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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월당의 기묘한 이야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정연.
작품등록일 :
2014.07.07 18:04
최근연재일 :
2016.05.02 21:57
연재수 :
4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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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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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2,266

작성
14.07.08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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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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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6쪽

첫 번째 이야기: 액받이 #4

DUMMY

제웅이라면 박물관에서 본 적 있다. 하지만 여우요괴가 꺼낸 제웅은 그것과는 달랐다.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역시, 미아 말대로 ‘진짜’라는 건가.


“이것이 대신 액을 받도록 할 겁니다.”


백란은 제웅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버들 류(柳)에 붉을 단(丹). 맞습니까?”


종이를 네모반듯하게 찢으며 물었다. 이름을 묻는 것을 깨닫고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여우는 종이에 유단의 이름을 써서 제웅의 가슴에 밀어 넣었다.


“본래는 옷을 만들어 입혀야 하나, 시간이 없으니 의복의 조각으로 대신하겠습니다. 교복이라 곤란하실까요? 그러면 단추를 하나 떼어 주십시오.”


소매 단추를 하나 뜯어서 주자, 붉은 천 조각으로 감싸서 제웅의 뱃속에 쑤셔 넣었다. 마지막으로 제웅의 이마에 가짜 낙인도 그렸다.


“말씀드렸듯이, 액을 잠시 쫓아두기는 했으나 곧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그러면 그 검은 구멍에 이 제웅을 대신 던져 넣으십시오.”


백란은 완성된 제웅을 유단 앞으로 살짝 밀어놓았다.


“하실 수 있겠습니까?”

“아마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단 한 가지의 주의사항만 지키면 됩니다. 명심하십시오. 제웅에게 자신의 신체 일부를 먹이면 안 됩니다. 손톱이나 발톱이나 머리카락 같은 것 말입니다.”

“내가 그걸 왜 먹이는데?”

“입을 열고 먹이라는 것이 아니라, 제웅이 먹으려 할 테니 먹지 못하도록 잘 감시하라는 뜻입니다. 자꾸 보기 싫은 행동을 해서 쳐다보기 싫어질 텐데, 그래도 꾹 참고 지켜봐야 합니다.”

“행동을 하다니……. 이게 정말로 살아 움직인다는 건가?”

“당연하지 않습니까. 생명을 받았으니까요. 항상 눈을 떼지 말고 반드시 곁에 두십시오. 잠시도 떼어놓으면 안 됩니다.”


유단은 떨떠름한 얼굴로 제웅을 내려다봤다.


“저기, 넌 잘 모르겠지만 이런 걸 갖고 다니면 정신병자 취급 받거든? 안 그래도 충분히 받고 있지만. 남들 눈에는 아무것도 안 보이니까 내가 허공을 노려보고 바람을 쫓아다니는 줄 알아. 거기에다 이런 것까지 학교에 가져가면 정말 어딘가 끌려가 버릴지도 몰라.”

“그것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우요괴는 피식 웃었다. 그 표정을 보아하니, 또 굉장히 바보 같은 소리를 해 버린 모양이었다.


“괴이가 힘을 발휘하면 뭇 사람의 눈을 가립니다. 정확히는, 자기 스스로가 자신의 눈을 가립니다. 자신에게도 옮을지 모른다는 공포심 때문입니다. 따라서 괴이를 눈으로 보고도 보지 못하며 귀로 듣고도 듣지 못합니다. 아무리 이상한 행동을 하셔도 다들 인식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생존 본능 중 하나니까요. 물론 어떤 사람들은 애초에 그런 기능이 고장 나 있기는 하나…….”

“예컨대, 나?”


백란은 대답하지 않았다. 눈동자가 다시 욱신거리는 것 같았다. 유단은 한 손을 들어 왼쪽 눈을 감쌌다.


“원래는 이렇지 않았는데, 그날 그…….”


말이 뚝 끊겼다. 역시 그 일은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를 않는다. 가슴에 뭐가 걸린 듯, 좀처럼 밖으로 꺼내놓을 수가 없었다.


“사고를 당하셨지요.”


백란이 대신 말을 이었다.


“그걸 어떻게 알아?”

“대충 보입니다. 무척 혼란스럽기는 하지만요. 아마도 악귀를 만나신 것 같군요.”

