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글꽁장

전염, 돼지 게임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일반소설

dob002
작품등록일 :
2020.07.30 20:02
최근연재일 :
2020.08.28 20:49
연재수 :
13 회
조회수 :
661
추천수 :
6
글자수 :
45,945

작성
20.08.25 20:21
조회
26
추천
0
글자
7쪽

갑자기 분위기 청춘물

DUMMY

7번 미션인 마라톤을 완수하고 나니 복싱은 일도 아니었다.


마라톤은 내게 큰 부담이었다. 42.195km.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을 따라 달리는 스포츠. 동호회원들도 일부밖에 성공하지 못하는 걸 완료하다니. 4시간 26분 30초라는 기록으로 말이다.


나보다 체력 좋은 혁수는 40km 지점 정도에서 회장님과 함께 앞으로 치고 나갔다. 혁수 덕에 매번 동호회 1위를 차지하던 회장님은 2위에 머물렀다. 무려 혁수는 4시간 21분이었다.


“미션 때문이지?”


마라톤 끝난 후 회식 자리에서 혁수가 몰래 물었다. 난 대답을 하지 않는 것으로 그 질문에 답했다. 돼지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은 게임 이야기를 할 수가 없으니까.


복싱 라이선스는 종로에 있는 한 체육관에서 응시했다. 관장이 전직 세계 챔프 출신이라는데 아무리 봐도 내 눈에 익지는 않았다. 난 복싱이라곤 만화 <더 파이팅>으로 접한 게 전부다. 타이슨도 최근에야 알았다.


“...그러니까 경기에서 다운되거나 진다고 라이센스를 못 받는 건 아냐. 무슨 말인지 알겠지?”


“네!”


수염투성이인 전 세계 챔프가 참가자들에게 말했다. 키가 170cm를 간신히 넘을 것 같았지만, 어깨가 벌어진 거 하며 전완근의 힘줄까지 현역 못지않았다.


“7번, 17번이랑 싸우네. 야, 너넨 번호 외우기 편하겠다”


17번 역시 큰 키는 아니었다. 챔프와 비슷하거나 1~2cm 큰 수준이었다. 그런데 근육량은 훨씬 많아 보였다.


“오수야, 쟤가 작으니까 들어가지 말고. 네가 하던 대로 아웃파이팅만 해. 알았지? 때리려 하지 말고 갖다 대는 데 집중해”


복싱을 배우며 느낀 내 복서로서의 내 장점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반사신경이 좋다는 거. 두 번째는 코치 말을 잘 듣는다는 거였다. 빠른 반사 신경 덕에 잘 맞지 않을 수 있었고, 코치의 말을 잘 듣기에 전략적으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뒤로! 뒤로! 오른쪽!”


코치형의 말대로 따라 하자 신기하게도 대부분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상대는 펀치 하나하나가 빠른 편이 아니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스텝을 부지런히 움직이는 거로 충분했다.


“10초!!”


그 소리에 시계를 본 게 실수였다. 거의 9초 정도의 타이밍에 더킹으로 들어온 상대의 펀치가 내 턱밑에서 올라왔다.


‘뻑!!!’


마우스피스가 하늘로 솟구칠 정도였으나 후속타는 이어지지 않았다. 기절도 하지 않았다.


눈은 멀쩡했는데 몸이 움직여지지 않았고, 다리가 쉬지 않고 후덜덜 떨렸다.


후속타가 나오지 않은 건 상대가 얼어붙어서였다. 너무 정확히 들어간 어퍼컷에 상대도 놀랐다.


“야, 규식아! 뭐해!”


정신 차린 규식이란 상대가 들어왔으나 난 힘겹게 팔을 뻗어 그를 껴안았다.


어차피 승부가 중요한 게 아니었고 라운드도 하나뿐. 쉬는 시간에 갈비탕을 먹고 있는데 코치 형에게 문자가 날아왔다.


“야, 오수야. 합격이래, 합격”


정식 결과가 나온 건 아니지만, 미리 관계자가 문자로 귀띔했다.


그렇게 미션 두 개를 몇 개월에 걸쳐 끝내고 나니 가을이 왔다. 아니 거의 겨울이 돼 있었다.


우연인 척 현진이 일하는 홍대 커피숍에 들렀다. 10도 아래로 떨어진 수은주에 가게는 벌써 히터를 틀어 놓고 있었다.


“어서오···. 아, 오수 오빠?!”


현진이 소리를 지르며 놀랬다.


“잘 있었냐? 지나가다 들렸어.”


