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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안(虎眼)의 서재

천재 배우가 사이코메트리를 안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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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안(虎眼)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3.08.07 17:51
최근연재일 :
2023.08.19 18:25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880
추천수 :
19
글자수 :
94,449

작성
23.08.08 20:15
조회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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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4쪽

1화. 시작

DUMMY

창가로 날아든 나비 한 마리가 시선을 빼앗는다.


늦은 오후의 나지막한 햇살.

조금 이른 여름의 뭉근한 온기.


좋은 날씨다.

이런 날에도 바깥 구경은 창 너머로만 해야 한다는 것만 빼면.


“쌤, 다 풀었어요.”

“응, 수고했다.”


학생 몰래 즐겼던 잠깐의 딴짓을 감추기 위해, 지훈의 눈이 재빨리 문제지를 훑었다.

정갈한 필체로 빼곡히 적혀 있는 수식.


“잘했네. 봐, 되잖아.”


딱히 건드릴 구석은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그의 딴짓도 눈치채지 못한 듯했고.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숙제는··· 제발 좀 하고.”

“아··· 쌤, 조금만 줄여주시면 안 돼요?”


이경석.

지훈이 일 년째 맡고 있는 과외돌이.

녀석의 되도 않는 아양에도 지훈은 칼 같았다.


“안 돼, 돌아가. 아니, 집에 가.”


그대로 가방을 싸고는 미련 없이 방을 나섰다.


“쌤! 아, 형님! 제발요!”


뒤에서 경석이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가볍게 무시하곤, 오피스텔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다음 과외까지 남은 시간은 30분.

지금 출발해야 간식이라도 먹고 수업에 들어갈 수 있다.


‘보자··· 버스 4분 뒤 도착이네.’


핸드폰으로 지도 앱을 확인하던 지훈의 눈에.


- 띠링.


문자 메시지 하나가 들어왔다.


저장도 되어 있지 않은 낯선 번호.

미리보기로 보이는 짧은 텍스트.


[ 한지훈 씨 번호 맞나요? ]


‘누구지?’


의문도 잠시.


- 띠링.

- 띠링.


연달아 오는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던 지훈의 눈에.


[ ···동생 분께서, 자살하셨습니다. ]


그 짧은 몇 개의 단어가 박혀 들었다.



*



지훈에게는 동생이 하나 있었다.


한성훈.

세 살 차이 나는 동생이.


남들은 세 살 차이 형제면, 치고받기 바빴을 테지만.

둘은 어려서부터 서로를 끔찍이 아꼈다.


별로 대단한 이유랄 것도 없었다.


사고로 일찍 여읜 부모님과.

친척의 손에 길러진 어린 형제.


흔하디 흔한 신파는 여기까지.


그들을 맡아준 작은이모는 기꺼이 그들의 어머니가 되어주려 노력했다.

남겨주신 재산도 꽤 있었고, 이모도 지원을 아끼지 않아 삶이 고달프거나 그럴 일도 없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잘나가는 변호사였던 이모가 집을 자주 비웠던 건, 그들의 상처와는 무관한 일이었다.

그저, 부모의 빈자리라는 게, 생각보다 컸을 뿐.


지훈은 그 빈자리를 메워주기 위해 정말 뭐든 했다.


갖고 싶은 장난감이 있다던 동생을 위해, 제 손으로 뭐 하나라도 사주고 싶어 어린 나이에 이런저런 일을 해보기도 하고, 물심양면으로 동생을 돕기 위해 노력했다.


지훈이 미친 듯이 공부한 이유 역시 그 때문이었다.

이런 거라도 모범이 되고 싶어서.


사이가 어긋나기 시작한 건, 지훈이 대학에 붙으면서였다.


― 나도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래.


고등학교에 올라가는 성훈의 선언.

그 선언이 형제의 관계에 균열을 일으켰다.


아니, 정확히는.


― 나, 배우가 되고 싶어.


동생의 치기 어린 그 꿈이.


