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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님의 서재입니다.

달이 만든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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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리
작품등록일 :
2020.06.13 16:23
최근연재일 :
2021.05.01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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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4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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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6화

DUMMY

배가 육지를 떠난 뒤로 나나는 계속 바다만을 바라보았다. 그 덕에 노를 젓는 일은 오로지 도진의 담당이 되었다. 중간에 그녀의 구두에 찍힌 팔꿈치에 통증이 느껴졌을 땐 나나에게 노를 저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녀의 사뭇 진지한 표정을 보고 나니, 사색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졌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수평선이 아무리 눈을 깜빡여도 사라지지 않자 나나는 세계와 월계의 경계도 그러한 것일지 궁금해졌다. 어쩌면 이 가시 수평선을 너머로 눈으로 볼 수 없는 분계선이 새로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지. 문득 그녀는 택시 안에서 꾼 꿈이 떠올랐다.


거울로만 이루어진 방.


실제로 그 방 안에는 자신과 성모마리아상 둘 뿐이었다. 둘 말고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거울을 바라보면 그게 아니었다. 거울 속에는 여러 명의 자신이 오른쪽에도, 왼쪽에도 있었으며 심지어는 위에도 아래에도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있는 앞에는 성모마리아상 역시 오른쪽에도, 왼쪽에도 있었으며 마찬가지로 위에도 아래에도 그녀가 있었다.


그중 어느 쪽이 진짜 백나나였지?


가운데에 있는 백나나가 진짜였다.


그렇지만 모든 백나나가 공간의 가운데에 있었잖아.


그렇다면, 살려달라고 말한 백나나가 진짜 ‘백나나’였지.


그럼에도 모든 백나나가 살려달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녀는 진짜 백나나 찾기를 포기하고 성모마리아상 쪽을 생각해보았다. 어느 쪽이 진짜 성모마리아상이었는지를 먼저 찾게 되면, 그녀의 앞에 마주한 백나나가 진짜 백나나가 된다. 그렇지만 진짜 성모마리아상을 찾는 것 역시 불가능했다. 모든 성모마리아가 피를 흘리고 있었다.

내면의 좌절에 한숨을 내쉬고 시야를 뚜렷하게 두자, 거대한 꽃들이 나나의 눈에 들어왔다.


“나도진. 저기 봐! 바다에 꽃이 폈어!”

“아, 그건 ‘미지화(未地花)’예요.”

“미지화?”

“‘땅이 아니다’라는 뜻이에요. 바다 위에 피었기 때문에 이곳은 땅이 아니라는 거죠.”


활짝 피어난 꽃들의 모습은 지적이면서도 화려한 느낌이 들었다. 뭉친 녹색 잎들이 바깥으로 날카롭게 뻗고 꽃대는 두껍고 기다랬다. 아직 만개하지 않은 것들은 입을 가운데로 오므린 것처럼 잎을 둥그렇게 말고 있었다. 피어난 모습과 피기 전의 모습이 이토록 다르다니. 미지화의 자태는, 시야에서 사라지기 전까지 그야말로 나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제 좀 믿겨요?”

“뭐 말이야?”

“이곳이 월계라는 사실이요.”

“···그러네.”


자신이 살던 세계에서는 바다에 피어나는 꽃 같은 건 없었다. 바다 근처에 피는 꽃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바다 위에 피어나는 꽃은 없을 것이다. 연못에서 자라는 연꽃이 있기야 하지만, 바다 한가운데에 꽃이 피는 건 상상도 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름을 꼭 그렇게 지었어야 해? 여기 되게 직관적이다.”

“미지화요?”

“응.”


도진은 정면을 향하던 눈을 위아래로 굴리며 생각에 빠졌다. 자신이 어릴 때부터 들어온 미지화에 얽힌 설화들을 떠올리려는 방편이다. 생각을 정리한 도진이 입을 뗐다.


“왜 그렇게 지어진 건지 정확한 어원은 나도 몰라요. 하지만 어릴 때 학교 선생님이 재밌는 이야기 하나를 가르쳐주셨어요.”

“뭔데?”

