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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작품등록일 :
2023.05.12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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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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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화 (7)

DUMMY

츠즈즛!


푸른색의 가벼운 스파크가 이찬의 몸 주변에서부터 튀어 오른다.

옅은 스파크는 천천히 이찬의 발 끝부터 아탈란테를, 혹은 그 너머를 겨냥하고 있는 기도에 닿았다.

참아왔던 감정이 폭발해 분출되며 이찬이 폭주할 수 있게 도왔다.


“고유격 발현. 「한계 돌파」. 「중력장」. 「폭풍」.”


《관념》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찬을 보좌하고 도왔던 세 개의 격이 여과없이 명백한 분노를 표출하며 날카롭게 짖는다.

무력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럽다는 전투의 신 ‘라바난’의 주민 무디트의 「한계 돌파」가 이찬의 몸을 보호하는 방어막을 둘러 주었다.

지구의 가장 위대한 과학자 중 하나인 아이작 뉴턴의 「중력장」이 아탈란테를 짓누르며 행동을 억제했다.

이젠 이찬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격 「폭풍」이 이찬을 움직이기 최적의 상태로 재탄생시켜 주었다.

언뜻번뜻 이찬의 뒤로 풍백의 모습이 흘러 지나갔다.


후우우우우웅!


이찬을 서서히 감던 「폭풍」의 바람이 이제 완연한 폭풍이 되어 아탈란테를 덮쳤다.


[크윽!]


거친 신음을 내뱉은 아탈란테가 달빛이 깃든 검을 만들어 그것을 이용해 폭풍을 갈랐다. 하지만 어쨌거나 급조한 검. 제대로 된 위력이 나올 리가 없었다.


[놈들은 아직이냐!]


갑자기 아탈란테가 목이 떠나가라 누군가를 찾았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여기 네 편이 어디 있어?”


「풍화」를 이용해 폭풍 속으로 몸을 숨겼던 이찬이 어느새 아탈란테의 뒤에서 나타나 기도를 힘차게 휘둘렀다.


촤악!


살결이 갈라지는 소리와 피가 마찰하는 소리. 두 강렬한 음계가 맞붙었다.


사실 아탈란테는 강하다.

‘세상의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라곤 한다. 그렇기에 지금 상대적으로 봤을 때 아탈란테는 「아르고 호」와 「칼리돈의 멧돼지 사냥」, 「암곰의 후예」 등의 설화를 직접 겪으며 경험을 쌓았고, 그 경험은 이야기가 되어 지구를 비롯한 여타 행성에 일파만파 이야기로 퍼졌다.

그리고 그것은 상상력이 되었다.

이것이 신들이 존재할 수 있는 원동력이자 일종의 돈벌이 수단이다.

겪은 것을 이야기로 만들어 팔아 상상력을 얻는다.

이는 지구의 ‘작가’와도 꽤나 비슷한 성향을 내비친다고 할 수 있다.


[흐아!]


아탈란테가 만들어 낸 달빛이 이찬의 폭풍 속으로 삼켜진다.


그러나 지금 아탈란테는 극히 한정되어 있는 지구의 허용 상상력 때문에 본 힘을 낼 수 없다.

물론 그것은 이찬도 마찬가지였다.

허나 이찬은 이런 지구의 허용 상상력에 이미 익숙해진 상태임과 더불어 허용 상상력의 한계점이자 허점을 완벽히 꿰뚫은 상태였다.

허용 상상력의 핵심은.


“일어날 수 있는 일.”


《관념》에서는 무슨 일이든지 일어날 수 있다.

하늘을 날고, 괴수가 들이닥치고, 신이 존재한다.

하지만 지구는 다르다.

지구에서 하늘을 나는 인간, 괴수의 출현, 신의 존재 사실화 따위의 것이 존재한다면 세상은 불결한 상상력으로 가득 찰 것이다.

그렇기에 지구는 상상력 자체는 무궁무진하지만 허용 상상력이 바닥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찬은 그 허점을 완벽히 이용할 줄 알았다.


“폭풍은 지구에서도 흔한 현상이지.”


