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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안(虎眼)의 서재

천재 배우가 사이코메트리를 안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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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안(虎眼)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3.08.07 17:51
최근연재일 :
2023.08.19 18:25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879
추천수 :
19
글자수 :
94,449

작성
23.08.19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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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4쪽

15화. 오해

DUMMY

지평선을 넘긴 해가 어스름히 주위를 밝히는 이른 새벽.


천변을 따라 길게 이어진 산책로를.

두 남자가 뛰고 있다.


“후읍, 후우.”

“후읍, 후우.”


호흡에서 보폭까지.

마치 찍어낸 듯 닮은 두 사람.


띠링―.


손목의 스마트워치에서 알림이 울리고.

두 남자가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후우··· 안 힘들어?”

“흐우··· 네. 괜찮습니다.”


가쁘게 내쉬는 숨소리까지 따라 하는 청년을 보며.

최요섭이 피식, 웃었다.


“징하다 진짜. 이참에 배우 포기하고 선수 하려고?”

“아니요.”


어이가 없는 놈이다.

배역 연구를 하는 것까진 그렇다 치는데.


운동선수를 할 것도 아닌 놈이 연구랍시고 운동 메뉴를 고스란히 따라 한다.

그것도 호흡부터, 보폭, 자신의 작은 습관까지 모조리 흉내 내며.


‘심지어 잘해.’


어이가 없을 정도의 재능.

스파링으로 준프로를 다운시켰을 때는 그냥 잘하구나 했는데.

이제는 싸워도 이길 자신이 없다.


‘시펄, 내가 하는 거 똑같이 하는 놈인데···.’


일단 체력은 저쪽이 위다.

게다가 요즘은 배역 연구를 한다고 따로 체육관에서 복싱 레슨까지 받는다고.


‘진짜 지겠는데···?’


그렇게 터무니없는 생각이 요섭의 머리에 스칠 무렵.


“저는 여기서 버스 타겠습니다.”


함께 걷던 지훈이 정류장 앞에서 멈춰섰다.


“음? 아··· 벌써 그날이야?”

“예.”


일주일.

지훈이 관찰에 필요하다고 말한 시간.


익숙해져서 몰랐는데,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다.


“시간 빠르네.”

“그러네요.”

“이제 뭐하게?”

“음··· 벌크업 하려고요.”

“벌크업?”


선수처럼 운동하다, 갑자기?

도대체 무슨 역할을 준비하길래 저러는 걸까?


처음으로 지훈의 배역에 대해 궁금증이 일었다.


“네, 운동 3년 쉰 선수 몸으로 만들어야 해서요.”

“어··· 어···.”


그래?

그럴 수 있지.


“···뭐?”


왜 굳이?

그냥 찌우면 되는 거 아니야?


그런 의문이 스치고.


“아, 왔네요. 경기 때 뵙겠습니다.”


질문을 던지려는 최요섭을 두고.


“그럼.”


지훈이 물 흐르듯 버스에 올라탔다.


‘······?’


아무래도 미친놈이 분명해.

그렇게 중얼거리며 한참을.


최요섭은 지훈이 떠난 자리를 멍하니 바라봤다.


*


<등대지기>의 촬영 시작까지 남은 시간은 일주일.


그동안 ‘김두식’의 캐릭터 연구를 위해 체육관에서 최요섭과 시간을 보내던 지훈은.

남은 시간, 작품 속 김두식의 몸을 재현하기 위해 벌크업을 시작했다.


우걱우걱우걱―


씹으면서 삼키는 기예(技藝)를 보여주며.

벌크업에 한창인 지훈을 보며.

맞은 편의 여자가 자신의 솔직한 감상을 털어놓았다.


“···돼지.”

“우음, 예?”


입 안 한가득, 음식을 처넣고 가까스로 ‘음식물 안 보이고 말하기’ 기술까지 선보이는 지훈을 바라보며, 맞은편의 여자, 강수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다 먹고. 예, 편히 드세요.”


우물우물··· 꿀꺽.


“죄송합니다.”

“아니예요. 죄송할 건 없죠.”


다만 묘하게 열받을 뿐.


