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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행 님의 서재입니다.

저번 생이 기억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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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행
작품등록일 :
2021.05.12 21:11
최근연재일 :
2022.03.20 00:50
연재수 :
149 회
조회수 :
1,083,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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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39
글자수 :
714,085

작성
21.05.27 21:45
조회
14,053
추천
200
글자
11쪽

심도있는 이야기 좀 하시죠

DUMMY

국경지대에서 출발한 지 일주일 째.

흙먼지가 잔뜩 낀 옷과 지쳐서 혀를 빼고 있는 말.

그리고 지친 말에서 내려 힘들어 하는 말을 끌고 걷는 남자 하나와 여자 하나.

헤리오스와 키사가 영주성에 도착하여 성문을 지키는 경비병을 보고 아는 척을 했다.


“수고~!”


당황했던 경비병은 영지의 후계자가 돌아온 사실을 알리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려 영주저택으로 향했고, 헤리오스와 키사 역시 천천히 걸어 영주 저택으로 갔다.

도중에 달려나온 기사들과 병사들이 두 사람의 짐과 무기가 실려있는 말을 대신 끌고 갔으며, 키사는 기사단이 있는 곳으로 헤리오스는 자신의 방으로 가 몸에 붙은 먼저와 얼굴에 달라 붙은 때를 벗기기 위해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영지는 이미 전쟁을 준비하려는 듯 병사들과 기사들이 줄지어 뛰어다니고 있었고, 성 안의 영지민들은 큰 싸움이 날 것이라는 이야기에 어수선했다.

그 분위기는 저택 안의 하인들과 시녀들도 마찬가지 였는데, 오랜만에 목욕시중을 드는 제니 역시 그 중 하나였다.


“소문이 돌고 있다고요. 이제 영주님께서 기사단과 영지군 모두를 데리고 오크들을 없애기 위해 가신다고...”

“역시...”


최대한 빨리 몸 단장을 하고 바로 영주의 집무실로 뛰듯이 걸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간 헤리오스는 자신의 아버지이자 이 땅의 주인인 영주에게 인사를 했다.


“다녀왔습니다.”

“...그래.”


무슨 생각을 그리 많이 했는지 헬쓱해진 얼굴에 눈 밑은 시커멓게 변했고, 그러면서 분노를 삭힐 수 없었는지 이미 갑옷을 차려입고 허리에는 검을 차고서는 자신의 아들을 맞이하는 영주 발쟈크는 그간 식사도 제대로 못했는지 입술까지 말라 갈라져 있었다.


“아버지. 가시면 안됩니다.”

“하아... 그런 말은 하지 않았으면 하는구나.”

“지금 가는 것은 그저 분풀이에 불과합니다.”

“으음! 난...! 난 내 앞에서 오크들에게 찢겨져서 고통스럽게 돌아가시는 네 할아버지의 피흘리는 얼굴이 아직도 지워지지가 않는구나.”


헤리오스는 그 말에 잠시 기다렸다.

지금 그의 아버지는 감정이 북받쳐올라 시뻘게진 얼굴로 숨을 씩씩대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금 숨이 가라앉자 헤리오스의 입이 다시 열렸다.


“아버지는 영주입니다. 지금 하시는 일은 영지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의 아버지이자 너의 할아버지는...!”

“그래도 안됩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허리춤에 있는 검의 손잡이를 부서져라 잡고 있는 발쟈크 공작. 그런 그를 아버지가 아닌 영주로 보고 말을 하고 있는 헤리오스.

두 부자는 한참을 서로 바라보며 말없이 있었다.


“하아... 오크의 공격은 정말 옛날부터 있어왔다. 아마도 이 왕국이 만들어진 시기 이전부터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항상 오크와 싸워왔지. 그 뿐 아니라 북쪽의 숲에서는 마물들이 튀어나왔고, 숲의 마물을 퇴치하려고 들어가면 엘프들과도 전쟁을 치러야 했다. 그저 그 외의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겨우겨우 살아오던 사람들이 모여 이렇게 영지가 된 것이다.”


넋두리처럼 말하는 발쟈크의 앞에 헤리오스가 다가갔다.


“이런 영지의 싸움은 왜 인지도 모르고 계속 이어져 왔다. 아니 처음에는 알았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내 아버지가 내 친구가 내 형이 죽어간 싸움의 원흉인 오크족에게 왜 그랬냐고 묻기보다는 ‘왜 한번더 칼질을 못했을까?’라는 마음이 더 강해졌지. 그래 그 날은...”