아무리 허용 상상력이 늘어난 지구라 해도 ‘달빛이 깃든 검을 휘두른다.’ 라는 문장이 성립되기는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관점에서 이노는 명백히 규격 외의 존재임이 분명했지만.


“그 생각은 너무 일러.”


지금은 당장 눈 앞의 적을 쓰러뜨리는 데만 집중해야 한다.

어느새 폭풍은 하늘을 뚫을 만큼 커져 닿는 모든 것을 삼키고 있었다.

그리고 아탈란테의 달빛도 그중 하나였다.

아탈란테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폭풍을 무작정 피해 다녔다.


“피해 다니는 것만이 방법은 아닐 텐데?”


물론 그것을 가만히 둘 이찬은 결코 아니었다.


콰앙!


폭음과 함께 흙먼지가 일어 시야를 가렸다.

달빛을 발현해 주변을 밝힌 아탈란테의 표정은 어쩐지 여유로웠다.

전혀 여유로울 상황이 아닌데도 말이다.

설상가상 전투를 끝마친 이노의 지원까지 도달했다.

공룡들이 포효를 내지르며 아탈란테에게 달려들었다.

그에 따라 이찬도 폭풍을 없애 이노와의 호흡을 맞췄다.


타탓!


이노의 가벼운 발소리가 이찬의 옆으로 다가왔다.


“어떻게 됐어?”


이찬이 물었고, 이노는 답이 없었다.

이찬은 불평을 하지 않았다. 이것이 이노의 대답이었으니까.

그것도 긍정의.


“느껴지지. 않아.”


이노가 뒤를 가리켰다.

험준하던 산세는 넷의 전투 여파로 인해 평지나 다름 없을 정도로 깎여 버렸다.

이노가 가리킨 곳은 총 두 군데.

왼쪽은 가스페르가 아페토르를 맡으러 갔던 곳이었고, 오른쪽은 아윤이 시링크스와 혈투를 벌이던 곳이었다.

게다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이노의 말은.


“상상력이?”


둘의 고유한 상상력의 파랑이 멎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도망 갔거나. 의식을 잃었거나.”


이찬도 이런 식의 상상력을 파악하는 것에는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지만 이노에겐 말로 이야기하기 힘든 무언가가 있었다.

이 상상력이 뒤섞이고 격이 서로를 겨누는 상황에서 특정 인물의 고유한 상상력을 느낀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이노는 이를 쉽게 해냈다.


“그럼 역시 후자겠지.”


가스페르나 아윤이 도망을 계획하고 또 그것을 실행했다면 그들이 맡던 아페토르와 시링크스가 이곳으로 즉시 튀어 올 것이 뻔했다.

하지만 그들은 오지 않았고.


“적들의. 상상력도 끊겼어.”


이찬은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사실 정말 위험한 장소는 지금 이곳이었고, 종료된 전장만큼 안전한 곳은 없었다.


“빨리 해치우자.”


어느덧 공룡들도 힘을 잃어 하나둘 쓰러졌다.


“온다.”


이노의 경호성이 이찬을 다시 한번 긴장으로 몰아넣었다.

긍정적인 신호였다.


콰앙!


허용 상상력이 폭주했다.

아탈란테는 시간이 지날수록, 얻어 맞으면 얻어 맞을수록 허용 상상력의 증가로 인해 격의 위력이 상승했다.


슈우우우욱!


아탈란테가 급조한 검이 점점 제대로 된 형상을 갖추며 공기를 찢으며 달려들었다.

이찬은 그것을 받아 치기 위해 기도를 들어 종으로 그었다.


카앙!


날카로운 파찰음과 함께 아탈란테의 검이 정확히 두 동강이 나 버렸다.

산산조각으로 부서진 것도, 쳐내진 것도 아닌 두 동강.


“너무 얕보였네.”


이찬이 전신에 격을 집중하고 아탈란테에게 달려들었다.

그녀에게 달려들면 달려들수록 뒤엉킨 피비린내가 이찬을 덮쳤다.

이찬도 여러 《관념》의 주민들을 살생했다고는 하나 아직도 피비린내는 적응이 되지 않았다.

마침내 아탈란테의 바로 앞에 당도한 이찬이 망설이지 않고 검을 찔러 넣었다.


