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군자행 님의 서재입니다.

저번 생이 기억나버렸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군자행
작품등록일 :
2021.05.12 21:11
최근연재일 :
2022.03.20 00:50
연재수 :
149 회
조회수 :
1,083,178
추천수 :
16,739
글자수 :
714,085

작성
21.05.22 20:55
조회
14,958
추천
200
글자
9쪽

교전하지 않을거야

DUMMY

하늘의 파란색이 더욱 선명하던 그 날은 유독 날씨가 좋고 화창했다. 평소에는 보이지도 않던 꽃과 나비들이 눈에 들어왔고, 귀여움이 폭발하는 작은 강아지들이 목줄로 주인의 손을 끌고 신나게 달리며 코를 여기저기 갔다대고는 꼬리를 흔들어 댔다.


하천을 따라 조성된 공원을 따라 산책을 하는데 그 때 묘한 이끌림이 있었다고 해야 하나?


핑-

슈우우

팍!


긴 생머리를 뒤로 질끈 묵은 여자의 하얀 목과 그 옆에 줄을 당기고 있는 오른손. 쭉 뻗은 왼손에 살짝 걸린 긴 화살.

튕기듯이 살짝 놓은 오른손과 함께 앞으로 나간 시위와 화살은 바람을 가르고 길게 날아가 한참 멀리 떨어진 과녁에 꽂힌다.


철조망 저편 공터에서 활을 쏘는 그녀의 조용히 그리고 예리하게 바라보던 눈매는 화살이 과녁에 닿자 살짝 휘어지며 반달같이 빛이 났다.


“아...!”


그 모습에 얼이 빠져 얼마나 있었는지 결국 활을 뒤로 둘러맨 여자와 눈이 마주치고, 얼떨결에 손을 들어 좌우로 흔들... 그녀의 웃음소리가...


“공자님! 얼굴이 빨갛습니다.”

“큭!”


회상에서 깬 헤리오스는 허무함에 왈칵 화가 치밀어 올랐다.

병사들이 사용하는 활 중 하나를 받아 손에 들고는 전생에 처음 활을 접했을 때를 추억하다보니 그토록 애를 타게 했던 그녀가 떠올라버렸다. 하지만 키사의 얼음송곳같이 시원한 찌르기에 추억은 확 깨지고 현실로 돌아와 버리고 말았는데...


‘으...! 키사...! 가만두지 않겠어! 복수할거야!’


공터에서 넓은 나무를 향해 서서 활을 쏠 준비를 하고 있던 헤리오스는 그 옆에서 보좌하는 키사와 부대의 일등사수인 병사를 무시하고 앞으로 한발 나가 자세를 잡고 자리에 섰다.


“처음 활을 잡으시는 것 같은데 조심하십시오. 생각보다 활을 쏘는 것은 쉽지가 않아...”


찌이익!


고참 병사하나가 헤리오스에게 활을 쏘는 법을 알려주려고 옆에서 떠드는 동안 헤리오스의 왼손은 활대를 잡고 오른손을 화살을 걸어 시위를 뒤로 힘껏 당겼다.

그리고 조용히 들이마신 숨을 뱉다가 멈추고 노리던 나무를 향해 시위를 놓았다.


핑-


헤리오스와 키사, 고참 병사의 시선이 화살의 궤적을 따라 함께 움직였고, 그 시선은 나무에 박힌 화살이 멈춤으로 인해 고정이 되어버렸다.

화살은 표시해놓은 과녁 가운데 부분에 꽂혀있었다.


“참 쉽지?”


헤리오스의 말에 병사는 입을 다물지 못했고, 키사는 혼란스럽다는 듯이 눈이 좌우로 흔들렸다.


“초심자의 행운이...”


핑-

슈우우.

팍.


두 번째 화살이 처음 쏜 화살 바로 옆에 꽂혔다.


“이것도 행운이라면 난 신의 축복을 받은 사나이다!”

“칫!”


헤리오스의 낭랑한 외침에 키사의 얼굴이 구겨졌다.


조금 전 헤리오스가 병사들이 이동하는 모습을 보고 활을 쏘겠다고 했을 때 키사는 그런 그를 말렸다.


“검의 길을 걷는 것도 힘들지만 활도 쉽게 쏠 수 있는 무기가 아닙니다. 익숙하지 않다면 다치는 것은 똑같습니다. 천천히 기본부터 배워야 합니다.”

