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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렴 님의 서재입니다.

천검무가(天劍武歌)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가렴
작품등록일 :
2013.04.24 23:51
최근연재일 :
2013.05.10 00:56
연재수 :
9 회
조회수 :
19,342
추천수 :
69
글자수 :
27,256

작성
13.04.25 00:06
조회
3,070
추천
11
글자
10쪽

1. 달을 베는 검, 여덟 신선의 꽃(1)

DUMMY

1. 달을 베는 검, 여덟 신선의 꽃(1)


봄이 다되어가는 데도 아직 아침공기는 쌀쌀했다.

3월도 보름정도밖에 남지 않은 어느 날. 하지만 월성검도관(月星劍道館)에서 흘러나오는 기합소리는 쌀쌀한 겨울공기를 후끈 데울만큼 뜨거웠다.


“하압!”


파앙! 목검이 대기를 가르면서 공기가 날카롭게 터지는 듯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힘차고 강맹한 일격의 내려치기. 이제 막 열 일곱된 어린 소녀가 발한 일격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한 자세의 일격이었다.

햇수로 두자리 수가 되어가는 낡은 목제(木製)검도관 안에는 한명의 소녀가 중단을 향해 검을 겨눈 채 고요한 자세로 눈을 감고 서 있었다. 새하얀 베옷 상의와 검은 색 검도복 하의를 갖춰입은 그녀는 허리까지 늘어뜨린 검은 머리를 흩날리며 두 손으로 그러쥔 목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스읍-.


그녀는 아랫배 깊숙이 숨을 들이 쉬며 검을 움직였다. 내려치기, 가로베기, 사선베기, 올려치기, 그리고 마지막 찌르기까지. 검술이라고 보기에 무척이나 간단하고 단순해보이는 동작들이었지만 만일 그녀를 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녀의 높은 수준의 검술에 경탄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흔들리지 않는 검.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한 손동작.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보폭. 그녀는 이미 어린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기량을 소유한 이 곳, 월성검도관의 관주였다.

그녀가 휘두르는 검을 따라 검은 검도복 하의가 땅에 쓸리며 스륵스륵 소리를 흘렸다.

그녀가 손에 쥔 목검을 가슴어림으로 끌어당긴 채 다리를 굽히며 허리를 숙였다. 한쪽 다리를 살짝 굽힌 채 다른 쪽 발은 뒤로 쭉 뻗어 자세를 안정시킨다. 목검은 언제나 그렇듯 흔들임없이 자신이 가야 할 검로쪽으로 힘을 분출하기 위해 단단히 준비하고 있었다.

후우, 하고 한숨처럼 깊은 숨을 토하며 그녀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월인제혼검(月刃制魂劍) 제 일검 창월만야(蒼月滿夜).”


스스슷. 순간 그녀의 손에 들린 검이 마치 별볼일없는 나뭇가지처럼 자신의 기세를 감추며 음유로운 움직임으로 허공을 수놓기 시작했다.

대기마저도 깨끗하게 갈라내며 기척을 죽이고 움직이는 검은 보기에는 가벼워 보이지만 실로 비할데가 드문 암살검(暗殺劍).

날카로운 칼바람을 쏟아내며 낡은 검도관 내부는 순식간에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성으로 가득찼다.

검기(劍技)의 소나기 - 그 사방팔방 종횡무진하던 검날 속에서, 검의 진체(眞體)가 역수로 틀어지며 길게 횡으로 공간을 가른다.


“제 이검...”


광풍제월(光風霽月)!


콰아아!


검기의 소나기를 산산히 부수며, 삭월형의 거친 칼바람이 대기를 떨어 울렸다.

비 갠 뒤의 맑게 부는 바람과 밝은 달이라는 의미의 광풍제월의 초식은, 하지만 그 이름과는 달리 광풍제월(狂風啼月 : 미친 바람과 울부짖은 달)이라 불려도 할말 없을 정도로 거친고 파괴적이었다.

전신의 기력을 검 끝에 모아 전력으로 베는 단 일초의 초식.

그 무색의 초승달의 예기는, 모든 것을 갈라버릴 것만 같은 날카로움을 품고 전방을 쓸어갔다.