도대체 이 남자는 눈앞의 여자가 ‘강수현’이라는 자각은 하는 걸까?


‘그럴 리 없지.’


아니, 없어야지.


세상의 어떤 남자가 그녀를 앞에 두고 저렇게 게걸스럽게 음식을 밀어 넣을 수 있을까?

그것도 음식에만 집중하며.


얼레, 그 와중에 또 밀어 넣는다.


우물우물.


그나저나, 복스럽게도 먹네.

대체 무슨 역할을 하길래 저렇게 먹는 거지?


몸이 더 커졌어.

팔뚝 봐···

어머··· 무슨 운동 선수야···?


“강수현 씨?”

“예··· 아?! 벌써 다 먹었어요?”


묘한 감상에 젖어 있던 강수현이 흠칫,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


‘세상에 나 무슨 생각을 할 뻔한 거지?’


조금만 더 갔으면, 살 색의 망상까지 이어질 뻔했다.

얼굴이 붉어지는 강수현.


그런 그녀를 보다···


‘···아직 덜 먹었는데’


지훈이 약간의 아쉬움을 담아 음식을 힐끗 쳐다봤다.


강수현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이 뭔가 묘하게 위험하게 느껴져, 서둘러 식사를 마무리했다.

아무래도.


‘너무 실례였나.’


만나기로 해서 너무 먹는 것만 열중했으니.

몸 만들 생각이 앞서서 실례를 저질러버렸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그나저나, 뭐부터 하면 될까요?”

“네?”


지훈의 물음에 당황한 강수현.

밥 먹다 말고 무슨 소린지.


“연기 연습이요.”

“아···!”


맞다.

그래서 불렀지.

하도 잘 먹어서 잠시 잊고 있었다.


“어··· 음. 제가 연기를 할 테니까, 지훈 씨는 상대역 해주시면 돼요.”

“상대역이면··· ‘이해성’ 역할이요?”

“네. 음, 연기까진 필요 없고. 대사를 읽어주시기만 하면 돼요.”


앞에 있기만 해도 도움이 될 거다.

목표는 그녀의 연기력에 생긴 균열을 잡는 것.


그리고···


‘로맨스 마인드 회복하기.’


도저히 양준영 그 멍청이를 앞에 두곤 집중이 되질 않는다.

분명히 잘생긴 얼굴이고, 애초에 그녀가 상대역 얼굴 보고 연기하는 성격도 아닌데.

뭣 때문인지 요즘 들어 그 ‘설렘’ 연기가 안 된다.


“그거면 될까요?”

“네?”

“연기 따로 안 해도 된다는 말이요. 그럼 몰입이 어려우실 것 같아서.”

“아···.”


그녀도 양심이 있는 사람이다.

그만큼 신세를 져놓고, 고작 배달 음식 조금 대접하면서 연기까지 요구하는 파렴치한은 아니라는 말씀.


“괜찮아요. 할 수 있으니까.”

“아. 그렇군요.”


괜찮다.

그 말의 의미를 지훈은 조금 다르게 해석했다.


그것은 굳이 힘을 쏟아 에너지를 쏟지 않아도 된다는 나름의 배려였으나 ̄


‘재밌겠다.’


반대로 지훈에게는 강수현과 다시 호흡을 맞춰볼 수 있는 이것이 기회로 느껴졌으니까.


‘류연수’ 역할을 연구하면서 극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다른 배역의 캐릭터도 꼼꼼히 확인을 해둔 터였다.

특히, ‘이해성’ 역은 거울 앞에서 직접 연기도 몇 번 해봤고.


4화 이후부터의 대본은 읽어본 적은 없지만.

대충의 흐름 정도는 알고 있었다.


‘괜찮다고 했으니, 연기를 해도 된다는 거겠지?’


그렇게, 약간의 생각 차이가 존재하는 가운데.


지훈이 강수현 앞에 마주 섰다.


“어디서부터 하면 될까요?”

“음··· 여기. 씬 넘버 21부터 하죠.”

“아, 네.”


씬 넘버 21.

‘이해성’이 ‘안주경’에게 화를 내는 장면이다.


