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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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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라프
작품등록일 :
2023.05.12 23:43
최근연재일 :
2024.09.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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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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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화 (5)

DUMMY

마주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릴 것만 같은 늑대의 머리가 좌우로 흔들거린다.

격과 상상력이 담겨 있음과 동시에 생명을 부여받은 존재는 여타 병장기보다도 월등히 높은 위압감과 위력을 뽐낸다.

하지만 지금 늑대에게선 무엇도 느낄 수 없다.

《관념》의 웬만한 존재는 가지고 있는 기본 소양인 위압감부터, 저만한 존재에게서 느껴지지 않는 것이 불가능한 공포까지.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

《관념》에서 이것은 소멸, 죽음을 의미한다.

자세히 또 다시 보니 늑대는 완전한 형태가 아니었다.

목만이 뜯겨 나가 공룡의 아가리 사이에서 덜렁거릴 뿐이었다.

그리고 그 공룡의 머리에는 세상만사 무관심인 듯 보이는 이노가 무심한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르르르··· ···.]


건너편엔 전대미문의 마수. 지옥의 파수견 케르베로스가 이노를 향한 적대심을 만천하에 드러내고 있었다.

케르베로스는 여타 다른 신들과는 확연한 차이점이 존재했다.

본능이 이성을 이긴 경우.

신은 원초적으로 이성을 우위에 둔다.

이후에 여러 과정을 거치며 본능이 이성보다 우선시되는 아주 드문 경우 또한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드문 것 중에서도 극소수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다.


본능이 이성보다 절대적으로 우선시되는 경우.

케르베로스였다.


[크와아아아아!]

[크와아아아아!]

[크와아아아아!]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세 머리의 울음소리가 가공할 위압감을 자아냈다.

다른 존재였다면 당혹이나 두려움. 하다못해 떨림 정도는 느꼈을 테지만, 케르베로스의 앞에 있는 사람은 겨우 그런 하울링에 벌벌 떨 만큼 약하지 않았다.


“본능··· ···.”


이노는 직감을 활용해 그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었다.

이노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역시나 세 개의 머리였다.

왼쪽의 머리는 분노한 듯 씩씩댔고 가운데 머리는 맛있는 음식을 발견한 듯 기분 나쁜 살인적인 미소를 짓고는 침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다. 마지막 가장 오른쪽 머리는 피곤한 것 같은 무심한 눈과 얼굴을 하고 있었다.


“거만해.”


이노가 신호를 주자 각양각색의 공룡이 일제히 케르베로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어우우우우!]


왼쪽 머리가 울부짖자 늑대들이 공룡에 하나같이 들러붙어 공룡을 제지했다.

모두가 케르베로스의 왼쪽 머리처럼 분노한 상태의 늑대들이었다.


크와아아아!


살점이 뜯긴 공룡이 목이 떠나가라 소리쳤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공룡 하나에 수 마리의 늑대.

상당한 격이 깃든 이들을 공룡이 상대하기엔 너무 벅찼다.

허나 공룡은 최대한 분전했고, 이내 지면엔 공룡과 늑대의 나동그라진 사체가 가득 메워졌다.


“생각보다. 약해.”


[그르르르?]


케르베로스의 첫 번째 머리가 흔들렸다.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뜻이었다.

단순 손익으로만 따져도 희생된 공룡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 케르베로스의 의문도 이해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이노. 방심한 마음가짐으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상대였다.

티라노의 머리 위에서 일어나 선 이노가 오른손을 쭉 뻗어 손등을 보이게 한 다음 그것을 뒤집었다.

그러자 땅이 요동치며 압도적 진동을 뿜어냈고, 이노는 이에 그치지 않았다. 뒤집은 손을 그대로 주먹 쥐었다.

이윽고 땅에서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가 화산이 분화하듯 솟아올랐다.

솟아오른 것은 일전에 페케니아와 공룡 사이의 전쟁. 일명 페공전쟁에서 최흉의 적이었던 그것이었다.

모든 공룡의 일부분을 떼다 붙인 그것.