“옛날의 월계에는 12성인이 사는 심연도가 정확하게 어딘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곳을 찾으려고 많은 사람이 바다로 나갔대요. 그렇게 한번 나가면 아주 오랜 기간을 바다에 머물다 왔는데,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았다네요. 바다에 빠져 죽는 사람들이 있었죠.”

“폭풍 같은 것 때문에?”

“아뇨. 자기 자신이 직접 바다로 뛰어내린 거예요. 월계의 바다, 특히 심연도를 둘러싼 주변의 바다는 너무 오래 바라보거나 너무 오래 바다에 머물게 되면 환각 증세를 겪게 되거든요. 그렇게 환각에 걸린 사람 중, 육지를 그리워하는 환각에 빠진 사람들이 미지화가 핀 것을 보고는 그곳을 육지로 착각하며 배에서 뛰어내렸대요. 그래서 그 뒤로 이곳은 땅이 아니라 바다라는 의미로 ‘미지화’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데, 어디까지나 민간설화예요.”


도진의 이야기가 끝나자 나나는 자기도 모르게 눈을 꼭 감았다. 이제까지 바다를 뚫어지게 쳐다봤던 것이 내심 마음에 걸렸으리라. 도진은 그런 나나의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러곤 자신들의 지금 목적지 또한 심연도이며, 곧 섬의 형태를 볼 수 있을 것이라 나나에게 고하려는 찰나, 도진과 그녀는 엷붉은 안개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나나 씨! 나나 씨!”

“뭐, 뭐야! 나도 환각 걸렸어?!”


눈을 꼭 감은 채로, 이야기를 잘 듣고 있다는 표시로 고개를 규칙적으로 두어 번 끄덕이던 나나가 도진의 다급한 목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동그랗게 커진 눈은 이내 더 커지기라도 하려는 듯 잔뜩 힘이 들어간 기색이 되었다.


“갑자기 웬 안개야? 그리고 여긴 안개가 왜 불길하게 빨간 건데?!”

“이 안개라면 아마······. 하지만 저도 정확히 모르겠네요.”

“이것도 네가 말한 환각 뭐 그런 거 아냐? 우리 죽어?”


도진은 믿어볼 만하면 제일 수상한 놈이 된다고, 나나는 생각했다. 서둘러 자신 몫의 노라도 잡아본 그녀는 내친김에 도진의 머리를 내리칠까 생각까지 했다. 그렇지만 하나보다는 둘이 있는 게 더 나은 상황이니, 나나는 가슴을 한 번 쓸어내리고는 최대한 침착하게 그에게 물었다.


“글쎄요, 최악의 경우에는..”

“나 너 따라 죽으러 여기 온 거 아니거든! 일단 가만히 이 자리에 있다가 안개가 걷히면 그때 가면 되지 않을까?”

“그건 안 돼요.”

“눈 감고 있으면 되잖아!”

“그, 그게···.”


갑자기 둘이 머문 배 주변으로 물이 출렁였다. 곧이어 선체가 물이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빼뚝빼뚝하게 흔들렸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둘은 두 손으로 힘껏 배를 붙잡았지만, 물살을 이기기에는 턱도 없이 부족한 양의 힘이었다.


“이 배는-!”

“······.”

“한곳에 계속 머무르면 가라앉고 말거든요!”

“뭐?!!”


배 안으로 침범해오는 바닷물에 얼굴이 흠뻑 적은 도진이 반쯤 뜬 눈으로 나나를 보며 급하게 말했다. 그 말을 듣고 기가 찬 나나는 몹시 어이가 없어 탄성을 터트렸는데, 자신 역시 자꾸만 얼굴을 공격하는 바다의 물세례에 말을 하기는커녕, 눈조차 제대로 뜰 수 없는 지경인지라 고작 그것이 말대꾸의 전부가 되었다. 오래 앉으면 새도 살을 맞는다지만, 오래 떠 있는 배가 가라앉는단 말은 들어본 적도 없다. 단지 이 안개가 갑자기여도 좋으니, 아니 제발 갑자기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바라는 나나였다.


그때, 안개 속을 뚫고 목소리 한 가닥이 그들 곁에 다가왔다.


“이야, 신고식 제대론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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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4화 +8 20.06.13 173 7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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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화 +4 20.06.13 315 4 7쪽
2 1화 +6 20.06.13 813 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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