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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게임 속 나혼자 플레이어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이찬솔
작품등록일 :
2022.09.15 01:46
최근연재일 :
2024.04.20 20:15
연재수 :
1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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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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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28,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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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08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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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PK 유명인

DUMMY

호쾌한 선언과 함께 당장 돈을 쓸어 담을 것처럼 굴었지만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자는 신조의 동훈은 당연히 공부부터 선행했다.


“ETF 인버스, 곱버스. 이야, 이거 복잡하네.”


동훈이 먼저 손대보려는 건 곱버스, 주가가 하락하는 것에 베팅하는 것을 뜻하는 인버스에 변동성을 높이는 곱하기를 합쳐 부르는 종목이었다.

ETF 상품은 펀드 종목으로 지수의 하락에 베팅해 역으로 수익을 볼 수 있는 종목이었다. 말이 펀드지 펀드매니저를 통해 구입하는 펀드 상품이 아닌 주식처럼 트레이딩 시스템을 통해 거래할 수 있었고 시장에서 거래를 하기 때문에 펀드보다도 수수료가 적었다.


대신 리스크도 일반적인 주식처럼 지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지.


말이 복잡해졌는데 주식을 하다 보면 종목 검색에 X2, X3 인버스 같은 식으로 곱셈부호가 나오는 종목들이 있잖은가.

동훈이 손대려는 종목이 바로 그것이었다.


“변동성이 높다. 올라가면 대박인데 떨어지면 개쪽박. 횡보만 해도 손실을 본다니. 중간 없이 대박 아니면 다 쪽박이다, 이거네.”


말 그대로 비기는 거 없이 이기거나 지거나. 하지만 비겨도 지는 걸로 치는 셈이니 확실히 불리한 게임이었다.

생각해보라. 가위바위보를 하는데 이겨야만 이기고 지거나 비기면 지는 거라고 하면 하고 싶은가? 질 확률이 3분지 2인데?


하지만 그렇게 규칙을 거지 같이 잡아놔도 할 사람은 했다.


큰돈이 걸려있으니까.

평범한 규칙에서는 3만원, 5만원 이렇게 먹었다면 그지 같은 규칙에서는 그의 10배인 30만원, 50만원씩 먹었으니 안 하고 배기겠냐고.


동훈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고.


“대부분이 쪽박을 차고 나가게 되지. 3분의 2가 패배라는 소리는 산술적으로만 따져도 들어간 사람 3분의 2는 돈을 잃는다는 소리니까. 얼마나 위험한 종목이야.”


물론 동훈은 자신이 있었다. 사기급 스킬이 있었으니까.


정답을 맞힐 자신만 있으면 3분의 2가 실패든, 100분의 99가 실패든 상관없는 것이다. 오로지 상관있는 것은 수익률인 거지.


동훈은 우선 곱버스 종목들을 눈으로 스캔했다.

위아래의 화살표가 뜨는지부터 확인해야 했으니까.


동훈의 예상대로 곱버스장에서도 동훈의 ‘통찰’은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조금 더 오래 지켜봐야 알겠지만 화살표의 움직임이 일반적인 주식들의 움직임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있었다.

이건 종목을 다뤄보면서 차차 익숙해져야 하는 부분일 듯했다.


“일단 미체결 매수 주문부터 취소하고.”


동훈은 선물 곱버스 중 화살표가 가장 많은 것을 눌렀다.


수많은 선물 곱버스 상품이 현란하게 눈을 어지럽혔다. 영어 스펠링이 난자했고 숫자며 줄임말이 많아서 보통의 사람이라면 길을 잃을 법한 데이터의 향연이었다.


하지만 동훈의 ‘통찰’은 훌륭한 길잡이였다.

영어며 줄임말 같은 것을 동훈은 볼 필요도 없었다. 동훈이 주목한 것은 오로지 화살표. 위로 향하며 숫자가 많으면 상승세가 강한 것.


아주 심플한 기호는 동훈의 길을 인도했다.


“EBB 선물인버스3X, 위를 향한 화살표 3개. 이거로 풀매수다.”


동훈은 몰랐다. 이때 탑승한 곱버스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잔고 6,169,800원


EBB 선물인버스3X 4059주 매입예정.


“월요일 되면 사지겠지? 이건 됐고 더 벨룸 설치가 끝났는지나 보자.”


