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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안(虎眼)의 서재

천재 배우가 사이코메트리를 안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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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안(虎眼)
작품등록일 :
2023.08.07 17:51
최근연재일 :
2023.08.19 18:25
연재수 :
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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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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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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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1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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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6화. 재채기

DUMMY

“결국 연기는 제대로 보지도 못했네.”

“그러네요.”


애써 준비한 자리.

강수현이 오디션 자리에 들어와 호흡을 맞춰 보겠다고 먼저 얘기했을 땐, 솔직히 조금 놀랐다.


배우로서의 인지도는 아직 낮지만, 그녀는 엄연한 탑급 아이돌.

인지도와 업계에서의 위치는 탑급 배우들에 비해서도 많이 모자라지 않는다.


고마운 일이지만, 걱정도 됐다.


업계에서도 공공연하게 알려진 연기에 대한 그녀의 자부심.

신인 배우를 향한 그녀의 특별 대우는···


“길들이기였지?”

“뭐, 그런 것 같던데요?”


그렇다.

신인 길들이기.


아이돌 출신 배우인 그녀의 콤플렉스는 익히 알려진 사실.

그리고, 때때로 그녀가 극단 출신 신인 배우들과 마찰을 일으킨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물론, 한지훈의 경우 극단 출신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근데, 보기 좋게 실패한 거 같고.”

“···네.”


유경제 감독의 다소 허망함 섞여 있는 물음에, 서유진 작가 역시 비슷한 음성으로 답했다.


“서 작가는 어땠어?”


유경제가 그런 서유진을 지긋이 바라봤다.

대학교 후배이자, 벌써 두 번째로 작품을 함께 하는 능력 있는 작가.


배우의 연기에 대한 그녀의 안목은 자신보다 뛰어났다.

그런 그녀가 바라본 방금의 한지훈은 어땠을까?


“어땠냐라··· 선배, 혹시 기억나요?”

“누구?”

“이철진이요.”

“이철진?”


서유진의 질문에 유경제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모처럼 듣는 선배라는 호칭은 둘째치고.

연기가 어떠냐는 질문에 뜬금없이 이철진이라니?


“그 왜 있잖아요. 연영과 03학번.”

“연영과 03?”


유경제의 머릿속이 점점 미궁에 빠져들었다.


“수진 언니랑 결혼한 그···.”

“아···!”


수진. 그 이름이 나오고서야 기억해 냈다.

이철진, 그게 누굴 지칭하는지를.


대한민국에서 제일 끼 많고, 잘생긴 놈들 모인다는 한국대 연영과에서.

그 학번··· 아니, 당시 학교를 통틀어 제일 잘생기기로 소문났던 놈.


그리고 마찬가지로 가장 예쁘기로 소문났던 현수진을 채간 놈.


현재 대한민국 탑급 미남 배우로 손꼽히는 강주혁이나, 장동현도 당시엔 그 녀석보다 한 수 아래로 평가받을 정도의 얼굴 괴물.

근데 그 사람 이름이 갑자기···


“아···!”


유경제가 별안간 무릎을 탁, 치며 탄성을 질렀다.


깨달았다.

서유진이 왜 이철진, 그 희대의 얼굴 괴물의 이름을 꺼냈는지를.

애초에 연기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똑같네.”

“똑같죠?”

“어···.”


한지훈의 연기.

아니, 방금의 한지훈의 모습은···


그들의 20대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던 한 남자의 모습과 지독하게 닮아 있었다.


“너··· 설마···?”

“큭큭, 뭐요. 이철진 생각하고 썼냐고요?”

“진짜야?”

“저도 이정도로 똑같은 걸 보게 될 줄은 몰랐네요.”


서유진의 목소리에 은근한 여운이 맴돌았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유경제 역시 모르지 않았다.


“너도 이철진 좋아했냐?”

“후··· 다 지난 일을. 그때 철진 선배 안 좋아했던 사람들 있었어요?”


그렇지.

남자인 자신이 봐도 홀릴 만한 압도적인 비주얼.