이를 이노가 부르는 이름은.


“키마이라(Chimaera).”


보다 익숙한 이름으로는 키메라.

이노가 빠르게 키마이라에게 옮겨 탔다.

압도적인 덩치로 뿜어내는 압도적인 울음 소리가 일순간 케르베로스마저 잠시 압도했다.

그럼에도 신은 신.

이내 정신을 차리고 두 번째 머리가 하울링을 시작했다.


[아우우우우우우!]


사실 이는 케르베로스의 고유격 「삼두삼죄(三頭三罪)」로 세 개의 머리는 각각이 칠죄종(七罪宗) 중 하나를 표방하고 있다.

왼 머리는 분노.

중앙 머리는 탐욕.

오른 머리는 나태.

그리고 지금 케르베로스가 발현하려는 건 가운데 머리였다.


탐욕.


분노해 있던 늑대들이 갑자기 전부 탐욕에 젖어 침을 질질 흘리는 늑대로 변했고, 그건 케르베로스의 세 머리도 마찬가지였다.

탐욕이 모든 것을 지배한 나머지 마침내 이성이라는 것의 존재를 지워 버렸다.

오로지 본능, 그것도 탐욕에 몸을 내어준 케르베로스와 늑대들이 키마이라에게 달려들었다.

키마이라는 당황하지 않았다. 등허리에 부착된 날개로 하늘을 날아 늑대들을 떼어냈고, 이는 굉장히 영리한 전략이었다.

적당한 고도가 되자 평범한 늑대들은 이를 따라붙지도 못하고 떨어졌다.

하지만 케르베로스는 달랐다.

여타 늑대와는 차원이 다른 뜀박질로 키마이라에게 들러붙었고, 이노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때론. 본능을 억제할 필요가 있어.”


꼬리의 곤봉을 가차없이 휘둘러 달라붙은 케르베로스의 복부를 강하게 강타했다.


[깨갱!]


답지 않게 깨갱거린 케르베로스가 바닥으로 추락했다.

따라 바닥으로 내려온 키마이라가 주변을 둘러보며 케르베로스를 찾았지만 어딘가로 도망간 것인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 멀리 가지 못했을 것이 분명했기에 키마이라와 이노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키마이라의 다리 반 정도 되는 나무들이 키마이라가 발을 내딛자 종잇장처럼 짓이겨져 찌그러졌다.

그렇게 걸은 지 얼마나 되었을까, 희미하게 케르베로스의 격이 느껴지지 시작했다.

이때부터 이노와 키마이라는 경계 태세에 들어갔지만 결코 모습을 보이는 일은 없었다.

상상력으로 상처를 치료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곤봉의 위력이 적당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바스락.


희미하지만 분명한 잔디 밟는 소리가 울렸다.

초긴장 상태를 유지하던 이들이었기에 숨소리 하나. 심장 박동 하나에도 심혈을 기울여 파악하는 둘이었기에 잔디 밟는 소리는 가히 폭발적인 소음과 다름이 없었다.


후우우우우웅!


키마이라가 소리가 난 쪽을 겨냥해 꼬리를 휘둘렀지만 애꿎은 나무만 쓰러질 뿐 케르베로스는커녕 작은 동물 하나 없었다.

사실 이는 「삼두삼죄」의 세 번째 능력인 ‘나태’로,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아 남들이 보지 않는 사이에 마음껏 나태를 부리는 것이 형상화되었다.

결국 이노는 결단을 내려 키마이라에게 명했다.


“주변을. 다 부숴.”


그 말을 들은 키마이라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행동을 개시했다.

앞으로는 아가리를 벌려 나무를 뽑고 찢었고, 뒤로는 꼬리의 곤봉을 휘둘러 나무를 주저 앉혔다. 그뿐이랴, 거대한 날개를 부채 삼아 나뭇잎과 나무 조각들을 모조리 치웠다.

그러자 비로소 공터처럼 바닥이 훤히 드러났고, 케르베로스와 늑대들이 이노와 키마이라의 주변을 포위하고 있는 것 또한 같이 드러났다.