동훈은 MTS를 종료하고 핸드폰 화면을 껐다. 동훈의 손에는 테블릿이 들렸다.


테블릿에는 설치가 완료되고 플레이 버튼이 활성화되어 있었다.


“오, 설치 끝났네. 들어가 볼까?”


동훈은 붉은색의 모바일 버전 더 벨룸 아이콘을 눌러 게임을 실행시켰다.


모바일 버전의 더 벨룸이 부팅되기 시작했다.


검은 화면으로 시작한 게임은 점점 밝아지더니 한 문구를 띄워냈다.


‘더 벨룸The Bellum’


장엄하고 딱딱한 글씨체가 화면 중앙에 도도하게 떠올랐다. 마치 그 글자는 광대한 세계로 향하는 무겁게 닫힌 문처럼 보였다.


화면을 터치해 문구를 지나선 동훈은 간단한 내부 업데이트를 기다렸다가 서버를 선택할 수 있는 메인화면으로 넘어왔다.


뒤로는 모바일 버전 더 벨룸에서 진행하는 최신 업데이트의 시네마틱이 흘러나오고 중앙에 작은 사각형으로 서버목록이 죽 나열되어있었다.


모바일 버전의 더 벨룸은 피씨 버전의 더 벨룸을 그대로 따르므로 1서버 오블론 서버부터 쭉 서버의 이름이 동일했다.


“보자. 내가 원래 플레이하는 서버로 들어가야 하나?”


동훈은 스크롤을 쭉 내리면서 다른 부분이 있나 확인했다.

분명 마지막 서버인 테스트 서버가 스크롤 끝에 걸려야 할진대 그 아래로 스크롤이 조금 더 내려갔다.


“이 다음 서버가 있어?”


동훈은 이곳에서 자신이 겪은 기이한 경험의 단서가 될 특이점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서버선택 가장 끝에 동훈이 처음 보는 서버의 이름이 보였다.


-A 서버


본래 원작 웹소설 캐릭터들의 이름으로 정해지는 서버명과는 달리 영단어 대문자 하나만 딱 쓰여있는 서버명은 굉장히 기묘했다.

그 낯선 이름에서 오는 생경함은 동훈을 기존에 알던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으로 인도하는 듯한 불안감을 동반했다.


“A 서버는 뭔 뜻이지? 도통 모르겠네.”


새로운 서버를 클릭해 들어가자 캐릭터 선택창으로 넘어왔다.


캐릭터 선택창으로 들어가 캐릭터를 확인한 순간 동훈은 굳을 수밖에 없었다.


동훈과 똑같이 생긴 아니, 동훈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평범한 키에 평범한 체형, 평범한 외모까지 완전히 똑같은 손동훈이.

더 벨룸 속의 중세풍 옷을 입고 얼빠진 채로 서 있는 동훈의 모습을 한 캐릭터는 현실 서버 속 손동훈이었다.

희귀 등급 혹은 커먼 등급의 방어구로 무장하고 있는 동훈은 먼 허공을 응시하고 있을 뿐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자신과 똑같은 비율로, 똑같이 생긴 마네킹이 만들어진 것을 본 기분이랄까. 설명하기 어려운 이상한 기분이었다.


“도플갱어야, 뭐야. 기분 나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멍하니 있는 내 모습이 게임 안에 있으니 기분이 이상하네.”


[디올 사고 싶다] lv.4


동훈은 손동훈 캐릭터로 게임에 접속했다.


동훈이 로그아웃한 바로 그 장소. 다크엘프들을 따돌린 관도 한복판이었다. 옆에 NPC인 반다르와 그의 파트너 개가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좀 움직여볼까? 여기서 내가 태블릿으로 움직여놓으면 내가 접속했을 때 움직여 있는 건가?”


이것저것 눌러본 결과,


“이거 아무것도 컨트롤이 안되네. 인벤토리니 상점창이니 열리기만하고 장착이나 해제 안 되고, 구매도 안 되고.”


이윽고 동훈은 처음 보는 기능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다.


동기화.


원래 그 자리에 있던 버튼처럼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동기화 버튼은 HP를 표시하는 체력바 옆에 자리했다.

그 버튼은 워낙 더 벨룸의 폰트와 버튼 디자인을 그대로 가져온 터라 동훈도 처음에는 눈치채지 못했다.


