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타적 시스템(4)
너무나 오랜만에 듣는 말.
몸을 이루는 모든 물질이 우주의 공허에 흩어지고 쪼개지면서도 간절히 원했던 말.
첫 번째 손은 되살아난 동족이 자신에게 건넨 그 말 한마디에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기쁨의 눈물이요, 감격의 눈물이니.
[ 성좌 '설탕별'이 당신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
"위대하신 설탕별이시여······."
설탕별은 감격의 순간 그들과 함께하고 있었다.
동족의 부활, 부흥의 초석.
이 모든 것을 예상하고 자신을 첫 번째로 되살리셨나?
첫 번째 손은 너무나 전지한 설탕별의 설계에 감탄하고 또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 성좌 '설탕별'이 영웅 '???'을 주시합니다. ]
"그래. 이건 전부 설탕별님 덕분이지."
그것은 새로이 부활한 그도 마찬가지였다.
"첫 번째 손이 깨어난 그 날, 저는 의식을 조금이나마 되찾을 수 있었나이다!"
그는 첫 번째 손이 깨어난 날 자신의 정신을 아주 약간이나마 되찾을 수 있었다.
아주 깊은 어둠 속에서 어딘지 모를 끝없이 먼 거리에 반딧불이 하나가 움직이는 것 같은 희미하고도 희미해 거의 없는 것과 다름없는 자아였지만, 그의 망가진 정신이 다시 되돌아오게 만드는 시작으로는 더할나위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정신은 점점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처음으로 달콤한 땅이 생겨났을 때 그의 정신은 상당히 많이 돌아오게 되었다.
외부에서 자신을 위해 힘을 쓰는 첫 번째 손에 대한 고마움, 아주 먼 곳에서 자신의 알갱이를 감싸안는 위대한 설탕별님의 은혜, 비슷한 목적을 위해 협력을 하는 니르카에 대한 우정.
그 모든 것은 첫 번째 손과 연결된 알갱이에서 전달되었다.
원래는 이러지 않았다.
그들의 행성에서는 그들은 서로를 원하지 않았다.
서로에 대한 도움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었고, 생명과 존재를 위협하는 천적 역시 존재하지 않았기에 그들은 서로에 대한 관심이 없어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부부가 없어도 태어날 수 있었고, 달콤함이 일정 수치에 이르면 바라지 않더라도 후손이 태어날 수 있었다.
달콤한 것이 있다면 그들은 불멸이었고, 아무리 부서져도 되살아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몸을 이루는 달콤한 알갱이는 서로와 연결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로써 완벽한 존재였기에.
하지만 그것은 오만이었다.
몸을 이루는 가장 작은 알갱이들끼리 연결된 것이건만, 그의 삶은 알갱이를 넘어서서 끝없이 확장되었다. 감정을 일부 공유할 수 있었고, 설탕별님의 은혜를 느낄 수 있었고, 자신을 부활시키기 위해 애쓰는 주종의 노력 역시 느낄 수 있었다.
'······'
그들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설탕별님이 내려주신 신물의 힘은 위대했고, 신물과 공명하는 첫 번째 손의 힘은 아름다웠다.
수많은 빛나는 글자들이 소용돌이치고, 소용돌이가 인력을 만들어 달콤한 물질을 끌어들였다.
가장 작은 알갱이는 오랜 옛날 자신의 몸이 만들던 형태를 기억해내 다시 복원시켰고, 점점 뚜렷해지던 정신은 이내 자아를 이루어 몸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옛 행성에서 자신이 사용하던 보이지 않는 손 역시 사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는 온전히 부활하여 새로운 터전이 될 장소에서 눈을 뜨게 된 것이라!
"위대하신 설탕별님! 감사합니다!"
그는 울음을 터트리며 기도를 올리고 있는 첫 번째 손과 비슷한 자세로 꿇어서 기도를 올렸다. 그의 얼굴에는 진지함이 가득 묻어있었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심이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배어있었다.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되는 존경.
몸을 이루는 달콤한 알갱이 하나하나가 찢겨져 나가고, 종국에는 단 하나만 남는다고 할지라도 사라지지 않을 경외!
몸을 다하여 기도하고 공경하여도 끝이 없을 하해와 같은 은혜!
"첫 번째로 깨어나 종족의 부활의 업을 맡게 된 #####······. 첫 번째 손에게 주어진 자애로움을 조각난 의식으로나마 체험하였으니, 어찌 당신을 섬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부활이라는 것은 0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주 조금이나마 그 흔적이 남아있고,그 흔적을 씨앗삼아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것이니 어찌 의식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아주 일부분이 남은 그의 몸체는 첫 번째 손과 이어져 있었고, 첫 번째 손에게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를 체험할 수 있었다.
온전하지 않은 정신으로는 자아를 유지할 수 없어 첫 번째 손의 모든 기억과 감정을 받은 것이 아니었지만, 직접 몸소 겪은 체험에 대한 것은 생생하게 머릿속에 박히고 몸에 체현되었으니 어찌 위대한 설탕별의 은혜를 부정하겠는가.
"이에 저는 첫 번째 손과 같이 의미가 없어진 이름을 버리고 새로이 이름을 받고자 합니다!"
[ 영웅 '???'이 자신의 이름을 '두 번째 눈물'로 설정하였습니다. ]
[ 자신을 결정짓는 첫걸음은 이름입니다. 이름이 지어진 순간 당신은 우주의 먼지에서 하나의 독립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
[ 우주는 존재가 확립된 당신을 기억할 것입니다. ]
그는 평소의 장난스러운 태도를 모조리 버리고 격정적으로 소리쳤다.
이는 하늘에 내뱉는 함성이요, 별에게 닿기를 원하는 자의 소망이었다.
그리고 그 회답이 돌아와 그에게 이름이 내려지니.
"위대하신 설탕별님! 만세!"
참으로 기뻐 만세를 내지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감격에 겨운 첫 번째 손은 두 번째 눈물에게 내려진 기적에 환희하여 부둥켜 안아 기쁨을 표현할 수 밖에 없었고, 이 놀라운 기적에 니르카마저 촉수에서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으니.
'기적.'
진실로 아름다운 기적이라 하지 않으면 뭐라 하겠는가?
* * *
"이게 뭐야!"
스티엘은 크게 놀랐다.
아니, 경악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고!"
[ 영^*&^#&$%#####!@@$&%*(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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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메시지는 스티엘에게 있어서 익숙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눈 앞에 보이고 있는 깨진 메시지는 그동안 본 것들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기괴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색색으로 빛나는 글자들, 춤을 추며 난잡하게 흩어지는 그림과 같은 것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며 울부짖는 무엇인지 모를 짐승을 따 만들어진 상형 문자들!
선으로 이루어진 새가 날개짓하고, 알파벳이 나무처럼 춤추며 자라난다.
고리 달린 십자가가 우뚝 서서 허공에 박히고, 한글의 자모가 뭉치고 흩어지며 형상을 이룬다.
이 현상은 물 속에서 글자들이 소용돌이치는 속도가 빨라지면 빨라질수록 심해졌고, 종국에 이르러서는 글자들이 움직이는 것 때문에 행성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제대로 관측하기가 힘든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이 놀라운 현상에 스티엘은 앵무새처럼 자신의 말을 반복할 수 밖에 없었다.
"대체 이게 뭐냐고······. 누가 대답 좀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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