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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게임 속 나혼자 플레이어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이찬솔
작품등록일 :
2022.09.15 01:46
최근연재일 :
2024.04.20 20:15
연재수 :
122 회
조회수 :
53,836
추천수 :
1,137
글자수 :
928,341

작성
22.09.21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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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글자
19쪽

좆소 기업에 어서 오세요

DUMMY

동훈의 핸드폰에는 하나의 이름이 떠있었다. 메시지를 보낸 사람이었다.


박충식 부장님.


-‘손 대리, 오늘 출근하면 저번에 말했던 거래처 케어 좀 해줘.’


“에라이, 씨팔.”


동훈은 육성으로 욕이 나오는 걸 자각하지도 못했다. 메시지를 보니 저절로 나오는 걸 어떡해.


박 부장.

단연 사장 빽으로 들어온 제1인사라고 할 수 있는 이 인물은 회사 내에서 정말 유명한 베짱이였다.


일 안 하고 운동만 하는, 전형적인 헬창. 근데 또 많이 먹어서 벌크업 보단 살크업된 근육돼지 체형의 못난이.동네에서 굴러먹던 양아치 같은 본성을 버리지 못하고 회사에서는 큰소리만 쳐대는 인물이었다.


듣기로는 사장의 조카라고 하는데 사장의 누나, 그러니까 박 부장의 어머니가 애 사람 좀 만들어 달라고 사장에게 떠넘겨서 제 회사에 멀끔한 명함 파주게 되었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그도 그럴 것이 박 부장이 저를 따르는 부하직원들에게 떠벌리는 말들을 주워 담아 보면 동네에서 알아주는 주먹이었다느니 학창시절 자신에게 상납하는 주먹들이 있었다느니 하는 한심한 이야기들뿐이었다.


하여간 주먹 얘기를 좋아해서 그런지 그는 운동에도 진심이었는데, 자기가 3대 500을 친다면서 언*아머 쫄티를 입고 다녔다.

한창 그게 유행할 때 자신이 그 메이커의 수호자라며 다른 사람들이 못 입게 한 것은 유명한 일화였다.


‘나잇값 못하는 멍청한 놈. 커뮤니티발 농담과 현실을 구분 못 할 만큼 미련하지.’


좆소가 이렇다. 별의별 사람이 다 모인다.


“으으으! 출근하기 싫어어억!”


동훈은 다시 한번 출근하기 싫은 기운을 뿜어내며 포효했다.


이전의 포효가 자유를 향한 호기를 듬뿍 담은 포효였다면 이번에는 절절하고 끈덕한 생활내가 묻어나는 포효였다.


포효를 내지르며 기지개를 켠 동훈은 침대에서 좀처럼 일어날 수가 없었다.


동훈은 팔을 마구 휘젓다가 머리맡 선반에 있는 플라스틱 지압볼을 떨어뜨렸다. 오래전 손아귀 힘을 기르겠다고 악력기를 샀더니 딸려온 사은품이었다.


지압이 되라고 뾰족뾰족한 원추형 가시가 가득 달린 플라스틱 지압볼은 동훈의 손 안에서 굴렀다.


동훈은 출근 스트레스를 풀려고 지압볼을 꽉 쥐었다.


콰드득!


플라스틱 지압볼은 그대로 으깨져서 플라스틱 파편으로 변해버렸고 안에 든 돌덩이도 반으로 쪼개져 있었다.


지압볼은 사람이 꾹꾹 쥐라고 만들어진 거라 꽉 쥔다고 부서지는 물건이 아니었다.


하지만 허무하게도 동훈의 아귀힘만으로, 그것도 쎄게 힘줬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도 부서져 버린 것이다.


동훈은 더 벨룸 속 세상에 떨어졌을 때 자신의 몸에 흘렀던 활기를 기억했다.


그땐 단지 공기 좋은 자연이라 뻐근한 몸이 풀렸다고만 생각했는데 사실 그 활기는 동훈의 몸에 흐르는 힘이었다.

수치화하기 어려웠지만 이는 동훈이 가진 힘 10 스텟에 해당하는 힘이었다.


동훈은 몰랐겠지만 10 스텟의 힘 스텟은 운동선수 수준의 힘이었다.


“힘이 쎄진 건가?”


동훈은 자신의 손아귀에서 부서진 플라스틱 지압볼의 파편을 후두둑 떨어뜨렸다.


집안 물건 몇 가지를 더 부숴본 동훈은 자신의 힘이 인지를 초월할 정도는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몸은 그대로인데 힘이 강해진 것, 이건 분명 과학 이상의 기이한 현상이었다.


