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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서재다.

신석기 제사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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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작품등록일 :
2021.05.12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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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04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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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02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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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30. 조상신(3)

DUMMY

반얀 부족의 전사들은 우레버루를 들쳐메고 가축들을 보관하는 축사 같은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버루가 좋아하는 풀과 나뭇가지들을 앞에 놓아주고, 성심껏 돌봐주었다.

나는 녀석이 깨어났을 때 날뛰지 않도록, 수십 가락의 안정 주술을 걸어놓았다.


“그나저나 우레가람. 창을 잡은 자세가 만만찮아 보여 묻지 않았다만... 자네는 주술사인가?”


사하시는 내가 우레버루에게 손짓발짓으로 주술을 거는 것을 보며 물었다.


“예. 작은 주술 몇 개 쓸 줄 아는 편입니다.”


“흠...”


그는 뭔가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내 어깨를 잡으며 목소리를 낮췄다.


“아까 같이 왔던 전사들이야 그렇다 친다지만... 자네가 우리 마을 안에서 주술을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군.”


“음, 남의 마을에서 함부로 주술을 써 불쾌했습니까?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닐세. 불쾌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지금 주술사에 대한 생각이 좋지 않네.”


“저런... 이곳의 주술사가 무언가 잘못이라도 했나 봅니다?”


사하시가 한숨을 쉬었다.


“이곳의 주술사... 우리 마을에선 무녀라고 부르지. 그녀가 조상님들의 뜻을 곡해해서 전달했네. 그 때문에 우리 마을에 한참 전염병이 돌았고, 서슬뱀이 와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아직도 우리는 곡해된 뜻을 따랐겠지.”


“...서슬뱀이... 도와줬다고요?”


“그렇네. 그가 검은 빛 나는 문양의 주술로 우리 마을 무녀의 거짓을 밝혔어. 그가 떠난 후, 마을 사람들은 분노하여 무녀를 돌팔매질해서 죽였지.

여하튼... 자네가 서슬뱀과 같은 부족이니 들켜도 큰 말은 없겠지만... 우리 부족은 지금 주술사에 대한 인식이 극도로 나빠져 있다네. 부디 함부로 주술을 쓰진 말아주게. 자네를 위해 이러는 것이니 이해해주게나.”


검은 빛 나는 문양의 주술.

사악한 신의 권능이다.


한 마디로, 서슬뱀이 밝혔다는 무녀의 거짓은, 그 자체로 거짓일 가능성이 컸다.


“... 충고 고맙습니다.”


“그래. 이해해주어 고맙네. 그건 그렇고... 큰뿔소의 상처를 보아하니 대략 이레에서 열흘은 기다려야 할 듯싶군. 그동안은 우리 움집에서 지내게나.”


“아닙니다. 날씨도 나쁘지 않고 하니, 귀신목들 사이에서 명상이나 하며 지내도...”


“어허! 내가 자네의 큰뿔소를 상처입혔는데 대접도 못 하게 하는건가! 잔말말고 내 움막으로 따라오게!”


“...예.”


사하시를 따라 그의 움집으로 향하던 중, 내 눈에 무언가가 띄였다.

아이들이 모여있었다.


“응?”


부족 내, 귀신목 숲과 공터 사이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아이들이 모여 뭔가를 발로

차는 중이었다.


“사하시. 그나저나... 저 아이들은 누굴 차고 있는 겁니까?”


아이들이 차고 있는 것은, 같은 또래의 한 아이였다.


“응?”


사하시는 내가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와락 얼굴을 찌푸렸다.


“이 놈들... 길손이 왔는데 부끄럽게 뭐하는 거냐!”


그의 외침에, 한 아이를 구타하던 아이들이 얼어붙었다.


“다들 떨어져라! 또 그 애냐? 이번엔 왜 때리는 거야!”


그는 화가 난 듯 아이들을 향해 성큼 성큼 걸어갔고, 아이들은 다들 고개를 숙이며 비켜섰다.


‘큰버루보단 아이와 어른들이 교류가 많나보군...’


큰버루 부족은 아이가 성인식을 치룰 때까지 가장 자식에게 무관심한 부족이었다.

그래서 우레가람은 서슬바람이 아이들을 이끌고 괴롭혔어도 딱히 제지가 들어오지 않았었다.


반면 반얀 부족은 큰버루보다는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모양이었다.


