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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STRO 님의 서재입니다.

아들이 만든 창작물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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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STRO
작품등록일 :
2021.02.11 16:25
최근연재일 :
2021.09.10 23:33
연재수 :
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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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23,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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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02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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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전조 (2)

DUMMY

“우리 애들 모두를 원한다고?”

“전부 다.”


키아라는 고개를 숙이고 턱을 쓰다듬는 척하며 손으로 미소를 감추었다. 도무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기쁜 소식이었다.


안그래도 얼마 전부터 어떤 수상쩍은 놈이 도시의 용병이란 용병은 모두 다 빼가는 바람에 인력이 없어 기존에 맺었던 계약도 제대로 수행 못하고 위약금을 물게 생긴 참이었다. 헌데 갑자기 거액의 인수합병이라니!


대체 세상 어느 바보가 굴러들어온 기회를 놓칠까? 그녀는 간신히 틀어막은 웃음을 꾸역꾸역 참아내고 테이블에 두 손을 올렸다.


“미안하지만 지금 이 도시에 어떤 미친 놈이 용병이란 용병은 죄다 쓸어가는 건 알지? 지금 이 가격 정도로는 우리 애들 전부를 내어주기는 힘들어.”


놀랍게도, 키아라는 그 상황에 능청맞게 몸값을 올렸다. 하늘에서 내려온 동앗줄이지만, 그 동앗줄을 조금 벗겨먹는다고 해서 이 끈이 끊어질 리가 없지 않은가. 라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었다.


“같은 업자니까 이 바닥 어떻게 굴러가는지는 알 거 아냐?”


그도 그럴게, 눈 앞에 내려온 동앗줄이 바로 ‘그’ 사람이니까.


“그렇잖아? 아나톨리.”

“흠.”


키아라는 맞은 편에 앉은 남자를 무심코 올려보았다가 황급히 시선을 내렸다. 그대로 보았다간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 지도 모르고 끌려갈 것 같아서였다.


키아라는 애써 긴장으로 젖은 손을 닦으며 너무 이상해보이지 않기를 빌었다.


“흐으음.”


목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끓는 소리가 마치 고양이가 가르릉거리는 듯해 귀가 즐거웠다.


힐끔힐끔 그의 얼굴을 훔쳐보며 키아라는 속으로 감탄했다. 요즘 입소문을 타는 용병대장 하나가 기생오라비같다는 이야기는 여러번 들었지만, 어디까지나 사창가의 고급남창을 상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만 아니었으면 진득하게 엮여보고 싶은데.


하지만 일은 일. 그녀는 아쉬운 입맛을 다시며 입을 열었다.


“게다가 우린 이미 고용주가 있어. 네 일을 맡으려면 그 일을 포기해야 하지. 그 위약금도 가격에 포함시켜야한다고. 젠장할, 판돈을 올려!”


위약금이라는 단어에 아나톨리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계약? 성 밖의 약초나 캐오는 시시한 것일테지.”

“부잣집 지킬 경비견을 구하시는 것보다야 의미있는 일이지.”


아나톨리는 한쪽 눈을 치켜뜨며 키아라를 바라보았다. 그 이상을 허용하지는 않겠다는 명백한 의사표현이었다. 이에 키아라는 짐짓 과장된 몸짓으로 항복자세를 취하며 의자 깊숙이 몸을 집어넣었다.


“괜히 시간 끌지 말자고. 내 생각에 우리 둘 다 낼 패를 다 낸 것 같은데.”


그리고는 글을 읽을 줄 안다는 걸 자랑하듯이 손을 털며 계약서의 숫자 몇개를 수정했다. 0을 3으로, 3을 5로. 그걸 보는 아나톨리의 눈은 차게 식어갔다.


“이만큼만 더 내. 그럼 우리를 주지.”


“그럴 가치가 있다고 확신하나?”


“물론.”


