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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행 님의 서재입니다.

저번 생이 기억나버렸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군자행
작품등록일 :
2021.05.12 21:11
최근연재일 :
2022.03.20 00:50
연재수 :
149 회
조회수 :
1,083,081
추천수 :
16,739
글자수 :
714,085

작성
21.06.03 19:00
조회
12,879
추천
198
글자
12쪽

정말 잘했다

DUMMY

여인의 외침에 헤리오스는 말에서 내려 이 붉은 머리의 푸른 눈을 가진 성장기의 소녀를 잠시 바라보다 엎드려 있는 여인을 발로 찼다.


퍽!


“아아악!”


고통이 가득 느껴지는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며 여인이 바닥에 뒹굴자, 뒤에서 지켜보던 이왕자가 헤리오스에게 다가와 물었다.


“방금 이 여인이 마을에 오크가 쳐들어 왔다고 하였다. 맞는가?”

“이 년이 거짓을 말한 것입니다!”


헤리오스의 반응에 이왕자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사실일 수도 있지 않나?”

“아닙니다! 이 년은 분명 아까 지난 마을을 습격한 산적의 패거리입니다!”

“하! 헤리오스 공자. 지금 자네의 태도는 상당히 불손하군.”

“...”


하지만 헤리오스는 주먹을 말아쥐고 바닥에서 겨우 숨을 고르는 여자를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왕자님... 만약 저 여인의 말이 사실이라면...”


후크 백작이 이왕자의 뒤로 다가와 귀에다 속삭였다.


“국경 지역으로 출발한 공작의 군대에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제야 헤리오스의 반응이 이해가 갔다.

그 때 바닥에 쓰러져 있다가 정신을 수습한 여인이 후크 백작의 ‘왕자님’이라는 말을 들었는지 무릎으로 왕자의 앞까지 기다시피 걸어와 엎드려 빌었다.


“왕자님! 저희 마을을 살려주세요! 오크들이 몰려와서 마을을 공격하고 있어요! 제발 살려주세요!”


절박한 여인의 목소리는 얼마 전 고블린과의 전투를 치르며, 옆에서 죽음을 생생히 느끼고 죽음의 앞까지 갔다가 돌아온 그들에게 절절히 울려퍼졌다.


“자세히 말을 해보아라.”

“엉! 엉! 그러니까 저는 버섯을 따러 마을 밖에서 나와 산으로 들어갔는데...”


산으로 들어간 아직은 소녀에 가까운 이 여인은 그 날도 저녁에 먹을 버섯을 따기 위해서 깊은 곳까지 신나게 걸어갔다. 거의 매일같이 다니는 산길이었기에 어디가 위험한지 안전한지 잘 알았고 바구니에 한가득 버섯을 담아 마을로 돌아오려는데 평소 아무 것도 없을 수풀에서 시끄럽게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늑대나 멧돼지가 나타났을지도 몰라 바위 뒤에 몸을 숨겼는데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녹색피부를 가진 오크들이 큰 칼과 도끼를 들고 마을이 있는 방향의 길을 찾아 내려가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한 동안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숨어있다가 마을이 있는 곳으로 가보자 마을에서 불길이 치솟고, 마을에 설치된 목책에서 자경대 아저씨들이 돌과 창을 던지고 사냥을 하는 사람들은 화살을 쏘며 오크들에게 저항을 하였고, 오크들은 큰 창을 던쳐 공격을 하는 모습을 보고 근처 마을에 도움을 청하려고 뛰어오고 있었다고...


“...그러다가 여기까지 온 거에요.”

“오크들의 숫자는 어떻게 되지?”

“그러니까... 열 두 마리? 아니 열 세 마리 정도였어요.”

“자경대는...?”

“저희 자경대는 모두 합쳐서 10명이에요. 하지만...”


이왕자와 마을의 여자의 대화를 듣고 있던 헤리오스는 그들의 대화를 막았다.


“왕자님! 속지 마십시오! 오크가 올리도 없고, 혹시 오크라고 해도 오크들이 몰래 마을을 습격 할리가 없습니다!”

“아니에요! 도와주세요! 왕자님! 제발!”


이왕자는 펑펑 울고 있는 아직 어린 티가 가시지도 않아 젓살도 빠지지 않은 여자의 눈물을 보고 뒤에 있는 기사들에게 소리쳤다.


“왕국의 자랑스러운 기사들아! 너희들은 이 가녀린 여인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나?”

“물론입니다!”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리려는 이왕자를 보고 헤리오스가 만류하려고 소리쳤다.


“고블린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습니다. 진짜 오크라면 이기기 힘듭니다. 그리고 오크가 아닌 산적이라면 이건 함정입니다. 그러니 신중해져야 합니다.”


하지만 헤리오스의 말이 기사들의 가슴에 오물을 투척하는 꼴이 되어버렸으니...