‘기왕이면 몸도 좀 좋아지지 몸은 그대로네.’


불룩 나온 술배, 앙상한 팔다리에는 아까 동훈이 냈던 힘이 어디서 나온 건지 알아볼 수 없게 만들었다.


그래도 동훈은 힘이 쎄진 것이 대단히 신기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또한 이 힘이 더 벨룸에서 온 것이란 것도.


힘도 쎄지고 통찰이라는 신기한 힘도 얻은 더 벨룸은 파면 팔수록 동훈에게 이득만 되는 세계였다.

더 벨룸에서의 성장이 현실 세상의 동훈도 성장시킨다는 것을 확인한 동훈은 결심을 굳혔다.


“그래. 돈 벌어야지!”


돈을 벌어서 더 벨룸에 투자하고 자신은 더 강해진다!


더 벨룸의 세상을 정복하고 현실에서도 달라진 삶을 산다!


그러기 위해서는 돈이 필수였다.


“여기서나 저기서나 돈이 필요하니. 주식으로 자동사냥을 돌리고 난 또 일하러 가야겠다.”


한껏 밍기적댄 동훈을 기다린 것은 7시 50분. 지각의 시간이었다.


벌어야겠다고 일어났건만 벌써 써야 할 구석이 생겼네.


“아, 늦었다. 젠장. 택시 타야겠네. 돈 아깝게.”


택시를 부른 동훈은 곧장 회사로 향했다.


***


낡은 빌딩 3층, 문앞에 ‘큐메디’라는 상호명이 붙어있는 비좁은 사무실로 들어갔다.


오래된 건물 특유의 퀴퀴한 냄새가 동훈을 반겼다.


좁아터져 다닥다닥 붙어 파티션으로 겨우 공간을 구분해 놓은 답답한 사무실에는 대여섯 명의 사원이 업무를 보고 있었다.

좀비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눈치 보며 월급 루팡하는, 평범한 좆소의 직장인들이었다.


동훈 또한 들어가 그들과 합류했다. 대충 주변을 정리하고 앞에 놓인 컴퓨터를 켜 업무 준비를 마쳤다.


동훈이 들어오자 나머지 자리들도 속속들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여, 좋은 아침!”


느지막이 출근한 부장급 인사, 박 부장은 힘차게 인사를 하며 들어왔다. 그는 가방도 없이 몸만 출근했다.


사원 대부분은 그의 인사를 이제부터 시비를 걸고 다니겠다는 선전포고로 들었다. 모두 고개를 더욱 푹 숙이며 제 할 일에 빠져들었다.


미로처럼 엉킨 파티션 사이에 낑긴 것처럼 보이는 덩치, 박 부장이 미꾸라지처럼 들어와 쏘다니기 시작했다.


그는 마치 사무실이 제집인 양 파티션을 넘어 업무공간에 기어이 얼굴을 들이밀고는 사람들을 괴롭혔다.


‘보면 사람 괴롭히러 출근하는 것 같다니까? 하는 일도 없으면서 출근해서는.’


그런 박 부장을 보며 동훈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저런 의미 없는 짓만 안 해도 업무 효율이 배는 오를 텐데.


박 부장은 괜한 오지랖을 부리며 여기저기에 쓴소리를 해댔다. 대부분은 쓸데없는 소리였으며 사람 귀만 아프게 하는 잔소리였다.


“이거 봐. 책상 꼴 좀 봐라. 정리 안 해? 일하기 전에 정리 좀 하고 살아. 응? 정리해.”


여기저기 움직이며 떽떽거리던 박 부장이 무언가를 발견하고 그곳으로 빠르게 다가갔다.


그가 다가가고 있는 목표는 탕비실에서 나오고 있는 한 여인이었다.


양손에 커피가 담긴 흰 종이컵 두 개를 든 여인은 길거리에서 한 번쯤 돌아볼 법한 미모의 소유자였다.


그녀는 회색빛 사무실에서 유일하게 색을 가진 사람처럼 보였다.

녹색의 셔츠에 갈색 치마를 입은 그녀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박 부장을 발견하고는 무덤덤하게 인사하고는 지나쳐 가려 했다.


박 부장은 그녀의 앞을 가로막으며 느끼한 미소를 지었다.


“우 주임! 커피 내꺼까지 탄 거야? 어, 고마워.”


그녀는 단호하게 고개를 젓고는 박 부장을 스윽 지나쳐 그의 옆으로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단 한 마디를 남길 뿐이었다.


