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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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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작품등록일 :
2023.05.12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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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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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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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3)

DUMMY

116화 경계(3)

“여긴··· ···.”


이찬이 익숙한 백원을 거닐었다.

사박사박 풀 밟는 소리가 고저없이 일정하게 귀에 스며들었다.


그르르··· ···.


백호양은 이 장소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연신 그르렁댔다.


저벅.


한창 초원을 걷던 이찬이 이질감을 잡았다.


‘초원이 아니다.’


당장 상체를 숙여 바닥의 재질을 파악한 이찬이 그리운 표정을 지었다.


“간만입니다.”


이찬이 혼잣말을 하자 바닥이 준동하며 떠올랐다.


[참 빨리도 오는구나.]


“사실 지금 온 것도 제 의지가 아니긴 합니다만.”


[내가 불렀다. 할 말이 너무 많은 관계로.]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하늘로 승천한 백룡이 제 옥색의 눈동자를 크게 부라렸다.

이찬이 힘주는 소리를 내며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아무리 성장했다지만, 이 압도감은 어쩔 수가 없네.’


어마어마한 허용 상상력이 지구에서 풀리며 풍백이 하림하고 주신이었던 차크몰까지 하림해 격전을 벌였지만 백룡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이찬은 백룡의 성향을 알고 있다.

싸움을 기피하고, 귀찮음이 많다.

그랬기에 나오지 않았을 가능성도 없진 않았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아무래도 허용 상상력이 부족했기 때문임에 이견이 없었다.


[할 말이 많아 네 몸에 하림하려 몇 번이고 시도했지만 매번 퇴짜를 맞더군.]


“그건 당신이 너무 강해서 그렇습니다.”


[흥. 나도 잘 알고 있다.]


‘묘하게 열 받네.’


[열 받는다니. 타고난 걸 어떡하나?]


이찬이 생각과 감정이 일부 공유된다는 걸 잠깐 까먹었다.


“더 열 받네요.”


[기가 세졌군.]


“칭찬으로 받죠.”


담소를 나누던 이찬이 문득 이질감을 느꼈다.


“풍백은 어디 계십니까?”


백원에 오면 언제고 자신을 맞이하던 풍백이 없어졌다.


‘어쩐지 허전하더라니.’


[잠깐 자기 성지로 갔다.]


“그건 그렇고, 왜 절 부르셨습니까?”


[《관념》으로 가려거든, 저 영물을 이곳에 놓고 가라.]


“영물이라 하심은?”


이찬의 시선이 품에 안긴 백호양에게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백호양은 이곳에 온 이후로 경계를 절대 풀지 않았다.


[넌 저것이 뭔지 알지 못해.]


“그렇긴 합니다만··· ···.”


[그럼 묻겠다. 저것이 뭔지 알고 집에 들인 것이냐?]


“평범한 동물이 아닌 것쯤은 인지하고 있었습니다만··· ···.”


이찬이 뒷말을 흐렸다.

제 스스로도 이것이 뭔지 파악하기 힘들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후우우우웅.


웅혼한 격이 백룡을 기점으로 폭발해 이찬과 백호양을 덮쳤다.


카가가강!


나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은 기도가 허공에서 생성되며 이찬의 품을 향해 쇄도했다.

이찬은 황급히 몸을 움직였다.


“뭡니까?”


백룡은 말없이 있을 뿐.

움직이는 것은 기도 쪽이었다.


‘풍화는 쓸 수 없어.’


풍화는 자신 이외의 생명체를 풍화시킬 수 없다.

저 기도는 필히 백룡이 움직이고 있는 것임은 분명했다.


‘전승에 따르면, 백룡은 쇠를 운용한다. 게다가 기도에는 백룡의 일부가 박혀 있으니, 내 통제를 벗어나는 것도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야.’


이찬이 날아드는 기도를 피할 뿐 반격은 하지 않았다.

그 덕에 백원은 기도와 이찬의 격, 백룡의 상상력에 의해 난자당하고 있었다.


쿠구구국.


그때, 땅이 솟아오르며 이찬의 발목을 붙잡아 이동을 방해했다.