“왕실의 기사단이 용맹하지 않다는 말을 하는 것이냐? 공작가의 애송이가 감히...!”


기사단의 분노는 화산이 폭발하듯 줄기줄기 뿜어져 가슴 깊은 곳에서 거꾸로 거슬려 올라왔다.


“왕자님! 저희가 지금 달려가 그 오크들을 이 창에 꿰어버릴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변방의 기사들과 왕국의 정예가 얼마나 다른지 여기서 보여주겠습니다.”


기사들의 외침에 이왕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헤리오스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은 참 아쉽다는 듯하면서도 웃음을 참는 듯한 느낌의 그것이었다.


“헤리오스. 그대의 모욕적인 언사에 기사단의 분노는 내가 누르기 힘들정도다. 먼저 기사단이 출발해 자경단과 대치중인 오크를 잡고 병사들이 뒤를 받쳐주면 문제 없겠군.”

“안됩니다. 그럼 왕자님만이라도 여기서 기다리셨다가...”


왕자는 못 볼 것을 봤다는 표정으로 헤리오스를 쳐다보았다.


“그대는 그대의 영지민이 지켜달라고 애원하는데, 그 의무를 다하지 않을 생각인가? 난 나의 왕국민을 지키기 위해 제일 먼저 앞장서서 나갈 것이네.”

“하지만... 전하의 안전이...”

“그대는 적 앞에서도 그렇게 숨어만 있을텐가?”

“...”

“그래... 그래서였군. 그대가 이렇게 느리게 이동을 하고, 마을에서 산적의 습격이라고 말하고 산적을 찾지도 않았으며, 오크라는 말에 겁을 먹고 산적이라며 여자를 몰아붙이다니... 정말 수치스럽군.”


이왕자는 여자를 보고 물었다.


“마을은 어디지?”

“그냥 이 길을 쭉 따라가면...”

“알겠다. 자! 가자! 용맹한 왕국의 기사들이여! 병사들도 나의 뒤를 따라 오크들을 몰아내자!”


이왕자의 외침. 그리고 달려나가는 말. 그 뒤를 일제히 달려나가는 기사들. 그리고 깃발과 창을 세우가 함성을 지르며 달려가는 병사들.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수레 몇 대와 여인들이 타고 있는 마차마저도 천천히 전진하고 덩그러니 서 있는 헤리오스와 벨로시아 영지의 병사들.

병사들은 가만히 헤리오스만 지켜보고 있었고, 헤리오스는 말에서 내려 바닥에 아직까지 엎드려 있는 여자에게 다가갔다.


“후...”


그리고 여자를 일으켜 세우고 조용히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게 말했다.


“정말... 잘했다.”


* * *


길을 따라 달리는 이왕자의 옆에 수행하는 기사들의 책임자가 함께 말을 달리며 물었다.


“정말 마을을 구하실 생각이십니까?”

“마을이야 어찌되던 상관없다.”

“그럼...?” “오크가 열 마리가 조금 넘는다고 했으니 그걸 우리가 잡고 돌아간다.”


기사단장은 궁금한 점이 있었지만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아니 감히 왕자에게 질문을 할 수 없었다.


‘이대로 국경까지 가는 것은 시간이 너무 걸린다. 그러니 우리가 오크를 잡아서 수도로 가져가면 벨로시아 영지는 포기하고 나를 지지하는 서쪽 영지들이 국경을 맞대더라도 혼란스러움을 줄일 수 있어. 게다가 군비를 지원 받을 수도 있고... 그저 오크들만 쉽게 잡으면 된다.’


오크들의 숫자가 적다는 점과 기사들과 병사들의 수를 모두 합치면 이백 가까이 된다는 점이 왕자의 계산을 이끌어냈다.

저 멀리 검은 연기가 치솟는 것이 보였다.


“저기 연기가 보인다! 저기까지 가서 오크들을 베어버리기만 하면 된다!”


이왕자는 사기를 올리고자 크게 외쳤고, 기사들과 병사들 역시 달려가며 슬슬 몸이 달아오르고 분위기도 점점 고조되어 사기가 올라 함께 소리를 질렀다.


“우와아!”

“으쌰!”


곧 기사들의 눈에 무너진 목책과 불타는 마을 그리고 마을 밖에서 망을 보는 것인지 초록색의 피부를 가진 사람형상의 무엇인가가 햇빛에 반사되어 번쩍이는 은빛의 갑옷을 보고 뭐라고 소리치며 마을에서 벗어나 숲으로 도망쳤다.


“오크들이 숲으로 도망쳤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겁쟁이들...! 일단 마을로 진입한다!”


기사들과 병사들이 마을을 향해 달려가는데...


우지직!

퍽!

푹!


