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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안(虎眼)의 서재

천재 배우가 사이코메트리를 안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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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안(虎眼)
작품등록일 :
2023.08.07 17:51
최근연재일 :
2023.08.19 18:25
연재수 :
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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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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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글자수 :
94,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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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8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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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13화. 부탁

DUMMY

연남동의 한 분위기 좋은 카페.


[ 주문하신 바리스타’s 초이스 나오셨습니다. ]


인스타 DM을 확인한 지훈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음료 가져오겠습니다.”

“그러세요.”


크림으로 뒤덮인 괴랄한 모양의 음료를 받아들고.

카페 주인과 합장으로 인사를 나눈 지훈이 돌아오자.

큼직한 선글라스를 뒤집어쓴 강수현이 입을 열었다.


“본론부터 말할게요.”

“네.”

“연기 연습 좀 도와줘요.”

“···네?”


수현의 뜬금없는 제안에 지훈은 당황했다.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지훈이 얼빠진 얼굴로 쳐다보자, 강수현이 말을 이었다.


“당황스러운 거 알아요. 저번에 진 신세도 못 갚았는데, 경우에 맞지 않다는 것도 알고요. 근데, 제가 좀 급해서요.”


벽에 가로막힌 듯, 연기가 제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한때, 로맨스 초신성이라 불리던 그녀가, 눈에 설렘을 담는 법을 잊어버렸다.


원인은 눈앞의 이 남자.

이게 해결방법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강수현은 나름 절박했다.


“도와주시면, 제가 꼭 사례할게요.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저번에 신세 진 것까지 다 해서!”


급한 마음에 목소리가 커졌다.


탑급 아이돌의 제안.

누군가에겐 인생에 한 번 꿈꿀 기회일 수도 있겠지만, 정작 제안하는 강수현은 불안했다.


‘아무것도 원하는 게 없으면 어떡하지?’


무려, 강수현에게 소원을 빌 수 있는 제안.

그러나 그녀는 왠지 한지훈이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없을 것만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부탁이에요.”

“아···.”


연기 연습 상대라니.


상상도 못했다.

이미 뛰어난 연기력을 인정받은 그녀로부터 이런 제안을 받을 줄은.


강수현은 그녀가 자신에게 신세를 졌다고 말했지만, 지훈 역시 내심 자신 때문에 거듭 NG를 내던 강수현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해서, 도움을 줄 수만 있다면 주고 싶었다.


다만.


‘도움이 될까?’


이 부분이 문제.

그러나.


“제발요.”


강수현으로부터 전해지는 진심.


‘하긴 내가 고민할 문제가 아니지.’


상대는 도움을 청하고 있었고.

그게 도움이 될지는 자신이 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돕고 싶다면 도우면 될 일.


“알겠습니다. 도와드릴게요.”


그리고 무엇보다.


“대신 부탁 한 가지만 드려도 될까요?”


때마침 하나 있다.


부탁할 일.


“다음에 시간 날 때 저랑 같이 어디 좀 가주실래요?”


오직 강수현만이 해줄 수 있는 일이.


*


“빛너울 쪽에서 한지훈에게 관심을 보인다고?”

“예.”


제작 3팀장 고영민의 보고에 오태경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빛너울.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큰 매니지먼트사.


그곳에서 한지훈을 노린다라.


“그쪽 매니저 하나가 저희 쪽에 한지훈의 개인정보를 물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네.”


루트는 개인적이었으나.

사안은 개인적이지 않다.


배우 매니지먼트사의 직원이 다른 소속 배우의 뒤를 캔다.

그게 의미하는 바는 명확했으니까.


“그쪽에서는 강수현이 개인적으로 궁금해한다는 식으로 말했답니다.”

“허, 그 강수현이? 퍽이나 그랬겠다.”


고영민의 말에 오태경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물론 기분 좋은 웃음은 아니었다.


한지훈.

확실히 뛰어난 상품 가치를 가진 놈이다.


준조연급 배역이었지만, 현장에서 들리는 얘기를 들어보면 그것만으로 존재감을 확실히 보여줬다.