“어머, 엄청 오랜만이다. 뭐 먹을래요? 내가 하나 그냥 줄게!”


제일 안쪽 의자에 앉아 있으려니 잠시 후 현진이 핫초코를 내왔다.


“그래. 날도 추운데 이런 거 먹어야지. 커피보다 핫초코가 더 좋아요. 마시멜로도 있고”


현진의 추천대로 고른 건데 진하기도 하고 마시멜로도 두꺼워서 좋았다. 잠시 입김을 불며 건더기를 뜯고 있는데 그녀가 물었다.


“오빠는? 같이 온 거 아니에요?”


“어? 응, 아냐···. 나 그냥 지나가다가!”


당황스러워 목소리가 커졌다.


“음···. 오빠한테 톡해볼까? 오수 오빠 왔다고?”


그러자 혈압이 머리끝까지 느껴졌다. 그때 난 분명 자리에서 반쯤 일어났었다.


“야, 됐어! 걔 공부하느라 바쁠 건데. 그냥 둬”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 혁수는 갑자기 공무원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했다. 진짜 그로부터 일주일도 안 돼 노량진에 집을 구하고 학원을 등록했다.


“에휴, 공무원. 공무원”


혁수 얘기에 현진이 혀를 챘다.


“왜, 공무원이 뭐가 어때서? 아무 생각 없는 나보다 낫다”


학년을 두 개나 남겨놓고 있지만 내겐 이렇다 할 진로 계획이 없었다. 그냥 아무 대기업이나 가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철밥통이라 좋아하는 거겠지만···. 젊은이가 꿈이 있어야지”


현진이 내 핫초코를 한 모금 뺏어 마셨다.


“야, 공무원이 얼마나 큰 꿈인데? 열 명 중의 한 명도 못 되는데?”




잠깐 얼굴을 보고 일어나려 했는데 손님도 없고 자리가 길어졌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


어느새 존댓말보다 반말을 더 많이 하는 현진이었다.


“마지막까지 잘하다가 ‘쾅!’ 한 방 먹었지 뭐야. 그런데 안 쓰러졌어. 내 맷집 괜찮은가 보더라”


“오오오오~”


그러다 보니 어느새 현진이 끝날 시간이 돼 있었다.


생각 없이 들른 건데, 같이 퇴근을 하게 됐다. 토요일의 해가 벌써 반은 지고 있었다.


“...혁수 불러서 맥주나 할까?”


말을 하고 아차 싶었다. 지금 내게 혁수는 방해꾼일 뿐이었다.


그러자 현진이 잠시 입술을 깨물며 생각에 잠겼다.


“음···. 아냐. 공부 방해하지 말자”


그렇다고 둘이 마시는 건 아니었다. 현진의 친구 기선이 합류했다. 현진보다 키가 크고 현진보다 하얗고 좀 더 차가운 이미지였다. 숏컷에 청바지 차림인 게, 살짝 정체성이 의심됐다.


“혹시···.”


뒷말을 짐작했는지 먼저 대답하는 기선이었다.


“맞아요. 페미니스트. 근데 나 남자 좋아하는 페미거든?!”



술자리는 11시까지 계속됐다. 1차로 족발집에 들렀다가 2차로 오락실, 3차로 육회를 먹었다.


막차 시간을 엿보고 있는데 기선이 뒷목을 잡아끌었다.


“어디 가, 오빠. 못 가!!”


마지못해 끌려갔지만 그런 기선의 행동이 싫지만은 않았다.



기선이 덕에 현진과 좀 더 같이 있을 수 있었으니까.




기회가 생길 수도 있었으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전염, 돼지 게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일주일에 세 번 연재됩니다 20.08.22 20 0 -
13 무차별 살인 20.08.28 24 0 8쪽
» 갑자기 분위기 청춘물 20.08.25 27 0 7쪽
11 남의 여자 뺏기 +2 20.08.22 31 0 8쪽
10 스포츠맨 +2 20.08.19 28 0 8쪽
9 업텐 멤버 +2 20.08.17 24 0 8쪽
8 강아지 누나 +2 20.08.14 48 0 8쪽
7 자살인가 +2 20.08.12 38 0 8쪽
6 x발이란 두 글자 +2 20.08.09 34 0 8쪽
5 감시자 +2 20.08.06 42 1 9쪽
4 착한 아들 +2 20.08.04 57 2 8쪽
3 피기피그 +4 20.08.02 87 1 10쪽
2 결단의 주먹 20.07.30 91 1 10쪽
1 프롤로그 20.07.30 131 1 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