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테이니르 님의 서재입니다.

아포칼립스의 신이 되었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아함(阿含)
작품등록일 :
2022.05.11 10:08
최근연재일 :
2022.11.29 22:00
연재수 :
221 회
조회수 :
43,535
추천수 :
1,474
글자수 :
1,693,659

작성
22.05.14 10:00
조회
553
추천
14
글자
12쪽

1번째 재앙. 피의 크리스마스(Blood Christmas) 9

DUMMY

미국의 슬럼가.

며칠 전까지만 해도 총기난사 소리가 정겹게 울리던 이 거리엔 이제 갱스터는커녕 쥐새끼 하나 보이지 않았다.


“나는 존~ 존 F! 나는 존 F♬”


그랬기에 웬 청년 하나가 이곳을 발랄하게 거니는 모습은 참 보기 드문 장면임이 분명했다.

며칠 전이든, 현재이든, 아니, 미래까지 포함하더라도 말이다.


이따금 이 거리를 미치광이가 활보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들도 어느 정도 주변 분위기를 읽을 줄 알았다.

나대다가 총이나 칼을 맞는 곳에서까지 제 광기를 증명하진 않았다는 뜻이다.


“으흠~”


자신을 ‘존’이라 부른 청년은 암울하다 못해 처절한 주변 분위기에 도통 공감할 수 없는지 얼굴에는 해맑은 미소를 띤 채로 거리를 활보했다.


“내 이름은 존 F. 난 친숙한 존(John Friendly)이야. 사람들은 날 볼 때마다 물어봐. 케네디는 어디 갔냐고. 그럼 난 대답하지! 미국 갔다고. 이히히히!”


그는 누가 듣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혼잣말에 운율을 섞으며 거리를 거닐었다.


계속해서 걷다보니 종종 사람들을 마주친다.

다만 그들 중에서 청년을 향해 분위기 좀 읽으라고 타박할 만큼 여유 있고, 오지랖 넓은 이는 없었다.


그들은... ‘광인 아닌 광인들’이라 불린다.

붉은 안개를 흡입하지 않았어도 며칠 간 겪은 그 끔찍한 경험에 정신이 나가버린 것이다.


존 역시 그 비슷한 상태로 보였다.

다만 그와 ‘광인 아닌 광인들’과 차이가 있다면...


“난 아주 멋진 존(John Fab)이야. 내 신념을 지키기 위해 가문을 나왔어. 성을 버리고 그곳에서 받은 걸 모두 두고 왔어. 이 몸뚱이를 제외하고 말이야. 그래도 이 몸은 내 것이겠지? 그렇지?!!”


그는 마치 동의를 구하듯이 허공에 대고 떠들어댔다.


“캬아아악!”


길목에서 광인 한 마리가 튀어나와 존을 덮쳤지만 그 ‘정신 나감’을 막아내진 못했다.


─핏!


찰나의 번뜩임.

광인은 존을 지나쳐 계속해서 달려 나갔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촤악!


광인은 몸에서 피분수를 뿜어내며 쓰러졌다.

존의 손에는 언제 뽑았는지 모를 검이 한 자루 들려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그가 아주 강하다는 점이다.


이는 아주 중요한 차이였는데 정신이 나가버린 이들 중 대다수가 저항할 수 없는 현실에 절망하여 정신을 놓아버린 것이었기에 이를 저항할 힘이 충분한 자는 이 상황을 즐기면 즐겼지 절망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혹시 소중한 사람이라도 잃은 것일까?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내 몸을 노리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아진 걸까?”


모두가 희망을 잊어갈 때에도 저만은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해맑게 웃으며 혼잣말을 이어나가던 존은 무언가를 보고 갑자기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히, 히익!”


겁에 질린 목소리.


─슈화악!


시야가 온통 붉은 색으로 가득 찬다.

붉은 안개, 사람의 원죄를 자극하여 광인으로 만드는 그것이다.


안개는 존을 쫓았고 이는 존이 그 강함에도 불구하고 붉은 안개에 닿지 않은 일반인임을 뜻했다.

