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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관 님의 서재입니다.

서울에는 신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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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관
작품등록일 :
2024.04.11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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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3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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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006

DUMMY

006.


진짜배기 부자들만 모여 산다는 성북동의 한 주택가.

그 가운데서도 유난스러울 정도로 담장이 높은 집이 하나 있었다.


그곳이 바로 박장현이 사는 집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집 안에서는 귀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또 어떤 험한 것이 천태길을 기다리고 있을까.


태길은 현관에 달린 인터폰의 벨을 눌렀다.


“··· 나요. 천태길.”


* * *


오랜 장마 끝의 논처럼 기름기 하나 없이 잔뜩 주름이 갈라진 얼굴.

움푹 파인 볼과 한겨울의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팔다리.

거칠게 뱉는 숨을 따라 불안하게 오르내리는 늑골.

침대에 누워 오래전에 죽어버린 생선 같은 눈을 껌뻑거리고 있는 노인.


“컥··· 컥··· 컥···”

목에 무엇이라도 걸린 듯 밭은 숨을 쉬고 있는 그는 박장현의 아버지인 박춘제였다.


“영감. 살면서 좋은 거 많이 잡쉈나 보네. 기력이 살아있는 젊은것들도 버티기 힘들었을 텐데 아직 숨이 붙어있는 걸 보니.”


박춘제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아니, 넋이 이미 반쯤 나간 그는 지금 천태길이 자신의 방에 들어왔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했다.


그리고··· 박춘제에게 들러붙어 있는 악귀.


원래 악귀란 그런 것이지만, 역시나 섬뜩하고 괴이하다.


퍽, 퍽, 퍽━


악귀는 박춘제의 몸을 으스러트리기라도 할 것처럼 노인의 위에서 겅중겅중 뛰고 있었다.


사람으로 따지면 배 정도의 위치라고 할까?

악귀의 몸뚱이에는 커다란 구멍이 숭 뚫려 있었다.


그렇게 허전한 몸에 비해 어떻게 저것을 달고 저리 뛰는지 신기할 정도로 커다란 대가리.

그 대가리에는 멀쩡한 머리에 붙어있어야 할 것 중에 오직 눈만이 달려 있었다.

그리고 끝을 알 수 없는 심연 같은 그 눈 아래에는 세로로 길게 흉터 자국 같은 것이 파여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저 악귀가 꼭 눈물이라도 흘리고 있는 것 같다.


━ 킥, 킥, 킥, 킥···


악귀가 쉭쉭 대며 위아래로 뛸 때마다 박춘제는 힘없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천태길이 박춘제 노인의 방에 나타나자, 악귀는 대가리를 한 바퀴 돌려 잠시 그를 바라보았을 뿐 별다른 적의를 드러내지 않았다.


이 악귀는 목적은 오직 단 하나.

박춘제 노인이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 최대한 고통을 주는 것만을 원하는 것 같았다.


천상삼기일월성 통천투지귀신경

제신문지저두배 중살봉주불류정···


천태길은 무릎을 굽혀 바닥에 손을 댄 채로 결계의 주문을 외웠다.


스릉━


우선 악귀의 도주를 막아놓은 천태길은 사진검을 검집에서 뽑아 들었다.


“저 영감한테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 거야? 아니면, 그저 악랄한 장난질 중인가?”


평범한 사람이라면 기겁을 하겠지만, 어디 천태길이 저것에 겁을 먹겠는가.

노인 혼자 쓰기에는 쓸데없이 넓은 방에서 악귀에게 다가가는 천태길은 태연하기만 했다.


저를 향해 검을 뽑아 들고 다가옴에도, 악귀는 여전히 아주 성실하게 박춘제를 자근자근 밟는 데만 집중하고 있었다.


“재밌네. 섭섭할 정도로 나에게는 관심이 없군. 왜 그따위 험악한 꼴을 하고 여기에 있는 거지?”


악귀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물론 천태길도 무엇을 기대하고 물은 것은 아니었다.


업경이야 챙겨서 왔지만, 그것은 혼령들을 위한 것이었지 어차피 악귀를 상대로는 소용이 닿지 않는 물건.


따라서 저 악귀에게 무슨 사연이 있다고 한들 천태길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사진검을 들어 올리며 악귀의 영멸을 준비할 때···


“··· 잠깐. 너, 안에 뭘 품고 있는 거야?”


천태길이 한쪽 눈을 찌푸렸다.


어쩐지 일이 수월하다 싶었다.

악귀가 천태길에게 덤벼들 의사가 없으니 그저 단칼에 베어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태길이 악귀 안에서 미약하게 박동하는 혼령의 기운을 느낀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여리고 약했기에, 가까이 다가서기 전에는 알 수 없었던 기운이었다.


악귀가 다른 혼령을 삼키고 다니는 건 흔치 않은 일이지만 꼭 없는 일만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은 몹시나 위험한 일이기도 했다.


별수 없이 천태길은 사진검을 거두었다.