작은 오해로 ‘이해성’은 그녀를 이기적인 사람이라 생각하고.

실망한 마음을 거칠게 털어놓는다.


여기서, 안주경은.

처음으로 감정의 동요를 느끼게 된다.


‘당황’, 그리고 ‘억울함’.


감정이 없던 그녀에게 처음으로 변화가 생기며, 극의 감정선은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왜?”


감정이 배제된 건조한 목소리.

그리고 그것마저 부드럽게 느껴질 정도로 비어 있는 눈동자.


철저한 연습을 통해, 강수현은 비로소 안주경의 ‘사이코패스 눈깔’을 한지훈 앞에서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자, 이제 한지훈이 받을 차례.

그가 ‘이해성’의 대사를 읽어내리면···


“왜? 왜냐고? 야, 안주경! 너 진짜!”

“······?”

“사람이 다쳤어, 너 때문에! 그런데 왜?”


아, 대사.

대사 쳐야지.


한지훈의 갑작스러운 연기에, 당황한 강수현.

그러나 그녀 역시 연기에 진심인 사람.


곧바로 당혹감을 지워내고, 안주경에 몰입했다.


“그걸 니가 왜 상관하는데?”


정제되지 않아 날카로운 말.

그러나, 공격의 의도가 담긴 날카로움은 아니다.


정말 이해할 수 없어서.


여기서는 그 순수한 ‘악’이 드러나야 한다.


“야··· 안주경 너 진짜···”


그리고 넘겨진 바톤.

이제, 이해성은 보여줘야 한다.


남자 주인공 특유의 풋풋한 정의감을.

‘안주경’에 대한 편향된 기대감과 거기서 비롯된 실망감을.


초반부 이해성의 캐릭터는 고구마다.

그의 정의관은 어설프고 주관적이다.


안주경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이 사랑으로 비쳐서는 안 되되.

그 안에 담긴 관심은 사랑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심어줘야 한다.


이해성은 답답하되 밉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주경의 행동에 분노하되 미워해서는 안 된다.


적어도 지훈은 그렇게 생각했다.


“안에 사람 있는 거 알았잖아. 니 행동 때문에 사람이 다칠 거라는 거··· 몰랐어?”

“몰랐어.”


벽에 대고 얘기하는 기분.

상식이 통하지 않는 상대.


그러나, 뭐라도 하고 싶다.

실망했음에도, 아직 믿고 싶다.


“몰랐다고? 그게 말이 된다고 너는···!”


그래서 어떻게든 이유를 찾고자 했을 뿐인데.


“어.”


상대는 그 기회조차 주질 않는다.


너에겐 남들의 시선이 중요치 않구나.

그리고 나 역시 그중에 하나일 뿐이구나.


핏발 선 눈으로 그녀의 공허한 눈을 노려봤다.

그 안에는 뭐라도 답이 있을까 싶어.


그런데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눈앞에 있음에도.


‘이해성’, 자신의 모습조차.


“최악이다, 너.”


그래서 가시 박힌 말이 나와버렸다.

이 말이 저 깊이를 알 수 없는 눈에 물결이라도 일으킬까 해서.


그리고 돌아섰다.


끝이다.

뭔지 모를 이 감정도, 안주경 너도.


이제, 단념하자.


“······.”

“······.”

“···다시 할까요?”

“······?”


멍 때리던 강수현이 움찔하며 지훈을 쳐다봤다.


“네···?”

“씬, 끝나서.”

“아···!”


맞다, 오케 싸인을 줄 사람 없지···.


연기가 너무 리얼해서.

순간, 카메라 앞인 줄 알았다.


아니, 그냥 ‘안주경’의 상황에 놓인 것만 같았다.


다른 점이라면.

안주경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지만.

강수현은 누구보다도 감정에 예민하다는 것 정도.


‘미, 미쳤나 봐···.’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해성의 감정이.


혼신의 힘을 다해 부정하고 있는.

그러나 이미 움트고 있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그 소리 없는 아우성을 정면에서 받아낸 강수현은.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


“다, 다음 씬···!”


그래서 일단 지금의 당혹감을 모면하기 위해.

화제를 돌려보려 했던 그녀였으나.


