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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관 님의 서재입니다.

서울에는 신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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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관
작품등록일 :
2024.04.11 11:18
최근연재일 :
2024.04.22 21:20
연재수 :
1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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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984
추천수 :
1,675
글자수 :
82,810

작성
24.04.11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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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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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
글자
6쪽

001

DUMMY


001.


대한민국은 망해도 한성기업은 망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단군 이래 이 나라 최대 규모의 기업이자 오랜 시간 재계 서열 1위를 고고히 지켜온 코스피의 공룡.


그런 대기업의 총수가 가지는 영향력이라는 것은 대단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야 5년에 한 번은 바뀌지만, 기업의 오너는 족히 몇십 년은 그 자리를 지키기 마련이니까.


황용석.


한성의 총수이자 한성기업의 메인 사업인 한성 전자의 회장을 겸임하고 있는 남자.

말 몇 마디로 대한민국을 능히 움직이고도 남는 황용석.

그는 고단한 오늘을 내일이라는 작은 희망에 기대 사는 우리에 비하면 하늘 위에 하늘, 천상에 사는 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자본주의라는 인간이 만든 신의 총애를 받는 자랄까.


그런데 이게 도대체 어쩐 일인가?


지금 상식선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황용석 회장이 공손히 두 무릎을 꿇은 채 한 노인 앞에서 쩔쩔매고 있었다.


“회장님께서 요즘 밤잠을 많이 설치시겠습니다.”


이 기묘한 독대(獨對)의 주도권은 누가 보아도 이미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좌불안석인 황 회장과 달리 빙그레 웃고 있는 노인의 말투는 침착하기만 했다.


사실 요즈음 한성그룹, 특히 한성전자는 창립 이래 최고의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한성전자의 최대 효자상품은 뭐니 뭐니 해도 반도체.

반도체 하나만큼은 세계 시장에서 독점 수준의 위치를 지키고 있던 한성전자였지만, 최근 납품한 반도체 발열 이슈로 리콜과 소송에 몸살을 겪고 있었다.

가뜩이나 대만 기업의 성장과 미·중 무역 갈등에 새우등이 터져 글로벌 파트너사를 야금야금 잃던 중에 터진 악재였다.


일이 어그러지려고 작정을 했는지 한 달 전에는 베트남 현지 공장에 큰불이나 공장 4개 동이 전소되는 사고까지 있었다.


주가는 나날이 신저가 행진.

한성의 수많은 주주의 입에서는 오너에 대한 성토가 끊이지 않았다.


“나는 새도 떨어트리는 회장님께서 이렇게 직접 이 늙은이를 찾아오신 이유라면, 역시나··· 돈이겠죠.”


“오 회장님. 송구스럽습니다.”


한성전자는 발열 이슈가 터진 제품의 리콜과 전량 폐기를 공표했다.

그걸 넘어 반도체 분야에 대규모의 자금을 투자하겠다는 로드맵을 언론에 공개했다.

이 정도 손해는 끄떡없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지만, 기업 내부에서는 손실을 메꾸고 투자에 투입될 총알 조달에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다.


오 회장이라고 불린 노인은 다과상에 놓인 찻잔을 들어 홀짝였다.


“큰일 하시는 분인데, 이 늙은이가 도울 일이 있다면 도와야지요. 얼마입니까?”


노인의 말에 황용석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오 회장님 잠시만 제 쪽으로···”


둘밖에 없는 자리에 누가 듣는다고 저리도 조심하는 것일까.

황용석은 노인의 귓가에 대고 뭐라 속살거렸다.


곧 두 사람의 거리가 다시 멀어지자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회장님.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한 개인에게 빌릴 수 있을까 싶은 거액을 말했음에도 노인은 일말의 고민조차 하지 않는 듯했다.


“허허, 금리가 칼춤을 추니 돈 빌리기가 어려운 시절이지요. 이자 같은 것은 신경 쓰지 마시고 사정이 좋아지시면 천천히 돌려주시지요. 대신···”


세상 인자해 보이던 노인의 얼굴이 일순간 진지해졌다.


“약조 하나만 해주시지요. 언제고 이 늙은이가 회장님의 힘이 필요할 때, 외면하셔서는 안 될 것입니다.”


꿀꺽━


황용석의 목울대가 꿈틀거렸다.

몸을 벌떡 일으킨 황용석이 허리를 90도로 굽히며 인사를 했다.


“죽으라는 것 빼곤, 뭐든지 하겠습니다.”


* * *


황용석이 떠나고 앉은 그대로 마저 차를 마시던 노인이 몸을 일으켰다.


노인이 사는 집은 참으로 고풍스럽기 그지없는 한옥.


몸을 움직여 다과상을 치운 노인은 마루를 건너 큰 방 앞에 섰다.

잠시 헛기침을 한 노인이 장지문은 똑똑 두들겼다.


“어르신, 남춘이입니다.”


방 안에 다른 누가 있기라도 한 걸까?


그때 방 안쪽에서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왔다.


“어, 그래. 말해.”


그런데 이게 웬걸?

노인을 향해 아무렇지도 않게 하대하는, 방 안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분명 젊은이의 그것이다.


“한성 황 회장이 방금 다녀갔습니다.”


“돈이더냐?”


“예.”


“그래. 네가 알아서 잘 처리했겠지.”


“듣지 않으셔도 되겠습니까?”


“응, 응. 들어봐야 골치만 아프다.”


“예. 그러시겠지요.”


“···알았다.”


두 남자의 대화는 도무지 그 의미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장지문 앞에서 꾸벅 인사를 한 노인이 몸을 돌렸다.


남자의 방안.


과연 자글자글한 주름의 노인에게 하대는 수십 년은 이른 젊은 남자가 최신형 게임기의 패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이내 헤드셋을 머리에 끼고 게임기와 연결된 대형 TV 속 레이싱게임에 금세 몰입하는 그는 딱 그 나이 또래 젊은이로 보였다.


하지만 세상 누가 알까.


이 남자에게는 엄청난 비밀이 있다는 것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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