“동기화? 뭘 동기화한다는 거지? 설마?”


동훈이 동기화 버튼을 누르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마치 마법소녀가 변신이라도 하듯 옅은 빛무리에 휩싸였다 돌아온 동훈의 몸에는 분명 더 벨룸에서 걸치고 있었던 장비들이 걸쳐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기화는 더 벨룸의 무장 상태를 불러올 수 있는 건가?”


동훈은 현실 세상으로 불려온 자신의 장비들을 이리저리 살피며 중얼거렸다.


갑옷은 언커먼 등급의 ‘불핀 정규군 흉갑’, 장갑과 장화는 세트 아이템으로 희귀 등급의 ‘멜라니의 중후한 장갑과 장화’, 투구 또한 희귀 등급인 ‘제국식 깃털 헬름’이었다.


동훈은 장갑을 낀 손을 꽉 쥐어보았다.


장갑이 작게 진동하더니 무형의 에너지 파장을 발산했다.


장갑에 달린 효과인 ‘위협’ 스킬로 상대에게 미약한 디버프를 거는 스킬이었는데 현실에는 그런 디버프도 없고 디버프를 거는 스킬도 없지 않은가.


더 벨룸이라는 다른 세상에서 온 이물(異物)은 그것을 가능케 했다.


“이 파장에 맞으면 위협 효과를 받는 건가? 공격력 잠깐 떨어지는 효과를? 쩌는데?”


지금은 이렇게 별 것 아닌 효과를 발휘하지만 나중에 영웅 등급, 더 나아가 전설이나 신화 등급의 아이템이 내는 특별한 효과들은 더욱 극적일 테지.

전쟁에서 쓰이는 공격력이니 방어력에 관련된 효과들이었지만 지금의 ‘위협’ 스킬과는 차원이 다른 스케일을 보여줄 것이기 때문에 동훈은 자연히 그 상태를 상상해볼 수밖에 없었다.


***


더 벨룸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순간은 신비롭기 그지없었다.

마치 꿈속을 유영하는 기분, 어디론가 정신이 이동하는 기분이었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법칙을 뛰어넘었고 어딘가로 이어지는 것과도 같았다.

상리를 벗어난 이동과 접속은 뇌리에 깊이 각인되었다가 마치 새벽녘의 안개처럼 흩어져 버리고 말았다.


동훈은 다시 더 벨룸의 세상에 들어왔다.


태블릿 너머로 보았던 바로 그 상황. 태블릿으로는 어떤 조작도 먹지도 않았는데 지금은 이렇게나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었다.


동기화시켜봤던 장비들도 지금은 그대로 존재하고 있었다.


“밖에다 벗어놔 봤는데 들어오니 돌아와 있네.”


동훈은 동기화를 시험하기 위해 동기화로 현실 세상에 가져온 더 벨룸 속 장비들을 벗어다 장롱이며 침대 밑, 냉장고 안 등 여러 군데에 숨겨놓았다.

역시나 모든 장비는 동훈이 현실 서버 더 벨룸에 접속하는 순간 모조리 돌아와 있었다.


반다르는 자신의 장비를 살피며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동훈을 보며 또 이상한 짓거리를 하고 있구나, 생각했고 이젠 익숙해졌는지 앞을 가리키며 할 말을 했다.


“사람들이 보이는군. 숫자는 셋일세. 장비 상황은 신기할 정도로 좋아. 피하기엔 늦었어. 준비하게.”


반다르는 자신의 활을 점검하며 사냥꾼 특유의 넓은 시야를 이용해 동훈에게 상황을 브리핑했다.

노련한 사냥꾼인 반다르는 객지에서 만난 사람은 언제든 도적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그는 소매와 바지 밑단을 가죽으로 단단히 묶어 언제든 싸울 준비를 했다. 반다르가 싸울 준비를 하자 반다르의 질 좋은 가죽옷은 가죽 갑옷으로 탈바꿈했다.


동훈은 반다르의 가리킴에 시선을 멀리 뒀다.


동훈 역시 게임 캐릭터답게 상시 무장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희귀 등급의 방어구는 판금갑옷처럼 눈에 띄는 복장은 아니었으나 좋은 스텟을 갖춰 실용적이었다.