“그래. 어쨌든 그날 이후 이상해졌단 말이야. 요괴나 귀신만 보이는 게 아니야. 어떤 사람 목에 검은 반점이 점점 커져가는 게 보이더니만, 얼마 후 기관지암으로 죽는다거나. 분명히 흰 옷을 입고 찍은 사진인데 붉은 옷을 입은 것처럼 보이더니만, 얼마 후 그 사람이 교통사고를 당한다거나. 온통 이런 일들뿐이야. 난 정말 보고 싶지 않은데. 이 눈을 정상으로 고쳐줄 수는 없어? 왜 내가 이런 저주를 받아야 하는지…….”

“저주가 아닙니다.”


백란은 대답했다.


“말씀하신 것이 맞는다면, 그리고 제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맞는다면, 그것은 아마 천안(天眼)일 것입니다.”

“천안?”

“생사의 이치를 꿰뚫어보는 눈입니다. 이쪽 세계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원할 보물이지요.”


유단은 놀랐다.

지금까지 줄곧 악귀의 저주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보물이라니? 납득할 수가 없었다.


“말도 안 돼. 이런 게 어떻게 해서 보물이야? 이렇게 사람을 귀찮게 하는데. 난 이런 거 필요 없어. 그렇게 좋은 거면 네가 대신 가져가지 그래?”

“그럴 수는 없습니다.”


백란은 고개를 저었다.


“저야말로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무엇이 귀찮습니까? 그저 보이기만 할 뿐인데요.”

“하지만 막상 보이면 어쩔 수가 없단 말이야. 남들은 보지 못하니까. 할 수 있는 것은 나뿐이니까. 막상 눈앞에 나타나면, 싫어도 나설 수밖에 없단 말이야.”

“그것 참 안타깝게 됐군요.”


백란은 태평하게 대꾸했다.


“액구슬을 주술이 담긴 법기로 착각할 정도로 아무것도 모르시니, 어지간하면 무엇을 보고도 못 본 척 가만히 계시는 편이 좋겠지만. 욱하는 성격을 제어할 수가 없다니. 세간에서는 그런 것을 두고 비명횡사할 팔자라고 하던가요.”

“이번엔 운이 나빴을 뿐이야!”

“천만에요. 지금까지 지나치게 운이 좋았던 것입니다. 이 세계는 아주 위험한 미로니까. 다음 모퉁이를 돌았을 때 무엇이 나타날지 모릅니다. 걱정하는 이들을 생각해서라도…….”


그러다 말을 멈췄다.


“저도 참. 뭐 하러 이렇게 떠들어대는 걸까요? 각자의 운명은 각자의 몫인 것을. 조언을 드려 봤자 어차피 기억도 못 하실 텐데.”


유단은 발끈했다.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거든?”

“그런 뜻이 아니라, 아까 말씀 드렸을 텐데요. 사람의 본능 말입니다. 우리가 만난 것이 지금은 이렇게 생생한 현실이지만 곧 기억에서 희미해질 겁니다. 골동품과 책을 파는 가게인 반월당도, 그곳의 이층에 살고 있는 여우요괴도 전부 잊어버릴 겁니다.”


그렇게 말하고는, 생긋, 얄미울 정도로 해맑게 웃었다.


“자, 이제 정말로 끝입니다.”


책을 탁 덮었다.

그 갈색 눈동자는, 비록 웃고는 있지만 나가라는 뜻이 명백했다. 도저히 거스를 수가 없었다.


유단은 머뭇머뭇 일어나 서재를 나왔다.

어쩐지 발이 푹푹 빠지는 것 같은 아득한 기분을 느끼며 계단을 밟아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그들은 어느새 케이크를 뜯고 있었다.


“모양이 예쁘면 맛이 없어. 이 케이크는 정말 맛없어 보여.”

“아니야! 맛있어! 진짜 맛있어! 빨리 먹어봐!”


소년의 성화에 소녀는 머뭇머뭇 한쪽 귀퉁이를 손가락으로 찍어 혀로 날름 핥았다. 귀염성 있는 얼굴이 순간 발그레 홍조를 띠었다.


“어떡하지! 너무 맛있어! 그런데 이제 네 조각밖에 안 남았어! 난 굉장히 슬퍼졌어!”

“네 조각이나 남았어! 우리 모두 한 번씩 더 먹을 수 있어!”

“난 이거면 됐다.”


