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편 - 3개의 공격로
연재 시간은 월, 수, 금, 토 오후 7시 입니다.
메피스토가 내 바지에서 손을 떼고 난 후에야 겨우 정의의 완드를 꺼낼 수 있었다.
“이걸 보여주려고 했다고! 도대체 무슨 생각들을 하는 겨?”
“아다스님이 말을 이상하게 하셨잖아요. 왜 완드를 바지 속에서 넣어 놓으셨어요?”
“그야 보온을 위해서······ 겠냐? 허리에 차고 있다가 빠진 거지. 상식적으로 좀 생각하자고. 내가 왜 사람들 앞에서 바지를 벗겠어?”
“모르죠. 평소에 하던 짓을 보면 바지를 벗으려고 했다는 쪽이 더 그럴 듯 합니다만.”
이 써글 닭대가리가?
평소에 신뢰를 주지 못한 나의 잘못도 없다고는 할 수 없으니까 한 번 봐준다.
얼굴이 잘생겼다고 넘어가는 거 아니야.
장로 언니들은 실망한 기색이었지만 애써 태연한 척 하고 있었다.
민망함을 못 이기고 얼굴을 감싸 쥐고 있던 릴리스도 왜인지 다소 실망한 기색이었다.
이 정도쯤 되니까 이건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래곤 3시세끼들 DNA에 변태기질이 새겨져 있는 거 같은데?
메피스토가 서랍에서 완드 거치대를 꺼내서 나에게 건넸다.
메피스토 센스쟁이.
역시 내가 선택한 남자답다니까?
“당케. 물건 파는 놈들이 센스가 없어. 완드만 주고 거치대는 안 주더라고. 아, 산 게 아니구나.”
“그 손바닥 만한 완드로 오크를 때려 잡으시려고요?”
메피스토가 정의의 완드를 보고도 나에게 빈정대듯 말했다.
대현자라면 전설의 무기도 빠삭하게 외우고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정의의 완드 아니 광선검을 못 알아보네.
“자 보라구 이건 이름만 완드지 사실은 광선검이야. 그리고 이 망토는 물리 공격을 막아주지. 마법을 배웠는데 왜 자꾸 이런 아이템이 손에 들어오나 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다니까? 오크들의 마법 저항력이 얼마나 높은지 몰라도 광선검 앞에서는 몇 조각나느냐의 문제일 뿐이야.”
내가 의기양양하게 아이템을 자랑해보았지만 메피스토는 안심하지 못하는 듯 했다.
“웬만한 상대라면 모르지만 레지스탕스 오크들은 지옥에서도 살아남을 녀석들입니다. 레지스탕스를 이끄는 오크 공격대의 대장은 불사대마왕이라고 불릴 정도의 실력자입니다. 전투훈련을 받은 적이 없는 아다스님의 검술로는 무리입니다.”
불사대마왕? 언킬러블 데몬 킹?
사기꾼이 수풀에 숨어있을 것 같은 이 느낌은 뭐지?
메피스토가 경고했지만 템빨에 취한 나의 자신감을 꺾을 수는 없었다.
“얼마나 센지 내가 직접 상대해 보면 알겠지. 메피스토 여기서 저 변태 여편네들이나 설득하고 있으라고.”
“아다스님! 드래곤 장로님들입니다. 제발, 예의를 갖춰 주십시오.”
메피스토가 나에게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부탁을 했다.
그래 너무 나갔다.
팩트로 폭행하면 안되지.
메피스토, 드래곤 장로 여편네들 설득하려면 옷을 벗는걸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거야.
“알았다고. 난 그럼 라세티아 왕궁으로 가서 우선 전황을 알아보아야겠다. 릴리스! 가자!”
“네, 아다스님!”
“텔레포트!”
릴리스와 아카네짱을 데리고 라세티아의 왕궁으로 들어왔다.
“어머! 남자가 여기에 왜?”
“하이여~ 텔레포트 포인트가 여기라서 어쩔 수가 없네요. 헤헤.”
왕궁의 텔레포트 포인트가 왜 여시종들의 탈의실인지 모르겠지만 나이스였다.
왕궁으로 들어오자 여시종들이 옷을 갈아 입고 있었다.
물론 상의를 벗을랑 말랑 치마를 내릴랑 말랑 하는 절묘한 타이밍 이었으므로 내가 본 광경은 전체 이용가 기준으로 심의 규정을 완벽하게 준수한 것이었다.
하지만 나 같은 신사는 저렇게 보일 듯 말듯한 게 상상력을 자극해서 더 좋다는 걸 알고 있지.
