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페페구 님의 서재입니다.

천재 각색작가가 AI 토끼와 회귀함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페이소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4.03.28 18:13
최근연재일 :
2024.05.18 11:20
연재수 :
45 회
조회수 :
72,375
추천수 :
2,431
글자수 :
270,462

작성
24.04.01 07:50
조회
3,067
추천
82
글자
17쪽

1. 각색의 천재

DUMMY

어렸을 때부터 장르 문학을 좋아했다.

판타지, 무협, SF, 현대판타지 등등


닥치는데로 읽다 보니 꿈이 생겼다.

재미있는 웹 소설을 쓰고 싶다.


고등학생때쯤? 웹 소설 붐이 일었다.


주변에서 판타지 좀 읽어 봤고 글 좀 쓴다는 애들은 너 나 할 거 없이 웹 소설 작가를 도전했다.

물론 그 안에는 나도 있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일주일을 고민해서 쓴 소설을 친구들에게 처음 보여줬을 때


- 재미없어

- 이게 웹 소설이야? 나는 무슨 자기 계발서인 줄?


그날 나는 알았다.

나는 창작에는 재능이 없었다.

그리고 새롭게 깨달은 점도 있었다.


"여기서는 주인공이 차라리 한번 빌런한테 지는 게 더 나을 거 같은데? 그 명분으로 숨겨진 아이템도 얻을 수 있고"

"오? 그런가? 너 좀 친다?"


갖은 노력을 들여서 쓴 내 소설은 더럽게 재미가 없었는데

쉬는 시간에 대충 훑어보고 피드백 몇 번 해준 친구들의 소설은 전부 투베에 들어가거나 유료화가 될 정도로 대박이 났다.

나는 각색의 천재였다.


* * *


내 재능을 알고 나니까 오히려 진로가 쉬웠다.

대학을 나온 후 곧바로 보조 작가로 취직했다.


"안녕하십니까 보조 작가로 지원한 수혁이라고 합니다"

"네, 안녕하세요. 신기성 작가라고 해요. 잘 부탁드려요"

"왜죠?"

"네?"

"아닙니다. 말이 헛나왔네요"


이상하다

분명히 내 또래라고 그랬는데


'왠 40대 아저씨가...'


수혁이 입꼬리를 자연스럽게 끌어올렸다.

당황을 감추기 위한 최대한의 노력이었다.


시선이 자꾸만 신기성 작가의 머리로 가려는 걸 가까스로 참았다.

대신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속으로 주문을 외운다.


'자라나라 머리머리'


우리 작가님, 20대 후반에 벌써 머리카락이 텅비어있다.

그리고 작가가 쓴 글을 보는 순간 내 머릿속도 텅 비어버렸다.


"이게 내 차기작이야."

"...?"


왜 소설에 인간은 없고 온통 동물들만 나오지

꿈이 주X피아 2 작가세요?


"인간이.. 없네요?"


내가 웹 소설 파트가 아니라 디즈니 애니메이션 각색 작가로 지원했던가


"이거... 동화에요?"

"캐릭터, 배경, 세계관까지 전부 인간화해서 각색해줘"


말은 참 쉽다.

이미 캐릭터고 세계관이고 전부 이런 식으로 만들어 놓고 그냥 하라니?


사실, 나한테는 쉬운 일이 맞긴 하다.


실제로 내가 합류한 이후

짝퉁 이솝 우화라는 말을 듣던 신기성 작가는 곧바로 천장을 뚫는 천재 작가로 불리게 되었다.


* * *


[2025 지상최대 웹소설 공모전 대상 - 신기성 작가의 '저팔계 서유기']

['저팔계 서유기' 유료전환 첫날 1만 구매수 달성]

[신기성 작가, 1억뷰 웹소설 작가 등극]

[저팔계 서유기 웹툰 확정]

[웹소설 원작, '저팔계 서유기' 드라마 제작 확정. 주인공은 최은우?]


작업실 벽에 걸려있는 과거의 영광들을 보고 있는데 후배가 호들갑을 떨었다.


"아, 그러면 작가님이랑 선배님은 그때부터 함께 하신 거에요? 2025 공모전이면 벌써 10년 전인데?"

"뭐, 그런 셈이지"

"그래서 작가님이 각색을 선배님에게만 맡기시는 거구나."

"...."


아니, 그건 저 작가 새끼 글이 도무지 안 나아져서 그래.

10년째 쭉 이솝 우화만 쓰고 있거든


이 정도면 동물 판타지 장인 수준인데 왜 디즈니에 지원을 안 하는지 모르겠네


'월급만 적었어도 당장 이직했을 텐데'


월급이 이 망할 작업실의 유일한 복지다.