“문제 없다니까! 아니면 나랑 내기 할래?”

“이건 장난처럼 넘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오! 그런데 키사 이번에는 말 많이 하는데.”


그렇게 투닥거리다가 화가 난 키사가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저는 공자님을 걱정해서 한 말이었습니다.”

“걱정말라고... 뭐가 그렇게 겁이 나...? 다치는게 무서워? 아님 내가 너무 잘할까봐 겁나?”

“알겠습니다. 쏘십시오.”

“삐졌구나?”

“안 삐졌습니다.”

“말로만?”

“욱!.... 후우... 후우... 뭐가 문제입니까?”

“내기하자.”


결국 부들부들 거리던 키사는 내기를 허락을 했고, 각자 원하는 소원은 무엇이든 한 가지를 들어주기로 하고 헤리오스가 활 시위를 당겼던 것이다.


“세...세상에 공자님은... 타고난 활의 천재입니다.”


헤리오스는 두 발을 쏘고 다시 한 발을 더 쏴서 과녁의 가운데 맞히고 상큼하게 미소지어 주었다.


“병사! 천재라고 하다니... 훗... 이런 걸 신궁(神弓)이라고 하는 거야. 음하하!”

“아... 예... 그러시군요.”

“태도가 불손하다 병사!”

“아닙니다! 전 처음볼 때부터 공자님이 신궁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과연! 난 자네처럼 솔직한 병사가 참 마음에 든다!”


한심함에 티안나게 몸부림치던 키사가 결국 헤리오스를 말렸다.


“공자님. 부기사단장님께 가실 시간입니다.”

“그래? 장난은 이쯤하지. 수고했어 병사.”


헤리오스가 장난을 쳤다는 것을 알고 병사는 긴장이 팍 풀려버렸다.


“실력을 볼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부기사단장이 있는 천막으로 가면서 키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헤리오스에게 물었다.


“어떤 소원을 말씀하실겁니까?”

“별거 아냐.”

“그 별거 아닌 것이 궁금합니다.”

“이따 부기사단장에게 부탁을 할 건데 그 때 내 편이 돼줘. 간단하지?”

“전 지금까지 공자님의 편이었습니다.”

“그래. 그럼 잘 부탁하지.”


그리고 키사는 부기사단장의 천막에서 작년에 그녀의 부친 몰래 먹은 닭고기가 얹혀 토할 것 같은 기분에 현기증이 났다.


“정찰이라니요! 공자님 그건 절대 안됩니다!”

“문제 없다니까... 그저 지형만 살피고 오는 거라니까.”


밑도 끝도 없이 헤리오스는 부기사단장에게 병사 일부를 이끌고 주변의 지형을 파악할 겸 정찰을 다녀오겠다고 하였고, 당연히 하나밖에 없는 공작가의 후계자를 사지가 될지도 모르는 곳에 집어 넣을 가신은 없었다.


“키사경. 말 좀 해줘. 내가 가도 문제가 없을거라고 판단된다는 것을...”

“똑바로 말을 해야 할거야. 조금의 문제가 있는 발언이라도 그 책임은 매우 클테니까...”


그 말에 부기사단장은 키사를 노려보았고, 또 헤리오스의 삐딱하면서도 은근히 반짝이는 눈빛 사이에서 미칠 것 같은 갈등에 머리를 부여잡았다.


‘신이시여! 어찌하여 저에게 이런 고난과 시련을 내리십니까?’


기사단의 상관인 부기사단장에게 밑보이면 기사생활 자체가 어렵다. 하지만 영지의 후계자와의 약속을 어기면 영지에서의 삶 자체가 힘들어진다. 그렇다고 기사인 그녀가 기사단을 벗어나 생활을 한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


‘아! 오른쪽으로 가면 불지옥이고 왼쪽으로 가면 얼음지옥인가?’


혼란으로 영혼이 빠져나가버린 키사를 보고 헤리오스가 전생의 경험까지 살린 얍삽한 말을 내뱉었다.


“지금 부기사단장은 키사경을 직위로 억압하는 거야?”

“무슨 말씀이신지?”

“말도 꺼내기 전에 책임을 운운하며 압박해서 말을 못하게 하잖아.”

“그런 뜻이 아니라...”

“우리 기사단이 이렇게 밑에서 올라올 의견을 권위로 찍어 누르며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운영되다니... 이 사실을 공작님께 꼭 보고 드리고 영지 운영에 참고하게 해야겠어.”