세트 아이템이 아니었기에 외견상 통일성도 없어 허접해 보일 뿐 스텟 펌핑은 확실해서 10렙 이하 싸움에서 지지는 않을 것이라 자신할 수 있었다.


앞에 서 있는 3명의 사람은 동훈이 로그아웃하기 전 언뜻 보았던 아이디 3개, 또 다른 플레이어의 캐릭터였다.


이번엔 누구냐.


보통의 도적과는 다르게 꽤나 때깔 좋은 장비를 차려입은 세 캐릭터는 좋은 장비를 가졌음에도 도적 같은 티가 났다.


그 이유는 머리 위에 뜬 캐릭터의 붉은색 닉네임 때문이었다.


이름이 빨간색, 카오틱 성향이 극에 달했다는 뜻이었다.


PK를 너무 많이 저지르면 나쁜 성향인 카오 성향이 치솟는데 이 카오 상태에 도달하면 방어력 디버프와 포션 회복율 디버프, 그리고 카오 상태에서 죽으면 무조건 장비 하나를 떨어뜨리는 디버프가 걸렸다.


‘플레이어의 캐릭터 하나를 발견하니 그 뒤로는 줄줄이 소세지네. 이번엔 셋이야? 게다가 PK쪽으로 유명했던 캐릭터 같네. 카오가 저리 올라가 있는 걸 보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나타난 플레이어 이름표는,


[답하면안죽임] Lv.7, [템주면안죽임] Lv.5, [난걍죽임ㅋㅋ] Lv.5


막피. 막무가네 PK의 줄임말인 막피는 이유 없이 아무 캐릭이나 살해하는 걸 말했다.


막피는 더 벨룸에서 아주 흔한 일이었다. 캐릭터와 캐릭터가 서로를 죽일 수 있는 시스템이 분명히 존재했고 그것으로 광고하기까지 했다.


‘무한한 자유도! 분쟁은 칼로, 갈등은 피로 풀어내라! 죽을 수도, 죽일 수도 있다. 권력과 더 벨룸. 지금 바로 통쾌한 RPG를 즐기세요.’


대개 재미로 다른 캐릭터를 죽이고, 나중에는 죽이면 떨어지는 템을 먹으려고, 그런 사람이 아니더라도 사냥을 방해해서 죽이고, 적대 혈원이라 죽였다.

그렇게 죽고 죽이다 보면 상대 캐릭터가 마음에 안 들어서 죽이기도 했다.


무분별한 PK를 하면 카오 성향이 올라 디버프가 있는데도 사람들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카오 성향을 낮추는 방법도 많을뿐더러 디퍼브 자체가 견딜만한 수준이었기 때문이었다.


더 벨룸을 PK겜이라고 부르는 것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서버를 지배하는 악명 높은 몇 라인은 저들의 입맛에 맞는 처형단 혹은 막피단을 꾸리곤 했다.


그런 막피단 중 가장 유명한 사례는 오블론 서버의 라인 ‘싸울아비 혈맹’, 통칭 싸울혈의 ‘다크싸울아비’라는 막피단이었다.


그들은 서버 내의 반항 세력을 죽이기 위해서, 라인의 통제를 따르지 않는 유저들을 배제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조직이었는데 나중에는 싸울혈이 아닌 모든 인원을 죽여대는 막피단으로 악명 높았다.


그들의 막피 방식은 매우 장난스러웠다.


3인 1조로 움직이는 그들은 플레이어를 만나면 괴악한 질문을 했다. 대개는 아재개그, 혹은 넌센스 퀴즈를 내서 상대가 곤란해하는 걸 즐겼다.


‘늘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스님은?’

‘그게 뭔데요.’

‘탐색중. 틀렸으니 죽어야지?’


쓍쓍! 끄악!


이런 기괴한 처형식은 그들의 지휘자라고 할 수 있는 3명의 유저로부터 유래되었다.


[답하면안죽임] Lv.7, [템주면안죽임] Lv.5, [난걍죽임ㅋㅋ] Lv.5


바로 이 더 벨룸1부터 게임을 해온 오래된 악질막피유저들이었다.


이들은 오블론 서버에서 ‘죽임 트리오’ 혹은 ‘죽임 삼형제’


‘더 벨룸1의 유명인을 찾는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게 기억나. 실제로 저 세 명은 형제였지 아마? 가장 충격적인 건, 저 삼형제가 게임할 당시 가장 나이 많은 분의 나이가 60대였단 사실이지.’


