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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행 님의 서재입니다.

저번 생이 기억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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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행
작품등록일 :
2021.05.12 21:11
최근연재일 :
2022.03.20 00:50
연재수 :
14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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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3,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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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39
글자수 :
714,085

작성
21.05.31 18:00
조회
13,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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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
글자
11쪽

시간이 맞을 것 같군

DUMMY

아침 일찍부터 병사들의 발소리가 영주성에서 울리다가 사라졌고, 기사들 역시 앞서 나간 덕에 저택 안에 남아있는 사람은 시녀들과 나이든 하인 몇 명이 전부였다.

그런 아니 아직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 손님들 역시 옷을 입고 있었고, 귀족가의 여인들 또한 옷을 입고 얼굴을 치장하고 있었지만 그녀들이 원하는 물건을 가져오는 저택의 시녀들은 없었다.


“어제 제대로 몸을 씻지도 못했어요. 목욕물에 꽃잎도 띄워주지 않았다니까요.”

“이 곳이 정말 공작가가 맞는 지 모르겠어요.”


베로니안의 아내와 그랑크 자작의 아내는 공작성에서의 대접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들의 불만은 다른 곳에 더 크게 쌓였는데...


“어째서 우리까지 함께 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하아... 그런 말도 안되는... 오크 따위야 병사들이 알아서 처리하면 될 일이지 우리까지 가서 봐야 할 필요가 있을가요?”


그녀들도 이왕자가 가는 국경지역으로 함께 이동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저녁식사가 끝나고 집사장의 말에 그들이 저택에 머물 수는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고 화를 낼 뻔했지만, 곧 이 저택의 주인들도 모두 국경으로 떠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주인도 없는 빈집에 객이 머물수 없으니 그녀들도 함께 저택에서 나와야 했다.


“그냥 우리만 돌아간다고 하면... 어떨까요?”

“공주님도 국경으로 가신다고 하는데 우리가 영지로 간다고 하면 어떨 것 같아요?”


베로니안의 아내는 돌아가고 싶어 한 말이지만 그랑크 자작의 아내가 그녀의 바램을 깼다.

그녀들의 바램과는 상관없이 점심 때 즈음이 되어서야 출발준비가 끝이나고 마차 다섯 대와 각 영지에서 보내진 기사들과 병사들이 마차를 호위한 채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길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그들을 누군가는 안내해야 했고, 그 안내를 맡은 것은 바로 헤리오스였다.

헤리오스는 300명의 병사들을 이끌고 이왕자와 함께 국경지대로 이동하였고, 가면서 영지의 모습에 궁금함을 이야기하면 그에 대해 답을 주는 역할을 하며, 앞서 급속행군을 실시한 영지군의 뒤를 천천히 따라갔다.


동쪽으로 가는 길은 강을 하나 건너고, 산의 협곡을 하나 지나 건조한 평원을 한참 지나다 보면 거칠어지는 바람이 느껴지는 곳에 이르러 국경을 지키는 군영이 나오게 된다.

간단하게 줄여서 말하면 어려울 것이 없는 길인 것 같지만 이 길을 보병이 걸어서 간다면 하루종일 걸어서 간다고 해도 보름이 걸리는 거리고, 또한 벨로시아 영지군처럼 항상 국경을 오가며 단련이 된 상태가 아니라면 그 기간은 더 걸린다.

게다가 마차에는 여인들까지 있으니 빨리 이동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웠다.


“훈련이 잘 되어 있나보군. 이동한 발자국의 먼지들이 벌써 보이지도 않아.”

“언제 죽을지 모르니 항상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이왕자는 영지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물어보며 간을 보고 있었고, 헤리오스는 아무렇지 않은 듯 답을 하면서 어디까지 대답을 해주는 것이 좋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병사들의 수가 생각보다 많아보이던데... 얼마나 되나?”

“지금 총 출동한 병사들이 모두 합치면 삼천 가량 갔을 것입니다.”

“그게 영지의 모든 병사들이 간 것인가?”

“아닙니다. 오크 말고도 영지 곳곳에서 괴수들이 습격을 하기 때문에 영지 각지에 파견 나가있는 병사들과 성을 지키는 병사들까지 모두 합치면 오천은 될 것입니다.”

“생각보다 많군.”


하지만 헤리오스는 최대한 표정을 어둡게 하고 고개를 숙였다.


“왜? 문제가 있는가?”

“사실...”

“무언가? 서슴치 말고 이야기하라.”

“왕실에 보고한 병사의 수를 채우기 위해...”

“음... 영지의 사정이 좋지 않음을 아니 말해도 좋다.”