그때, 이철진 얼굴 때문에 연기 포기한 연영과 학생이 부지기수였다.


“그럼 결정은 났네.”

“결정 났죠.”

“더 볼 필요도 없지?”

“더 볼 사람은 있고요?”


음, 그것도 그러네.

애초에 오디션 대상은 한지훈 하나였으니.


“좋네.”

“좋네요.”


완벽한 퍼즐을 찾아낸 두 사람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근데, 서 작가. 이철진 진심으로 좋아했던 거야?”

“······.”

“서 작가, 어디 가? 응? 서 작가아―”


*


“후우···.”


착잡하다.

결국, 이번에도 다 보여주지 못했다.


‘왜 매번 이러지?’


나름 고심해서 했던 연기였는데.


‘나를 싫어하나?’


이번에도 안주경 역을 맡은 강수현.

그녀가 대사를 절었고.

작가와 감독은 심각한 얼굴로 둘이서 무언가를 쑥덕였다.


모처럼.

망가진 초공감 능력이 아쉬워진다.

어렸을 땐, 공기의 분위기만으로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는데.


“그래도 제작사 대표는 표정이 좋았으니까.”


다행이라면, 제작사 대표는 시종일관 표정이 좋았다는 것 정도.


“음···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어쨌든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주어진 시간 동안 해볼 수 있는 건 다 했으니.

이걸로 안 된다면···


‘아쉽지만 내 기회가 아닌 거겠지.’


*


공연한 우려였다.

이튿날, 지훈은 고영민 팀장으로부터 배역을 따냈다는 소식을 전해 받았다.


― 지훈 씨, 수고 많았어요. 촬영은 내일부터. 열 시까지 회사로 오면 같이 이동할게요.


툭.

문자를 확인하고, 핸드폰을 내려놓은 지훈이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


인기 감독의 드라마 복귀작.

조연이라는 역할.


그 무게감이 뒤늦게 실감된다.


“하아···.”


일을 너무 벌인 건가?

배우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그래서 자퇴까지 했는데···


‘좀 빠른 거 같기도 하고···.’


업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지훈의 기준에선 조금 버거운 감이 없잖아 있다.

수만··· 아니, 수십만의 사람들이 화면 너머로 자신의 얼굴을 볼 거다.

그 사실이 생각보다 큰 중압감으로 다가왔다.


‘어렸을 땐, 어떻게 한 거지.’


아역 때는 신나서 연기했던 것 같은데.

뭐, 그때야 이런 걸 알지도 못했으니까.


‘기분 전환이라도 해야겠다.’


근데 뭘로?

생각해보면 취미랄 것도 없는데.


운동이나 해야겠다, 마음을 먹고 옷을 갈아입으려는데.


― 지이잉, 지이잉


때마침 울리는 핸드폰.


[ 17유지애 ]


지애다.


― 뭐해

“어, 지애야.”

― 뭐하냐고.

“그냥 있어.”

― 나와.


어딜?

여기 신촌인데···


― 안암역, 1시. 점심.


뚝.


오···.

다소 당황스럽긴 하지만.


아무튼, 할 일이 생겼다.


*


여름의 열기가 한껏 기승을 부리는 정오의 캠퍼스.


방학을 맞이해 한껏 한산해진 캠퍼스를 걷는 한 20대 여성.


‘괜히 나왔나?’


예상보다 지독한 더위에 당황한 <사이코패스 그녀>의 여주인공, 강수현.

톱클래스 연예인의 삶을 사는 그녀가 찾은 이곳은 호경 대학교.


‘그래도 하루 먼저 둘러보면 좋지.’


<사이코패스 그녀>의 메인 촬영지가 될 곳이다.


물론 그녀가 비밀리에 이곳을 방문한 이유가 그뿐은 아니었다.


사람들 몰래 캠퍼스를 걷는 것.

그것은 그녀가 아이돌로 최정상을 찍은 후, 이따금 즐기는 취미생활이기도 했으니.


‘그래도 좋네.’


열다섯 살때부터 시작된 연습생 생활로 그녀에게 학창생활은 사실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대학 생활은 더더욱.


