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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안(虎眼)의 서재

천재 배우가 사이코메트리를 안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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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안(虎眼)
작품등록일 :
2023.08.07 17:51
최근연재일 :
2023.08.19 18:25
연재수 :
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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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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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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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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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5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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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10화. 독립영화

DUMMY

“뭐··· 라고요?”

“죄송합니다.”

“아니···. 잘 생각해봐요, 지훈 씨. 이거 진짜 좋은 기회야.”

“알고 있습니다.”

“허어···”


몰랐다.

자신의 제안이 까일 줄은.


“이유··· 알 수 있을까요?”

“음···.”


이유라.


지훈은 고민했다.

어디까지 솔직하게 얘기해야 할런지를.


유경제 감독의 제안은 깜짝 놀랄만한 것이었다.

준조연급인 ‘류연수’ 역할을 서브 남주급으로 분량을 늘리겠다니.

솔직히 듣고도 믿기 어려운 제안이다.


그러나, 지훈은 선뜻 승낙할 수 없었다.


거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먼저, 눈치.


감독이 이 제안을 가지고 오기 전.

촬영장의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느꼈다.


정확히는 자신을 향한 몇몇 배우들의 시선이.


질투, 분노, 짜증, 당혹.


전에도 어느 정도는 느껴졌지만, 오늘따라 유독 심했다.

그 원인이 수정된 대본과, 자신의 역할 때문임을 지훈은 모르지 않았다.


‘특히 강수현 씨.’


아무래도 가장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그녀.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부정적인 감정의 크기는···


‘나를 너무 싫어하는 거 같던데.’


노골적이다 못해 질릴 정도였으니.


다른 배우들의 눈치를 봐서라도 이 제안, 승낙하기 쉽지 않았다.

굳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줘가면서까지 탐나는 배역도 아니었고.


여기서 이어지는 두 번째 거절 이유.

배역.


‘류연수’ 역은 많은 연기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잘생긴 얼굴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분위기가 전부인 캐릭터.


수정된 대본이 어쩔지는 모르겠지만, ‘류연수’ 역으로는 도전해볼 수 있는 연기에 한계가 있으리라는 것이 지훈의 생각이었다.


배우로서 성공하고자 하는 지훈이었지만.

당장의 인기를 성공이라 여기지 않았기에.


적어도 성훈이는 그랬다.

연기력으로 인정받길 원했고, 스타보다는 배우가 될길 원했다.


그 꿈을 이뤄주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큰 배역을 따내는 것보단 ‘연기’에 집중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 지훈의 생각.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


‘어제 들어온 대본. 그 역할···.’


꼭 해보고 싶은 역할의 오디션 제의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걸 그대로 얘기할 수는 없었다.


‘어쨌든 신경을 써주시는 거니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유경제 감독은 자신에게 무조건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호감을 보여주었다.


‘류연수’ 역할을 준 것도, 분량을 늘리자는 제안을 한 것도.

모두 그 호감에서 비롯된 호의.


그래서 약간의 거짓말을 섞었다.


“다른 일정이 있어서요. 죄송합니다. 개인적인 일이라···.”

“아···. 그렇게 급한 거예요?”


미련이 남았는지 유경제가 말꼬리를 잡아봤지만.


“죄송합니다, 감독님.”

“음···.”


단호한 지훈의 대답에 이내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내 다음 작품 꼭 같이하는 겁니다.”


그래서 나온 차선책.

차기작 캐스팅.


신인 배우에게 있을 수 없는 귀한 제안이었지만.

이 바닥의 생리를 모르는 지훈에겐.


“감사합니다. 네, 꼭 그럴게요.”


그저, 좋은 사람이구나 정도의 감흥.


“그럼.”


아무튼 그렇게.


지훈의 <사이코패스 그녀> 촬영이 마무리되었다.


*


강남구의 DH엔터 사옥.


최상층의 깔끔한 사무실에서는 대화가 한창이었다.