내가 받는 월급이 대기업 과장보다 높으니까 충분히 복지지 뭐


"어쩐지..."


뭐냐, 그 고문관의 아버지가 사단장이라는 걸 깨달은 표정은?

굉장히 띠꺼운데


손에 들고 있던 회의록을 슬쩍 들어 올리자 눈치 빠른 놈이 슬쩍 뒤로 빠진다


"폭력 반대입니다!"

"방금의 표정을 지은 이유가 타당하다면 즉각 멈춰주지"

"아니, 그냥 그 정도 되니까 작가님의 의견을 대놓고 들이박을 수 있구나 싶어서요. 헤헷"

"귀척 극혐이야 자식아"


서른도 넘은 사내놈의 애교는 사양이다.


"나도 웬만하면 까고 싶지 않았어. 해도 너무하니까 막은 거지"

"음, 그 정도로 엉망이었나요?"


후배의 말에 들고 있던 회의록을 바라봤다.

이 안에는 조금 전에 회의실에 있었던 일도 기록되어 있었다.


'후, 왜 갑자기 폐기된 소설을 다시 연재하자고 해서는'


상의 후 폐기하자고 결정한 소설을 자기 맘대로 꺼내 온 건 괜찮다.

원작자가 직접 각색을 나선 것도 상관없지


문제는, 그랬으면 결과로 증명해야 했다는 거다.

자신이 왜 이런 고집을 부렸는지


"솔직히 말해봐. 너는 그 각색이 괜찮다고 생각하냐?"

"...."

"그래, 니가 봐도 아니지?"


내가 작업한 결과물들을 잘 알고 있는 녀석이 작가놈의 결과물에 만족했을 리가 없지

솔직히 회의실이라 참았지 단둘이 있었으면 곧바로 쓰레기통에 처박았을 각색이었다.


"주인공이 황소라 단순하게 덩치 크고 잘 싸우는 무협인으로 각색할 거면 나는 하루에 소설 한 질은 각색하겠다"

"하하하..."


어쭈, 웃어?


"자, 그럼 우리 후배님이었다면 어떤 식으로 각색했을지... 퇴근이신가요? 빠르시네요"

"..."


후배에게 말을 하던 중에 급히 말을 끊었다.

신기성 작가가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 오늘 매니지먼트 사람들이랑 약속 있어서 먼저 들어간다. 보조 작가로 추천할 사람이 있다네?"


아우, 저 눈에 핏발 선거 봐

죽일 듯이 한 자 한 자 끊어서 말하는 꼴을 보니 오늘이 예상한 그날인가 보다


"이력서 봤는데, 나이는 나보다 한 살 어린데 경력이 화려하더라고. 여러 작가와 일해봐서 그런지 누구와 달리 커리어도 화려하고. 봐서 잘 되면 우리 작업실의 새로운 수석 보조 작가로 들어오게 될 거야."


헙!


신기성의 말에 놀란 후배 녀석이 황급히 손으로 입을 막았다.

아니, 나와 신기성을 제외한 모든 보조 작가들이 같은 반응이었다.


'슬슬 조짐이 보이긴 했지'


최근들어 사사건건 나를 무시하며 내가 전담하던 각색을 자기가 해보려 한다거나

둘이서 예전에 상의가 끝난 내용을 하루아침에 뒤엎는 모습을 보고 대충 이럴 거라 생각하긴 했다.


덕분에

나도 마음 정리는 오래전에 끝난 상태였다.


"수고하셨습니다"


수혁이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를 건네자 오히려 기성의 얼굴이 붉어졌다.

자신의 통보에도 수혁이 아무런 충격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준비한 최후의 일격조차 실패한 기성은 그렇게 작업실을 떠났다.


쾅!


큰소리로 문을 닫고 사라진 대표를 바라보던 시선들이 자연스럽게 수혁에게로 향했다.

만약 수혁이 먼저 말을 하지 않았으면 당장에라도 몰려 올 기세였다.


"다들 퇴근 준비 안 해? 오늘 불금이야, 다들 빨리빨리 들어가"

"...선배는요?"

"나? 나는 이것만 정리하고 퇴사해야지"

"네?"


수혁의 말에 보조 작가들의 표정에 경악이 어렸다.

하지만 수혁의 말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쩐주께서 나가시라는데 뭐 어째? 꺼져 드려야지. 너희도 너무 늦지 않게 자기 작품들 준비해놔라. 보조하다가 시간 허비하지 말고"

"선배..."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후배의 목소리에 수혁이 피식 웃었다.