함부로 검을 썼다간 악귀 안의 혼령까지도 크게 다칠 수 있으니.


방 안을 잠시 두리번거리던 천태길이 책상 위에 놓여 있던 공책에서 종잇장 하나를 떼어냈다.

그리곤 사진검으로 제 손가락에 피를 내더니, 그 피로 종이 위에 무언가 끄적끄적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뱉어내라.”


천태길은 다소 성의없게 만들어낸 것 같은 부적을 악귀를 향해 휙 던졌다.

놀랍게도 힘없는 종잇장이 태길의 영력을 받자 화살처럼 날아가 악귀에게 척 달라붙었다.


━ 꾸륵, 꾸르륵···


현장에서 대충 만들어낸 부적이었지만 효과는 제법 대단했다.


악귀는 움직임을 멈추고 대가리의 아랫부분을 쩍 벌리기 시작했다.

구토라도 하려는 것처럼 꺽꺽대는 악귀.


그리고···!


악귀는 발끝까지 벌어진 대가리에서 어린아이로 보이는 혼령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 아이는 악귀의 몸 안에서 토해져 나오기 무섭게 방구석으로 저쯤으로 달리더니 작은 제 몸을 숨겼다.


“아이야, 너는 누구냐.”


━ ···


두 팔로 여린 몸을 감싼 아이는 머리를 푹 숙일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날 무서워 할 필요 없다. 저 악귀가 널 해치기라도 한 것이냐?”


조심스럽게 태길이 한 번 더 물었으나 아이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그때였다.

불현듯 악귀의 기운이 사나워지기 시작했다.


━ 끽, 끽, 끽, 끽, 끽!


아이와 천태길을 바라보며 악귀는 그 큰 머리를 미친 듯이 흔들어대었다.

악귀에게 붙은 부적이 당장이라도 떨어질 듯 펄럭여댔다.


천태길이 아이를 대하느라 잠시 방바닥에 내려놓았던 사진검을 집어 들었다.


“즉석에서 만든 것이라곤 하나, 내가 만든 귀외복부(鬼畏伏符)를 떨치려 하다니. 이미 잡귀 수준은 넘어섰구나.”


그렇게 이번에야말로 정말 악귀의 몸에 천태길이 사진검을 박아넣으려고 할 때.


━ 아저씨 하지 마세요! 그러지 마세요!


아이 혼령이 무릎으로 기어 오더니, 천태길의 다리에 매달렸다.

실제로 아이가 천태길을 붙잡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아이의 목소리에 태길의 발이 멈춰 섰다.


━ 하지 마세요. 우리 아빠란 말이에요.


천태길이 고개를 떨궈 놀란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았다.


“저 악··· 저것이 네 아버지라고?”


━ 우리 아빠 맞아요. 저는 송연 초등학교 2학년 3반 정시후예요. 우리 아빠 이름은 정윤기구요. 그리고···


아이의 작은 손가락이 힘겹게 숨을 이어가고 있는 박춘제를 가리켰다.


━ 저 할아버지가 저랑 우리 아빠를 죽였어요!


아이의 얼굴에는 분노와 고통, 그리고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 * *


산에서 총성이 두 번 울렸다.


“이런, 니미럴···”


엽총을 손에 들고 있는 박춘제.

그의 입에서 나지막하게 욕설이 흘러나왔다.


박춘제는 지금 침대에 누워있는 그와 도저히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살집이 두둑하게 올라 있었다.


“큰 회장님. 이걸, 아이고··· 이 일을 어찌합니까.”


“김 실장. 입 다물어.”


박춘제와 그의 비서인 김 실장.

그 둘의 앞에는 피 칠갑이 된 채로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는 남자와 아이가 쓰러져 있었다.


사냥은 박춘제의 아주 오래된 취미였다.

아흔을 넘긴 나이에도 박춘제는 김 실장의 도움을 받아 여전히 사냥을 즐겼다.

정말이지 지독하리만치 대단한 노인네가 아닐 수 없었다.


오늘도 그는 산 전체가 그의 사유지이자 사냥터인 이곳에서 멧돼지 사냥에 나섰다.


쓰러진 남자의 이름은 정윤기, 그리고 아이의 이름은 정시후였다.

이 부자(父子)는 날씨 좋은 날 오붓하게 등산을 나섰다가 그만 길을 잘못들어 박춘제의 사냥터 안까지 들어오게 된 것이었다.


박춘재는 이들을 그만 산짐승으로 착각하고 말았다.


“이봐, 가서 살았는지 죽었는지 확인해봐.”


“예? 큰 회장님··· 제가요? 그러시지 마시고, 빨리 119에 신고를···”


“이 사람이!”


박춘제는 워커발로 김 실장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정신 똑바로 안 차려? 가서 숨 쉬는지 확인해보란 말이야.”


김 실장은 후들후들 두 다리를 떨며 정윤기와 정시후에게 다가갔다.


정윤기의 코 밑에 떨리는 손가락을 대어보는 김 실장.