헤리오스의 말도 안되는 트집에 결국 부기사단장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꼭 그렇게 나가셔야 하겠습니까? 군주가 될 분께서 위험한 곳에 함부로 가시는 것은 그리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미안! 자꾸 떼를 쓰는 것 같아 미안한데, 내가 나가서 지형을 보고 나중에 필요한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 같아. 솔직히 지금은 오크족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어.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영지를 운영하는 것은 쉽지 않을거야. 어떻게든 움직이지 않으면 방법이 없어.”

“그건 그렇지만 위험합니다.”

“지금 병사들이 먹는 음식 맛 더럽게 없더라. 그리고 모포는 영지의 개들도 사용하지 않을 정도로 더럽고 낡았어. 무기는 너무 오래 손질해서 마치 골동품처럼 반질반질하고, 갑옷도 이제는 멋으로 입은건지 방어를 위해 입은 건지 구별도 안될 정도야. 그런데 영지는 이제 여력이 거의 없어.”

“그렇다고 공자님께서...”

“나 지도 잘 그려. 볼래?”


그리고 순식간에 나뭇가지로 바닥에 군영이 자리잡은 부근의 지형을 지도로 그려 부기사단장에게 선보였다.


“그렇군요... 하지만 안전을 위해 기사들과 병사들을 붙여드리겠습니다.”

“됐고. 키사포함 기사 9명만 붙여줘.”

“하지만...”

“정찰이잖아. 소수의 매우 뛰어난 무력을 가진 사람이면 충분해. 그리고 지형을 파악하는 거잖아. 절대로 오크족과 교전하지 않을거야.”


헤리오스의 고집에 부기사단장은 결국 설득을 포기하고 군영에 있는 최고 실력의 기사 8명을 뽑아 정찰 임무를 맡겼다.

그리고 다음 날 당당하게 헤리오스가 이끄는 정찰조가 군영에서 이탈하여 오크족의 영역으로 당당하게 넘어 들어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9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저번 생이 기억나버렸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9 조금이라면 인정하겠습니다 +7 21.06.09 12,490 178 11쪽
28 상당히 일리가 있다 +6 21.06.07 12,619 198 12쪽
27 이야기 해 보거라 +9 21.06.06 12,861 195 10쪽
26 천재구나 +8 21.06.06 13,038 193 9쪽
25 시간을 좀 끌어주세요 +9 21.06.04 12,928 199 10쪽
24 정말 잘했다 +10 21.06.03 12,880 198 12쪽
23 오크들이 쳐들어왔어요 +12 21.06.02 13,084 193 13쪽
22 그럼 부탁하지 +7 21.06.01 12,900 202 12쪽
21 시간이 맞을 것 같군 +7 21.05.31 13,065 193 11쪽
20 믿는다 +8 21.05.30 13,132 200 11쪽
19 정말 깨끗하게 관리하네요 +8 21.05.29 13,319 203 12쪽
18 귀하신 분들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8 21.05.28 13,641 206 11쪽
17 심도있는 이야기 좀 하시죠 +7 21.05.27 14,054 200 11쪽
16 내 활솜씨 알지 +5 21.05.26 14,278 206 10쪽
15 개종할 생각 없냐 +5 21.05.25 14,376 214 11쪽
14 사소한 것은 신경 쓰지 말고 +9 21.05.24 14,390 212 10쪽
13 기억력이 아주 좋아 +8 21.05.23 14,658 218 9쪽
» 교전하지 않을거야 +9 21.05.22 14,959 200 9쪽
11 무지하게 끌리네 +8 21.05.21 15,268 212 9쪽
10 어찌 설득할 생각이냐 +8 21.05.20 16,020 222 10쪽
9 한번 들어볼까 +14 21.05.19 16,479 248 11쪽
8 무슨 일이래 +11 21.05.18 17,458 217 13쪽
7 맛있는 거 먹고 싶다 +7 21.05.17 18,029 237 12쪽
6 신호다 +7 21.05.16 18,564 240 12쪽
5 미래의 전우잖아 +11 21.05.15 19,513 255 9쪽
4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21 21.05.14 22,055 274 21쪽
3 힘들정도로 맛없다 +14 21.05.13 23,943 291 10쪽
2 오랫동안 +8 21.05.12 27,571 296 8쪽
1 프롤로그 +14 21.05.12 31,703 286 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