황급히 대본을 넘기는 강수현의 눈에 들어오는 씬은···


[ 만취한 해성의 얼굴이 닿을 듯 가까워지고··· ]


“꺄악···!”


미쳤나 봐 진짜!


“괜찮아요?”


놀란 지훈이 한 걸음 다가갔지만.

도파민의 폭주 속에 한껏 예민해진 수현의 눈에 그것은···


“꺅···! 오지 마···!!”


거대한 위협으로 비쳤다.

그녀의 심장을 위협할··· 거대한 위협.


덜컥-!


그리고 이 촌극의 클라이막스는.


“괜찮으세요 ̄?!”


이를 도움이 필요한 여성의 비명으로 오인(誤認)한.

강수현 담당 매니저의 등장으로.


“야, 이 개새끼야!”


익숙한 막장 전개로 흘러가고 있었다.


*


“···죄송해요.”

“아닙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 제가 오해를···.”

“괜찮습니다.”


고개를 조아리는 두 사람의 사이에 낀 지훈.

그에겐 지금 이 상황이 더 불편했다.


비록.

오른쪽에서 고개를 처박은 저 여자가 도우려는 선의(善意)를 비명으로 화답했고.

왼쪽에서 눈물을 그렁거리는 저 남자가 그걸 추행으로 오인해 주먹을 날리긴 했지만.


아무튼.

아무 일도 없었으니까.


주먹은 피했고, 오히려 다친 쪽은 그러다 넘어진 저 남자다.


“···사례하겠습니다.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아니···.”


됐다.

어차피 저들은 이쪽 말을 들을 생각도 없어 보인다.

그래, 차라리 화제를 돌려보자.


“···그나저나 연기 연습은 어떡할까요?”

“죄송··· 네? 아···!”

“저는 계속해도 되는데.”


연기 연습 자체는 굉장히 재밌었다.

강수현 정도 되는 배우와 호흡을 맞춰 보는 건 즐거운 일이다.


배울 점도 많고.

무엇보다 새로운 배역은 언제나 흥미롭다.


“아··· 그···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죠.”


물론, 강수현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로맨스를 잃어버린 가슴에 멜로 한 방울 떨어트리려다, 심장이 터져 죽을 뻔했다.


연습이야 더 해야겠지만···


‘적어도 오늘은 아니야.’


지금은 마음의 진정이 더 급했으니까.


“다음에··· 예, 다음에 하죠!”


*


<등대지기>의 촬영이 시작됐다.


한정된 예산의 독립 영화.

덕분에 스텝의 규모도 <싸이코패스 그녀>보다 훨씬 작은 촬영장 풍경.


선선한 새벽 공기를 한껏 들이쉬며 지훈이 일렁이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주연··· 잘 할 수 있을까?’


아무리 50분짜리 중편 독립 영화라지만.

주연은 주연.


책임감이 어깨를 무겁게 짓누른다.


‘류연수’를 연기할 때와 달리.

촬영장 모든 이의 시선과 기대가 자신에게로 향한다.


그 부담감이 가슴을 진탕 시키다가도.

한편으로는 미소 짓게 한다.


‘즐겁다.’


재밌다.

주목을 받는 것도.

손발이 저릿할 정도의 긴장감도.


성훈이의 꿈을 대신 이뤄주겠다고 시작한 연기지만.

이제는 지훈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연기가··· 좋다.’


이제는 자신도 연기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한지훈 배우님, 잘 부탁할게.”


분장을 마치고 느물거리며 다가오는 박진섭.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이제는 알 것도 같았다.


왜 그토록.

성훈이 그 녀석이 연기에 목매달았는지를.


연기를 통해 만난 인연도.


“슛 들어갈게요! 자, 파이팅합시다!”


저 넘치는 열정과 재능에 어우러질 수 있다는 사실도.


“기대할게, 동생. 오늘은 나도 제대로 보여준다.”


이 모든 게.


“씬 넘버 3, 테이크 하나.”


한지훈.

그를 살아있게 했다.


“레디 ̄ ̄ 액션 ̄ ̄!!”


그 어느 때보다도 찬란하고.

그 누구보다도 빛나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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