그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의 대화는 쓸모없다는 것을 아는 듯 했다. 그가 만년필을 꺼내 금방이라도 서명할 듯 흔들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약속이라도 했다는 듯 술집의 스윙도어가 열리며 모두의 이목을 끌었다. 아나톨리는 손을 멈췄고, 키아라는 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세상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것을 본 것처럼 얼굴을 있는 힘껏 구겼다.


근육질의 상체 곳곳에 문신을 박아넣은 남자가 흉터로 가득찬 얼굴로 징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이게 누구야, 키아라! 일은 잘 되가나?”


“···꺼져, 흐루쇼프.”


“이거 섭섭한데. 걱정해서 해준 말인데 말야.”


“나도 걱정해서 해주는 말이야. 그 이상 떠들었다간 내가 니 입을 찢어버릴 것 같아서.”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꽉 움켜쥔 손가락의 마디가 하얗게 질려갔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한 기세였다.


“감옥에 있어야 될 놈이 왜 여기있지?”


“뭐, 누구덕분에 들어간 감옥 말인가? 키아라. 세상엔 내가 무고하다는 걸 믿어주는 좋은 분들이 계시더라고.”


그렇게 말하며 흐루쇼프는 아나톨리에게 찡긋, 하고 윙크를 보냈다. 표정은 안좋았지만, 아나톨리는 고개를 느릿하게 끄덕였다.


무엇이 벌어지고 있는지 깨달은 키아라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졌다.


“그게 무슨, 설마. 아냐, 너 설마 이놈한테···!”

“쉬, 쉬쉬. 이놈이라니. 키아라. 예를 표해야지. 네 옛 친구의 은인에게 말이야.”


마치 갓난아기를 다루듯 과장되게 입술을 내밀고 쉿소리를 내면서 흐루쇼프는 키아라에게 다가갔다. 위압적인 근육이 뱀처럼 부드럽게 꿈틀거렸고, 키아라는 하얗게 질려갔다.


“그분께서는 누구네 사업이 망해서 위약금을 물 처지인지, 그리고 대체 누가 그날 군함을 나포시켰는지에 대해서도 아주 관심이 많으셔.”


그렇게 말하는 흐루쇼프의 목소리에는 잔인한 복수의 통쾌함과 영악한 암시가 스며들어있었다.


“마, 말도 안돼···.”


“자네가 일년 전 맡았던 상선호위 의뢰의 기록을 보았네. 키아라. 군함 한 척과 함께 떠난 선단이 모조리 몰살당하고, 군함은 나포되어 해적에게 넘어갔더군. 자네는 흐루쇼프에게 죄를 뒤집어씌웠고, 법원은 반론조차 듣지 않고 그를 감옥에 넣었지.”


하얗게 질린 채 아무 말도 못하는 키아라를 보며 아나톨리가 나긋히 말했다.


“하지만 난 진실을 알고 있네. 키아라.”


그렇게 말한 뒤 아나톨리는 키아라의 등 뒤를 잠시 응시했다. 마치 그곳에 있는 누군가를 찾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우리 둘 다 낼 패를 다 냈다고?”


그리고 계약서에 적혀진 금액을 수정하며, 그는 말을 이어갔다.


“이게 내 패일세.”


그가 부드럽지만 단호한 손놀림으로 모든 숫자를 지워버리는 걸 보면서도 키아라는 아무 말도 못한 채 겁에 질려 계약서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녀의 정수리 위로 아나톨리의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자네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지.”


키아라는 떨리는 손으로 내밀어진 계약서에 서명했다.



.

.

.




“흠. 나쁘지 않군.”


나는 완성된 계약서를 들여다보며 가볍게 내뱉었다. 가히 나쁘지 않은 계약이었다.


가격은 금화 단 한개에, 기간도 정해져있지 않으며 자율권도 없는 용병계약이라니. 이 세계 역사에 ‘가장 멍청한’ 내지는 ‘가장 성공적인’ 계약서로 길이 남으리라.


“그야말로 대박이구먼요.”


“흐루쇼프. 잘해줬네.”