"야, 누가 누굴 걱정해? 나 몰라? 나 찾는데 많아. 그러니까 너희나 이직 잘 준비해"



* * *


턱!


다 마신 종이컵을 쓰레기통에 넣었다.

이게 이 작업실에서 마시는 마지막 커피였다.



"10년이면 길었지"


마지막으로 작업실을 둘러봤다.


벽에 걸려 있는 사진 기사, 선반에 장식된 트로피

이제까지 제작된 소설의 액자까지


이곳에 있는 모든 작품이 내 손을 탔지만, 그것도 이제 안녕이다.

그나마 남아있던 의리도 이제는 다 사라졌으니까


"쯧, 애들만 불쌍하게 됐네"


솔직히 나야 상관없다.

내 각색능력이면 어느 작업실을 가도 메인 작가에게 인정받으며 지금처럼 살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곳에 남아있는 다른 보조작가들은 아니다.

내가 사라지는 순간 신기성의 작품에 끼어있던 수많은 거품도 다 같이 사라질 텐데, 그러면 보조 작가들도 얼마 안 가 다 그만둬야 할테니까


그래서 이참에 빨리 개인 작품을 준비하라 말한 거다.


"자격지심이 있는 사람과는 이래서 같이 일하면 안 되는 건데"


그놈이 자격지심에 사로잡혀 무리수만 두지 않았어도 작업실 규모다 두 배는 됐을 거다.

최근에도 또 뭔 짓을 하는 것 같더니 이게 다 나를 내보내려는 빌드업이었나보다.


"이럴 줄 알고 차기작을 안 썼구만"


하긴, 나도 알고 보조 작가들도 아는데 당사자인 그놈이 모를 리가 없지.

내가 없으면 곧바로 자기 작품이 망할테니까


나 말고 다른 보조 작가나 전문 각색 작가에게 글을 맡겨본 게 한 두 번도 아니고

대충 그럴듯하게 만들 수 있을지는 몰라도 속칭 '팔리는 글'로 각색할 수 있는 건 나 정도의 능력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신기성의 선택은 이것이었다.

자신의 약점을 모두 알고 있는 나를 버리는 것으로 말이다.


"쯧, 함께해서 지겨웠고 다신 보지 말자"


수혁이 그 말을 끝으로 나가려던 순간이었다.


다다닷


"음?"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수혁이 발을 멈췄다.

지금 이곳에 남아있는 사람은 그 혼자였다.


만약 저 소리의 정체가 도둑이라면 이대로 떠나서는 안 됐다.

넓은 공간에 비해 값나가는 물건이 거의 없긴 해도, 그가 떠나고 물건이 없어진다면 나중에 곤란해질 수도 있었다.


수혁이 여차하면 신고할 생각으로 휴대폰을 꺼냈을 때였다.


타다닷


"....누구세요?"


잠시 고민하던 수혁이 소리가 난 곳을 찾아 이동했다.

아까도 그랬지만 지금의 소리도 너무 작았다.


사람이 냈다기보다는 작은 짐승이 낼 법한 소리였다.

쥐, 혹은 길고양이가 들어온 걸로 생각한 수혁이 전화 대신 플래시를 켜고 발걸음을 옮겼다.


타다다다닷


"작가 놈 방 쪽인가?"


거리가 가까워져서 그런지 이제는 확실히 소리가 들린 방향을 구분할 수 있었다.

덕분에 수혁은 대표실 문 앞에 있는 작은 솜 뭉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큰 쥐나 새끼 고양이인 줄 알았다.

그러나 다가갈수록 보이는 특징이 두 동물과는 달랐다.


꿈틀꿈틀


"토끼...? 작업실에?"


웅크리고 있는 뒷모습만 보이지만 확실했다.


솜뭉치라고 착각할 정도로 작고 앙증맞은 크기에 토끼 특유의 귀여운 꼬리

몸을 움직일 때마다 나타나는 길쭉한 다리에 무엇보다


덩치에 비해 유난히 큰 귀는 토끼밖에 없었으니까


"그런데 토끼가 여기엔 왜...?"


보조 작가 중에 누가 키우는 아이인가?

그런데 오늘 작업실에 반려 동물을 데려온다는 사람은 없었던 거 같은데


"데려가는 걸 깜빡한 거면 조만간 다시 오겠네. 그때까지 데리고 있어야 하나"


이제 막 돌아가려던 참이라 난감하긴 했다.