“아뇨, 부장님. 이거 부장님 꺼 아니에요. 드릴 분이 있어서. 커피 필요하시면 타서 드세요.”


우락부락한 박 부장 앞에서 당돌하게 제 할 말 다 하는 사원, 우지연 주임이었다.


우지연 주임은 대체 이 좆소에 왜 있는지 모를 인재상이었다.


듣자 하니 서울 유수의 대학 출신에 유학까지 다녀온 경험이 있는 데다가 외모도 ‘면접 프리패스상’이라 불리는 단정하고 단아한 미모의 소유자였다.


“손 대리님, 탕비실에서 나오실 때 문을 닫으셔야죠.”


지금은 그저 옆에서 앙칼지게 구는 동훈의 후임에 불과하지만.


이 좆소에 탕비실이라고는 창고로 쓰는 반 평 남짓의 작은 방 하나뿐이었다.

사장이 생긴 것과 다르게 극도로 깔끔을 떨어 개인 책상에 휴지통이 있는 것도 못 봐줄 정도였으니 모든 사원은 쓰레기를 버리려면 탕비실 아니면 화장실에 가야 했다.


일하다 생기는 쓰레기라도 버릴라치면 저 회색의 철제문을 하루에도 수십번을 여닫아야 했다.


그의 어머니 말마따나 꼬리가 긴 동훈은 항상 문 닫는 걸 잊어버리곤 했다.


방금도 업무 준비를 하다 탕비실에 잠깐 들렀는데 문을 닫는 걸 잊어버리고 말았다.


“아, 깜빡했네요. 고마워요, 대신 닫아줘서.”


동훈의 말에 우 주임은 단정한 외모에 어울리는 딱딱한 말투로 대답했다.


“천만에요. 커피 드실래요? 대리님 드리려고 탄 건 아닌데, 드셔도 돼요.”


우 주임은 종이컵 하나를 내밀었다. 종이컵에는 짙은 갈색의 커피가 가득 들어있었다.


동훈은 그 커피가 꼭 독약처럼 보였다.


밤에 잠을 자지 못한 동훈이 회사에서 더 버티기 위해서는 카페인의 도움이 필수였지만 카페인에 민감한 동훈은 분명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순간 오늘의 밤도 무사히 넘기지 못할 터였다.


“아뇨, 밤에 잠을 못 잘 것 같아서. 어제 밤을 새워서 오늘은 자야 하거든요.”


동훈의 거절에 우 주임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그럼 제가 둘 다 마셔요? 대리님 안 드실 거면?”


몇 번이나 이랬더라? 우 주임이 커피를 권하고 동훈은 거절하고. 우 주임에게도, 동훈에게도 익숙한 하루의 일과가 되어버린 권유와 거절이었다.


우 주임은 고지식한 면이 있었다.

그녀가 동훈의 부사수로 입사한 해는 동훈이 입사 이래 가장 열심히 일하던 때. 그때 들어온 신입 우지연 사원을 동훈은 성심성의껏 대했다.


그때 받은 게 고마웠던 건지 우 주임은 주임이 된 지금까지 매일같이 커피를 가져왔다. 동훈이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 것도 모른 채.


눈치 없기로는 동훈도 마찬가지라 우 주임이 착해서 자신에게 그냥 커피를 타오는 줄 알았다.


동훈은 두 잔 다 자기가 마시겠다는 우 주임에게 그러라고 했다.


“그러세요.”


동훈의 말에 그녀는 종이컵 두 개를 연달아 들이키고는 태연하게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뜨겁지도 않나? 방금 탄 커피를 후루룩 마셔버린 우 주임을 동훈은 황당하게 쳐다봤다.


이해를 할 수가 없다.


대단한 인재인 우 주임이 이곳에 와서 저렇게 변해버린 건지, 원래 저런 사람이라 이곳에 온 건지 모르겠다.


역시 좆소는 마굴이야.


동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 주임은 쓰레기통을 찾기 위해 탕비실로 들어가 버렸다.


우 주임이 사라지고 진정한 좆소의 보스가 동훈 앞에 등장했다.


박 부장이었다.


“손 대리, 내 문자 봤지? 거래처 케어. 언제 갈 거야? 그거 급해.”


박 부장이 파티션 위로 팔꿈치를 올리곤 불퉁하게 말했다. 삐죽한 입이 그가 심통 났음을 알리고 있었다.


동훈은 속으로 욕을 하며 대답했다.


“내일 가겠습니다.”


우 주임에게 거절당하고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박 부장은 짜증이 치솟은 상태였다.


