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균열(2)
소환의 날이 밝았다.
전 세계의 각성자 대부분이 어제 있었던 이아준의 발언 이후로 생각이 많은 얼굴들이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균열이 기존의 균열을 뛰어넘는 막대한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지만 상황이 변한 지금은 과연 어떠한 행동을 취해야 이득이 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생각이 많아 질 수밖에 없었다.
“잘 들어.”
사무실에 모인 아준과 일행은 소환을 앞두고 마지막 점검에 여념이 없었다.
“모든 각성자가 소환되기 때문에 한 자리에 모아두지 않을 거야.”
“음... 너 없으면 눈치 안볼 텐데?”
“어제 마력으로 고통에 대한 각인을 시켜놓긴 했는데, 워낙 광범위하다보니 크게 작용하진 않을 거야.”
허벅지에 팔꿈치를 대고 왼손으로 턱을 괸 아준은 일행의 얼굴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겼다. 잠깐의 생각을 정리한 아준은 일행에게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관리부 소속 각성자들에게는 소환 즉시 무리에서 벗어나 관리부 소속끼리 뭉치라고 전파했어.”
“응. 들었지.”
“너희는 그대로 남아.”
“소환된 무리에 그대로 남으라고?”
아준의 예상대로라면 대균열은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일종의 배틀 로얄 매치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때문에 관리부 소속 각성자 외에 아준이 명령할 수 없는 모든 각성자들은 서로 피의 혈투를 벌일 것이 분명했다.
“내 말은 귓등으로 듣는 놈들이 분명 있을 거다. 그런 놈들은 미리 싹을 제거하고 너희가 있는 그룹이라도 최대한 살려 놔. 이왕이면 다른 그룹이랑 계속 합류해서 세를 불리고. 어쨌든 지구의 유일한 전투 인력들이니까.”
아준의 말에 상민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최근 아준 덕분에 많은 성장을 이뤄냈지만 아직까지도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낮았다.
아준은 그런 상민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네가 더블A급이지만 능력치가 균등하고 장비 수준도 월등하니까 트리플A급은 무조건 이길 수 있어. 설사 S급 각성자라도 네가 전투 센스만 제때 발휘한다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어. 네 자신을 믿어라.”
“저, 저는요!”
두 남자의 시선이 동시에 서지연에게 향했다.
“아, 아니 그게 저도 사실 걱정이 좀 돼서...”
“너는 걱정 안 해. 전 세계에 몇 없는 S급 각성자이자 푸른 화염의 주인인 서지연을 누가 헤쳐?”
“나도 이아준의 수호자이자 초월자의 방패라고 불리는데 뭐가 걱정이겠어!”
“솔직히 너는 좀 걱정이다.”
“아니, 아까는 된다며! 충분히 가능하다며!”
“너는 그 입이 방정이야.”
“뭐, 인마? 이놈이 키워준 은혜도 모르고! 너 이 자식 내가 널 얼마나...”
예전처럼 티격태격하는 둘을 보며 서지연은 미소를 지었지만 이내 들려오는 메시지에 굳은 표정을 지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대균열이 생성되었습니다.]
[소환 3초전...]
[2]
[1]
“다치지 말고... 곧 다시 보자.”
[소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에메랄드 빛깔의 투명한 바다를 가진 이름 모를 해변.
그곳에 수백 명의 사람들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아준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일행과 관리부 소속 각성자들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젠장, 이럴 줄 알았어.’
아준의 예상대로 모두가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이 아닌 여러 팀으로 쪼개져서 퀘스트를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이런 방식이라면 아준의 경고가 제대로 먹힐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아준으로서는 서둘러 트릭스터를 처치해야만 했다.
‘시스템. 장소나 퀘스트를 통찰로 볼 수 있나요?’
[통찰은 만물을 꿰뚫어 봅니다. 해보세요.]
아준은 지체없이 통찰로 소환된 장소를 확인했다,
[트릭스터의 연구섬]
면적 : 1,918km²
서식 : 오크, 트롤, 오우거, 와이번 등 모든 종류의 몬스터
지역 : 오크왕국, 거인의 숲, 악마의 둥지, 버려진 성, 숨겨진 마을······
특이사항 : 섬 중앙부의 트릭스터의 연구소, 연구소 지하 던전
-중략-
제주도의 면적을 뛰어넘는 거대한 섬이다.
방대한 크기답게 존재하는 모든 몬스터가 서식하고 있었고, 몬스터의 서식지에 따라 지역이 구분되어 있었다. 각성자가 생존하기엔 최악의 조건이다.
섬에 대한 정보들 가운데, 아준의 눈길을 가장 끈 정보는 섬 중앙부에 위치한 트릭스터의 연구소. 이곳에 트릭스터가 숨어 있을 확률이 높았다.
‘다만, 연구소 지하 던전이 뭔가 께름칙한데...’
아준이 섬의 정보를 보고 생각에 빠져 있을 무렵, 섬에 소환된 각성자들의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아는 사람을 찾거나 경계하면서 섬에 대해 파악하기 시작했다.
“다니엘!”
“어? 돌프렌? 이거 웬일이야. 반가워!”
우연히 지인을 만나 팀을 이루는 각성자들도 있었고,
“너, 너...! 잘 만났다. 이 개새끼야!
우연히 원수를 만나는 자들도 있었다.
팀을 이룬 소수의 인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각성자들은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서로를 경계하며 퀘스트가 시작하기만을 기다렸다.
[소환이 완료 되었습니다.]
[존경하는 각성자님들께서 지루하시기 않도록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대균열 퀘스트]
메인 : 섬을 탈출하십시오.
섬을 탈출하기 위한 세부 퀘스트(1) 을/를 부여합니다.
섬에는 다양한 이종족과 몬스터가 서식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서 드랍되는 하단의 아이템을 모으세요. 아이템을 전부 모은 각성자는 섬 중앙부의 연구소에 제출하고 다음 세부 퀘스트(2) 을/를 부여받습니다.
퀘스트 아이템 : 오크전사의 어금니, 트롤의 피, 오우거의 가죽, 키메라의 털, 트레이크의 숨결이 닿은 나무, 엘프의 눈물······중략
각자에게 각종 물품이 든 가방을 지급합니다.
기한은 없습니다. 트릭스터는 여러분들을 재촉하지 않습니다.
아! 마지막으로... 퀘스트 아이템은 반드시 이종족과 몬스터에게 획득할 필요는 없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죠? 자, 그럼! 출발하세요~
퀘스트가 부여되고 가방이 지급됐지만 아무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준의 눈치를 봐서가 아니다.
사전에 공지된 단 하나의 퀘스트가 아닌 바텀업 방식의 퀘스트였고 난이도마저 무지막지하게 높았다.
혼자 또는 소수의 인원으로는 공략이 불가능한 퀘스트인 것이다.
“미, 미친... 다 죽으라는 소리잖아?”
“에라이, 시발! 이걸 깨라고?”
“이건 한두 명 모여서는 안 돼!”
“그, 그래! 이아준이 여기서 가만히 있으라고 했잖아? 나는 여기 있겠어!”
해변에 있던 각성자들은 좀 더 커다란 팀을 구성하려고 움직이거나 아준의 눈치를 보며 가만히 있는 각성자들로 나뉘었다.
“주목.”
각자의 생존을 위해 이리저리 고군분투하거나 또는 아준을 보며 눈치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는 각성자들을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던 아준이 무리를 향해 낮고 메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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