하지만 혹시라도 전선을 갉아먹다가 감전되거나 잘못된 걸 주워 먹고 죽어버리면 뒷맛이 찝찝할 것 같았다


'10~15분 정도만 지켜보다가 안 될 것 같으면 어디 상자에라도 넣어 놓고 가면 되겠지'


씰룩씰룩


"흠.. 궁뎅이가 귀엽네"


수혁이 치명적인 뒤태에 시선 강탈 당하고 있을 때 토끼가 대표실 안으로 들어갔다.

아까부터 문틈에 머리를 들이밀더니 결국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녀석을 따라 방으로 들어간 수혁은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방금까지 토실토실한 엉덩이를 자랑하던 토끼가 책상 위에 있던 노트북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 내가 지금 헛것이 보이는 건가?"


노트북 속으로 들어가는 토끼라니?

혹시나 싶어 눈을 비볐지만 사라진 토끼는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에 노트북 바탕화면에 방금까지 보던 토끼가 뛰어다니고 있었다.


"....당장 내일 병원 예약부터 잡아야겠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딘가 망가진 게 확실했다.

더 심해지기 전에 병원 진료가 필요해 보였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노트북으로 다가갔는데


"대표한테 이런 노트북이 있었나?"


얼핏봐도 최소 10년은 된 거 같아서 이상했다.

허영심에 찌들어 사는 대표놈이 한 노트북을 10년이나 쓸 리가 없는데


바탕화면에서 해맑게 돌아다니는 토끼의 모습에 무심코 화면에 손가락을 가져다 댄 수혁의 눈 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링크가 완료되었습니다.]

[기존의 불완전한 링크는 제거됩니다]


"어?"


토끼에 이어 이제는 글자까지

수혁이 진지하게 자신의 상태를 걱정할 때였다.


순간, 수혁이 머릿속에 10년 동안 각색했던 신기성 작가의 소설 내용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처음으로 작업해 그해 최고의 소설로 뽑힌 '저팔계 서유기'부터 작년에 작업한 아포칼립스 물까지

10년 동안 그의 손을 거쳐 간 수많은 소설이 머리에 또렷하게 각인되는 순간


그의 머릿속으로 이번에는 그 소설들이 영상으로 변환되어 재생되기 시작했다.

아니, 그것은 단순히 영상 재생이라고 할 수 없었다.


'잠깐만, 이게 뭐야..!'


수혁의 눈앞에 끊임없이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그는 그 모든 세상을 직접 체험하고 있었다.


들판에서 깨어나 심해에서 잠들었고 탑에서 들이마신 숨을 사막에서 내뱉었다.

세계, 영토, 기업, 연예계를 얻기 위해 헌터, 좀비, 외계인, 귀환자와 협력해 친구, 연인, 초월자, 신, 악마를 상대했다.


이 모든 이야기가 수혁이 각색한 신기성의 소설들이었다.

하지만 수혁은 환상을 겪을수록 이상함을 느꼈다.


'어색해, 이 세계는 미묘하게 비틀려 있어'


환상에 들어온 직후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잘 안다.

캐릭터의 모습이, 세계관이, 스토리의 흐름이 전부 억지로 틀에 맞춘 듯한 부자연스러운 세계였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세상의 모습이 다시금 바뀌었다.

억지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던 캐릭터들이 동물들로 바뀌며 배경 또한 차례로 수정되어 갔다.


수혁은 이것이 이 환상의 원래 모습이라는 것을 알았다.

또한 이것이 신기성이 준 원작 소설의 원래 모습이기도 했다.


* * *


"허억... 허억... 허억..."


수혁은 당장에라도 숨이 넘어갈 듯한 모습으로 노트북을 쥐고 있었다.

곧 죽을 것 같은 상태에도 그의 시선은 노트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노트북 바탕화면에는 아까 봤던 토끼가 당근을 먹고 있었다.


"하.. 하아.. 이게 무슨..."


수혁이 노트북을 만진 시간은 고작 1분

그러나 그 짧은 시간으로는 그가 겪은 일들을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중에 가장 큰 충격은 따로 있었다.


그가 환상에서 봤던 원작의 모습은 신기성에게 받았던 소설과 비슷하지만, 분명히 달랐다.

신기성의 글은 원작과 비교하는 게 미안할 정도로 조잡하고 하찮았다.


그게 뜻하는 바는 하나였다.

신기성이 이제까지 다른 사람, 정확히는 이 노트북의 소설을 도용했다는 것


"이제까지 쓴 신기성의 소설... 혹시 네가 쓴 거야?"