“그래서··· 결국 이 꼴이냐.”


영안실 앞.

지훈의 메마른 목소리가 맥없이 허공에 흩어졌다.


“고작 이러려고··· 연락도 끊고 너 하고 싶은 대로 했던 거야?”


애써 쥐어짠 원망이 힘없이 바스러진다.


오랜만에 만난 동생에게 하고픈 말은 이게 아니었는데.

차마 그 말을 꺼낼 수 없어, 쥐어짜듯 아무 말이나 뇌까린다.


“니가··· 니가 나한테 어떻게 그래.”


원망, 분노, 허무, 절망.

그런 것들을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닌데.


“왜··· 왜···.”


하지 못한 말들에 심장이 찢길 듯 아려온다.


“끄윽···.”


이를 악물고 울음만은 참아보려 했지만.


― 형.


메아리치듯 떠오른 동생의 목소리가.


“끄흐흑··· 으흑···.”


그 마지막 집념마저 무너트렸다.


지훈도 알고 있었다.

그를 미치도록 괴롭게 만든 건, 동생의 행동이 아님을.


그저.

그저, 마지막으로 동생의 손을 잡고.


“형이···”


딱 한 번만,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고 싶노라고.


“형이, 미안해···. 형이···.”


마음의 끄트머리에 남겨진 동생의 온기를 지우지 못한 채.

지훈은 그렇게 하염없이.


무너져내렸다.



*



“이모가··· 대신 치워줄까?”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지훈에게, 이수경이 조심스레 물었다.


발인까지 마치고 벌써 일주일이 더 지났건만.

조카는 아직도 동생의 죽음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요···.”


동생이 집에서 뛰쳐나가 살던 허름한 자취방.

그곳에 남겨진 동생의 흔적들을 멍하니 눈에 담던 지훈이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모도 힘드실 텐데, 먼저 들어가 보세요. 제가··· 할게요.”


힘없이 말을 이어가는 지훈에게 이수경은 차마 안 된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겠거니.

각별했으니 더 시간이 걸리겠거니.


“알겠어. 도움 필요하면 연락하고. 이모 오늘 연차 쓴 거니까.”


그저 한 걸음 뒤에서 바라볼밖에.


“감사해요.”


나가는 수경을 기계적으로 배웅해주고.


“하···.”


홀로 남은 지훈은 무너지듯 침대에 걸터앉았다.


5평 남짓의 좁은 방.

창문도 없는 낡은 이 공간은 동생의 전부였다.


이곳에서 동생의 생명은 조금씩 바스러졌을 거다.


“왜···.”


듣지 못한 말이 너무도 많다.


너는 왜 이렇게 스스로를 죽여가면서까지.

헛된 꿈을 좇았던 걸까?


모르겠다.

막막하다.


어디서부터 정리를 해야 하는 걸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담아가야 하는 걸지.


도저히 모르겠다.


공허한 눈으로 방 안을 훑던 지훈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밑단에 동생의 이름이 쓰인 다이어리.


무심코.

팔을 뻗어 책상의 다이어리에 손을 댔다.


이건 동생의 일기장이 분명했다.

녀석은 함께 살던 시절에도 매일같이 일기를 쓰곤 했으니까.


표지를 넘겨 안을 확인하려던 지훈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어쩌면 이 안에 동생의 답이 들어있을 수도 있다.


무엇을 그리 간절히 꿈꾸고.

무엇 때문에 가족과 멀어졌는지.

그리고 자신에 대한 그의 생각까지도.


두려웠다.

안에 담겨 있을 내용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이제는 볼 수 없는 동생의 가장 생생한 흔적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을 뿐.


“후읍.”


환기되지 않은 초여름의 묵직한 공기가 숨 막힐 듯 밀려든다.


어쩌면, 꼭 지금 보지 않아도 될 수 있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고.

조금 더 괜찮아지면···


꾸욱.


아니.

아니야.


사락-


지훈이 일기의 첫 장을 넘겼다.