안개는 이미 자신이 잠식한 이들을 굳이 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존은 건물의 옥상으로 도망갔다.

높은 곳은 안개가 닿지 못함을 그는 경험으로 알았다.


며칠 전만 하더라도 건물의 옥상이 안전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들로 인하여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지만 지금의 옥상은 목을 매단 시체들로 즐비했다.


그래도 그들이 있기에 존의 혼잣말은 대화 비슷한 것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답은 들려올 수 없었기에 이는 일방적인 소통에 불과했다.


“안녕? 난 불쌍한 존(John Fool)이야. 신념이 흔들려가. 과연 내가 가문을 나온 것이 맞았을까? 나도 그들처럼 벙커에 들어가는 게 맞지 않았을까? 부랑자 생활을 한 지도 1년이 다 되어가는데 최근 벌어진 일들은 나를 너무 힘들게 해.”


그 발랄함은 어디 갔는지 그는 건물 중앙에, 목을 매단 시체들 사이에 쪼그려 앉았다.


지금은 비록 정신을 놔버렸지만 그가 정상이던 시절, 그가 품었던 신념은 분명 성자(聖子)의 것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가 성자로서 행한 고결한 행동은 바로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는 것.

그렇다, 그는 상류층의 인간이었다.


운석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알 수 있었고 이를 침묵하고 이익을 챙기려는 가문에 반대하여 집을 나왔다.


어쩌면... 내쳐진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인간이길 포기한 것들과 함께할 수 없었어...... 진짜로?”


시간이 지날수록 그가 그 스스로를 표현하는 단어는 암울해져만 갔고 그의 미소 띤 얼굴은 슬픔으로 일그러졌다.


“나는 거짓말쟁이 존(John Fake)이야! 결국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지도 못했는데 재앙이 시작돼버렸어. 인간 같지 않은 이들과 같은 피를 타고 난 것이 역겨워 가문을 나와 놓고 가문을 그리워해. 내 선택을 후회해. 나는 살기위해 ‘인간성’을 버리고 있어!!”


힘이 있는데 누군가를 지키지 못했다.

겨우 찾은 안전가옥에 누군가를 초대하지도 못했다.

그냥... 숨어있을 뿐이다. 겁쟁이처럼.


“권력자들은 정보를 통제해. 제 것을 잃고 싶지 않아해. 남들이 죽는 것을 방관해. 나는 그걸 견디지 못했어. 그래서 가문을 나왔는데... 나도 같은 짓을 하고 있어.”


안개가 무섭다.

감히 이에 맞설 수 없다.

매일 같이 뼈저리게 느낀다.


자신이 실패했음을.


“난 실패한 존(John Fail)이야. 신념을 지키는 게 자신의 힘만으로 불가능할 수 있음을 몰랐어! 같은 생각을 공유할 이가 없는 게 이리도 비참할지 몰랐어! 그른 것을 모른 척하는 게!! 제 모순을 들여다본다는 게!!! 이리도 끔찍한 일일 줄은... 미처 몰랐어.”


─딱! 따닥!


존은 절규하며 제 손톱을 피가 날 때까지 계속해서 물어뜯었다.


신념을 품은 청년은 한 때, 인간의 삶이란 그 자체로 고귀한 것이기에 인간을 지킨다는 제 신념을 지키기 위해 가문을 나왔다.

인간이란 삶은 물론 죽음에서도 의미를 찾는 생물이기에...


하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신념이 아닌 자신의 목숨이었다.


총을 들고 제 식량을 빼앗으려는 사람에게서 살아남기 위해 그는 처음으로 남이 아닌 자신을 지키기 위해 검을 뽑아들었다.

가문이 내준 것이 아닌 제 검술 스승이 신념을 지키라고 건네준 검을 뽑아 사람을 참살(斬殺)했다.


죽이는 건 괜찮았다.

아니, 사실 괜찮지 않았다.


“자기방어였어, 알잖아...”


하지만 그보다 견디기 어려운 것은 제 모순이었다.

사람을 죽이고 존은 제 신념이 꺾인 것에 대한 절망이 아닌 살아남은 것에 대해 안도했다.