그래서 그녀는 이따금 남몰래 대학 캠퍼스를 거닐곤 했다.

그녀가 누리지 못했던 20대의 공기를 맡기 위해.


그 분위기를 온전히 이해할 순 없었지만.

이런 것도 나름대로 기분 전환에 도움이 됐다.


특히나 이렇게 생각이 많은 날엔.


‘···짜증나.’


벌써 두 번째다.

그 남자 때문에 연기를 망친 게.


NG가 드문 일은 아니었지만, 이 경우는 달랐다.


압도되는 기분.

도믿남의 섬뜩한 눈빛과 ‘류연수’의 압도적 분위기.

두 연기의 결은 달랐지만, 결과는 언제나 같았다.


대사를 잊어버릴 정도로 압도되었다는 것.

나름대로 연기력에 일가견이 있다는 선배들과도 호흡을 맞춰 보았지만, 이런 적은 없었다.

적어도 동년배를 상대론 절대.


“으··· 더워.”


여름을 맞이한 캠퍼스는 한산했다.

덥기도 했고.


푹 눌러쓴 모자와 검은 마스크.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지만, 또, 그리 이상한 모습은 아니다.

캠퍼스에 그런 모습을 한 사람은 의외로 흔했으니까.


딸랑―


은은한 종소리와 함께, 캠퍼스 내에 있는 작은 카페에 들어선 그녀.


“어서오세요~.”


반갑게 맞이하는 종업원에게 목례로 인사를 건네고, 키오스크에서 고민도 하지 않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하나 골랐다.

사람이 없진 않았지만, 빈 자리가 더 많은 카페.


‘이만하면 만족.’


잠시 서서 커피가 나오길 기다리다, 커피를 받아들곤.

가장 구석진 자리로 향했다.


‘지켜보는 사람 없고.’


카페 가운데 자리한 굵은 기둥 덕에, 사람들의 시선에서 어느 정도 자유롭다.

당장 눈에 들어오는 사람은 대여섯··· 정도.

그마저도 저마다 노트북을 부여잡고 뭔가에 열중한 모습.


조심스럽게 마스크를 내리고, 고개를 돌려.


쪼롭―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입.


‘아···!’


이거지!


얼음의 냉기를 잔뜩 머금은 아메리카노의 목 넘김이 짜증과 더위를 시원하게 날려버린다.


‘후후.’


아아가 주는 만족감에 슬며시 미소 짓는 그녀.

한층 여유로워진 그녀의 귓가로 정오의 열기에 짓눌려 있던 것들이 하나씩 들려오기 시작했다.


타닥타닥―


경쾌한 키보드 소리.


‘너 휴학한다고?’

‘응··· 아마도?’


학생으로 보이는 이들의 대화.

그리고···


‘음?’


그 사이사이로 들릴 듯 말 듯 들려오는 카페의 음악소리까지.

흐릿하지만, 분명히 알 수 있다. 저건···


‘내 노래네?’


정확히는 그녀가 속한 그룹, NU:US(뉴어스)의 곡.

그녀의 데뷔곡이니··· 벌써 나온 지 10년 가까이 된 노래다.


‘좋네.’


시원한 아메리카노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마주한 과거의 향수도.


그 때문일까?


평소 언제나 자기 검열에 철저한 그녀가 방심한 것은.


‘으음···’


살짝 내린 마스크 사이로 드러난 코끝을 바람이 간질이고.


“에··· 에···”


인지할 새도 없이.


“에초!”


시원한 재채기 한 방이 터져나왔다.


*


“하아···.”


그 시각 카페의 한편에선.


오명준, 스물일곱.

국어국문학과 출신, 취준 8개월차 프로 취준러.

그가 밀려드는 막막함에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대체 날 왜 안 뽑는 거지?’


방금 전 불합격을 알리는 메일을 확인하고, 다시 지원서를 넣을 곳을 찾기 위해 노트북을 켰지만, 심란한 마음은 좀처럼 가라앉질 않는다.


“하···.”


좆같네.