“그러니까··· 유 경제 감독이 대본 수정까지 해가면서 출연을 더 해달라고 했는데, 거절했다는 거지 지금?”

“네.”


보고를 받는 이 사무실의 주인.

오태경은 머리가 지끈거려 옴을 느꼈다.


‘미친놈인가?’


아무리 넷플렉스 오리지널로 들어갈 작품이고, 유경제 정도 되는 감독의 작품이라고는 해도.

고작 조연급 배역 하나 때문에 그가 머리 아플 일은 없었다.


그 정도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역할.


문제는.

그 역할을 따낸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견한 한지훈의 가능성.


오태경 대표는 한지훈을 ‘될 놈’이라 여겼다.

연기력도, 대중의 반응도 아직 아무것도 증명된 것은 없지만.


‘돈이 될 놈’이라고.


그런데, 그런 놈이 돈 될 기회를 스스로 차버렸다.


“예술병 뭐 그런 거야?”


신인에게는 천금을 줘도 얻기 힘든 값진 기회를.


그게 문제였다.

아무리 상품이 훌륭해도, 내부적으로 하자가 있거나, 제어할 수 없으면 말짱 황이다.


오태경에겐 돈이 될 상품이 필요한 거니까.


“그런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본인이 그러던데요, 연기라면 어떤 종류도 좋다. CF 쪽도 넌지시 물어보니까, 그쪽도 할 의향이 있어 보이고요.”


한지훈을 맡은 매니지 3팀의 팀장, 고영민이 조심스레 대답했다.


“그런 놈이 그 좋은 기회를 걷어차?”

“본인 말로는 새로운 역할 꼭 해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이거?”


오태경이 탁자에 놓인 대본 하나를 집어들었다.

한지훈이 관심을 보인다는 그 대본을.


<등대지기>


이름도 없는 무명 감독의 독립 영화다.


“거기 주연 역할이 욕심나나 보더라고요.”


고영민의 대답에 오태경이 대본의 시놉시스를 훑었다.


“평생 동생을 뒷바라지한 형에, 엇나가는 동생···”


아무리 오태경이라도 모를 수 없는 연관성.


한지훈.

그리고 한성훈.


형제가 각별하다는 건 들어서 알고 있었다.


“고작 그런 이유로 이따위 삼류 싸구려 신파를 선택한다고?”

“대본은 괜찮던데요?”

“대본이 좋으면 뭐해. 그래 봐야 독립영화야.”


독립영화는 돈이 안 된다.

한때 가능성을 인정받던 시기도 있었지만.

요즘은 더더욱 시장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흠.”


한층 누그러진 음성.


이유가 있다라.

그건 다행이다.


여전히 오태경은 좋은 기회를 물리고 독립 영화를 선택한 한지훈의 심정을 공감할 수 없었지만.

이해까지 못하는 건 아니었으니.


배우도 사람이고.

개인적인 이유로 해보고픈 배역 하나쯤은 다들 있다.


동생에 대한 감정으로 저 작품을 선택한 것까진 이해할 수 있고.

적어도 이해가 된다면···


‘감당 못 할 하자는 아니라는 거지.’


한지훈의 ‘의외성’과 ‘상품 가치’를 저울질하던 오태경이 이윽고 다시 입을 열었다.


“저쪽 진행 상황 디테일 뽑아서 가져와 봐.”

“허락하시는 겁니까?”

“지가 하겠다는데, 내가 무슨 수로 막아.”

“알겠습니다.”


고영민이 나가고.

오태경이 다시 대본을 집어 들었다.


“하여간 배우들 감성적이야.”


그러니까 예술 같은 거 하는 거겠지만.


중얼거리며, 오태경이 대본을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


무려 박진섭을 데려왔다.

명품 조연. 충무로의 거장들로부터도 심심치 않게 러브콜을 받는 박진섭을.


그거면 될 줄 알았는데.

앞으로 탄탄대로일 줄 알았는데···


“인제 와서 투자를 못 하시겠다뇨?”


― 죄송합니다. 회사 자금 사정이 조금 어려워져서.