그리고 다음 순간, 칼바람은 도장의 구석진 한켠을 향해 날카로운 독니를 품고 달려들었다.


쩌어엉!


“...이크크!”


유리질의 무언가가 깨어지는 소성과 함께,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도장 전체를 울렸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검풍(劍風) 속에서, 검은 그림자가 튀어나온 것은 순간이었다.

그림자를 노려보는 소녀의 두 눈에 불꽃이 튀었다.


“...끈질기군요, 나민철 씨.”

“하하하! 제가 옛날부터 다른 건 몰라도 끈질긴 거 하나는 알아준다고 소문났죠.”


사내 - 나민철은 기이한 용모의 소유자였다. 검은 바탕에 자주빛 꽃이 자수되어있는 매끄러운 비단옷이었는데 머리에는 승려들이나 흔히 쓰는 대삿갓을 쓰고 있었다. 보기 흉하지는 않지만 덥수룩한 수염 덕에 전체적으로 나이가 들어보였는데 들리는 목소리로 보아 30대는 넘어보이지 않아 나이를 짐작하기 힘든 자였다. 그가 대로 엮어 만든 큼직한 삿갓 사이로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월인제혼검결... 천 오백년 전, 삼국시대부터 전해내려오는 백제검(百濟劍)의 진수라고 했던가요. 싸울아비들이 전장에서 발전시킨 실전살인검의 정화라고 들었습니다만 - 과연, 엄청나군요. 나름 은신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파훼되어버릴 줄은.”

“용건이나 말씀해주시죠.”


빙글거리며 자신의 절기를 칭찬하는 나민철의 말에도 소녀의 싸늘한 어조는 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날카롭게 기세를 다듬어 그를 향해 흘려보냈다. 아침부터 남의 집에 침입한 무례한 행동은 둘째치더라도 자신의 절기를 몰래 훔쳐본 주제에 품평하듯 평가질하는 그의 태도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소녀의 흑갈색 눈동자가 서늘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그런 그녀의 태도에 나민철이 유들유들한 태도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오오, 그렇게 무서운 눈초리로 노려보지 말아주시죠, 서지혜 양. 아침부터 눈살 찌푸리면 나중에 눈가에 주름잡혀서 고생한답니다.”

“제 피부미용에 관한 걱정이라면 괜한 걱정이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주름 자글자글한 할머니가 되어도 당신한테 토로 할 일은 없을테니 말이죠.”


소녀, 서지혜는 딱 잘라 단언하듯 나민철에게 대답했다.


“하지만 스트레스성 위염에 관해서는 말씀 드려야만 할 것 같군요. 이처럼 계속 집주인의 허락도 없이 멋대로 들어오신다면 법적으로 제재를 가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 전에 돌아가시는게 서로를 위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만.”

“하하핫!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지혜 양이나 은혜 양, 그리고 유리 양의 학교까지 찾아갈 수는 없는 일이지 않습니까?”


채앵! 나민철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서지혜가 들고 있던 목검으로 그의 목을 겨누었다.


“내 동생들에게 손대는 짓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어요!”

“이런, 제 말을 오해하셨나보군요. 저또한... 그렇게 되길 바라지 않는 마음에서 드리는 충고입니다만.”


도대체 이 남자에게서 웃음이 떠나가는 때는 언제일까? 직접적으로 육체의 급소라고 할 수 있는 목의 경동맥을 겨누어진 상황임에도 사내의 안색은 변할 줄 몰랐다. 여전히 입가에는 가느다란 미소를 달고 있었다. 서지혜는 누에나방의 눈썹(蛾眉)처럼 고운 눈썹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진검(眞劍)이 아니기 때문일까?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나민철의 안색이 너무나도 태연했다. 설사 진검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급소에 무언가 위협적인 도구가 겨누어지는 것을 꺼리는 면이 있다. 더군다나 목검도 진검에 비해 덜하다 뿐이지 충분한 살상도구가 될 수 있었다. 특히 그녀 정도의 수준에 이른 검도고수가 목검을 들고 있는 경우에는, 오히려 일반인이 진검을 들고 있을 때보다도 위험하다. 이런 단순한 이치를 나민철이 모를 리 없었다. 그 역시 상당한 고수였기 때문이다.