도깨비가 손을 내저었다.


“한 조각 따로 남겨둬라. 그분께서는 단 것을 싫어하시지만, 이따금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표정으로 조금 드시긴 하더라.”

“대체 이따위 것을 어떻게 먹느냐는 생각을 하시겠지요.”


구렁이 아가씨가 쌀쌀맞게 말했다. 그러면서도 포크를 매우 부지런히 움직이다가, 뒤늦게야 유단을 발견하고 동작이 굳었다.


“신경 쓰지 말고 많이들 먹어.”


그들 앞을 성큼성큼 가로질러 갔다.


“잠깐만요!”


쌍둥이 남자아이가 쩔쩔매며 앞으로 나섰다.


“안 돼요! 이렇게 맛있는 케이크도 사 오셨는데 어떻게 답례도 안 하고 그냥 보내요? 차라도 한 잔 드시고 가세요.”

“싫은데.”

“제발…….”

“이상한 애네. 날 무서워하면서 왜 이래? 자기를 학대하는 걸 좋아해?”

“아니에요! 절대로 아니에요! 그냥 손님에게 예의를 지키고 싶은 점원일 뿐이에요! 차도 대접하지 않고 그냥 보내면, 앞으로 백일 동안은 잠자리가 불편할 것 같아서…….”

“뭐야? 뒤끝이 너무 길잖아!”

“맞아요. 그러니까 제발…….”


그렇게 간절한 눈빛으로 앞을 가로막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유단은 어영부영 근처의 의자에 대충 걸터앉았다.


“고맙습니다. 잘 생각하셨어요.”


소년은 기뻐하면서 주전자를 들고 왔다. 멀찍이서 구경하던 쌍둥이 소녀도 눈치 보며 슬금슬금 다가와 앉았다.


“참, 소개가 늦었네요. 저는 채우(彩雨)라고 해요. 보시다시피 동자삼이고요. 이쪽은 제 쌍둥이 누나인 채설(彩雪). 성격이 좀 비관적이긴 해도 착한 누나예요. 저쪽은 구렁이인 흑요(黑曜) 누님. 무섭지만 은근히 정이 많고요. 저기 저분은 이 가게를 도맡아 경영하시는 도깨비인데, 그냥 도씨(陶氏) 아저씨라고 부르시면…….”

“날 부를 일이 뭐가 있다고!”


도씨가 심술궂게 대꾸했다.


“그래, 그분께서 뭐라고 하시던가? 그 눈 말이야.”

“천안……이라던데.”

“뭐?”


모두들 깜짝 놀랐다.


“난 영락없는 흉안(凶眼)인 줄 알았는데!”

“저희들도요!”

“신기하다! 그런 게 정말 있었구나!”


다들 흥분해서 떠들어댔다. 정작 유단은 시큰둥했다.


“글쎄. 그렇게 좋은 거라면 가져가라니까.”

“할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네.”


흑요가 중얼거렸다.


“그런 것이 어쩌다 저런 녀석에게 들어갔을까? 아깝기도 하지. 나한테 왔다면, 그분께 큰 도움이 되어 드릴 수 있었을 터인데.”


아까워 미치겠다는 듯 유단의 눈을 노려봤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위층 여우요괴 말이야?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을 것 같던데.”

“천만에요.”


채우는 고개를 흔들었다.


“먼 옛날부터 사악한 것들을 처치해 오셨잖아요. 그러다보니 소문이 퍼져서 그것들이 꽁꽁 숨고, 또 세상도 많이 탁해져서, 예전처럼 잘 보이고 잘 들리지는 않는다고 하시더군요.”

“그래? 난 그렇게나 잘 보이고 잘 들리는데. 뭐, 날 살려줬으니 보답하는 뜻으로 몇 마리 잡아다줄 순 있어.”

“아뇨. 아니에요.”


채우는 웃으면서 손을 내저었다.


“누님이 괜한 말을 하셨어요. 도련님 말씀이 맞아요. 그분께서는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으려 하실 거예요. 천호의 긍지가 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천호란 게 뭐야? 하늘 천?”

“그런 게 있다.”


흑요가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네가 감히 입에도 올릴 수 없는 고귀한 존재지. 구미호 따위의 잡것과는 달라. 그러니까 그 무례한 태도는 좀 집어치우지?”

“어쨌든 여우요괴라면서?”


