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노량에서 진 별.
조정에서 명령이 내려왔다. 도망가는 가토 기요마사를 놓아주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총병 유정의 강려간 요청 때문이었다.
“궁지에 물린 쥐는 고양이가 아니라 범에게도 덤빕니다. 더 이상 조선에서의 전란에 명의 군사를 희생시킬 수 없소!”
이것이 바로 유정이 왜군을 보내주라는 이유였다. 하지만 실상은 가토 기요마사에게 많은 재물을 약속받았기 때문이었다. 왜국의 은광에 대한 것은 유정의 귀에도 들어갔다. 그 은광의 은을 탐내는 것이었다. 또한 이미 죽은 왜군의 수급도 받기로 했다. 그 모든 공은 다 유정의 것이 될 것이니 전공이 낮지 않을 것이었다. 가토 기요마사도 고니시 유키나가처럼 처리하고 싶은 선조였지만 유정의 요구를 무시할수 없어 결국 이순신에게 그런 명령을 내려 보낸 것이었다. 하지만 이순신은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그리고 왜적의 탈출을 막을 준비를 했다.
소율기는 몸이 좋지 않았다. 마지막 전투에서의 이순신의 운명에 대한 걱정으로 인한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냥 넘기기에는 몸이 너무 좋지 않았다.
“젠장. 어쩔 수 없네.”
소율기는 의원을 찾았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의원을 찾은 적이 없었다. 남자 흉내 내고 있을 때는 그것이 들킬까봐. 여자임을 밝힌 후에는 굳이 갈 일이 없어서.
“어떤가?”
“예. 마님은 지금...”
의원의 말에 소율기의 눈이 크게 떠졌다.
* * *
왜군을 태운 배가 바다로 나섰다. 유정으로 인해 길이 열렸기 때문이었다. 왜국에서도 호응을 하여 큰 배를 여러 척 보냈고 유럽 해적까지 함께였다.
“하하핫! 드디어 돌아가는 구나.”
가토 기요마사는 크게 웃었지만 속은 쓰렸다. 호기롭게 조선에 와서 도망치는 것이었으니...
“그런데 장군님. 과연 조선의 수군이 보내주겠습니까?”
부하 장수가 묻자 가토 기요마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내줘야지. 조선이 상국으로 받는 명나라 원군의 총병이 내린 명령이다. 그걸 누가 감히 따르지 않겠는가? 봐라! 우리 일본에서도 우리를 마중하기 위해 배들이 왔다. 그리고 저건 유럽의 배로구나. 저 배들이 여기까지 왔다는 것부터 이미 조선에서 길을 열었다는 의미다.”
그 말에 부하 장수는 물론 일반 병사들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모두 모였구나.”
왜에서 온 배들이 도망치는 왜적들과 합류하는 것을 망원경으로 본 이순신은 천천히 망원경을 내리고 말했다. 왜에서 조선의 왜군을 탈출시키기 위해 수군을 보낸 것은 이미 간자의 보고로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을 모아 하번에 치려고 방치한 것이었다. 어차피 도망치는 왜적을 잡겠다고 공격해봐야 왜국에서 오는 왜군에게 되레 뒤를 공격당할 수 있으니 이처럼 한데 모아서 치는 것이 나았다.
“보게. 적들이 저리 모였네.”
문득 옆을 보며 말하던 이순신은 혀를 찼다. 이번 전투에는 소율기가 타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 몸이 좋지 않아서였다 항상 옆에 있던 소율기가 없으니 상당히 허전했다.
“나리 반드시 드릴 말씀이 있으니 무사히 오십시오.”
이것이 출정 전 소율기가 이순신에게 한 말이었다.
“허허... 반드시 해야 하 말이라...”
소율기의 말을 다시 곰씹으며 이순신은 전군을 진격시켰다.
* * *
탕!
순간 소율기는 눈을 떴다.
“꿈...?”
자신도 모른 새 잠이 든 모양이었다. 그리고 꿈에서 총 소리를 들었고 눈이 떠진 것이었다.
“대체 무슨 꿈이지?”
꿈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만 꿈속에서 들인 그 총소리만 선명하게 기억이 날뿐... 그리고 그것이 아주 불쾌하고 불안한 느낌이라는 것.
“나리...”
소율기는 이순신이 나갔을 남해 바다를 바라보았다.
* * *
이순신이 쓰러졌다. 어디선가 날아온 눈먼 총알이었다. 그야말로 통한의 흉탄! 소율기의 부탁으로 바로 옆에서 이순신을 호위하던 무진조차 어찌할 수 없었다.
“통제사 나리!”
무진을 비롯 주변의 장수와 군관들이 모여들었다. 모여든 사람들을 보며 이순신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미안하네. 내 이리 먼저 가게 되었네.”
“참으십시오. 통제사 나리. 어서 뭍으로 모셔서...”
무진이 말을 하자 이순신을 고개를 저었다.
“내 상태는 내가 아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벗어난다면 왜적들의 기세만 오르게 되네.”
그리고는 이순신은 자신과 이름과 같은 이순신을 보며 말했다.
“자네가 남은 지휘를 맡아주게.”
“예. 알겠습니다. 통제사 대감.”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게. 내 몸을 방패로 가려 병사들이 못 보도록 하고.”
“그리하겠습니다.”
이순신은 무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아이에게는 미안하다고 전해주게나.”
“나, 나리...”
무진은 눈물을 흘렸다.
“허허... 앞이 보이지 않는구나. 이제 갈 때가 된 것 같으이.”
그때였다. 진금이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와 엎드려 이순신의 귀에 말을 했다. 그 말을 들은 이순신의 누이 크게 떠졌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름은... 영이라고 하게.”
그리고... 눈을 감았다.
무진은 분연히 일어났다. 소율기도 그렇지만 복서단 중에 이순신을 존경하지 않는 자는 없었다. 이순신의 죽음에 무진의 눈에서는 불길이 솟았다.
“우리 배를 불러라.”
단 한마디였지만 복서단의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신호기를 흔들었다. 무진은 뱃전에 서서 저 멀리 가토 기요마사가 타고 있는 기함을 노려보았다.
* * *
왜란의 마지막 전투가 끝났다. 이번에도 조선군의 피해는 별로 없었다. 진린이 이끄는 수군이 잠시 위험해 진적은 있었어도 이순신의 도움으로 벗어났다. 특히나 무진이 활약이 돋보였다. 빠른 배를 타고가 가토 기요마사의 기함에 뛰어 들어가 현란한 칼춤을 추며 왜적을 도륙했다. 그리고 10여 합 끝에 가토 기요마사를 사로잡아 버렸다. 이번 전투에서 살아간 왜적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도움을 주러 온 유럽의 해적들들은 모두 몰살을 당했다. 나중에 왜군 서너명만이 부서진 배의 파편을 잡고 기적적으로 왜국의 해안까지 살아간 것이 전부일 정도의 대패였다. 하지만... 어쩌면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조선군이었다. 바로 통제사 이순신의 전사.
“나리...”
소율기는 주저앉았다. 울 기운도 없었다.
“노야! 어찌 이리 가십니까! 그 전투에서 절 구해주셨는데 전 그 은공도 못 갚았습니다! 제가 죽고 노야가 사셔야 했는데 어찌 어찌...”
진린도 울부짖었다.
“선장님.”
진금이는 소율기에게 다가왔다. 이순신의 마지막 말을 전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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