다른 곳에서 입맛을 다셔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감히 DH 소속 배우를.’


그러나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해서.

기분 좋은 일이라는 건 아니다.


“한지훈 계약이 얼마짜리지?”

“2년 계약입니다.”


2년.

절대 안심할 수 있는 계약이 아니다.


한지훈이 상품 가치를 뽐낼수록 저 2년도 안심할 수 없다.

누군가 위약금을 감수해가면서까지 하이재킹할 수도 있으니.


보다 확실한 게 필요했다.


비록, 한지훈이 지금은 독립 영화 한답시고 골치를 썩이고 있긴 했지만, 그게 놈이 돈 될 놈이 아니라는 건 아니었다.


아니.

그 독립 영화조차도 한지훈이 얽히니 진하게 돈 냄새가 풍겨온다.


2년이라는 계약 기간.

거기에 안주해 있다간 황금 알을 낳는 거위를 빼앗길 수 있다.


“한지훈 한다는 독립 영화 있잖아.”

“<등대지기> 말씀이십니까?”

“어. 그거 투자자 아직 못 구했다고 했지?”

“아마··· 아직일 겁니다.”

“그거. 우리가 투자하자.”

“네?”


감겨 있을 때, 더 감아놔야 한다.

돈이 될 놈에게는 확실히 투자해야 뒤탈이 없다.


그것이 오태경의 철칙.


“한지훈. 우리 거라고 도장 찍어놔야지.”


빛너울.

아니, 그 누구도.


‘내 거 넘보는 꼴은 못 봐.’


*


“시간··· 정말 괜찮으신 거 맞죠?”

“괜찮다고요.”

“부담스러우시면 안 하셔도···.”

“아, 진짜! 남자가 왜 이렇게 소심해? 들어가요!”


딸랑―!


거칠게 문을 열고 들어선 한 쌍의 남녀.

묵직한 땀내음이 밀려들고.


그와 함께 십여 쌍의 눈이 남녀에게 몰려든다.


“어서오세··· 끼히힉―!”


카운터에서 방문객을 맞이한 고릴라 관장이 요상한 비명과 함께 털썩, 주저앉고.


“······.”

“······.”


무거운 정적이 체육관에 내려앉았다.


“저···.”


당황한 지훈이 입을 열려던 찰나.


“안녕하세요.”


함께 온 강수현.

그녀가 당찬 목소리로.


“강수현이에요. 반가워요?”


여신의 강림을 알렸다.


*


“죄, 죄, 죄, 죄송합니다.”


진풍경이었다.

땀 내나는 체육관에.

십여 명의 짐승같은 사내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 안절부절 못하는 광경은.


“편히들 앉으세요! 저도 불편해지려 그래요.”


그 가운데 홀로 빛나며 여유로운 한 사람.

강수현의 애교스럽게 찡그린 표정, 그 청량한 목소리에.


“아아··· 여신님.”

“아··· 나는 오늘 죽을 테야.”

“세상에. 하느님, 이제 오셨나이까.”


허벅지에 힘이 풀려버린 그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져내리는 모습도.


‘무섭다.’


그 진풍경을 감상하던 지훈에게 든 감상.


“그나저나, 제 팬분이 있으시다고.”


체육관을 주도하는 건 강수현이었다.

그녀의 질문에 누군가 사시나무 떨 듯 떨며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저, 저, 저, 접니다···.”


최요섭.

냉철한 카리스마의 MMA 라이트급 선수.


“아, 선수님이셨구나. 반가워요!”

“히이익···!”


강수현의 작은 말 한 마디에도 기겁을 하는 그의 모습에.

지훈이 속으로 고소를 머금었다.


‘같은 사람이 맞나 싶네.’


도대체 얼마나 팬이면 저럴 수 있을까?

가늠이 되지 않았다.


‘나에게도 생길까, 저런 팬?’


언젠가.

활동을 이어가면 팬이 생길 것이다.


그 생각에 괜스레 마음이 무거워졌다.

저토록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사실이.

생각보다 묵직하게 다가왔기에.