“헤헤.”
저절로 입가에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것도 두 번 나왔다.
릴리스가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입가에서 웃음끼가 싸악 사라지고 식은 땀이 목덜미에서 등골을 타고 내려갔다.
“릴리스 오크와의 일전을 위해서 지금은 힘을 아껴둬.”
"아다스님도 오크와의 일전을 앞두고 정신 좀 붙드세요."
상황이 급박한지라 다행히 릴리스와 빠르게 합의에 성공하였다.
팀을 하나로 만들어 주는 것은 역시 외부의 적.
릴리스가 눈치채지 못하게 가자미 눈으로 슬쩍슬쩍 곁눈질을 하면서 왕실로 향했다.
쭈뼛쭈뼛 왕실로 들어서자 라세티아 국왕이 반갑게 나를 맞이했다.
“용사님 때마침 잘 오셨습니다. 악랄한 오크의 군대가 라세티아를 침공하여 매우 곤란하던 참이었습니다.”
다행히 국왕은 라세티아가 박살 난 이유가 나 때문인 것은 모르는 것 같았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국왕에게 전황을 물어보았다.
“원래 주인공은 이르지도 늦지도 않게 나타나는 법이죠. 거두절미하고 빨리 오크들을 물리칩시다. 전장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국왕은 머리를 감싸 쥐고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버퍼링 걸린 스트림처럼 버벅버벅 거리기를 반복하더니 뇌에 과부하가 걸렸는지 뽈록 나온 배를 감싸 쥐고 뒹굴 거리기 시작했다.
이 캐릭터는 어딘가가 진짜로 고장 났다고!
"국왕님! 전황이 어떻게 되냐고요?”
내가 사자후를 토한 것도 아닌데 화들짝 놀란 국왕이 배를 감싸 쥔 채로 데굴데굴 구르더니 반대쪽 벽에 부딪혀 버렸다.
벽에 쳐박힌 국왕은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헉, 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국왕을 살펴보았다.
“커어어엉~ 푸르르르르.”
어느 샌가 코까지 골며 숙면을 취하고 있었다.
진행에 방해 되니까 이 캐릭터 삭제 좀.
“비유우우웅.”
그때 왕실의 가운데서 동그란 빛의 원기둥이 생기더니 안에서 군인이 한 명 튀어 나왔다.
텔레포트는 아니고 처음 보는 마법인데 뭔가 익숙한 느낌이었다.
“폐하! 레지스탕스 오크들이 중단 공격로의 1차 포탑을 파괴했습니다. 폐하?”
국왕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 그 군인에게 명했다.
“마침 잘 왔네. 용사님께 전황을 보고하라.”
뭐야, 자는 척 하고 있던 거냐?
모르면 모른다고 말을 하던지 사람을 부르던지 하라고!
초딩도 아니고 그 자리만 모면하면 다냐?
이 3퀴 국왕이 아니라 국회의원 같은데?
라세티아의 군인이 커다란 지도를 바닥에 펼쳐 전쟁의 진행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라세티아의 협곡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라세티아와 오크 족 사이에는 세 갈래의 길이 있는데 구분하기 쉽도록 북쪽부터 탑, 미드, 바텀 진입로라고 부릅니다. 인간과 오크들은 서로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서 각각의 진입로에 수정탑을 두 개씩 세워서 방어태세를 갖추어 놓았습니다.”
듣다 보니 전황이 아니라 게임 튜토리얼이었다.
공격로 사이사이에 막 괴물도 살고 그래서 파랗고 빨간 버프를 줄 것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오크 레지스탕스에 맞서 저희는 오호대장군을 각각의 공격로로 파견하였습니다. 탑에는 마초, 미드에는 관우, 봇에는 황충과 장비 장군를 각각 파견하여 수비케 하였으며, 공격로 사이로 몰래 침투 하는 적을 대비하여 조운 장군을 배치하였습니다.”
야, 중세 판타지 아니었어?
왜 갑자기 삼국지 캐릭터가 나와?
내가 어이 없어 하자 눈치 빠른 군인이 설명에 나섰다.
“라세티아에 싸움을 잘하는 사람이 없어 동방의 용병들을 고용했습니다. 다들 용맹한 맹장들이라 어찌어찌 막고 있었는데 미드의 오크 공격대장 불사대마왕만은 관우 장군으로도 역부족이었습니다. 1차 타워가 함락되었고 2차 타워의 체력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이제 대체 미드라이너냐?
이거 프로게이머가 이세계로 넘어 왔어야 되는 거 아냐?
Commen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