게다가 우 주임이 커피를 가져간 상대가 평소에 별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손동훈 대리라니.


치솟는 짜증을 풀 곳이 필요했다. 그곳은 당연히 손 대리였다.


박 부장은 인상을 구기며 동훈의 파티션에 상체를 더 밀어 넣었다. 안 그래도 파티션에 끼이듯 큰 덩치를 안쪽으로 밀어 넣으니 급격하게 좁아지는 기분이었다.


박 부장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윽박질렀다. 거의 명령조였다.


“뭐? 내일? 급하다니까? 승용 내과 아주 난리야. 거기 원장 성질 알잖아. 아까도 오라고 전화를 세 통이나 하더라. 그러지 말고 오늘 좀 가봐.”


그렇게나 급하면 진작 좀 가보지. 누구한테 미룰까 각 보면서 질질 끄니까 사달이 나는 거지.


동훈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대답했다. 그는 전날 휴가를 다녀온 터라 일이 많이 밀려있었다.


“오늘은 처리해야 할 일이 있는데요.”


“아이, 난 모르겠고. 다녀오라면 다녀오지 말이 많아? 그것도 일이고 이것도 일이면 부장인 내가 시킨 것부터 빨리 처리해야 하는 거 아니야?”


박 부장 특유의 땡깡은 정말 참아주기 어려웠다. 그의 땡깡은 논리도 없고 맥락도 없다.


그냥 해줘. 해줘! 그뿐이다.


근데 직급으로 밀어붙이면 별수 있나. 까라면 까야지.


“예, 알겠습니다.”


“그래. 상관이 얘기하면 이러저러 해서 안 됩니다, 하지 말고 예! 알겠습니다! 하는 거잖아. 어차피 할 거면서 말이 많아.”


그러게나 말입니다. 동훈은 대화라는 행위는 사람 말을 알아듣는 ‘사람’과 해야 한다는 진리를 새삼 다시 깨달았다. 듣기 싫고 자기 할 말만 하겠다는 사람이랑은 대화하는 게 아니었다.


‘하, 오늘 일은 다시 들어와서 해야 하나? 이렇게까지 일해야 해? 몰라. 그냥 내일 하지 뭐.’


동훈은 머리를 벅벅 긁으며 될 대로 되겠지, 하는 배짱을 부렸다.


예전이라면 전혀 이러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외근을 다녀와서 야근까지 해가며 일을 마쳤겠지.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꼭 여기가 아니어도 된다는 마음가짐이 있으니 동훈은 ‘큐메디’에 죽어라 매달리지 않았다.


외근에 연이은 야근까지 감수하며 건강까지 바치는 일을 내몰려 하는 게 아니라 선택할 수 있었다.


의자에 걸쳐둔 자켓을 집으며 동훈은 외근 보고를 때리러 파티션을 넘었다.


“과장님, 저 외근 좀 다녀오겠습니다.”

“뭐? 외근? 네가 무슨 외근이야? 어제 휴가 써서 일도 밀렸을 텐데.”


보고를 받은 동훈의 사수, 이 과장이 짜증 섞인 대꾸를 했다.


영업에 경리, 인사일까지 다 조금씩 해야 하는 좆소의 특성상 이 과장은 여러 가지 일을 맡고 있었다.


그의 신경은 언제나 날카로웠고 툭하면 신경질을 부렸다.


지금도 외근을 나가겠다는 동훈을 곱게 보지 않았다.


“부장님이 승용 내과 다녀오라고 하셔서요.”


그런 그 또한 한낱 과장에 불과했다. 부장이라는 말이 나오자 수그러들었다. 솟아오른 눈매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승용? 거기가 또 골치인가 보네. 그래라. 퇴근 전에 끝나면 회사로 들어와. 농땡이 피울 생각하지 말고. 승용에 전화해 볼 거야.”


저렇게 말해도 이 과장이 승용 내과에 전화해 보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승용 내과는 큐메디에서 알아주는 진상이었으니까. 누가 진상에게 기꺼이 전화해서 우리 직원 몇 시에 갔냐고 물어보겠어?


외근 보고는 어렵지 않았다. 부장이 시켰다는데 어쩌겠어. 딴지를 걸 사람도 없었다.


박 부장 딸랑이 이 과장은 그렇게 순순히 동훈을 보내줬다.


워낙 작은 회사여서 체계가 허술한 ‘큐메디’인지라 이 과장에게만 넌지시 말해놓고 외근을 나가도 문제가 없었다.