“아니···.”


거기까지.

윤태영 감독은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어디까지나 투자를 받는 입장.


돈 쓰는 놈이 제 지갑 열지 않겠다는데, 뭐라 하겠는가.


― 저희도 아쉽습니다. 아무쪼록···


전화기 너머로 구구절절 의례적인 말들이 흘러나왔지만.

윤태영에겐 들리지 않았다.


“예, 감사합니다. 생각 바뀌면 전화··· 주세요.”


상대의 말이 끝날 무렵.

그렇게 맺음을 하고, 전화를 끊은 윤태영.


“하··· 시발.”


핸드폰을 내려둔 그가 길게 한숨을 쉬며 천장을 올려다 봤다.


이러면 나가리다.

아무리 저예산 독립 영화라 해도.

돈이 있어야 영화를 찍을 수 있다.


연영과 졸업 작품으로 내는 독립 영화도 기천은 드는 판국에.

윤태영의 지갑엔 당장 스튜디오 이번 달 월세도 간당간당하다.


“그냥 뒤지라는 거잖아.”


뭔가 대단한 걸 바라던 것도 아니었다.

상업 영화로 큰 돈을 벌려고 했던 것도, 유명세를 얻고 싶은 것도.


그저···


‘형.’


형을 위한 헌정 영화를 만들고자 했을 뿐이었다.

평생을 자기 뒷바라지만 하다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형.


그런 형의 희생을 주제로 한 헌정 영화.


“시발, 이것도 못해주네.”


미칠 것 같다.


감독 되겠다고 형에게 그 고생을 시켰으면서.

죽은 형을 위해 영화 하나 못 만들어주는 형편없는 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그래. 시발. 니들 돈만 돈이냐?”


돈.

그래, 먹고 죽을래도 없는 돈이지만.

어떻게든 구하면 구할 수 있지 않을까?


- 작은 엄마

- 주형 선배

- 큰이모

.

.

.


어디 돈 나올 구석이 없나 핸드폰을 뒤지던 윤태영.

그때.


우웅―


진동과 함께.

화면 상단에 작은 알림이 떴다.


‘DH엔터?’


DH엔터로부터 온 메일 하나.


― 안녕하세요, 윤태영 감독님. DH엔터 매니지 3팀의···


구구절절 내용은 길었지만.

요약하자면.


‘DH엔터 신인 배우를 당신 작품에 출연시키고 싶다.’


다행히 나쁜 소식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좋은 소식도 아니었지만.


‘이 판국에 오디션이라···.’


DH엔터 정도 되는 대형 매니지먼트에서 계약한 배우라면, 신인이어도 특출난 무기가 있다는 소리다.

그런 사람이 관심을 가져줬다는 건 분명 반가운 일이었지만.


“에휴, 이걸 뭐라고 답장을 보내냐.”


투자가 엎어진 지금.

뭐라 답하기도 애매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일단 오라고 할까?’


오디션을 보는 거야 뭐.


‘어차피 보아하니 쌩신인인 거 같고.’


필모에 멜로 드라마 조연 하나.

그것도 아직 방영도 안 된 그 배역 하나가 전부인 쌩신인.


토독, 톡―


그렇게 반쯤 포기한 심정으로.


[ 안녕하세요, 윤태영입니다. 보내주신··· ]


윤태영이 답장을 써 내렸다.


*


오디션 일정이 잡혔다는 말을 전해 듣고.

물끄러미 대본을 바라보며, 지훈은 생각에 잠겼다.


‘잘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조금 성급한 결정이었을지도 모른다.


‘김두식’이라는 배역.

성훈이와 자신의 이야기가 떠오르는 스토리라인.


연기를 위한 도전이라고 말은 했지만.

단순히 그것 뿐은 아님을 지훈도 알고 있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과거의 망령에 붙들려 허우적대는 것일 수도 있다.


동생이 하지 못했던 말.

동생에게 해주지 못했던 말.


두식의 입을 빌어.

그 말들을 전하고자.