협곡을 따라 난 길의 양 옆의 숲 속에서 갑자기 날아오는 창과 도끼, 거대한 돌덩이가 기사들의 머리와 가슴에 박혔다.


“크억!”

“억!”


십 수명의 기사들이 바로 말에서 떨어져 바닥에 굴렀으며,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사십에 가까운 오크들이 가죽으로 된 낡은 갑옷을 입고 번질번질한 강력한 대검과 도끼들 휘두르며 길의 양 옆에 우거진 숲에서 쏟아져 나왔다.


“뭐...뭐냐?”


한 번의 기습의 왕실의 기사 절반 이상이 순식간에 전투불능이 되어버렸고, 이윽고 광전사처럼 측면에서 돌진해오는 오크들의 공격에 남은 기사들과 병사들은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갔다.

협곡을 통과하는 길은 오직 하나. 그 사이에 있는 숲. 그리고 매복.

오크들이 매복을 하고 함정을 파고 있었던 것이다. 마을에서 시선을 끌고 달려오는 병력에게 원거리 무기로 공격. 그리고 돌진하여 기다란 일자 진형을 유린했다.


“정신차려라! 방패와 창을 들어!”

“왕자님을 지켜! 기사들!”

“안돼! 으악!”

“히히히힝!”


지휘관의 호통과 쓰러진 기사 옆에서 울부짖는 말. 그 와중에 날아간 손도끼에 투구가 쪼게져 무너져 내리는 은빛 갑옷의 기사들. 그리고 뿜어지는 붉은 피.

며칠 전 내린 비로 싱그러웠던 초록의 나뭇잎은 붉은 피로 시커멓게 보였으며, 오크들의 무자비한 돌진과 도망치려는 병사, 왕자의 안전을 위해 어떻게든 왕자주위를 둘러 싼 기사들이 일으키는 먼지는 가까운 곳에서 불에 타고 있는 마을의 검은 연기 못지 않게 짙게 피어오르고 있다.

실전도 없이 그저 훈련과 영지간의 분쟁에 가끔 씩 검을 휘두르던 왕실의 기사들과 타영지의 그들은 오크들의 억센 공격을 당해낼 수 없었다. 그리고 이런 실제 전쟁이 거의 없는 왕국의 병력들 모두 진짜 피와 기습. 그리고 혼란이 야기되자 수습하여 반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왕자님을 구해라!”

“우와아아!”


우렁찬 함성과 함께 벨로시아 영지의 병사들이 창을 쥐고 오와 열을 맞추어 달려오는 것을 본 오크들이 크게 포효를 하며, 산 속으로 물러갔다.


“토르! 쿠워어어!”

“토르!”


벨로시아의 병사들이 달려와 전투의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오크들이 모두 도망가고 난 후였다.


“왕자님...!”


헤리오스가 달려왔지만 왕자는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아무 말도... 아무 말도 하지 말게. 지금은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아.”


그러는 중에 반대쪽 길에서도 말을 타고 달려오는 이들이 있었다. 그 무리들 역시 벨로시아의 기를 펄럭이고 있었으며, 먼지와 온갖 흠이 잔뜩 나있는 갑옷을 입은 채로 급하게 오고 있었는데 바로 벨로시아의 영주 발쟈크 공작이었다.


“이런! 이 곳에... 어찌...!”


마을에서 불타던 목책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발쟈크 공작과 이왕자, 헤리오스가 모두 만난 자리에 다른 귀족들과 귀족가 여인들의 마차까지 이르렀다.


“왕자님께서 이 곳에 계실줄이야...! 더 서둘렀어야 했건만...”


발쟈크 공작의 중얼거리는 듯한 말이 이왕자의 귀를 때렸지만 이왕자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커다란 창이 이마를 뚫고 머리를 관통해서 고기 덩어리처럼 말에서 굴러떨어지는 선임기사의 눈빛이 그의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오크들... 이게... 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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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시간을 좀 끌어주세요 +9 21.06.04 12,928 199 10쪽
» 정말 잘했다 +10 21.06.03 12,880 198 12쪽
23 오크들이 쳐들어왔어요 +12 21.06.02 13,084 193 13쪽
22 그럼 부탁하지 +7 21.06.01 12,900 202 12쪽
21 시간이 맞을 것 같군 +7 21.05.31 13,065 193 11쪽
20 믿는다 +8 21.05.30 13,132 200 11쪽
19 정말 깨끗하게 관리하네요 +8 21.05.29 13,318 203 12쪽
18 귀하신 분들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8 21.05.28 13,641 206 11쪽
17 심도있는 이야기 좀 하시죠 +7 21.05.27 14,053 200 11쪽
16 내 활솜씨 알지 +5 21.05.26 14,278 206 10쪽
15 개종할 생각 없냐 +5 21.05.25 14,376 214 11쪽
14 사소한 것은 신경 쓰지 말고 +9 21.05.24 14,390 21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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