“아샤, 괜찮니? 아샤!”


사하시는 쓰러진 아이를 일으키며 물었다. 아샤라는 소년은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힌디! 왜 또 아샤를 때린 거냐!”


그는 가장 가까이에 있던 아이에게 구타의 이유를 물었다.

힌디라는 아이는 억울하다는 듯 귀신목 숲을 가리켰다.


“아샤가 자꾸 헛소리로 우릴 무섭게 해요. 귀신목 사이로 세티아가 손을 흔든다고 하잖아요!”


그 말에 다른 아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하시의 미간에 주름이 깊어졌다.


“후... 알겠다. 일단 다들 다른 데에 가서 놀려무나. 아샤는 내가 잘 타이를테니...”


“네 대전사님!”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대답하고는 우르르 몰려 마을을 돌아다녔다.

사하시는 한숨을 푹 쉬며 아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아샤, 왜 자꾸 거짓말을 하는거냐?”


“거, 거짓말 아녜요! 정말 귀신목 사이로 세티아가 있었다고요!”


“후... 아샤. 조상은 그런 식으로 모습을 보이지 않아.”


“정말이에요! 세티아가 나한테 손짓했어요! 이리로 오라면서...”


“그만! 아샤! 길손 앞에서 부끄럽게 왜 자꾸 거짓말이냐!”


사하시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나는 아이의 눈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거짓말 그만하고 가서 어른들 일이나 도와라! 한가하니 자꾸 쓸데없는 게 보이는 게지. 어서 가! 귀신숲 근처로 오지도 말려무나!”


아샤라는 소년은 울듯한 표정으로 저 멀리 달음박칠쳤다.


나는 아샤라는 아이가 시선을 주었던 곳을 바라보았다.


“세티아가... 누구요?”


“있다네. 그런 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 미안하네. 얼른 내 움막에 자네 자리를 마련해주고...”


“세티아란 여자가, 그 돌팔매질 당해 죽었다는 무녀입니까?”


홱!


사하시는 나를 노려보다가, 내가 시선을 향하는 귀신목 사이로 같이 시선을 던졌다.


“왜, 자네도 뭔가 보이는가? 됐네. 정말 주술적인 뭔가가 있다고 해도 마을 내의 일이네. 신경 끄게나.”


그는 아무것도 없는 귀신목 숲에서 시선을 돌리고 자신의 움집으로 나를 안내했다.

나는 그의 움집으로 들어가기 전, 귀신목 사이를 다시 한 번 돌아보았다.


아까 보았던 것처럼, 한 여자가 서서 손짓하고 있었다.



* * *



움집에 들어와 서슬뱀의 기억을 빠르게 훑었다.

이 마을에 대해 빠르게 알고싶었고, 서슬뱀의 기억 속 마을을 알고 싶었다. 어떤 일이 있었을까.


하지만 녀석의 기억은 세찬 물살처럼, 한 번 시작한 이야기를 멈추려 하지 않았다. 나는 더욱 빠르게 녀석의 기억을 읽는 수밖에 없었다.


* * *


아기 때부터 뱀 두 마리의 목을 졸라 죽인 서슬뱀은 날이 갈수록 비범함을 보였다.


창을 가르치면 그 다음날은 사냥하는 법을 터득했고, 얌을 가르쳐주면 다음날은 요리하는 법을 터득해 왔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았고, 둘을 가르치면 백을 알았다.


서슬뱀은 어릴 때부터 많은 아이들의 추종을 받았고, 동경을 받았다.

물론 서슬뱀을 싫어하는 이들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우레별, 검은바위, 억센꽃이 그 예였다.

무엇을 해도 자신들보다 뛰어난 성과를 보이는 서슬뱀. 그를 향한 질투.


아이들이 서슬뱀을 싫어하는 것은 대부분 그 때문이었다.

물론 우레별 같은 경우는 조금 달랐다.


“야! 너 왜 우리 아빠랑 다녀! 떨어져!”


우레노을이 서슬뱀을 차기 제사장으로 여기며 그에게 주술을 가르칠 때면, 여김없이 우레별이 나타나 훼방을 놓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서슬뱀이 자신에게서 부모의 사랑을 뺏었다.

그렇게 느낀 것이었다.

다만 서슬뱀은 한 번도 우레별을 귀찮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귀엽고, 어쩔 때는 같잖게 느껴지기조차 했다.