“그나저나 저를 뵙고 싶어하신 이유가 있으시다고요?”

“예에? 아, 어, 어, 어, 없습니다···!!”

“음, 이상하다?”


강수현이 고개를 돌려 지훈을 쳐다보자, 지훈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 다음 달에 일산에서 시합이 하나 있는데, 혹시 같이 구경 가실래요?”


말하면서도 이게 맞나 싶긴 했다.

지훈, 혼자만의 바람이었다면 절대 했을리 없는 부탁.

그러나.


‘저와 제 누나가 강수현 님의 엄청난 팬입니다! 지훈 씨··· 아니, 지훈 님! 제 경기에 강수현 님을 모실 수만 있다면··· 제, 제가 뭐든 하겠습니다. 제, 제발요···!’


최요섭의 뜬금없는.

그러나, 절박한 그 간청을 지훈은 모른 척할 수 없었다.


“다음 달··· 일산이요?”

“어, 으, 아, 바쁘시면 안 오셔도 되, 됩니다!! 아니, 오지 마십쇼···? 흐엑···!”


횡설수설, 최요섭이 난장을 피우자 그나마 이성을 잡고 있던 고릴라 관장이 그를 제압했다.


“허허, 여신··· 아니, 수현 님. 신경 쓰지 마십쇼. 혹시나 시간이 되시면 자리를 빛내주실 수 있나··· 그거 여쭙고자 했던 겁니다. 절대! 부담 안 가지셔도 됩니다!”


역시 관장다운 깔끔한 정리.

그 말에 잠시 고민하던 강수현.


“음, 그쯤이면 지금 작품도 얼추 마무리 될 거고··· 시간 알려주시면 최대한 가볼게요!”


그녀가 고심 끝에 대답을 하고.


“허어억···!”

“사랑··· 아니, 감사··· 아, 아니, 죄, 죄송합니다―!!!”


최요섭은 마침내 눈물을 흘렸더랬다.


*


<등대지기>의 촬영이 급물살을 탔다.


한지훈의 투자.

그리고 이어지는 DH 엔터의 투자.


주연급 배우들의 캐스팅이 끝난 시점에서, 문제가 되었던 투자금 문제마저 완전히 해결되었다.

이제 일정 조율만 남은 상황.


그리고 오늘은.

<등대지기>의 대본 리딩이 있는 날.


작은 사무실에서.

윤태영이 한 사람을 맞이하고 있었다.


“선배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마른 체구에 부드러운 인상의 사내를 향해.

윤태영이 어색함과 반가움이 섞인 묘한 인사를 건넸다.


박진섭.

5년 전, 영화 <그림자>에서의 열연을 시작으로 대중의 눈도장을 찍으며, 충무로의 명품 조연으로 소문이 난 악역 전문 배우.


그리고 <등대지기>에서 한지훈과 더블어 공동 주연을 맡을 사람.


많은 배우들이 그렇듯, 그 역시 명문 극단 창운(昌運) 출신으로 20대부터 연극을 바탕으로 탄탄하게 연기력을 쌓았다.

윤태영과 박진섭의 인연이 시작된 것도 바로 극단에서였고.


연출과 배우.

서로가 지향하는 바는 달랐지만, 그들은 함께 역경의 시기를 보낸 전우였다.


“이야, 태영이. 아니, 이제 윤 감독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하여튼 오랜만이야.”

“어우, 선배님. 사석에서는 그냥 편하게 부르십쇼.”

“킥킥킥, 그나저나 뭐 하고 살길래 그렇게 연락 한 통 없었냐.”


너스레를 떨며 의자 하나를 집어 앉는 박진섭.

그의 질문에 윤태영이 쓰게 웃었다.


“그냥 먹고 사느라 바빴죠. 뭐, 별 게 있나요?”

“새끼. 그렇다고 형한테 그런 얘기도 안 해?”


그런 얘기.

작년에 윤태영의 형이 죽었을 때, 왜 부르지 않았냐는 말.


딱히 그럴싸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형의 죽음이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아 남들에게 부끄러웠고.