결속된 대지가 이찬의 힘을 견뎠다.

때문에 이찬은 날아드는 기도를 피할 수 없었고, 결국 이찬은 눈을 질끈 감았다.


기이잉.


[봐라.]


백룡이 이찬의 눈을 뜨게 했다.

그의 눈엔 해괴한 광경이 담겼다.

날아드는 기도는 모종의 이유로 이찬의 가슴팍에서 멈춰 있었다.

그리고 그 모종의 이유가 이찬의 품 안에 있었다.


“백호양··· ···?”


[네가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저 영물은 신이다.]


“이미 예상 범주였습니다.”


[이것도 예상했을까?]


백룡이 발출하는 상상력이 강해지는 것이 몸소 느껴졌다.


“크윽.”


팽팽하게 대치하던 기도가 천천히 이찬의 가슴팍을 향해, 백호양을 향했다.

이찬이 힘을 쥐었지만 묶인 발은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때.


기이잉.

파앙!


기도가 중심을 잃고 저 멀리 외딴곳으로 날아갔다.

중압감이 유지되는 것으로 보아 백룡의 힘이 다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는 건.


[보았나?]


백룡이 자신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했다.


[네가 정자세를 취하기도 힘든 이 중압 속에서 저건 내가 조종하는 검을 날려 버렸다. 내 일부와 내 힘이 깃든 저 물건을 말이다.]


이제서야 이찬은 백룡이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 무엇 때문에 이리 백호양에게 박해를 했는지 이해되었다.


“제가 엄청난 걸 키우고 있었다는 거네요.”


[맞다. 이놈은 백호. 네가 많이 들어봤을 사신수 중 하나다.]


사신수(四神獸).

이건 아무리 신화와 이매망량에 관심이 없다 해도 모를 수가 없는 이야기다.

북쪽의 현무.

동쪽의 청룡.

남쪽의 주작.

마지막, 서쪽의 백호.


“사신수··· ···.”


오좌로는 욕수(蓐收).

오행에서는 쇠와 금.


그 전설의 백호가. 지금 이찬의 품에 안겨 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놈은 지금 기억을 잃었다. 방금 내 격 때문인진 몰라도 격과 상상력을 일부 해방하긴 했지만 나조차도 기억하지 못하는 걸로 보아 무슨 일이 있었던 건 맞는 것 같다.]


이찬이 백호양을 아래로 내려다보았다. 이찬이 무슨 행동을 하건 말건 백룡은 자신의 말을 이었다.


[이제 내 요구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알겠나?]


이찬이 백룡을 마주보았다.


[이런 놈이 《관념》으로 나간다면 십중팔구 신들의 이목을 끌 거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말이지.]


다른 누구도 아니고 이찬이었기에 저 경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심지어 저 백호가 기억과 격을 잃고 저리 되었다. 이건 결코 그냥 넘길 사항이 아니야. 과하면 방위의 수호자끼리의 경계가 무너질 수도 있다.]


“경계라 함은··· ···?”


[너는 《관념》에서 사신수끼리 관계가 어떻게 된다고 생각하나?]


잠깐 고민하는 듯 말이 없던 이찬이 정리된 생각을 입으로 뱉었다.


“그래도 같은 계열의 신이고, 역사를 오래했으니 좋진 않더라도 결속력은 있지 싶습니다.”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지. 하지만 전혀 틀렸다. 놈들은 서로를 동료라고 생각하지 않아. 서로를 헐뜯고 위로 올라가려 한다.]


“그 정도입니까?”


[물론. 놈들도 긍지가 있고, 자존심이 있으니 직접적으로 공격은 하지 않는다. 지금 저 백호만 봐도 사신수한테 당한 건 아니다. 다른 외부 세력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


“그럼··· ···.”


[만약이지만, 누군가 암계를 가지고 타격을 입힌 거라면··· ···.]


“지금 《관념》이 정상적이지 않을 수도 있겠군요.”


[그래. 다만 나도 《관념》의 소식을 못 들은지 꽤 되어서 확신할 수는 없다.]