“구해주신 것만 해도 감사할 따름인데. 그 빌어먹을 년 엿먹이는 일이라면 돈 주고라도 하지요. 으흐흐!”


나는 그에게 문서를 건냈다. 약속대로, 그를 키아라가 속한 팀의 팀장으로 임명한다는 문서였다.


“으흐흐흐흐···.”


가히 범죄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징그럽게 웃는 흐루쇼프를 보며 잠시 잘못 생각한건가 싶었지만, 어차피 위압적으로 맺은 계약인 이상 그녀를 제어할 존재가 필요하리라 스스로에게 설명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키아라 고년이 허튼 생각따윈 하지도 못하도록 굴려주겠습니다, 나으리!”


“···업무에 지장이 올 일은 하지 말게.”


“아무렴요!”


그렇게 답했지만 흐루쇼프의 눈동자는 이미 기괴한 빛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는 일년 전, 키아라의 동료로서 톨레도의 무역선단 중 하나를 호위하던 사람이었다.

그녀가 해적과 결탁해 선단을 넘겨버리고 그에게 누명을 씌우기 전까지는 제법 좋은 사이였다던데.


“으흐흐흐, 이 요망한 씹년··· 으흐흐흐!”


그 기세에 질린 나머지 나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경비 장소는 기억하고 있겠지. 이제 가보게.”


그는 대답도 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문 밖으로 나섰다. 흐루쇼프의 발소리가 멀어지는가 싶더니 갑작스레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으하하하하—!”


건물 밖 저 멀리 떠나가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나는 키아라의 행운을 빌었다. 그녀에겐 그게 필요할테니까.


“···이걸로 만족했나?”


그렇게 말하며 나는 눈가에 힘을 주었다. 언제나처럼 뜨끈미적지근한 기운이 눈가를 감쌌다.


> 발동 : [ 영혼 시야 : 이 세상에 겹쳐져 보이지 않는 세상을 보게 될겁니다. 정신줄 똑바로 잡으세요! ]


건너편의 세상에서 뛰어노는 요정들과 떠도는 영혼들, 그리고 땅 속 깊은 곳의 거대한 빛까지. 이젠 익숙해진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쯧.”


내 눈앞에서 뛰어놀던 요정 몇 마리를 대충 치워내고는 방 구석에서 팔짱낀 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던 영혼을 돌아보았다.


“···아니.”


“이제 키아라는 흐루쇼프 아래에서 뼈도 못추릴텐데. 뭘 더 바라는거지?”


“복수.”


“키아라가 죽는 꼴을 보고 싶다는건가?”


“복수.”


그는 마치 고장난 기계처럼 ‘복수’ 만을 읊조렸다. 그걸 듣고 나는 한숨쉬며 고개를 떨구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이 세상에 남은 영혼은 못다이룬 것이 마음에 걸린 것들 뿐이다. 마치 옛날 ‘식스 센스’ 라는 영화에서 이야기했듯이, 그들은 자신이 관심있는 것만 쫓아다닐 뿐, 주변에는 조금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방금 전까지 대화하던 영혼도, 관심에서 벗어난 말에는 마치 듣지도 못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어쩌면 정말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 가기 전에.”


내가 벗어놓은 코트를 두르고 문고리를 잡고 돌리려던 참이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그를 향해 말했다.


“캘러핸 드빌. 고마웠네. 덕분이었네.”


“복수.”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문을 닫으며,


“안들릴 줄 알았어.”


하고 중얼거렸다.


***


집으로 돌아가는 귀가길에서, 나는 캘러핸에 대한 생각을 지우지 못했다.


메데인이 용병이란 용병은 모두 쓸어가는 와중에 유일하게 남은 용병단이라는 소식에 처음 키아라를 찾아갔을 때, 나는 그녀의 능력치를 가늠하기 위해 영혼시야를 발동시켰다.


그리고 예상치못하게, 그녀 등 뒤에 바싹 달라붙은 채 복수만을 중얼거리는 그 영혼을 만났다.