막연히 바쁘게 살아가는 박진섭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을 뿐.


“형님 바쁘신데 뭘요.”

“새끼··· 지가 언제부터 나를 그렇게 챙겼다고.”

“흐흐, 그러니까요. 제가 매번 이렇게 신세만 집니다.”

“신세는 무슨. 내가 너 때문에 이거 하는 줄 알아? 대본이 맘에 들어서 하는 거야.”


충무로의 이름난 배우와 무명 감독.

그들 사이에는 하늘과 땅만큼의 큰 차이가 있다.


대본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윤태영 자신도 알고 있었다.


하루에도 몇 개씩 대본이 들어오는 박진섭이.

굳이 무명 감독의 투자도 못 받은 작품에 들어오겠다고 한 이유 정도는.


정(情).


그게 박진섭이라는 사람이다.

높이 올라갔음에도 과거를 잊지 않는 사람.


그래서 더 든든하고.

그래서 더 미안한 사람.


“우냐?”

“예···? 아니요?”


잠시 감상에 젖어 있는 윤태영을 보며.

박진섭이 킬킬거렸다.


“킥킥, 태영아. 형이 말했지. 너 잘한다고. 형이 과거 인연 생각해서 대본 고르고 그런 사람인 거 같아?”

“예.”

“오··· 거, 감독이란 놈이 너무 자신감 없어도 못 쓴다.”

“배우가 자기객관화가 안 돼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형님.”

“······.”


그렇게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말없이 서로를 마주 보던 두 사내가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푸흡.”

“큭큭큭.”


오랜 시간 함께 했지만.

이렇게 마주한 건 또 오랜만이다.


마지막이 흐릿할 정도의 시간이 흘렀고.

그때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많은 것이 변했다.


그럼에도 편하고 좋다.


많은 것이 달라졌음에도.

같은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이유다.


“크큭, 그나저나 우리 주연 배우는 언제 오시나?”

“형님이 너무 일찍 온 겁니다. 안 바쁘십니까?”

“끙··· 누가 뭐라냐?”

“음, 곧 오겠네요.”


슬쩍, 핸드폰의 시계를 확인한 윤태영의 말에.

박진섭의 표정이 별안간 진지해졌다.


“그나저나 그놈. 진짜 그렇게 연기 잘하냐?”

“예?”

“니가 말했잖아. 괴물을 찾은 거 같다고.”


아, 저번에···

한지훈의 오디션을 보고 나서 신나서 그런 얘기를 했었지.


“너 보통 누구 연기 칭찬 이런 거 잘 안 하잖냐.”

“제가요?”

“어. 너 평가 박한 거 우리 극단에서 유명했어.”


그랬던가, 하는 얼빠진 표정을 짓는 윤태영을 보며.

박진섭이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기억 안 나? 너 처음 와서, 나 연기 하는 거 보고···”

“아, 선배!”


그제야. 윤태영이 부끄럽다는 듯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 부끄러운 기억이다.


극단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

저 과거에 묻혀 사는 인간은 십 년도 더 된 일을 아직도 기억한다.


“큭큭, 아무튼. 그런 니가 이렇게 칭찬을 하는 놈이라니. 나 기대 엄청 해도 되는 거지?”


기대.

기대라.


잠시 오디션 때의 한지훈을 떠올려 보던 윤태영이 씩, 웃음을 지었다.


“선배도 마음에 들어 하실 겁니다.”

“내가? 나 연기에 굉장히 깐깐한 사람이야.”

“큭큭, 선배가요?”


마음에 드는 정도?

아니, 그걸로 끝나면 다행이지.


저 정 많고, 그만큼 술도 좋아하는 인간이.

그냥 둘 리가 없을 테니.


아, 그리고.


“선배도 긴장하셔야 할 겁니다.”

“뭐?”


어이가 없어진 박진섭이 뭐라 반발을 하려는데.


끼익-


문이 열리고.


“어, 안녕하세요···?”


문제의 그 주인공이 등장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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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6화. 재채기 23.08.11 68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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