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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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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2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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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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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화 (4)

DUMMY

고요함이 맴돈다.

고요하지만, 결코 조용하지는 않다.

미친 듯이 들려오는 폭발음과 피비린내. 그리고 눈에 담기는 충격적인 광경.

글로만 보아도 결코 고요하지는 않으나 고요하다는 단어 이외는 이 광경을 설명할 방도가 없다.

두 존재가 천천히 돌며 원을 그린다. 마신 벨리알의 애병을 양손에 그러쥔 아윤과 달빛을 한껏 머금은 갈대를 오른손에 들고 흔드는 시링크스가 서로를 파악하고 있었다.

달빛을 발하기 위해 빛을 빨아들여 주변을 어둡게 하는 시링크스의 갈대와 어둠을 표출하기 위해 주변을 어둠으로 물들이는 코셰흐샤비브가 각자의 정체성을 뽐냈다.

그들이 대치 중인 이곳은 그야말로 격전의 중심지. 화살이 빗발치고 인간의 것이 아닌 존재들의 피가 튄다.


태풍의 눈에 관한 이야기를 아는가?

태풍의 눈은 태풍의 가운데로써 이곳에는 바람이 훨훨 불어오기는커녕 맑게 갠 무풍지대를 말한다.

그리고, 지금 상황을 대변하는 말이기도 하다.


[빠르다.]


아윤에 대한 시링크스의 감상이었다.

시링크스는 무수히 많은 갈대를 소환해 수로 밀어붙이는 일명 물량으로 싸우는 신.

무수히 많은 갈대인지라 보통의 존재는 갈대를 쳐내는 일에만 급급해 종국엔 그녀에게 닿지도 못하고 소멸한다.

하지만 아윤은 달랐다.

그녀는 갈대를 쳐내는 대신 그녀의 빠른 속도와 훌륭한 창술로 단시간에 그녀에게 당도해 유효타를 먹인 것이다.

허나 빠른 속도나 훌륭한 창술만으로는 절대 시링크스에게 닿을 수 없다.

그 핵심은 검은 안개에 있었다.


“고유격 발현. 「암흑 안개」.”


일전에 시링크스에게 무수히 많은 유효타를 먹인 그 격.

그 격이 다시 한번 코셰흐샤비브에서 스멀스멀 새어 나왔다.


[이런 개같은!]


시링크스가 요정답지 않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격을 발현했다.


[고유격 발현! 「달을 섬기는 갈대」.]


지반에서 시간을 배속한 것만 같은 갈대가 무수히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일대는 갈대밭이 되었고, 그 갈대는 하나하나가 시링크스의 무기였다.


“그렇게 욕지거리를 뱉고도 네가 요정이야?”


모습을 숨긴 아윤의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벨리알의 고유격 「암흑 안개」는 주변을 어둠으로 물들일 뿐만 아니라 시전자도 어둠에 동화되게 하여 모습을 숨기는 역할도 한다.

덕분에 시링크스는 사방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정신이 나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후우우웅!


갈대를 휘두르는 소리라고는 전혀 믿기지 않는 시링크스의 갈대가 어둠을 갈라 잠깐의 빛을 만들었지만, 이내 다시 어둠으로 덮였다.

오히려 더 진해졌다. 하지만 시링크스는 이부분에서 절망 보다는 가능성을 느꼈다.

시링크스가 갈대밭을 일제히 휘둘렀다.

그러자 일말의 불빛이 어둠 속으로 침투했다.


[아직 좀 허술하네.]


후우웅!


시링크스가 무수히 많은 갈대밭을 무수히 많이 휘둘렀다.

빛과 어둠이 난무하는 격전의 중심지에서 빛이 조금씩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내가 가만히 보고 있을 거 같아?”


하지만 아윤은 안타깝게도 망부석이 아니었다.


콰아아아!


범람하는 어둠이 빛을 막다 못해 갈대를 부식시켰다.