그 날은 기사단장과 함께 국경선을 시찰하러 간 헤리오스의 할아버지가 갑자기 밀려오는 오크들의 습격에 또 다른 때보다 더 많은 수의 공격에 전열이 무너지며 난전이 되었고, 높은 곳에서 숨어 지켜보던 어린 발쟈크는 많은 수의 오크들이 내 던진 도끼가 몸에 박혀 괴로워하던 부친의 모습과 마지막까지 발악을 하며 한 명이라도 더 죽이고 죽으려는 오크들의 독한 모습이 뇌리에 각인되어 있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오크들에 대한 방비를 철저히 했고, 역대 영주들 중 가장 많이 군비에 돈을 쓰는 영주가 되었건만 헤리오스가 가져온 소식은 그를 더욱 슬프게 했던 것이다.


“...그렇게 도망치고 난 오크를 모두 없애겠다고 마음 먹었었다.”

“오크들에게 지원을 요청해도 답이 계속해서 없기에 이러실 것 같아 급하게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영지에 힘도 없고 오크도 얼마나 강한지 알지 못합니다. 아버지의 말대로 엘프들과 숲 안에 괴수들이 어떻게 튀어나올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게다가 다른 영지들도 어떨지 생각해보셨어요? 우리에겐 부족한 것이 너무 많습니다.”


싸우고 싶어하는 발쟈크 공작과 말리는 헤리오스.


똑똑.


집무실의 문이 열리고 공작부인이 들어왔다.


“돌아 왔구나. 그런데 왜 여기에서 이렇게 있는 거니?”

“아버지를 말리려고 급히 왔어요. 지금은 전쟁을 시작할 때가 아니니까요.”


헤리오스의 말에 발쟈크가 말했다.


“난 다만 국경에 머무르고 있다는 그 무리를 없애려고...”

“비겁합니다. 그들은 이미 저에게 패배하고 저의 품에 들어온 자들입니다. 항복한 자를 군주가 가서 베어버린다면 그 누가 항복을 해 그 품에 들어오겠습니까?”

“그러나 복수는 반드시 이뤄져야 할 인간의 도리다!”


여전히 서로 물러서지 않는 가운데 공작부인이 둘의 기세를 가라앉혔다.


“우선 차를 마시면서 조용히 이야기를 하도록 해요. 다과를 가져오렴.”


공작부인의 지시에 시녀들이 나가고 셋은 쇼파에 앉아 잠시 침묵을 지켰다.


“나는 영지를 다스리는 일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두 사람다 영지를 생각하는 마음은 같을 거라고 생각해. 그렇지만 헤리오스 넌 아직 영주인 아버지의 뜻을 따라야 하지 않겠니?”


공작부인이 헤리오스에게 영주의 뜻을 따라야 한다고 은근히 말을하자 헤리오스가 고개를 저었다.


“군주가 잘못된 선택을 한다면 신하는 그것을 바로 잡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잘못된 길을 가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내버려 둔다면 그것이야 말로 큰 죄를 짓는 거죠.”


헤리오스의 말에 발쟈크가 결국 발끈했다.


“내가 진다는 말이냐?”

“제가 아는 전략가가 말했어요. 전쟁이란 일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으며, 전쟁이 나더라도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좋으며, 싸우더라도 작은 피해를 입고 이기는 것이 좋다고 했죠.”

“복수를 위한 일이다.”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지나도 늦지 않다고 했어요. 또한 산에 나무가 있는 한 땔감의 걱정이 없듯 복수가 늦더라도 걱정을 할 필요는 없어요. 그리고 누구에게 복수를 할 생각이신대요?”

“그야 너의 할아버지를 죽게한...”

“그들은 모두 죽었잖아요.”


입을 꽉 다문 발쟈크 공작은 시녀가 가져온 차를 쭉 들이켰다가 더욱 얼굴이 시뻘게졌다.


“뜨거운 것을 알고 있지만 흥분해서 뜨거운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으셨듯이 지금 시야가 너무 좁아지셨어요. 지금은 칼을 들 때가 아니에요.”

“아...아.”


논리적으로는 헤리오스를 이길 수 없고, 가슴에 치밀어 오르는 화는 삭힐 수가 없는 발쟈크 공작은 그저 한숨을 내쉬며 한탄을 할 뿐이었다.


“아버지. 오늘은 제가 맛있는 요리를 해드릴게요. 그러니 잠시만 참아주세요.”

“하아... 그래. 자식을 이기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지.”


그렇게 헤리오스가 급하게 영주성으로 돌아온 성과를 얻어내는 순간 집무실에 노크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집사장입니다.”