캘러핸 드빌. 그는 일년 전 키아라의 상선 나포 당시 물에 빠져 죽은 군인이었다.


복수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그의 의지는 무척이나 인상깊었고, 나는 그에게 협력을 약속했다.


그렇게 그에게서 흐루쇼프의 존재를 알아낸 나는 흐루쇼프를 금화 세 닢에 석방시켰고, 키아라를 찾아갔다.


“후우.”


여름임에도 쌀쌀한 바닷바람에 한숨을 내쉬며 나는 캘러핸이 복수를 중얼거리고 있을 집을 바라보았다.


이제 복수가 완성되었다고 생각할 법도 하건만, 그는 키아라가 죽는 꼴을 보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떠돌 작정인가보다.


나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바라보았다. 무수히 많은 세계 뒷편의 존재들이 땅과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복수, 복수, 복수···.”

“아가, 어디있니? 아가, 어디있니? 아가, 어디있니?”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살려줘!”


귓가를 울리는 그들의 비명에 나는 귀기울였다.


영혼들. 길에서 강도당하고 죽은 자와, 아이를 잃고 떠도는 부모, 그리고 복수할 누군가를 찾아 헤메는 이들.


나는 복수를 읊던 작은 소녀에게 물었다.


“거기, 복수를 원한다고 했나?”


나를 올려보는 소녀의 얼굴은 절반이 말발굽에 찍혀 무너져있었고, 눈알은 덜렁였다. 일그러진 입과 데롱거리는 눈에 새겨진 원한이 선명했다.


그래. 복수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불사를 정도로 선명했다.


나는 미소지었다. 영혼들이란, 이 얼마나 이용해먹기 좋은 존재들인가.


“이야기 좀 들어볼까.”




.

.

.




“덩치는 크고, 매 순간 먹어재끼는데다, 시끄럽고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데 쓸모는 없는 동물이 뭔지 아나요, 루시?”


“원숭이인가요?”


“그것보다 못나죠. 화장실에 들어간 남자에요.”


부인은 어찌보면 천박한 농을 던지며 완벽한 예법으로 루시의 잔에 차를 따르곤 웃어보였다. 그녀가 든 도자기 하나가 평범한 사람의 목숨보다 귀하다는 점만 제외하면, 그녀는 평범한 유부녀로 보였다.


“이 차에 제일 잘어울리는 샌드위치를 준비해봤어요. 부디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네요.”


“아, 네. 부인!”


루시는 백작부인의 미소에 마주 웃으며 찻잔을 들어올렸다. 살짝 긴장한 탓에 새끼손가락을 펴지 못했지만, 백작부인은 그런 건 조금도 신경쓰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게살을 마요네즈와 버무리죠. 전통적인 톨레도식 샌드위치랍니다. 이곳의 특산물을 이렇게 선보이게 되서 즐겁네요!”


그렇게 말하며 백작부인은 한입 크기로 잘라진 샌드위치를 자신과 루시의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해적으로 인해 통발도 놓지 못하는 이 시기에, 해안가로 밀려온 게 몇 마리를 모아 만든 샌드위치였다. 맛이 없을 수가 없으리라.


“음!”

“맛있죠? 백작부인인 게 이럴 땐 좋다니까요!”

“평소에는 안좋은가요?”


부인은 우아하게, 하지만 젊은 여인의 상큼함이 느껴지는 손동작으로 입가를 가리곤 대답했다.


“이거 한 입 때문에 이틀은 풀만 먹어야하니까요. 정말이지, 조금 살찌는 게 도시의 위기를 불러오는 것처럼 군다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부인은 두 손으로 군살하나없이 매끈한 배를 쓰다듬었고 두 사람은 가벼운 웃음을 터트렸다.


퍽이나 털털하고 소탈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그 행동에 타인의 호감을 사기 위한 비굴한 의도는 전혀 없었고, 루시는 그것이 부러웠다.