그 단단하던 갈대는 이제 땅의 거름이 되어 지반에 스며들었다.


[대처가 너무 늦어.]


화아아아!


시링크스의 말 그대로 대처가 늦어버렸다.

때문에 아윤이 발생시키던 어둠이 무색하기 짝이 없게 「암흑 안개」가 공중으로 분해되었다.

수차례의 어둠을 헤친 갈대들이 모은 빛이 어둠을 흔적도 없이 소멸시켜 버린 것이다.


“당혹스럽네.”


약간의 당혹을 감추지 못한 아윤이었지만 싸움은 뭐니뭐니 해도 기세다.

이미 상처나 격의 차이가 과하게 벌어진 지금 시링크스가 아윤을 이길 방법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거의 남지 않았다라··· ···.]


시링크스의 눈이 번뜩였다.


[남아 있긴 하다는 뜻이잖아.]


시링크스의 주위로 갈대가 빼곡하게 들어찼다. 웬만한 존재가 보기에도 이 현상은 결코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허나 안타깝게도 아윤은 ‘웬만한 존재’에서 조금은 벗어나 있는 존재였다.


“확실히 약해.”


개별적인 갈대에 깃든 상상력이 직전과 달리 감소한 것이 확연하게 느껴졌다.


“질보단 양이라는 건가?”


이는 아윤에겐 절대적인 호재였다.

범위 공격이 용이한 아윤에게 달려드는 벌레만 못한 물량 공세는 코셰흐샤비브의 횡베기 한 번에 흔적도 없이 소멸할 것이었다.

시링크스는 멈추지 않았다.

분명 알고 있다. 여러 경합을 맞춰본 이들은 아군이 아니더라도 어렴풋이, 어쩌면 동료나 아군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갈대는 이제 양을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불어났다.

양이 불어나면 불어날수록 그 갈대는 더 이상 특별한 격이나 상상력이 들어 있는 갈대라고 보기 힘들었다.

동네 노인도 벨 수 낫 하나만 있다면 다 베어 말려 활용할 수 있을 정도.


사라락.


이제는 달려들 상상력조차 없는 듯 내려앉을 뿐이었다.


“시야 가리기야? 그럼 성공한 것 같은데.”


확실히 비처럼 쏟아지는 갈대를 보고 있자니 조금 어지러운 느낌도 분명했다.


[지금.]


시링크스가 의문의 신호를 보냈다.

동시에 저 멀리서 명령을 대기하는 듯 보이던 하신들이 풀려나 전장에 합류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 이노의 공룡, 케르베로스가 소환한 동족인 늑대 등. 피아식별 능력을 분실한 채 닥치는 대로 죽이기 시작했다. 이성을 잃은 듯 말이다.

그런 신들에게 쏟아지는 조금의 격이 깃든 갈대는 좋은 먹잇감일 뿐이었다.

게다가 그 중심에서 그들은 전부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상력이 느껴졌기에 더욱 흥분해 달려들었다.


“으악! 뭐야?”


일전에 서술했다시피 아윤의 시야는 가려진 상태. 그런 정신없는 시야 속에서 설령 그들의 격을 느꼈다 해도 대처하기란 쉽지 않았다.


카가각!


먼저 세 명의 신이 아윤에게 달려 들어 아윤을 밀어냈지만 이딴 이성 잃은 머저리들에게 쉽게 목을 내어줄 아윤이 아니었다.


후우웅!


코셰흐샤비브를 이용해 깔끔하게 셋의 목을 베어낸 아윤이 정신을 차리고 적의 격을 투과했다.

각기 다른 격이 열넷. 아마 이들의 전력인 것 같았다.


“아직 무가치한 존재는 사용할 수 없어.”


아윤의 주력 격이자 벨리알의 고유격인 「무가치한 존재」는 허용 상상력을 너무 크게 요구하기에 그 일말도 발휘하기 힘들었다.