*


“꼭 자퇴까지 해야 하니?”


걱정이 앞서 물은 말이었다.


“네, 어차피 돌아갈 생각도 없어요.”


그 말에 조카는 너무도 쉽게 답했다.

짧지만, 평생을 해온 일을.

너무도 쉽게.


“성훈이··· 때문에?”


그래서 해서는 안 될 말을 해버렸다.


아차.

당황한 수경이 재빨리 지훈의 표정을 살폈다.


‘어···?’


아무렇지 않은 얼굴.

그 담담함이 못내 마음에 걸려 또 한 마디.


“아니라면, 휴학 먼저 해보고···”

“이모.”


수경의 말을 끊은 지훈이 작게 미소 지었다.


그녀가 어떤 마음인지는 지훈이 누구보다도 제일 잘 안다.

부모님의 자릴 채워주지 못했다고 해서,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도, 그녀가 자신에게 소중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저, 괜찮아요.”


그래, 이게 한지훈답지.

하고픈 말은 많았지만, 이수경은 담아놓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얼마 만에 보는 조카의 미소던가.

어른스럽고, 속이 깊은 아이다.

힘든 내색 하나 없이 동생을 보살피던.


“성훈이 때문 맞아요. 근데, 충동적으로 한 결정은 아니에요.”


안다.

저 말을 자신의 앞에서 꺼내기까지 얼마나 많이 생각했을지를.


“···저, 진짜 연기할 거에요. 진심으로.”


‘하고 싶다’가 아니라 ‘할 거’라는 저 말이.

그래서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동생에 대한 의무감.


그 마음이 결국 지훈에게 상처 입힐 것도.

그럼에도 저 속 깊은 조카는 후회하지 않으리란 것도.


“지훈아. 이모 번호 알지?”


그래서 언제나처럼.


이수경은 한 발자국 물러섰다.



*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병적으로 비대할 때.

우리는 그것을 과공감증후군이라 부른다.


그러나, 지훈의 경우는 그와는 조금 달랐다.


과(過)공감을 넘어선 초(超)공감―


타인을 의식하는 것만으로도 대상의 감정을,

나아가 기억의 편린(片鱗)까지도 읽어내는 능력.


일종의 사이코메트리에 가까운 이능(異能).


어린 시절 지훈에게 연기 신동이라는 과분한 별명이 지어진 것 역시 이 능력 덕분이었다.


때로는 사람을.

때로는 텍스트에 그려진 상황을.


지훈은 온전히 느끼고.

제 기억을 되짚듯 경험할 수 있었으니까.


지훈이 그 능력을 인지한 건.

정확히는 그의 부모가 지훈이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걸 처음 깨달은 건, 그가 세 살 무렵의 일이었다.


― 지훈아, 뭘 그렇게 보고 있니?


고양이를 바라보는 아들이 귀여워 물은 어머니의 질문에.


― 야옹이가 아파. 그리고 슬퍼.


아들은 또래와는 조금 다른 대답을 했다.


물론, 이것만으로 아들의 ‘다름’을 인지한 것은 아니다.


― 엄마는 아빠가 바쁘고 멀리 있어서 슬퍼? 근데 왜 아빠를 좋아해?


이제는 보다 또박또박 말할 수 있게 된 아들의 말이.


― 아빠는 거짓말쟁이야. 놀이공원 가자고 그랬으면서··· 못 간다고 생각하고 있잖아. 근데 용서할래··· 아빠가 미안해하니깐.


그 소름돋을 정도로 정확한 말들이.


남들과 다르다는 건.

축복보단 저주에 가까운 일이었다.


지훈에겐 그 다름을 안아줄 수 있는 좋은 부모가 있었지만.

‘다름’이란 저주는, 결국 재앙이 되어 지훈을 집어삼켰다.


― 형아, 엄마 아빠 어디 갔어?


일곱이란 나이에 찾아온 부모의 죽음.

