞뒤 정황이 어떻게 되었든 꼽추는 꼽추로, 불쌍해야만 했다. 불쾌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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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천루 3부 광천 - 2 09.10.20 376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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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천루 2부 산풍 - 4 +1 09.10.19 438 2 23쪽
82 천루 2부 산풍 - 3 09.10.18 231 2 16쪽
81 천루 2부 산풍 - 2 09.10.17 227 2 14쪽
80 천루(天淚) 2부 산풍(散風) - 1 09.10.17 279 2 9쪽
79 천루 1부 몽운 - 4 09.10.17 134 2 7쪽
78 천루 1부 몽운 - 3 09.10.16 344 3 25쪽
77 천루 1부 몽운 - 2 09.10.14 357 3 20쪽
76 천루 1부 몽운 - 1 09.10.13 472 2 15쪽
75 천루(天淚) 1부 몽운(夢雲) - 프롤로그 09.10.11 451 2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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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연 - 14 09.10.11 313 2 25쪽
71 연 - 13 +3 09.10.10 439 2 27쪽
70 연 - 12 09.10.10 370 2 15쪽
69 연 - 11 09.10.09 210 2 22쪽
68 연 - 10 09.10.09 329 2 15쪽
67 연 - 9 09.10.09 364 2 14쪽
66 연 - 8 +1 09.10.07 466 2 21쪽
65 연 - 7 09.10.07 348 2 18쪽
» 연 - 6 +1 09.10.07 432 2 8쪽
63 연 - 5 +2 09.10.07 428 2 9쪽
62 연 - 4 +1 09.10.05 350 2 12쪽
61 연 - 3 +1 09.10.05 424 2 15쪽
60 연 - 2 09.10.02 183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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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연(蓮) - 프롤로그 09.10.01 410 2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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