심지어 우레별이 한 살 많았음에도 말이었다. 때문에 서슬뱀과 우레별은 싸우지 않았다. 서슬뱀 쪽에서 언제나 어른스럽게 대처했기 떄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서슬뱀과 우레별이 처음으로 다툰 날이 있었다.


“뭐라고 했어?”


서슬뱀의 목소리는 난생 처음으로 떨렸다.


“너, 애들이 그러는데... 사람이 아니라는데?”


“무슨 말이야?”


“말 그대로야. 네가 무슨 사람이야?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뭐든지 잘할 수 있어? 딱 봐도 귀신굴에서 악령이 들어서 뭐든지 잘하게 된 거야!”


“아니야!”


서슬뱀은 빽 소리를 질렀다.


“난 사람이야!”


평소에는 전혀 화가나지 않던 우레별의 행동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왜인지 정말로 화가 났다.


“난 팔도 두 개고, 다리도 두 개고, 눈, 콧구멍, 귀도 다 두 개야! 입도 똑같이 하나라고! 생긴 게 똑같잖아! 왜 내가 사람이 아니야! 난 사람이야!”


사람이 아니라는 그 말에 왜인지 당혹과 분노가 치솟아올랐다.

때문인지 서슬뱀은 난생처음 분노하며 우레별에게 소리질렀다.


하지만, 그 모습에 우레별은 오히려 더욱 즐거워하며 조롱했다. 늘 완벽한 것 같던 서슬뱀이 처음으로 무너진 것이다.


“생긴 것만 똑같다고 다 사람이야? 너 사람 아니야 몰랐어? 넌 귀신의 자식이야!”


그리고, 서슬뱀은 어느새 우레별에게 다가가 그의 턱을 후려쳤다.


“다시 말해봐!”


“너! 사람 아니야!”


퍼억!


서슬뱀은 우레별에게 올라타 얼굴을 후려쳤다.


“다시 말해봐!”


“너, 사람, 아니라고!”


퍼억!


“다시!”


“괴물! 넌 괴물이야!”


우레별이 허리에 힘을 줘서 서슬뱀을 고꾸라뜨렸다.

기술도 역량도 서슬뱀이 한 수 위였지만, 한 살 많은 우레별에게 체격으로 밀렸다.


“너 이 새끼, 괴물 자식이 지금 제사장의 핏줄인 나한테 덤빈거야? 주제도 모르고...”


“닥쳐! 닥치라고! 난, 사람이야!”


서슬뱀과 우레별은 그날 대판 싸웠다.


보통 큰버루의 사람들은 어린아이들의 싸움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지만, 우레노을은 달랐다.

얼마 후 우레노을이 황급히 달려와 둘을 갈라놓았다.


“우레별! 서슬뱀! 무슨 일이냐!”


우레별은 서슬뱀을 가리키며 외쳤다.


“서슬뱀이 먼저 때렸어요! 그냥 좀 놀렸는데 진짜 아프게 때렸단 말예요!”


서슬뱀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사부님. 우레별이 제가 사람이 아니라고 놀리는 바람에 그만...”


차분하게 변명을 늘어놓으면서도, 서슬뱀의 목소리는 점차 작아졌다.

우레노을이 오니 조금 화가 가라앉고, 이성이 돌아왔다.

자신이 성급했다. 아무리 화가 났어도 어른스럽게 대처했어야 하는 것이었다.

이제 먼저 때린 자신이 벌을 받을 차례였다.


그러나, 우레노을은 서슬뱀을 혼내지 않았다.


짜악!


대신 우레별이 따귀를 맞았다.


“우레별! 너 이녀석! 누가 네 동생에게 그따위 망발을 지껄이라 했느냐!”


서슬뱀은 그렇게 분노한 우레노을의 모습은 처음 보았다.


짜악! 짜악!


“네 가족이다! 네 가족한테 사람이 아니라 하는 것은, 너 자신뿐 아니라 나까지 사람이 아니라 하는게냐! 우리 큰버루 사람들 전체를 사람이 아니라 모욕한게냐!? 이건 몇 번을 보아도 네가 잘못했다!”


서슬뱀은 그렇게 무섭게 폭력을 행하는 우레노을을 처음 보았다.


항상 친절하고, 어떤 불화가 일어나도 차분하고 느긋하게 중재하던 우레노을이었다.