굳어버린 듯 꼼짝하지 않는 정윤기의 코에서는 아무리 기다려보아도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으···”


김 실장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뒷걸음질을 쳤다.


“큰 회장님, 아무래도 죽··· 죽은 것 같습니다.”


박춘제는 허가도 받지 않은 엽총을 개인적으로 소지하고 있었다.

그가 사냥에 쓰는 탄환은 불법 개조된 슬러그 탄으로 사람의 몸으로는 스쳐도 살아남기가 쉽지 않았다.


아들을 안고 쓰러진 정윤기는 배 부위에 그 탄을 정확히 맞아버렸다.


“큰 회장님, 어··· 어··· 어떡하죠. 이걸?”


박춘제는 엽총을 짚은 채 쓰러진 부자(父子)를 가만히 노려볼 뿐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김 실장. 차에 가서 삽 가져와.”


“··· 예?”


박춘제가 사냥을 하러 갈 때 타고 다니는 차에는 사냥한 멧돼지나 노루의 사체를 묻기 위해 항상 삽이 실려있었다.

그런데 지금 박춘제가 그 삽을 가져오라는 이유야 뻔한 것이니, 김 실장은 놀란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삽 가져오라고. 묻어야겠어.”


“큰 회장님!”


“애초에 지들이 남의 땅에 함부로 들어온 것이 잘못인 거지. 여기에 카메라가 있나, 본 사람이 있겠나. 나랑 김 실장만 입 닫으면 그만인 일이야.”


“그럼 작은 회장님께라도···”


그때, 엽총의 총구가 김 실장을 향했다.


“그 놈한테 이야기 해봐야 무얼 하겠어?”


박춘제는 마흔이 넘어서 얻은 늦둥이 아들 박장현을 아직도 애 취급 하고 있었다.


“내가 일본군이랑 싸우고 전쟁 때 빨갱이들 목도 딴 사람이야! 사람 둘 죽은 게 뭐 대수로운 일이라고. 아니면 김 실장이 쏜 걸로 할까?”


총구 앞에서 김 실장의 몸이 얼어붙었다.


“내가 이 나이에 감옥에라도 들어가 봐. 살아서 나올 수 있다고 누가 장담해? 김 실장, 자네 딸 미국에서 유학하고 있잖아. 내가 없으면 자네도 개털 되는 거야. 빨리 삽 가져와. 해 마저 다 떨어지기 전에.”


시발··· 정신 나간 노인네 같으니라고.

저 노인네 수발들다 내가 언젠가 이런 사고 한번 날 줄 알았지.


그렇게 박춘제의 감시 아래서 김 실장은 정윤기와 정시후를 묻을 구덩이를 팠다.

죄책감이 김 실장을 괴롭혔지만, 이미 일에 가담해버린 이상 어서 빨리 이 모든 것이 끝나길 바랄 뿐이었다.


죽어가는 순간에도 아들을 보호하고 싶었을까.

총탄을 자기 몸으로 다 받으려는 듯 정시후를 꼭 끌어안은 채로 죽은 정윤기.

김 실장은 안간힘을 썼지만, 그 둘을 떼어놓을 수 없었다.


그래도 최소한 멀쩡한 자세로나마 묻어주고 싶었지만, 할 수 없이 죽은 자세 그대로 김 실장은 둘을 파 놓은 구덩이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주검 위에 흙을 덮으려고 할 때였다.


“아··· 저씨··· 살려··· 주세요···”


구덩이 안에서 힘없고 여린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어, 어···”


김 실장은 그 목소리에 놀라 뒤로 자빠지며 엉덩방아를 찧어버렸다.


“아··· 저··· 씨···”


정시후는 살아 있었다.

아빠의 품 안에서 정신을 차린 정시후는 안간힘을 쓰며 입을 떼고 있었다.


“김 실장, 뭐 하고 있어. 빨리 묻어버리지 않고.”


멀찍이서 등을 돌리고 서 있던 박춘제가 김 실장에게 다가왔다.


“큰 회장님, 그게··· 아이가, 아이는 살아있습니다.”


박춘제는 구덩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이 피떡이 되어 있는 아이의 눈과 마주쳤다.


“··· 마저 하던 거 해.”


얼음장처럼 차가운 박춘제의 목소리.

이 늙은이는 도대체 사람의 목숨이 뭐라고 생각하는 걸까?


“예? 큰 회장님! 저는 그건··· 그건 도저히 못 합니다.”


“이 사람이! 나와!”


박춘제는 김 실장을 거칠게 밀어내더니 제 손으로 삽을 잡았다.


정윤기, 그리고 정시후의 몸 위에 흙이 쌓이기 시작했다.


“아저씨··· 할아버지···”


정시후는 살아있었다.

그렇게 생매장을 당했지만 차갑고 딱딱하게 굳은 아버지의 품이 작은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고작 아홉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아이, 정시후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컴컴한 어둠 속에서 한 시간을 넘게 살아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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