“제가 백호양을 데리고 《관념》으로 가면··· ···.”


[암계 세력이 너를 찾아오겠지. 은거 중인 백호도 찾아내는 마당에.]


이찬이 손을 턱에 가져다 대고 잠잠히 있었다.


[이건 조금 다른 얘기이긴 하다만··· ···.]


백룡이 사신수와 관련한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


[태초의 사신수는 다섯이었다.]


백룡의 몸이 유려한 선을 그었다.


[북현무, 동청룡, 서백호, 남주작. 그리고 중앙에 기와 린.]


기린(麒麟).

역시나 유명한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그중 뛰어난 감각을 보인 건 단연 기린이었다. 머릿수에서부터 차이가 나기 때문은 아니었다. 타고난 힘이 압도적이었기 때문이지.]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기린은 영수 중에서도 영수로 추앙받는 존재. 방위 하나를 다스리는 다른 영수들보다 중앙을 수호하는 기린의 전승이 더욱 활발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모두 주신 혹은 그 이상의 상상력과 격을 갖추었다고 평가받는 영수들 중에서도 기린은 가장 먼저 세계의 너머로 향했다.]


「세계의 너머.

자세히 공개되어 있지는 않을뿐더러 신들마다 부르는 명칭이 다르기에 극비사항으로 손꼽히는 개념이다.

흔히 대부분 《관념》의 너머를 칭하는 말이다.」


극비사항이라는 전제가 붙어서 그런지 「오디오 북」마저 아는 것이 거의 없는 듯 보였다.


[기린이 승천하는 것을 본 남은 사신수는 몇백 년, 몇천 년을 세력 다툼하는 것에 힘썼다. 다른 사신수의 상상력과 격을 가지고 승천하려는 것이 그 이유였지. 하지만 결국 단신 대 단신이었던 영수들의 싸움은 서로 상처만 남기고 종전되었다. 이후 여러 제약이 생겨나며 그런 악몽은 되풀이되지 않았다.]


“그걸 제게 말씀해 주시는 이유는··· ···.”


[사신수의 균형이 무너진 지금. 제2의 사신수 전쟁이 발발할 수도 있다.]


“여파가 어마어마하겠네요.”


백룡이 침묵했다.


“하지만 신들이 가만히 있을까요? 제 성단과 터전이 공격받고 파괴될 텐데.”


[움직이는 건 천신까지일 거다. 주신이나 창세를 연 놈들은 절대 개입하지 않아.]


“왜죠··· ···?”


[어차피 끝에 가까워졌기 때문이지.]


끝이라 하면 분명 세계의 너머를 칭하는 말일 터였다.


“결승선이 코앞인데 굳이 뒤에 따라오는 같은 팀을 도울 이유는 없다는 거네요. ‘내가 우승하면 우리 팀도 기쁘겠지’ 같은 느낌으로요.”


백룡이 이번엔 긍정을 표했다.


“그럼 알겠습니다.”


이찬이 결단을 내렸다.


“백호양을 데려가겠습니다.”


백룡이 당황하여 순간 상상력을 조절하지 못했다.

덕분에 발출된 상상력이 이찬을 덮쳐 멀리 날려 버렸다.


“크학!”


[내 말을 어디로 들은 것이냐. 지금 《관념》으로 가면··· ···.]


“그래서 같이 가는 겁니다.”


[뭐라?]


“만약 그 세력들이 저와 백호양의 기류를 감지하면 그곳으로 올 게 분명하고, 그럼 전 그곳에서 놈들의 정체를 파악하고 그놈들을 부수면 되는 겁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냐?]


“지금까지 봐오셨지 않습니까.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여차하면 여기로 다시 오면 되지 않습니까?”


결국 백룡마저 두 손 두 발 들었다.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갑니다.”


이찬이 마침내 《관념》으로 향하는 포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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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경계 (6) 24.04.03 18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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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성지화 (13) 24.03.17 19 0 12쪽
111 성지화 (12) 24.03.15 19 0 11쪽
110 성지화 (11) 24.03.13 22 0 11쪽
109 성지화 (10) 24.03.10 2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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