그런 그가, 아들이 제자에게 막말을 했다는 이유만 가지고 아들을 구타하고 있었다.


얼마간 우레별의 뺨을 때린 우레노을이 소리쳤다.


“천막에 들어가서 잘 생각해봐라! 네가 오늘 뭘 잘못했는지!”


“.....”


우레별은 말없이 천막으로 들어갔다. 우레노을에게 맞으면서도 눈물 한방울 떨어뜨리지 않던 우레별은, 우레노을이 천막으로 들어가라는 말을 하자 그제야 눈물을 줄줄 흘리며 사라졌다.


“애야, 괜찮으냐?”


그리고, 우레노을은 서슬뱀에게 다가와 상처에 치유 주술을 불어 넣어주었다.

서슬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내 아들이 많이 아프게 때렸나 보구나. 미안하다. 너무 자유방임적으로 키운 탓이지... 내가 잘못했다...”


서슬뱀은 처음에 우레노을이 왜 그렇게 자신을 위로하려 했는지 이해가 안 됐다.

그러다가 깨달았다.


‘나... 울고 있었네?’


그는 어느새 빨개져 있는 자신의 눈물을 훔쳤다.

맞으면서 운 것은 아니었다.


우레별과 싸우기 전, 그에게 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였다.

서슬뱀은 우레노을에게 질문했다.


“스승님, 스승님은 뭐든지 알고 계시나요?”


“음...? 그래, 뭐... 아는 게 많단다. 뭐가 궁금하니?”


이어진 서슬뱀의 질문에, 우레노을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나는 사람이 아닌가요?”


“...그것 때문에 운 게냐?”


“네.”


“저런, 저런...”


우레노을은 서슬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귀신굴의 앞으로 데려갔다,

해가 지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우레노을은 귀신굴 앞에 걸터앉아, 서슬뱀을 무릎에 앉히고 같이 노을을 바라보았다.


“왜 네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느냐? 넌 분명 눈도 두 개고, 콧구멍도 두 개고, 귀도 두 개...”


“우레별이 꼭 겉모습이 같아야만 사람은 아니라고 했어요!

저, 사람이 맞는거에요? 나는 한 번 보면 원리를 다 알겠던데, 다른 애들은 그런 게 안 된데요. 나는 스승님의 주술이 눈에 보이는데, 애들은 그게 안 보인데요.

나는 죽은 사람이랑 잠시 대화를 할 수 있는데, 다른 애들은 그런 거 못한데요. 저 정말 사람 맞나요?”


“으음... 서슬뱀아.”


우레노을은 인자하게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사람은 결코 쉽게 정의할 수도 없고, 쉬이 정의되어서도 아니된단다.”


“.....”


“피부색이 다르면 사람이 아니더냐? 말이 다르면 사람이 아니더냐? 입는 게, 먹는 게 다르면 사람이 아니더냐? 생각하는 게 다르면 사람이 아니더냐?”


서슬뱀은 대답할 수 없었다.


“밝든, 어둡든, 상냥하든, 사악하든 다 사람이란다. 추하든 아름답든 저마다 다른 것 뿐이지. 서슬뱀아. 내 아들아.”


우레노을의 손바닥이 서슬뱀의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었다.


“사람을 정의할 기준은 어디에도 없단다. 그러니... 네가 스스로에 대해 확신을 세운다면 누구도 네가 사람이다 아니다라고 말할 수 없을 게야.”


어려운 얘기였지만, 서슬뱀은 알아들었다.

그리고 자신을 생각해주는 우레노을의 마음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고마워요, 스승님.”


“그런 것 치고는 힘이 없는데... 어디보자...”


우레노을은 따스하게 웃으며, 노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 사부가 재밌는 옛날 이야기나 들려줄까?”


“...네. 스승님 얘기는 다 재밌는 것 밖에 없어요.”


서슬뱀은 눈을 반짝이며 우레노을의 말에 집중했다.

우레노을은 젊어서 여행을 많이 다닌 덕인지, 이야기를 아주 많이 알고 있었다. 그는 우레노을의 목소리를 들으며, 재밌는 이야기를 전해듣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에... 사랑을 받지 못한 못된 뱀이 살았단다... 그 뱀은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는 사람들이 미워, 그들을 모두 죽여버리기로 했지.