보통의 아이들은 그 ‘상실’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지훈에게 그 상실은 지옥보다 더 끔찍한 괴물이었다.


꼬박 일 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지훈이 그 지옥에서 헤어나오기까지는.


― 형이 지켜줄게.


아이러니하게도.

지훈을 그 지옥의 구렁텅이에서 건져 올린 것은 또다시 그의 능력이었다.


‘성훈이를 지켜야 해.’


동생이 태어난 후, 부모님에게서 지훈이 느꼈던 가장 강렬했던 마음.


하루도 빠짐없이 제게 사랑을 알려주었던 부모를 떠올리던 지훈이.

마침내, 스스로 동생의 부모이자 보호자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때부터 줄곧.

지훈은 동생의 보호자를 자처했다.


부모의 죽음만큼이나 무거운 책임감.

그것 하나로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러기 위해, 지훈은 감정을 조절하는 것을 익혔다.

하나의 거대한 감정으로 다른 감정을 누르는 식으로.


그렇게 지훈의 마음은 거대한 강철 요새가 되어갔다.

어떤 감정에도 휘둘리지 않는.

오직 하나의 이유만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런데···


― 형, 나 요즘 너무 행복한 거 알아?


성훈의 일기장의 첫 글귀.


지훈은 그 글귀를 넘기지 못하고 무너져내렸다.

철옹성 같던 마음의 벽이, 무너지다 못해 산산히 부서졌다.


마음을 다잡아 보려 해도, 잘되지 않는다.


심장이 터질 듯 두근댔지만.

이를 악물고 지훈은 참아냈다.


한 장.

또 한 장.


동생을 떠오르게 하는.

작은 다툼으로 함께하지 못했던 시간이 담긴 일기장을 넘기며.


듣지 못했던 성훈의 마지막을 눈에 담았다.


생생하게 느껴지는 삶의 순간들.

그때의 감정.

녀석을 무너트리고 짓밟던 것들.


그리고···


꿈.


― 나, 연기가 너무 좋아. 너무 힘든데, 힘들어서 미칠 것 같은데. 아무래도 아빠 닮았나 봐. 형은 안 그랬어?


터질 것 같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훈은 가장 강렬한 하나의 염원을 보았다.


― 연기.


죽음을 결심케 할 정도로 힘겨웠던 시간들 속에서.

녀석을 반짝반짝 빛나게 해주었던 유일한 염원.


그걸.

지훈은 몰라줬다.


아니, 알았음에도 등 돌렸다.


녀석이 연기를 사랑하는 만큼.

연기로 상처받는 것 역시 알고 있었기에.


“미안해···.”


조금만 빨리 용서를 구할걸.

아니, 애초부터 네 꿈을 부정하는 게 아니었는데.


사락.


마지막 페이지가 넘어가고―


― 형은 이 글을 못 읽겠지만, 언젠가 형에게 이 일기에 적힐 말들을 할 수 있기를 바라. 지금이야 좀 그래도, 우리가 남도 아니고, 언젠간 화해할 날이 오지 않을까?


“아···.”


지독하게 아픈 말이다.

언젠가라는 저 말.


이루어지지 않은 기대가 비수처럼 심장을 후볐다.


정말 아무것도 몰랐구나.

모든 걸 해주려 했는데.

결국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구나.


후회, 그리고 자책.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 언젠간 나도 형처럼 연기하고 말 거야. 그러니까, 기대해.


동생의 삶을 앗아간 절망이.

미처 태워버리지 못한 생생한 마음.


그 마음이 무너져버린 지훈의 마음에 밀려든다.


부모의 죽음이 지어올린 단단한 마음의 벽.

동생의 죽음으로 모든 게 무너져내린 그 자리를.


새로운 마음이 채워나간다.


“···이뤄줄게.”


네가 그토록 이루고자 했던 너의 꿈.


“형이···”


이제 내가 그 꿈을 꿔볼게.


“꼭 이뤄줄게.”


이것이 속죄가 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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