“부인은 언제나 자신감이 넘치시는군요.”

“비결을 알려드릴까요?”


그녀의 목소리에서 음울한 기색을 느낀 백작부인은 굳이 애쓰지 않고도 간단히 그녀의 주의를 돌리며 손가락을 허공에 빙빙 돌렸다.


“사랑을 하세요. 루시. 두 사람만으로 완전한 세상을 얻어내면, 자신감이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으니까요.”

“···전 불안해요. 만약에, 정말 만약에. 저한테는 그 사람 뿐인데, 그 사람은 아니라면 어떻게 하죠?”


가볍고 털털한 분위기 속에 루시는 자신도 모르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그녀는 의지할 곳이 필요했고, 백작부인은 촉망받으며, 젊고, 아름다웠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새 백작부인을 선망하고 있었다. 그 낌새를 눈치챈 백작부인은 가볍게 어깨를 떨구며 물었다.


“루시. 가여운 루시. 그 젊은이죠? 연회에서 곁에 있었던. 당신은 지금 그 사람이 당신에게 과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런, 저런.”


“아나톨리는 특별해요. 마치··· 마치 모든 게 그에게는 정해진 일이라는 듯이. 자신감 넘치고, 유능하고, 그리고 또······.”


“아름답죠. 무척이나.”


부인의 평가에 루시의 눈에는 돌연 긴장이 스며들었다. 백작부인은 그런 루시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자신있나요, 루시?”


“무, 무슨 자신이요?”


“그가 당신거라고 말할 자신이요.”


루시는 입을 달싹였다. 당연히 그는 자기와 함께할거라고, 그가 나를 택했고, 나도 그를 택했다고 외칠 생각이었다.


“아, 그, 그··· 윽.”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루시, 그녀는 아나톨리를 택했을지 모르지만 아나톨리가 그녀를 택했을까?


그의 주위에는 그녀가 살면서 본 가장 아름다운 소녀는 물론이고 이 도시의 높은 특권계급들이 있다. 만약 눈앞의 백작부인이 그에게 마음을 품는다면, 그는 누구를 선택할까?


아마, 나는 아니겠지.


루시는 숨길 수 없는 불안감을 드러내며 눈을 떨었다. 그리고 그녀의 시선을 받은 백작부인은 갑자기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자세를 바로했다.


“아하하! 루시, 제게는 남편밖에 없어요! 그럴 수밖에 없죠! 그가 저를 그렇게 만들었으니까요.”


찻잔을 움켜쥔 채, 루시는 영문을 모르고 눈동자만 또르르 굴려댔다. 그걸 보며 백작부인의 미소는 점점 짙어만 갔다.


“그이는 자신있게 말하고 다녔어요. 제가 그의 것이라고. 정말 자신감 넘치는 짐승이죠. 그걸 길들이려면 저도 온힘을 다해야해요. 이해하겠나요, 루시?”


“네, 네?”


“사랑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사랑은 떠나가요. 때리고, 먹이주고, 쓰다듬고, 끝없이 조련해야하죠. 가장 이상적인 연인의 형태는, 서로를 조련하는 능숙한 조련사들이랍니다.”


부드럽게 찻잔을 쓰다듬으며 부인은 말을 이어갔다.


“제가 말했죠? 서로만으로도 완전한 세상을 얻어내야한다고.”


“그러려면 먼저 그를 망쳐야해요. 먹는 것, 입는 것, 무엇 하나 혼자서는 하지 못하게 불능으로 만들고, 당신이 그걸 채워줘야해요.”


멍하니 이야기에 집중하던 루시는 어느새 백작부인의 손에 이끌려 한구석의 주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먹는 것부터 시작합시다.”


“네, 네?”


백작부인은 머뭇거림 없이 뒤돌아 대답했다.


“한 번 맛보여주고나면, 계속 먹게 해달라고 조를거에요.”


루시는 멍하니 부인의 분홍빛 뺨을 바라보다가, 간신히 대답했다.


“···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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