수혁의 말에 마치 토끼가 알아들었다는 듯이 바탕화면 구석으로 뛰어갔다.

녀석의 얼굴에는 언젠가부터 뿔테 안경이 얹어져 있었다.


한번 안경을 고쳐 쓴 토끼는 화면 밖에서 컴퓨터 책상을 끌고 오더니 자리에 앉아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수혁은 또다시 눈앞에 뜬 메시지에 또 한번 놀라고 말았다.


[새로운 파일이 생성되었습니다.]

[서부대공의 양자가 된 황소 47.text]


"하하..."


메시지를 읽은 수혁의 입에서 허탈한 웃음이 흘렀다.

저 제목은 그도 잘 아는 소설이었다.


폐기했으나 신기성의 고집으로 그가 직접 각색한 작품이자 오늘 아침에 기수가 신랄하게 깐 바로 그 소설이었으니까

메시지가 뜻하는 바는 확실했다.


"신기성, 이 개새끼. 여태까지 자기 글도 아닌 걸로 사기 친 거야?"


우연인지 수혁의 말에 토끼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런데 수혁의 말에 대답하는 이는 토끼만이 아니었다.


"역시, 눈치챘어?"

"어?"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놀란 수혁이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퍽!


소리가 들린 이후에 뒤늦게 충격이 느껴졌다.


"컥!"


갑작스러운 충격에 수혁이 그대로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수혁이 단박에 나가떨어지자 뒤에 있던 그림자가 천천히 수혁의 앞으로 다가왔다.


"쯧, 어쩐지 느낌이 쌔하더라니. 안 왔으면 큰일 날 뻔했네"

"신...기성?"


흐려져가는 시야 뒤로 들린 익숙한 목소리에 수혁이 자신을 공격한 범인을 깨달았으나 그 뿐이었다.

바닥에 쓰러진 수혁은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개새..."

"그러게, 왜 주인 있는 물건을 함부로 만져. 아놔, 더럽게 피 묻었잖아. 이거 고장 나면 안 되는데, 하여간 마지막까지 재수 없는 새끼"


수혁가 들고 있던 노트북을 억지로 뺏은 신기성이 짜증 난다는 듯이 이곳저곳을 닦았다.

그러나 노트북에 묻은 수혁의 피는 잘 닦이지 않았다.


"아, 씨발! 이거 왜 안 닦여!"

"병...신...."


이제 곧 살인자가 될 놈이 고작 노트북 하나에 정신을 쏟고 있었다.

의식이 흐려져 가는 순간에도 그 모습을 비웃은 수혁이 남은 모든 힘을 끌어모아 기성에게 저주를 날렸다.


* * *


"분명히 그렇게 죽었던 거 같은데"


꿈뻑꿈뻑


익숙한 천장의 모습에 수혁이 거듭 눈을 감았다가 뜨기를 반복했다.

흡사 이렇게 하면 상황이 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대로네"


천장도

자신의 기억도

그리고


"....넌 여기 왜 있는 거냐"


그가 죽기 전에 쥐고 있던 노트북도


작가의말

해당 작품은 이전 제 작품인 [동물 AI가 글을 뽑아냄]의 리메이크 작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5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천재 각색작가가 AI 토끼와 회귀함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7 16. 나도 나 좋아한다고 +1 24.04.17 1,629 54 14쪽
16 15. 공모전 대상 +3 24.04.16 1,648 57 13쪽
15 14. 지금은 순위에 없지 +7 24.04.15 1,670 56 16쪽
14 13. 동창회 +3 24.04.14 1,743 51 13쪽
13 12. 유료화 +3 24.04.13 1,735 53 15쪽
12 11. 리드온리 +3 24.04.12 1,915 51 15쪽
11 10. 원페를 뚫다. +3 24.04.11 2,055 55 12쪽
10 9. 악연의 싹을 짓밟다 +2 24.04.09 2,099 59 13쪽
9 8. 잔자디라라 +1 24.04.08 2,053 55 12쪽
8 7. 조혼광마 +7 24.04.07 2,143 60 13쪽
7 6. 글쓰는 AI +7 24.04.06 2,257 68 15쪽
6 5. 공모전 참가 +6 24.04.05 2,306 64 13쪽
5 4. 송구민 작가 +5 24.04.04 2,382 71 12쪽
4 3. 웹소설 작가 토끼 +1 24.04.03 2,601 77 12쪽
3 2. 이상한 노트북 +4 24.04.02 2,705 86 13쪽
» 1. 각색의 천재 +5 24.04.01 3,068 82 17쪽
1 프롤로그 +2 24.04.01 3,154 69 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