들은 척도 하지 않자, 흑요는 눈을 한껏 치켜떴다.


“어쩌다 그런 눈 하나를 얻었다고 세상에 보이는 것이 없느냐? 그렇다면 그런 대단한 눈을 가지고도 왜 비루하게 도움을 청하는데? 그것도 네가 그토록 무시하는 요괴의 도움을!”

“누이, 진정해. 인간의 본성이 원래 저런 것을 어떡해. 온갖 사고란 사고는 다 쳐놓고, 궁지에 몰리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도움을 청하러 오지. 자기들이 그렇게나 멸시하고 핍박하던 요괴한테 말이야. 우리가 인간들을 하루 이틀 봤나?”

“이게 다 퇴마소설이니 만화니 하는 것들 때문입니다. 항상 자기들이 먼저 잘못을 하고는 무슨 벼슬이라도 되는 것처럼 당당하게 도움을 내놓으라고 하는 인간들과, 대가 없이 몸 바쳐서 살려주고도 그저 좋다는 호구들의 향연이 아닙니까?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해서 무슨 빚을 진 것도 아닌데요.”

“맞아! 이번에 읽은 소설도 마찬가지였어! 퇴마사라고 땅 파서 먹고 사는 것도 아닌데, 사례를 하기는커녕 고맙다는 말 한 번 제대로 하는 걸 못 봤지!”


무슨 소리를 하나 했더니. 사례를 원하는 거였나?

지갑을 뒤적거리는데, 채우가 말렸다.


“신경 쓰지 마세요. 아저씨도 누나도 말은 저렇게 하지만 퇴마소설 읽으면서 감동 받고 그래요. 서로 경쟁하듯이 밑줄도 얼마나 많이 그어놓는데요. 찾아오는 손님들 도와주는 것도 좋아하고요. 다만 우리 천호님께서 항상 허무하게 힘을 쓰시는 것이 안타까워서…….”

“허무하다니? 날 구해주는 게 그렇게 허무해?”

“아니, 그런 뜻은 절대 아니고요. 실언을 했네요.”


채우는 재빨리 말을 돌렸다.


“어쨌든 너무 마음 쓰시지 말고 차나 즐기세요. 그런 무시무시한 괴이에 사로잡히는 것도 무척 드문 경험이니까요. 그래요. 일종의 축복이라고 생각하시면 어떨까요?”

“축복이라니! 도대체 어떻게 생각하면 이게 축복이 되는데?”

“왜요? 액받이가 한번 되어 보니까,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깨닫게 되잖아요. 얼마나 좋아요?”


이 동자삼요괴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는 것 같았다. 낙관적이어도 너무 낙관적인 거 아닌가?

반면, 쌍둥이 누나 쪽은 비관적이어도 너무 비관적이었다. 유단이 찻잔을 집어 들자 온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채 계속 중얼거렸다.


“쏟을 거야. 쏟을 거야. 틀림없이 쏟고 말 거야.”


천만에. 애도 아니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찻잔을 입으로 가져가려는 순간, 찻잔 안에 푹 잠긴 용의 머리와 눈이 마주쳤다.


“헉!”


손에서 찻잔이 미끄러졌다. 사고가 벌어지기 직전에 겨우 붙잡았다.


“이게 뭐야! 무슨 차가 이래? 차 맞아?”

“용설감로차라는 거예요. 귀한 거니까 부디 버리지 말아주세요.”


채우가 간곡히 말했다. 유단은 질린 얼굴로 찻잔을 바라봤다. 컵에 이상한 머리가 들어 있는 광경이야 집에서도 여러 번 봤지만, 용의 머리는 처음이다. 이런 걸 어떻게 마시나?


“저것 봐. 벌레 씹은 표정이야. 절대 안 마실 거야. 내 동생이 정성껏 우려낸 저 비싼 차를 쓰레기통에 버려야만 할 거야. 그럼 나는 찬장에서 용머리를 볼 때마다 슬퍼지겠지. 앞으로 평생 동안 하루에 다섯 번씩 슬퍼지는 거야.”


채설이 옆에서 또 주문을 외듯 중얼거렸다.

그것 참 뒤끝이 긴 쌍둥이다. 동생 쪽도 심하지만, 누나 쪽은 더욱 심하다.