“들어오게.”


집무실로 들어온 집사장은 살짝 곤란한 얼굴로 공작가의 일가족을 보고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고 가져온 소식을 전했다.


“왕실에서 나온 기사가 소식을 가져왔습니다.”

“어디?”

“왕실에서 기사가 왔습니다. 칼스몬드경이라고 합니다.”

“응접실로 가지. 헤리오스 따라와라.”


공작부인은 조용히 미소를 지어 두 사람이 가는데 응원을 해주었고, 발쟈크 공작과 헤리오스는 그대로 집무실에서 나와 응접실로 자리를 옮겼다.


응접실에는 번쩍이는 은빛 아머를 착용하고 있는 큰 키의 기사가 의자에 앉아있었다.


“칼스몬드경?”

“네. 공작님.”

“오래 기다렸겠군. 잠시 가족끼리 할 이야기가 있었네.”

“편하게 있었으니 저는 괜찮습니다.”


다시 자리를 권하고 의자에 앉으며 헤리오스를 손님에게 소개했다.


“여기는 내 아들 헤리오스라네. 나에게 영지의 일을 배우는 중이라 함께 왔지. 혹시 비밀스러운 일인가?”

“아닙니다. 영식의 외모가 아주 출중하군요. 반갑습니다. 헤리오스 공자.”

“저 역시 만나뵈서 영광입니다. 칼스몬드 경.”


서로 인사를 마치고 발쟈크 공작이 바로 용건을 물었다.


“그래. 왕실의 기사께서 여기까지 어쩐 일인가?”

“네. 여기서 하루 거리에 있는 메이플 마을에서 이왕자님께서 영지와 오크 국경의 상황에 대해 알아보시기 위해 머물고 계십니다.”

“뭐? 이리 갑자기?”


헤리오스는 궁금함이 가득한 얼굴로 왕실에서 나온 기사의 얼굴을 쳐다보고 물었다.


“그럼 이왕자님을 수행하는 사람은 모두 몇 명이나 됩니까?”

“음... 사실 이번에 오시는 분들의 수가 좀 많습니다. 이왕자님과 평소 친하게 지내시는 그랑크 자작님과 슬로안 후작가의 장자, 후크 백작님과 삼공주님까지 함께 계시며, 그들을 호위하는 기사들과 병사들까지 모두 그 수를 헤아리면 대략 200명 정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내일 아침 일찍 왕자님을 마중나갈 준비를 하겠습니다. 경께서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쉴 곳을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집사장을 불러 왕실에서 온 기사를 손님방으로 안내하게 하고, 둘만 남은 응접실에서 헤리오스가 발쟈크에게 말했다.


“영지에 이렇게 깊숙이 올 때까지 제대로 된 훈련과 체계가 잡혀있지도 않습니다. 전쟁은 아직 멀었어요.”


아들의 말에 고개를 들지 못하는 발쟈크 공작이었다.


“그나저나 저들이 왜 이 영지에 왔을까요? 게다가 이왕자만도 아니고 자작이랑 후작가 아들까지 함께 오다니... 거기다 삼공주라?”


전생의 기억을 얻고 달라진 아들의 모습을 이제는 멍하니 바라보던 발자크 공작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아들의 눈빛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왠지 듬직하고 믿음이 가는 아들의 모습을 보니 그간 복수심에 잠도 못자고 감정에 치우쳐 영지의 사정을 고려하지도 못하던 자신을 말리고 침착하고 이성적으로 설득해준 것이 생각나 입가에 살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아버지. 피곤하시겠지만... 그렇게 웃지만 마시고 저랑 영지의 정보에 대한 심도 있는 이야기 좀 하시죠?”

“응?”


가볍게 이왕자를 맞이하려 했던 발쟈크 공작은 아들의 이런 저런 문제점의 지적과 그들의 행동 예측에 관련된 정보를 발쟈크 공작에게 쉼없이 물었보며 저녁식사 시간까지 잠시도 쉬지 못하고 그간 며칠동안 쌓인 피로보다 더 많은 피로가 폭발적으로 쌓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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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그럼 부탁하지 +7 21.06.01 12,900 20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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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귀하신 분들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8 21.05.28 13,641 206 11쪽
» 심도있는 이야기 좀 하시죠 +7 21.05.27 14,054 20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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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개종할 생각 없냐 +5 21.05.25 14,376 214 11쪽
14 사소한 것은 신경 쓰지 말고 +9 21.05.24 14,390 21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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