가만 보면 그랬다.

범위를 아무리 좁혀도 「무가치한 존재」는 범위로 발현되는 격이고, 상대가 가진 격의 위력과 상상력의 양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한 장점을 가지는 것이다.

눈을 잠시 감았다 뜬 아윤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가자.”


방금 말했듯 저 병력이 이들의 전력이다.

다른 말로 바꾸면 이 열넷의 신을 소멸시킨다면 전투가 한결 편해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윤은 이를 알고 있었고, 그랬기에 거리끼지 않았다.


콰아아앙!


지반을 강하게 내리쳐 뛰어오른 아윤이 몰려드는 신을 향해 창을 던졌다.

창에 찔려 꼬챙이가 된 신 둘이 추락했다.

하나는 사자의 형상을 하고 있었고, 하나는 안면에 있어야 할 부분이 없는 귀신이었다.

아윤은 어둠을 한껏 머금은 주먹으로 또 하나의 신을 처리했고.


[크아아악!]


그녀는 다시 창을 회수했다.


[키에엑!]


벌레의 형상을 한 신이 날개를 퍼덕이며 아윤에게 달려들었다.

무시무시한 이빨이 아윤의 목을 뜯으러 달려왔지만 뜯기는 건 아윤이 아니었다.

목을 향해 창을 찌르자 거의 파쇄되며 신이 소멸했다.

본디 찌르기 위해 만들어진 무기답게 휘두르는 것의 배나 되는 위력이 생성되었다.


“크핫!”


날카로운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결코 이 싸움이 쉽지 않음을 방증하기도 했다.

어느새 마지막 신이었다.

20%의 격이라고는 해도 신은 신. 만만히 볼 상대는 절대 아니었다.



“허억. 허어억!”


간간히 아윤을 돕기 위해 오는 공룡들이 아니었으면 벌써 아윤은 시체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윤은 또 한 가지 잊은 것이 있었다.

그녀의 주적. 시링크스가 사라진 것이다.


[역시 관념을 헤집고 간 녀석이네.]


목소리는 바로 뒤에서 들려왔다.

빠른 반응으로 후방을 향해 횡베기를 시전했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제서야 아윤은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어두워졌어?”


일전엔 분명 낮이었다.

낮이라기 보단··· ···, 아침이었다.

대략 열한 시 정도의 아침.

그럼에도 아윤이 보고 있는 건 분명 깜깜밤중이었다.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서서히 바뀐 건가? 아니면 바로? 어떻게 눈치를 못 챘지?’


깊은 고뇌에 빠지고 말았다.

지금이 전투 중인 것도 잊은 채 말이다.


[어때? 조금 심란하지 않아?]


시링크스의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아윤이 펼쳤던 「암흑 안개」와 굉장히 유사한 격인 듯 느껴졌다.


후우우웅!


아윤이 창을 휘둘러 시링크스의 위치를 찾으려 애썼지만 헛된 행동일 뿐이라는 듯 시링크스가 비웃었다.


[너무 거만하지 않아? 자기는 어둠 속에 숨어서 못 찾게 해 놓고, 내가 달빛에 숨으니까 찾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말이야.]


아윤의 정신이 점점 흐려지고 있다.

과열된 전투와 상상력의 소모 때문이었다.


[이런, 벌써 쓰러지면 곤란한데. 아니지 오히려 좋은 상황인 것 같기도 하네.]


아윤이 버티기 위해 창을 땅에 박아 넣고 정신을 붙잡았다. 하지만 버티면 버틸수록 역효과가 발생할 뿐이었고.


[쓰러져라.]


시링크스의 불쾌한 목소리를 끝으로 아윤의 정신이 끊어졌다.

아윤의 들은 마지막 소리는 세 늑대의 아가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우렁찬 울음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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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성지화 (9) 24.03.08 2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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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성지화 (7) 24.03.03 25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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