속으로 욕설을 내뱉은 그의 귀로 들어오는 작은 노랫소리.


오명준의 수험생활을 위로해주고, 군 생활을 버티게 해준.

‘뉴어스’의 데뷔곡, [ New Earth ].


‘오우, 사장님 음악 좀 들을 줄 아시는 분인가?’


울적하던 마음이 풀어진다.


오랜만이네.

내 최애.


― 이제는 다를 거야~ 우리가 함께니까~♬


그리고 최애의 최애.

강수현의 목소리가 전하는 위로의 메시지.


‘그래··· 힘든 시기, 너희 덕분에 다 이겨냈지.’


오명준의 입가에 미소가 차오른다.


― 우리 함께라면, 이겨낼 거야~♪


청량한 목소리가 굳게 닫힌 마음을 어루만진다.


아, 이거지.

왔구나, 국가가 허락한 내 마약.


타닥타닥―


누군가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 너머.

희미하게 이어지는 마약을 좇아.


쫑긋대던 그의 귀로.


“엣쵸!”


어?

갑작스레 끼어든 소음.

아니.


‘엣쵸?’


소음이 아니다.

앙증맞은 저 재채기.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명문 사학(私學).

호경대학교 경영학과 졸.

졸업학점 3.7에 빛(?)나는 꽤 수재.


오명준의 머리가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저 재채기.

어디서 들어본 걸까?


친구··· 드라마··· 예능···


빠르게 가능성을 검토하는 그의 기억이 마침내 닿은 곳은.


― 뉴어스 V-Live.


스타와 팬을 이어주는 SNS 서비스.


생일을 맞아 V-Live를 켰던 2018년의 강수현.

그리고 그녀가 활동 중, 단 한 번 보여주었던 재채기.


당시 상병 오명준의 심장을 박살낸 그 사랑스러움 한도 초과 한 방.


“강수현?”


그럴 리가.


현실적으로 생각해, 오명준.

이건 현실이야.

여신이 이런 누추한 곳에 강림하실 리가 없잖아.


―라는 속마음과 달리 오명준의 시선이 빠르게, 소리의 발원지를 찾았다.

먹이를 노리는 매처럼.

검은 모자와 반쯤 드러난 마스크의 여성을 포착.


고작 절반뿐이었으나.

오명준은 확신할 수 있었다.


저 여인이 그의 마음의 주인.

강수현, 그녀임을.


‘아아···.’


비틀.

잘 가눠지지 않는 몸을 일으켰다.


저벅···


이미 통제를 벗어난 몸.

마치, 여왕의 페로몬에 지배당하는 일개미처럼.


‘으어···.’


오명준의 발걸음이 그의 여왕에게로 향했다.


뭐라 말할까.


강수현, 그녀를 혹시라도 마주치게 되면 어떡해야 할까.

망상에 빠져 돌린 시뮬레이션만 오십삼만팔천 회(回).


모든 경우의 수를 염두에 뒀건만···

무의미한 짓이었다.


저벅···


다시 한 걸음.

이제 뚜렷하게 보인다.


목숨보다 사랑한 그녀의 빛나는 눈망울.

구름보다 뽀얀 피부와···

부드럽게 떨어지는 유려한 턱선.


“으어···”


아, 추태를 보이면 안 되는데.

그녀에게 피해를 끼치면 안 되는데.


팬이라는 것만 조용히 말하고.

인사만 건네고···

그래, 딱 거기까지만···


오명준의 이성이.

강수현을 사랑하는 그의 팬심이.

그를 제어하려 했지만···


“저···”


그의 음성에 돌아보는 그녀의 눈.

그 아름다운 별빛이 오명준에 닿는 순간―


“어어···, 사···”


신을 마주한 필멸자의 전율이.

그 불가해(不可解)한 도파민의 폭풍이 오명준을 휩쓸었다.


바스라진 이성.

남겨진 것은.


“사··· 사···”


6년간 그의 몸에 학습된,


“사― 랑한다! 강! 수! 현! 뉴! 어스! 우리는! 하나――!!”


본능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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