그리고 그는 그런 제가 끔찍할 정도로 싫었다.


“욕하지 마. 미안해. 실망하지 말아줘. 내가 더 잘할게.”


존은 자신을 비난하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라도 있는지 끊임없이 변명했고 용서를 구했다.


-미쳐라. 미쳐버려라. 예언을 퍼트리는 네놈은 미쳐버려라.


하지만 보이지 않을 뿐.

틀림없이 있었다.

속삭이고 있었다.


예언을 함부로 퍼트리려는 이에게 내리는 신의 저주가, 태양신 아폴론이 제 사랑을 거절한 카산드라에게 내린 ‘카산드라의 저주’가 멋대로 그녀의 예언을 멋대로 퍼트리려는 존을 덮쳤다.


그것은 아주 오래되고도 강대한 신의 저주였다.

예언을 함부로 발설하면 불신하거나 망각하게 된다는 ‘카산드라의 저주’가 멋대로 제 예언을 퍼트리는 이의 정신을 망가뜨렸다.


-아폴론이여, 아폴론이여. 길의 신이여, 나의 파괴자여!!


그리스어로 태양신을 뜻하는 ‘아폴론(Apollon)’은 ‘파괴자(apollon)’와 같은 철자를 지닌다.


신의 저주는 감히 인간이 대항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 것.

하지만 이 저주도 영원한 것은 아니다.


발설한 예언이 이루어질 때 그 저주 역시 풀려나가리라.

이미 이루어진 예언을 불신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안녕! 난...”


오늘도 광인 아닌 광인이 슬럼가를 배회한다. 신념이 부러진 검을 든 채로.


***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복도에 쪼그려 앉은 채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아, 그저 우는 소리밖에 내지 못했던 나는 이제 다 쉬어버린 목을 붙잡고 시간을 물었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물음이었다.


사람이 운다는 것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서...

과거 갓난쟁이이던 시절, 우는 것으로밖에 의사를 표현할 수 없었던 그 잔해가 남아 우리는 우는 행위로 감정을 해소하고 위로를 받고자 한다.


“목말라... 대체 얼마나 운거야.”


목도 아프고 머리도 아팠다.

시간은 이다지도 잔혹하여 내가 우는 시간 따위 기다려주지 없었다.

시간은 쉼 없이 흐르고 내 세계는 너무나 빠르게 변해버렸다.


사실 이렇게 펑펑 눈물을 흘릴 일까지는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버려진 것도 아니고... 아니, 버려진 게 맞던가?


이제껏 살면서 느낀 위화감들이 조금씩 이해 가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누나보다 8살이나 어렸던 내게 누나와 같은 의젓한 모습을 바랐다.

그때에는 그게 남매를 동등하게 대하려는 아버지 나름의 철학이라 생각했다.


엄마는 때때로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일을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말을 이을 때가 있었다.

그때에는 그게 누나와 나를 헷갈린 것이라 생각했다.


누나는 이따금 내가 어리광을 부릴 때면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때에는 그게 우리의 애틋한 관계로 인한 것이라 생각했다.


“이건 너무하잖아...”


나에게 죽은 아들의, 형제의... 모습을 겹쳐본 것일까?

나를 향했던 감정들이 사실 나를 위한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게 되자 혼란스러웠다.


이에 대해 화도 내고 싶고, 설명도 듣고 싶지만 그 대상들은 이곳에 없었으며 심지어 생사조차 확실치 않았다.

전해지지 못한 감정은 그렇게 설움이 되어 남았다.


“아, 쪽팔려. 얘도 아니고 이게 뭐야.”


나는 어떻게든 덤덤한 척 하고자 애썼다.


─꼬르르륵.


그때 배가 울렸다.

그 눈치 없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이 순간에도 배는 고프구나...”


그러고 보니 오늘 아무것도 먹은 게 없다.

오렌지 하나를 먹긴 했지만 그건 진작 다 토해버린 지 오래였으며 이후로도 온종일 짐을 옮기고, 문틈을 막고, 울고... 진즉 탈수로 쓰러지지 않은 게 용했다.