뱀은 주술을 부려 아주, 아주 커다란 대홍수를 일으켰단다...”


서슬뱀은 우레노을의 목소리를 들으며 노을을 바라보았다.

우레별에게는 미안한 얘기였지만, 그날은 너무 노을이 아름다웠다.


“...이렇게, 많은 신이 뱀의 자유를 뺏어 시금석 밑에 묶어놓았단다. 이렇게 얘기는 끝난단다... 저런, 서슬뱀. 자니?”


사실 자는 것은 아니었다. 잠에 들기 직전, 몽롱한 상태라고 해야 할 것 같았다.

서슬뱀은 우레노을이 그의 이마를 쓰다듬는 것을 느꼈다.


“내 아들아... 너를 위해 이 땅의 힘을 엮고 있다. 언젠가 전승의 형태로 너에게 넘겨... 새 제사장이 나오지 않더라도...”


서슬뱀은 우레노을의 중얼거림을 들으며 잠에 빠져들었다.


“그 불길한 예지가 인근의 대지를 휩쓸지 못하도록...”


* * *


번쩍!


눈을 떴다.


"... 원래 그 전승은... 애초에 서슬뱀을 위한 것이었군."


서슬뱀의 딸, 소슬바람에게 대지의 전승이 내렸으니, 어찌보면 잘 계승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나는 그렇게 중얼거린 후, 주변을 살폈다.

서슬뱀의 기억을 감상하던 중, 이상한 기척이 의식을 자극했다.


“흠...”


고소한 냄새가 풍겨왔다.

주변을 둘러보니, 사하시의 움막 안에서 그의 짝이 음식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길손께선 특이하게 앉아서 잠을 주무시는군요. 빨리 와서 드세요. 음식이 다 됐어요.”

“음, 앉아서 자는 게 아니라 명상이라고...”


설명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못 알아들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뭐 도와드릴 것이 있습니까?”


사하시의 짝은 빙긋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길손께선 쉬시고 계세요. 도와줄 일이야... 아샤!”


사하시의 짝이 움막 밖을 향해 소리쳤다.

낮에 보았던 소년이 움막으로 들어왔다.


“아샤, 검은가루 약초를 좀 가져오렴. 냄새맡지 않게 조심하고!”


“예, 어머님!”


아샤는 총총거리며 바깥으로 나갔고, 얼마 후 사하시가 움막으로 들어왔다.


“길손은 조금 쉬셨나?”


“예, 덕분에 편히 쉬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막 밖으로 나간 아샤를 보며 물었다.


“저 아샤라는 아이가 아들입니까?”


사하시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외지인들은 잘 이해 못하는 경우가 많지. 우리 반얀 부족은 아이들을 전부 함께 키운다네. 마을의 모두가 아이들의 아버지이자, 어머니인 셈이지. 아이들은 어른 남성을 전사님, 어른 여성을 어머님이라 부른다네. 우리 반얀 마을만의 특징이야.”


일종의 공동육아인 셈이었다.


“아이들은 적당히 마음에 드는 어른의 움막을 찾아가 잠을 잔다네. 아샤는 우리 움막에서 많이 자는 편이지.”


“그렇군요...”


“자, 오늘은 늦었으니 일단 먹고 자세나! 내일 아침에 일어난다면 우리 부족의 멋진 풍경을 많이 보여주겠네.”


나는 사하시와 함께 앉아 같이 대화를 나누고, 음식을 먹고는 잠이 들었다.


밤이 되었다.


사하시와 그의 짝, 그리고 아샤가 잠들자, 몸을 일으켰다.

서슬뱀의 기억을 읽던 중 느꼈던 그 기척이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조심스레 움막 밖으로 나갔다.


귀신목 숲.

그곳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너는 뭐냐.”


한 여자가 그곳에서 웃으며 손짓하고 있었다.


여자의 영력 자체는 전혀 신경쓰이지 않았지만,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이 파동은 무척이나 신경쓰였다.


이 익숙한 느낌.


“너는 누구인데...”


그녀에게로 걸어가며 물었다.


“왜 우레노을의 깨달음과 같은 기운이... 네게서 느껴지는 것이지?”


우레노을이 죽을 때 보여주었던, 그의 영(靈)에 담겨있던.

신성하기도, 사악하기도.

거칠기도, 부드럽기도 한 기이한 힘이.


저 여인에게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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