누군가에게 휘둘리는 건 정말 싫지만, 소녀의 처량한 목소리는 정말 외면하기가 힘들었다. 눈을 딱 감고 한 모금 마셨다. 채설의 얼굴이 순간 환해졌다.


“안 돼. 좋아하면 안 돼. 이제 분명히 토할 거야. 하지만 너무 기뻐. 토하기 전까지만 기뻐해도 괜찮을까?”


큰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모습이 무척 귀여웠다. 새삼스레, 참 예쁘게도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황이 아니라 평범하게 길에서 마주쳤다면, 한참 동안이나 눈을 떼지 못했을 거다.

저쪽에서 다기를 닦고 있는 흑요도 마찬가지였다.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미모다. 그뿐만 아니라, 단지 행주를 들었을 뿐인데도 아까 보검을 뽑아들었을 때처럼 서늘한 기도가 느껴졌다. 이런 분위기의 미녀는 앞으로 두 번 다시 못 볼 것 같았다.

모두 요괴니까.

갑자기 몰려오는 엄청난 비현실감에 머리가 아득해졌다.

채우는 차를 또 따랐다.


“아버님은 중국에 계시다고요? 아직 고등학생인데 혼자 사시다니 대단하세요.”

“대단하긴 뭘. 중학교 때부터 혼자 살았는데.”

“그럼 밥이랑 설거지도 직접 하고 빨래도 하시는 거예요? 진공청소기도 매일 돌리고요?”

“아니. 내가 무슨 주부야? 일 해주는 사람이 따로 있어. 낮에 와서 다 해놓고 가.”

“그런가요? 가사 도우미 같은 건가 봐요? 전 잘은 모르지만, 아무래도 안주인이 없는 집은 표가 난다고들 하던데. 이래저래 고생이 많으시겠네요. 제가 우렁각시라도 하나 분양해 드릴까요?”


진심으로 공감하고 걱정해주는 화술도 화술이지만, 그 말이 조금도 농담 같지가 않았다는 게 더욱 놀라웠다. 말만 하면 진짜로 우렁각시를 분양해 줄 것 같았다.

유단은 머리를 부르르 흔들었다.

차를 마시고 취했나?

창밖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니 기분이 더욱 묘해졌다. 문 하나만 넘으면 다른 세계인데. 저 사람들은 과연 그걸 알기나 할까?

계속 따라주는 차를 어떻게 다 마셨는지도 알 수 없었다.

동자삼요괴의 친절한 배웅을 받으며, 홀린 듯한 기분으로 반월당을 나섰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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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9

  • 작성자
    Lv.99 Nuan
    작성일
    14.07.14 17:18
    No. 1

    다 잊으면 제웅에 대한 얘기는 머리에 남을지...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8 통금시간
    작성일
    14.08.05 23:29
    No. 2

    요괴라고 도움 받으면서도 건방 떨었던거군요. 사고와 관련이 있는걸까요?
    잘봤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5 정연.
    작성일
    14.08.06 09:18
    No. 3

    네, 댓글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5 적학진인
    작성일
    14.08.06 22:14
    No. 4

    주인공이 몹시, 매우 개념이 없네요. 요괴들 지적이 정확합니다. 일은 자기가 벌여놓고 무슨 빚받으러 온 것처럼 당당하게 도움을 요구하네요. 감사해 할 줄도 모르고, 존중할 줄도 모르고, 반성할 줄도 모르고...
    앞으로 나아지면 좋겠는데, 이런 캐릭터는 또 천연이라...
    주제파악도 못 하고 날뛰는 것이 아니라 겸손하게 하나하나씩 배워나가면 좋겠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2 미루하니
    작성일
    14.08.09 01:46
    No. 5

    와... 인물 특징의 묘사가 굉장히 유려하시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5 탁월한바보
    작성일
    14.08.29 20:45
    No. 6

    난 중학생 때부터 홀로 다 했는데;;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1 정체무실
    작성일
    14.08.31 06:36
    No. 7

    우와....
    정말 재밌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숫자하나
    작성일
    14.09.03 21:14
    No. 8

    저도 적학진인과 같은 생각이지만 주인공이 차차 인정과 사리를 배워 나가겠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9 뉘누리
    작성일
    14.09.10 23:39
    No. 9

    주인공이 함부로 반말 하는게 영 거슬리네요...배워먹지 못한 것 같으니...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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