‘그래도 언젠간 해야 하는 일이야.’


상실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


조금 이를 수도 있지만.

<등대지기>는 좋은 기회다.

대본도 매력적이고.


앞으로 연기를 계속해나가려면.

앞으로 나아가려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사락―


첫장을 넘기고.


몇 번이고 읽어, 벌써 한 귀퉁이가 낡아버린 대본을.

지훈은 또다시 눈에 담았다.


그 안에 담긴 성훈을 찾기 위해.

또 한편으로는 지워내기 위해.


*


“윤태영입니다.”

“한지훈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형식적인 인사가 오가고.

잠깐의 정적이 찾아왔다.


‘어떡하지?’


윤태영 감독.

그는 한지훈을 보는 순간부터 거절을 생각했다.


숨을 턱 막히게 만드는 압도적인 비주얼.

그것이 몇 가지 상황과 겹치며 하나의 편견을 만들어내는 중이었으니.


‘잘생긴 신인 배우. 필모엔 아무것도 없고.’


극단 출신도 아니다.

심지어 연영과 출신도 아니다.

어디 아카데미 출신이라는 말도 없고.


이런 경우.

백이면 백, 연기력에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


저 잘생긴 배우는 DH에서 얼굴만 보고 키우는 유망주일 거고.

연기력도 쌓을 겸, 필모도 채울 겸 자신의 작품을 선택한 거다.


‘망해도 아무도 모르고. 리스크도 적을 테니.’


아마도 아이돌을 시키려다, 춤이나 노래에 재능이 없으니 배우로 돌아섰겠지.

편견에 편견이 덧씌워지고.


“음··· 저, 오디션은.”

“아, 네.”


지훈이 정적을 깼을 때쯤엔.


‘거절한다.’


윤태영의 마음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물론, DH엔터쯤 되는 거대 엔터 소속 배우를 오디션도 보지 않고 홀대할 수는 없었다.

DH가 아니더라도, 오디션을 보겠다고 부른 건 자신이었으니.


“네, 어떤 연기 보여주실 거죠?”


그러나, 이미 마음이 뜬 윤태영의 목소리엔 자연히 티가 날 수밖에 없었고.

그걸 눈치채지 못할 지훈이 아니었다.


‘탐탁지 않아 보이네.’


물론, 그렇다고 당장 지훈이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53번 씬 준비해 왔습니다.”

“아··· 53번이면···.”


대본을 뒤적이는 성의 정도는 보였지만, 확실히 의욕이 없다.

하지만, 이 역시 지훈이 감수해야 할 부분.


연기로 배역을 따내고.

저 인식을 뒤바꾼다.


해서, 지훈은 거기에 딱 맞는 씬을 가져왔다.

자신이 가진 것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장면으로.


“병실에 누운 형을 보며, 두식이 분에 찬 음성으로 중얼거린다.”

“아···! 그 부분이군요! ······. 대본을 다 외우신 건 아니죠?”


놀란 듯 윤태영이 물었지만, 지훈이 고갤 저었다.


“아, 그건 아닙니다. 제 파트만.”

“파트를요?”


그러나 그 대답이 윤태영의 놀람을 줄여주진 못했다.


애초에 이 영화.

주연 투톱의 영화다.


조연이랄 사람도 거의 등장하지 않는.

메인 캐릭터인 김두식의 파트를 다 외웠다는 건···


‘대본을 80% 넘게 외웠다는 거잖아···!’


고작 무명 감독의 독립 영화 출연을 가지고.

배역을 따기도 전에 대본의 80%를 외워 오다니···.


‘천재야? 아님, 열정이 미친 건가?’


그렇게, 윤태영 감독의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사이.


“시작해도 될까요?”

“네···? 아, 네···!”


조용히 감정을 가다듬던 한지훈.


“후우···, 후···.”


별안간 가쁜 숨을 내쉬더니.


“김두형, 이 미친 새끼야――!!”


윤태영을 향해 악에 받친 고함을 내뱉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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