촥! 카가각!


살결을 파고드는 검의 소리가 아니었다.

이찬의 기도와 비슷한 강도의 무엇과 맞부딪히는 소리.

그와 동시에 꽤나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 이노의 경호성이 들려왔다.


“피해!”


이찬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해와 행동은 다른 말이었다.

이찬이 이해하기도 전에 몸은 이미 기도를 놓고 하늘에 떠다녔다.


사라락.


다시 기도를 회수한 이찬이 그제서야 아래를 내려다보며 상황 파악과 동시에 이해를 시작했다.


그으어어어··· ···.


“좀··· ···비?”


좀비(Zombie)

지구에 실재하지 않는 존재 중 가장 유명하고, 또 생겨날 수 있는 존재.

그렇기에 좀비에게 주어진 ‘허용 상상력’은 지구에 존재하지 않는 생명체 중 가장 막대하다.

하지만 그 수가 너무 많지 않은가.


“눈으로 슬쩍 봐도 300이 넘어··· ···.”


[눈치가 느린 행동자여! 이 군세를 완벽히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어서 내게 와 얌전히 생포당하라!]


아탈란테가 떠나가라 이찬에게 소리쳤지만 이찬은 가볍게 무시해 버렸다.

그의 머릿속엔 오로지 좀비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내가 휘두르는 기도를 막은 이상 300이라는 숫자는 그저 수에만 그치지 않아.’


하나하나가 영웅(영웅<하신<지신<천신<창세신=주신)에 필적하는 상상력과 격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르테미스나 아탈란테에게 좀비와 관련된 이야기는 없을 텐데··· ···.”


이찬의 지적은 정확했다.

현재의 신들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현실》에 보급하지 않는 한 새로운 이야기가 자동으로 생겨나지는 않는다.

그리고 작금의 고위급 신들은 이제 새로운 이야기 만들기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저 남의 이야기를 보고 즐거워할 뿐.

생산자에서 소비자로, 작가에서 독자로 넘어간 것이다.


“일단 반 정도는 줄여도 될 것 같네.”


하지만 그렇다고 이찬이 패닉에 빠지고 당황할 것이라 생각했다면 그것은 엄청난 오산이었다.


기이이이잉!


이찬이 집중하자 ‘기도’의 끝에 상상력이 집주했다.

이는 점점 기형적으로 변했고, 이찬이 앞으로 내지르는 자세를 취하자 상상력은 앞으로 내질러지며 닿는 모든 것을 파괴해 버렸다.

그리 하여 그 힘이 닿는 곳은 잠깐 동안 진공 상태가 되었고, 먼지는 씻은 듯 사라졌다.

좀비라고 다르지 않았다.

격에 닿은 좀비들이 바스러지며 생명의 불씨를 잃어갔다.


“이것도 바람이야.”


격은 그저 수직으로 뻗었을 뿐이지만 좀비의 반은 이미 형체도 없이 사라져 승천하고야 말았다.

슬슬 아탈란테에게도 절망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때.


타다다닷!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아탈란테의 어깨에 올랐다.

자세히 보니 쥐였다.

상상력이 난무하는 전장에 난입할 만큼 강한 저항력을 가진 쥐는 세상에 하나뿐이었다.


“서생원··· ···!”


서생원의 쥐가 속삭이는 말을 들은 아탈란테가 입꼬리가 찢어져라 웃었다.


[하하하! 아둔한 녀석. 감지가 너무 느리구나.]


이찬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결국 이해하게 되었다.


[찾아올 테면 찾아 오거라. 내 반갑게 맞이하여 줄 테니.]


그 말을 끝으로 아탈란테와 서생원을 달빛 속에 저물어 도망가 버렸다.

이찬은 정신을 차리고 바닥으로 내려와 이노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전장에 파견한 공룡에게서 교신을 받은 이노의 눈이 답지 않게 떨렸다.

덩달아 이찬도 불안해졌다.


“무슨 일이냐니까!”


이찬이 언성을 높였고, 이윽고 이노가 이찬을 마주보곤 충격적인 이야기를 밖으로 뱉었다.


“아윤이랑. 활잡이. 사라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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