“죽은 병사의 사망처리를 하지 않은 경우와 여자를 대신 넣은 경우도 있어...”

“뭣이?”


여기서 헤리오스는 전생의 보았던 아침드라마를 생각하며, 혀를 깨물어 눈물이 찔끔나오게 하고 또 전생에 두고 온 약혼녀를 생각하면서 눈물이 더 나오게 최대한 슬픈 생각을 했다.


“이제 이 영지는 더 이상 왕국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곳이 될 것입니다. 책임을 다하지 못하게 될 것이니 모두 옥쇄를 하겠다는 각오로...”

“뭐라고? 그렇다면 모두 죽으러 갔다는 소리인가?”

“크윽...!”


헤리오스는 대답을 하지 않고, 전생에 입대해서 들어간 교육대에서 교관에게 걸려 시범케이스로 좌로 구르고 우로 굴렀다가 엎드렸다 누웠다 일어섰다 앉았다 뛰었다가 다시 엎드려서 좌로 구르고 우로 구르고... 이걸 3시간 동안 반복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처연한 표정을 지었다.


“이 곳은 더 이상 희망이 없습니다. 괴수들을 막기도 힘든데 이제 오크들에게 국경이 뚫인다면... 어차피 오크들에게 빼앗기고 모두 잡아먹힐 운명이라면 한놈이라도 더 죽이고 죽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고... 하아...”

“뭐? 잡아... 먹혀?”

“모르셨습니까? 오크들은 인간을 식량으로 끌고가 구워먹거나 삶아먹습니다.”

“세...세상에...!”


물론 거짓이다. 1년에 한번 정도 가끔 오는 오크들을 모두 소탕해버리는 후크 백작 역시 이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정확히 알지는 못하는 사실.

오크는 목축을 주로 하면서 고기를 먹고 산다. 인간이 오크를 먹지 않듯이 오크도 인간을 먹지 않는다. 인간을 먹는 것은 괴수 취급을 받는 놀이나 고블린 트롤이나 오우거 등이있지만 트롤이나 오우거를 보는 것은 평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었다.


귀족부인이 있는 만큼 행렬은 빠를 수 없었다. 천천히 이동해 강을 건널 때에는 뗏목에 마차를 싣고 한 대씩 천천히 건넜으며, 번쩍번쩍한 철제 갑옷을 입고 있는 왕실의 기사들 역시 물에 들어갈 수 없어 뗏목에 나누어 천천히 이동을 했다.


“철제 갑옷은 방어력이 좋아 전투에서 큰 힘을 발휘하지만, 전투가 항상 맑은 날만 있는 것은 아니라 저희 영지는 잘 사용하지 않기도 하지만, 저런 좋은 갑옷을 가질 힘도 없습니다.”


기사들로 인해 이동이 늦어져 짜증을 내는 왕자에게 헤리오스가 달래듯이 이야기를 하고 슬슬 지쳐서 시녀들에게 짜증을 내는 귀족부인들에게 갔다.


“아름다우신 부인들의 기분이 좋지 않다니 정말 슬픈 일이군요.”


잘 생긴 헤리오스지만 아직 어린 소년의 티가 있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여인네들.

그런 그녀들에게 다가가 가벼운 농담과 이야기를 하며 분위기를 풀어주고 있는 모습을 보며, 베로니안과 이왕자가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너무 영지가 가난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게다가 모두 죽으러 갈 것이라고 말하는 몸이 여인들과 농담을 나눠? 이게 앞과 뒤가 맞지 않는 상황이지 않은가?”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랑크 자작까지 걱정스러운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혹시 모르니 가는 길에 정찰을 강화해서 불미스러운 일에 대비를 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불미스러운?”

“그러니까... 저희를 습격해서...”


그랑크 자작의 의견에 베로니안이 반대의 의견을 냈다.


“그렇게 해도 이들이 얻을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왕국에서 칼을 뽑아들고 이 곳을 응징하기만 할 뿐 무엇을 얻겠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그렇다고 헤리오승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


“일단 이들이 지금까지 나에게 했던 행동이 그냥 모욕을 주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뭔가를 노리는 것인지 반드시 알아낼 것이다.”


이왕자 역시 오크와의 전쟁 따위의 사정을 생각해서 국경으로 가는 것이 아니었다. 영지 전체 전쟁터로 간다면 그래서 죽을 각오를 했다면 왕실을 대접하고 저택에서 잠을 재우는 일을 할 필요가 뭐가 있을까?

분명 다른 생각이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압박하기 위해 움직일 뿐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아들을 붙여놓는다? 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저 지금은 여인네들과 떠드는 헤리오스를 바라볼 뿐이었다.