그는 마치 그녀가 들고 있는 목검이 자신을 해할 수 없으리라 확신하고 있는 듯 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그녀는 가슴 속에 오기가 가득 들어차는 것을 느꼈다.


“제가 이 목검을 휘두르지 못하리라 생각하시나요?”

“이런, 이런. 의외로군요.”

“...”

“누구보다 총명한 지혜 양이라면, 그 답은 누구보다도 본인이 더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했는데요. 그렇지 않나요?”

“...이익.”


서지혜는 치솟은 화를 참지 못하고 이를 악 물었다. 저 능글맞은 사내가 말 한 대로였다. 분하지만, 그녀는 눈앞의 사내를 향해 검을 휘두를 수 없는 처지였다.

빙글거리며 웃는 얼굴로 나민철이 그녀를 향해 말했다.


“후후후. 제가 여기에 온 것은 최후의 통첩을 전달하기 위해서랍니다.”

“...최후 통첩?”

“네. 그래요. 달리 말씀드리자면, 이게 마지막 기회라는 거죠.”


나민철은 자신의 목 위에 얹어져있는 목검을 쥐어 내리며 빙긋 웃었다. 서지혜는 그 예의발라보이는 사내의 얼굴에서, 뱀처럼 차가운 한기를 느끼고는 떨리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분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소녀의 앞에서 웃음을 지어보인 나민철은 웃는 그대로의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서지혜 양. 이제 저희 형님께서는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고 계십니다. 저희 흑사회(黑蛇會)가 어떤 단체인지, 설마 잊고 계신 것은 아니겠죠?”


사내의 말에도 서지혜는 그를 노려보고있을 뿐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그것은 그의 말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반론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때문이었다. 대한민국의 미리내 안에서 흑사회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이가 얼마나 될까? 특히 무도관을 운영하는 관주의 입장에서, 그녀가 흑사회의 이름을 모른다는 사실은 말도 되지 않았다.

나민철 또한 진심으로 서지혜가 모른다고 생각해서 물은 것은 아닌 듯, 그녀가 물음에 답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도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잠시간의 침묵이 흐른 후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일주일... 일주일의 시간을 드리도록 하죠. 그 때까지 이 곳의 세간을 정리한 후 우리 흑사회의 품으로 들어오세요. 이런 장사도 안되는 낡아빠진 검도관을 운영하는 것보다도, 훨씬 풍족하고 안온한 생활을 보장하도록 하죠. 하지만 만일 이 제의를 거절할 시에는...”


나민철이 뒤의 말을 잇지 않고 말을 끊는다. 하지만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서지혜는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눈꼬리를 치켜올린 채 나민철을 줄일 듯이 노려보았다.


"...큭."

“후후후. 현명한 판단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툭툭.


나민철은 부드러운 미소로 서지혜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겨주고는 한가로운 걸음걸이로 검도관 밖으로 나가더니 두세발자국 지나지 않아 흐릿하게 모습을 감추었다. 그가 자랑으로 여기는 ‘은신’의 효능이리라. 사라지는 증오스런 사내의 뒷모습을 보며 서지혜는 이를 악 물었다.


‘아빠...’


그녀는 3년 전, 미안한 얼굴로 동생들을 부탁하던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라 눈을 감았다.





작가의말

오타났군요... 2월에서 3월로 고쳤어요 ㅜㅡ 2월에 개학하는 학교 있나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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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 달을 베는 검, 여덟 신선의 꽃(8) +3 13.05.10 1,365 10 8쪽
8 1. 달을 베는 검, 여덟 신선의 꽃(7) 13.05.08 2,152 7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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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 달을 베는 검, 여덟 신선의 꽃(4) 13.04.25 1,901 9 7쪽
4 1. 달을 베는 검, 여덟 신선의 꽃(3) 13.04.25 2,219 6 7쪽
3 1. 달을 베는 검, 여덟 신선의 꽃(2) 13.04.25 2,264 5 6쪽
» 1. 달을 베는 검, 여덟 신선의 꽃(1) 13.04.25 3,071 11 10쪽
1 +2 13.04.24 2,781 8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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