기사가 나가고 삼형제는 첫째의 노익장으로 유명해졌다.


셋은 진짜 형제는 아니고 피씨방에서 만나 의기투합해 함께 게임을 하던 사이라는 것도, 막내와 첫째는 열 살 차이가 난다는 것도 밝혀졌다.


더 벨룸은 나이에 구애받는 게임이 아니었다. 오히려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사람들을 타겟으로 만든 게임이었다.


하여간 그들의 유명세는 바로 지금, 동훈의 앞에 사람으로 현현했다.


동훈과 반다르가 다가오자 세 도적은 눈을 빛내며 재미난 장난감이 도착한 표정을 짓고는 손짓으로 동훈과 반다르를 멈춰 세웠다.


둘째 [템주면안죽임]이 양팔을 펼치고 허리춤의 칼을 은근히 드러내며 음침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멈춰선 동훈과 반다르를 향해 말했다.


“형제들,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우리 얘기 좀 들어보지?”


“객지에서 만난 이들끼리 나눌 얘기가 뭐 있겠소. 우리는 갈 길이 바쁘니 실례하겠소.”


반다르가 그들에게 정중하게 말하며 길을 지나가려 했다.


그러자 막내 [난걍죽임ㅋㅋ]이 손가락을 까딱이며 움직이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는 듯 위협적으로 을러댔다.


“잠깐이면 되니 우리 말 좀 들으라니까. 그렇게 바쁘면 신의 품에 안기는 것도 바쁘게 보내주는 수가 있어.”


그들은 마치 연극처럼 한 명씩 말을 했다.

둘째가 포문을 열 듯 희생양들을 멈춰 세우고 셋째가 위협하며 희생양을 압박하고 첫째가 여유롭게 넌센스 퀴즈를 찔러넣는다.

셋은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듯 손발이 척척 맞았다.


‘현실 세상에서도 몇 년이나 함께 했다고 했으니 여기서도 합이 찰떡인 건가.’


마지막으로는 첫째인 [답하면안죽임]이 어슬렁거리며 앞으로 나와 준비한 넌센스 퀴즈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동훈이 기대하던 방향과는 조금 달랐지만.


“길 가는 우리 나그네들 보오. 자네들은 혹시 아는가? 뚱뚱한 그레디가 다섯 성을 집어먹고는 크게 트림했다네. 그걸 본 말라깽이 그라우디가 후다닥 달려가 그 냄새를 맡고는 뭐라고 했을까? 그라우디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겠는가?”


아몬드가 죽으면? 이런 식의 문제를 낼 줄 알았는데 퍽 이상한 문제를 낸다. 이건 현실 패치인 듯싶었다.

중세 판타지 속 인물이 옛날 말투로 묻는 말이 ‘오리가 얼면?’ 이런 말이면 얼마나 깨겠냔 말이야.


동훈은 그렇게 생각하며 저들의 이질적인 말투에 대해 생각했다.


젊은 얼굴에 그렇지 못한 말투. 꼭 반다르와 동년배가 말하는 것처럼 늙수그레한 어조를 구사한다. 정말 젊은 얼굴 뒤의 속엣것은 60대쯤 되는 것처럼.


하지만 동훈은 저들이 자신처럼 현실 세상과 연결된 사람이 아니란 걸 안다.


동훈은 두 번째로 플레이어의 캐릭터를 만나니 무언가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그들의 존재 이유, 현실 서버에 그들의 캐릭터가 피와 살을 가지고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서.


‘어쩌면 플레이어 이름표를 붙이고 그들의 캐릭터가 더 벨룸 세상에 등장하는 건 그들의 이름이 여기 남았기 때문일지도.’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과거 게임 속 유명세를 누렸던 이들의 이름이 더 벨룸 세상에 사람의 몸으로 현현하는 건, 게임 속 이야기가 현실로 빚어지며 따라 들어온 별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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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43 너무짧아요
    작성일
    23.08.09 17:52
    No. 1

    주인공 생각, 행동이 이상하지는 않을만큼 그럴듯한데 공감은 안 되네요.

    현실에서도 리니지 하는 사람들은 존재하지만, 그 사람들이 느끼는 리니지의 재미는 보편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잖아요.

    공감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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