이외에도 갑자기 힘이 세진 것, 시리우스에 대한 것,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한 무수한 의문들이 수면 위로 올라왔지만 나는 그것들을 전부 무시하고 배낭에서 전투식량을 꺼냈다.


“밥이나 먹자.”


봉지 안에 물을 넣으면 저절로 데워지는 형식, 다행히 이 지하에도 수도는 통했다.


“아... 케이크 먹어야하는데.”


뒤늦게 크리스마스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사온 케이크가 생각났지만, 아기 예수의 생일을 축하해주기엔 이미 날짜가 지나버렸다.


“배가 고파서 그런가... 이것도 나쁘지 않네.”


대충 배를 채운 나는 유일하게 침대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아버지의 집무실.

유일하게 컴퓨터와 침대가 있는 방이었다.


책장에는 여러 전공서적이 꽂혀있는데 나중에 심심할 때 한번 꺼내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불을 껐다.


“이만 자자.”


하지만 그리 어둡지 않았다.


“아버지는... 무슨 애도 아니고.”


방 전체에 별이 보였다.


“야광 스티커를 붙인 건가?”


아니, 그것보단 벽지 그 자체에 야광을 입힌 것에 가까웠다.


“생각해보니 타로 카드 중에선 별을 뜻하는 것도 있었지.”


메이저 아르카나 17번 The Star, 의미하는 것은 ‘희망’, ‘반짝임’, ‘소원’.


어째선지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눈을 감아도 방 전체에 새겨진 별들의 모습이 아른거리는 듯했다.


─새액- 새액-


불이 꺼진 방.

온전한 어른도 그렇다고 순진한 아이도 되지 못한 소년의 울먹임이 사라진 그곳에선 이제 고운 숨소리밖에 들려오지 않았다.


작가의말

이번 화부터 호불호가 갈릴 것 같은 기분이 드는군요. 아니, 프롤로그부터 그랬던가요?

존은 아마 당분간 출연하지 않을 겁니다. 스토리의 중후반부터 활약하는 캐릭터거든요.

오늘도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아포칼립스의 신이 되었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6 1번째 재앙. 피의 크리스마스(Blood Christmas) 14 22.05.16 379 13 15쪽
15 1번째 재앙. 피의 크리스마스(Blood Christmas) 13 22.05.16 381 14 18쪽
14 1번째 재앙. 피의 크리스마스(Blood Christmas) 12 22.05.15 421 10 12쪽
13 1번째 재앙. 피의 크리스마스(Blood Christmas) 11 22.05.15 447 12 21쪽
12 1번째 재앙. 피의 크리스마스(Blood Christmas) 10 +1 22.05.14 505 10 19쪽
» 1번째 재앙. 피의 크리스마스(Blood Christmas) 9 22.05.14 554 14 12쪽
10 1번째 재앙. 피의 크리스마스(Blood Christmas) 8 +2 22.05.13 644 12 14쪽
9 1번째 재앙. 피의 크리스마스(Blood Christmas) 7 +4 22.05.13 770 21 22쪽
8 1번째 재앙. 피의 크리스마스(Blood Christmas) 6 22.05.12 836 19 13쪽
7 1번째 재앙. 피의 크리스마스(Blood Christmas) 5 22.05.12 897 22 19쪽
6 1번째 재앙. 피의 크리스마스(Blood Christmas) 4 +2 22.05.11 993 33 12쪽
5 1번째 재앙. 피의 크리스마스(Blood Christmas) 3 22.05.11 1,077 28 13쪽
4 1번째 재앙. 피의 크리스마스(Blood Christmas) 2 +1 22.05.11 1,250 32 20쪽
3 1번째 재앙. 피의 크리스마스(Blood Christmas) 1 +4 22.05.11 1,580 34 20쪽
2 0장. 나팔소리(Trumpet of the Lord Shall Sound) +4 22.05.11 2,658 47 20쪽
1 0. Prologue. 망가진 기억(Broken Memory) +5 22.05.11 4,916 76 9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