“같잖은. 수.”


이노는 공룡을 부르지 않았다.

부를 수 없던 것은 아니었다.

부를 가치를 느끼지 못한 것뿐이었다.


[아우우우우우!]


다시 한번 중앙의 머리가 울부짖었고, 늑대는 이에 따라 미쳐 이노에게 달려들었다.

굉장한 수의 늑대가 달려들어 키마이라의 살결을 뜯고 숨을 끊으려 했지만 살은커녕 피부에 생채기도 나지 않았다.

오히려 끊어진 것은 늑대들의 이빨이었다.

나뒹구는 이빨들을 본 늑대들이 겁을 먹었다.

「삼두삼죄」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아 사냥 본능 이외의 생각이 들지 않아야 정상인 늑대들이었으나 그들도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다.


위험.

공포.

경외.


수많은 감정이 겹치며 무려 케르베로스가 자부하는 격의 제어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엎드려.”


이노의 명령 한 번에 굴복한 늑대들이 일제히 엎드려 이노에 대한 경외감을 표했다.

동물들의 구조와 서열은 여타 다른 지성체들의 생각과 크게 차이가 있지 않다.

강한자가 곧 위대한 자다.

무력이 전부인 이 세상에서 이노의 존재는 케르베로스를 잊게 할 만큼 거대한 것이었다.


쿵! 쿠우웅!


수차례의 발걸음이 케르베로스를 패닉으로 몰았다.

자신의 수하가 적의 꾐에 넘어간 것도 모자라 분노, 탐욕, 나태 전부가 말을 듣지 않으니 말이다.

그가 자랑하는 「삼두삼죄」가 완벽히 정복당하고 케르베로스가 취한 행동은 이노의 입장에서도 꽤나 놀라웠다.


[끼잉··· ···낑.]


케르베로스 역시 신이기 이전에 동물. 아무리 신수니 뭐니 해도 결국은 동물이었다.

이노가 천천히 케르베로스에게 다가갔고, 케르베로스는 바닥에 납작 엎드려 꼬리를 좌우로 살랑살랑 흔들고 있었다.


“귀엽네.”


왼쪽 머리의 분노는 씻은 듯 사라지고, 중앙 머리의 탐욕은 침을 더 이상 흘리지 않았다. 오른쪽 머리는 이 상황이 편안함을 강조하듯 아예 눈을 감아 잠들어 버렸다.


“불쌍하네.”


그리고 이노는 그제서야 케르베로스를 억압하던 쇠사슬을 발견했다.

붉은 쇠사슬이 케르베로스의 전신을 압박하듯 감겨 있었다.


“이거. 네 의지가 아니었구나.”


그제서야 이노는 상황의 실태를 깨달았다.

이노는 망설임없이 쇠사슬을 뜯어 바닥에 버렸고.

쇠사슬의 해체가 원인인지 갑자기 검붉은 포탈이 열리며 케르베로스가 이에 격하게 반응했다.


“너는 이만 집으로 돌아가.”


이노가 케르베로스의 세 머리를 차례로 쓰다듬으며 열린 포탈을 향해 안내했고, 케르베로스는 순순히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간 곳은 아마 <올림포스>의 명계일 것이다.

그러자 늑대들이 분주히 케르베로스를 따라 포탈로 들어갔고, 마지막 늑대가 포탈을 통과하자 포탈은 가차없이 닫혔다.

이노는 마지막으로 반파된 산을, 이제는 민둥산이라고 불러야 할 그곳을 눈에 담고 이찬에게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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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성지화 (12) 24.03.15 19 0 11쪽
110 성지화 (11) 24.03.13 22 0 11쪽
109 성지화 (10) 24.03.10 28 0 12쪽
108 성지화 (9) 24.03.08 24 0 11쪽
107 성지화 (8) 24.03.06 23 0 10쪽
106 성지화 (7) 24.03.03 26 0 10쪽
105 성지화 (6) 24.03.01 21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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