“부인들 제가 남자들의 성격을 알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을 알려드릴께요.”

“...응?”

“네?”


부인들이라고 해도 모두 20대에서 30대. 시녀들도 아직 한창 때라 헤리오스를 쳐다보지는 않지만 귀를 쫑긋세우고 헤리오스의 말을 기다렸다.


“이렇게 주먹을 쥐고... 부인들도 해보세요. 그리고 손가락을 하나만... 어느 손가락이라도 상관 없으니 딱 하나만 펴게 하는 겁니다. 하나만...”


여인들은 헤리오스의 말을 듣고 손가락을 하나 씩 폈고 시녀들도 몰래 주먹을 쥐고 있던 손가락을 펴고는 다음 말을 기다렸다.


“자작 부인께서는 가운데 손가락을 펴셨군요. 왕자비님께서는 엄지 손가락을 펴셨고, 슬로안가의 부인께서는 집게 손가락을 펴셨어요. 하하하.”


저 만치 떨어져 있는 삼공주를 제외한 모든 여인들이 헤리오스 옆에서 어서 다음 말을 하라고 재촉했다.


“먼저 엄지 손가락을 펴신 분은 칭찬을 많이 해주시는 분이죠. 검지 손가락은 지시를 많이 해주시는 관리자의 능력을 가지신 분이고요. 중지를 펴신 분은 육감적인 것을 좋아하시는 분이래요. 그리고 제일 끝에 소지를 펴신 분은 작인 인연도 아껴주시는 친절하신 분이죠...”


시녀들이 고개를 끄덕이는데 왕자비가 물었다.


“공자 네 번째 손가락 이야기가 빠졌는데...?”

“아...!”


그제서야 헤리오스가 씨익 웃으며 목소리를 죽이고 은밀하게 이야기했다.


“약지는... 부인들께서도 한 번 펴보시지요. 딱 약지만 펴야 합니다.”


그러자 여인들이 힘을 들여 잘 펴지지 않는 손가락을 펴서 보여주었다.


“어떠십니까? 잘 펴집니까?”

“그럴 리가...”


여인들을 가까이 불러 속삭이듯 이야기했다.


“그렇죠? 그러니 약지를 펴는 남자를 만나면 조심하셔야 합니다. 잘 펴지지도 않는 약지를 펴는 남자는 밤에 거의 변태일지도 모릅니다.”

“어머!”

“꺄아...”


태평하게 귀족부인들과 시녀들에게 시덥잖은 농담을 하는 헤리오스는 하늘에 떠 있는 해를 보고 속으로 씨익 웃었다.


‘대충 이대로 가면 시간이 맞을 것 같군.’


알게 모르게 헤리오스는 왕자의 시선을 영지의 지형이나 구조물에 돌려 설명을 하며 시간을 끌었고, 귀족부인들에게 은근히 야한 농담을 하며 남자들의 통제를 받는 것을 더디게 하여 행동을 느리게 하는 일은 지속적으로 해왔던 것이다.


다만 가장 뒤쪽의 마차 창문으로 삼공주가 유심히 헤리오스를 관찰하듯이 지켜보고 있었지만 전체적인 이동에 영향을 주거나 하지 않기에 억지로 신경을 끄고 있던 참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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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정말 잘했다 +10 21.06.03 12,879 198 12쪽
23 오크들이 쳐들어왔어요 +12 21.06.02 13,084 193 13쪽
22 그럼 부탁하지 +7 21.06.01 12,900 202 12쪽
» 시간이 맞을 것 같군 +7 21.05.31 13,065 193 11쪽
20 믿는다 +8 21.05.30 13,132 200 11쪽
19 정말 깨끗하게 관리하네요 +8 21.05.29 13,318 203 12쪽
18 귀하신 분들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8 21.05.28 13,641 206 11쪽
17 심도있는 이야기 좀 하시죠 +7 21.05.27 14,053 200 11쪽
16 내 활솜씨 알지 +5 21.05.26 14,278 206 10쪽
15 개종할 생각 없냐 +5 21.05.25 14,376 214 11쪽
14 사소한 것은 신경 쓰지 말고 +9 21.05.24 14,390 212 10쪽
13 기억력이 아주 좋아 +8 21.05.23 14,658 218 9쪽
12 교전하지 않을거야 +9 21.05.22 14,958 200 9쪽
11 무지하게 끌리네 +8 21.05.21 15,268 212 9쪽
10 어찌 설득할 생각이냐 +8 21.05.20 16,020 222 10쪽
9 한번 들어볼까 +14 21.05.19 16,479 248 11쪽
8 무슨 일이래 +11 21.05.18 17,458 21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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