자리를 정리하고 일을 대충 마무리 지어 놓기 위해 자리에서 잠시 뒤적거린 뒤 짐을 챙겼다.


회사에서 나온 동훈은 박 부장이 떠넘긴 승용 내과로 출발했다.


“택시 또 경비 처리 안 해줄 텐데.”


동훈은 택시를 탈지 고민을 하다가 지하철로 향했다.


북적대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동훈은 생각했다.


‘돈 아껴야지. 택시비로 만원은 나올 텐데 그러면 다이아가 몇 개야? 출근할 때도 택시 탔잖아.’


진정한 골수 게이머라면 게임에 현질하는 돈은 별로 안 아까워도 택시비는 아까운 법이었다.


***


연식이 오래된 주상복합에 자리한 승용 내과는 목 좋은 자리에 위치해있건만 자리에 비해 손님은 많지 않은 편이었다.


아마 맘카페나 동네 커뮤니티에서 오진을 몇 번이나 했다는 둥 진료를 잘 못 본다는 둥 좋지 않은 리뷰가 쌓이고 쌓여 이 지경에 이르렀으리라.


접수처로 가 간호사에게 큐메디에서 온 손동훈 대리라는 것을 밝히자 그녀는 타성에 젖은 동작으로 수화기를 들고 말했다.


“원장님, 큐메디에서 오셨대요.”

“빨리 들어오라고 그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온 곳은 원장실. 주사실 옆, 가장 바깥쪽에 있는 방이었다.


동훈은 그곳에 들어가 대리가 할 수 있는, 대리가 해야 하는 일을 했다.


컴플레인을 듣고, 그에 공감하고, 회사에 보고하겠다고 말하는 것. 거기에 덧붙여 죄송하다는 말과 허리 숙임을 곁들이면 그게 다였다.


막말로 부장인 박 부장이 와도 즉석에서 중고품을 신품으로 만들어내는 용빼는 재주가 없는 한 동훈처럼 사과하는 게 다일 터였다.


중고품 판매를 대리하는 큐메디는 기계를 수리하는 회사도 아니고 신품을 판매하는 회사도 아니었다.


중개회사인 만큼 물품을 고쳐달라, 새것으로 교체해 달라는 요구에 근본적으로 해결해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애초에 약관상 쓰여 있는 체험 기간에도 문제없이 썼고 그 이후에도 몇 년을 잘 썼으면 기계가 오래돼서 망가진 수준 아냐?’


세상은 넓고 진상은 많다. 많은 진상의 종류는 다 파악하지도 못할 만큼 다양했다. 만 명의 진상이 있다면 만 개의 진상짓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마지막으로 수리 업체에 문의해 사후 관리를 약속한 뒤 승용 내과를 나오는 동훈의 얼굴에는 피곤이 묻어있었다.


벌써 몇 시지? 붙잡고 놓아주질 않으니 벌써 점심시간도 놓쳤다.


핸드폰 화면에 떠오른 시간은 벌써 오후 4시.


승용 내과에 도착한 게 10시 반이었으니 거의 5시간 반을 붙잡혀 있던 셈.


예순이 다 된 승용 내과 원장은 입심도 좋아서 5시간 반을 내리 떠들어댔다.


“돈 벌기 힘들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 고생을 해야 하나.”


택시에 탄 동훈은 시트에 허리를 기대며 죽 미끄러졌다.


양손으로 눈을 가린 그는 노곤한 휴식을 취했다.


“돈 벌기 힘들죠? 세상이 다 그렇더라고. 돈 벌려면 땀 흘려 일해야 해. 사람이 그래 일 안 하면 먹고 살지를 못한다고. 다 젊을 때 땀 흘려 봐야 나중에 고생을 안 하는 거야. 요즘 젊은이들은 그런 걸 몰라.”


동훈의 한탄을 들었는지 늙수그레한 택시 기사가 훈계조로 장광설을 펼쳐놓기 시작할 때.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지이이잉! 지이이이잉!


MTS 앱에서 키워드로 등록해놓은 ‘우명바이오’에 관한 뉴스가 떴다는 뜻이었다.


‘뭐지? 무슨 뉴스라도 떴나? 좋은 뉴스?’


동훈은 상태바에 뜬 알람을 눌렀다. 그러자 온갖 뉴스들이 오늘 날짜가 박힌 채로 쏟아져나왔다.


‘우명바이오, 당뇨병 치료제 임상 3상 시작.’

‘우명바이오의 당뇨병 치료제, 미국 FDA 심사 목전에 둬.’

‘우명바이오, 당뇨 정복하나?’


온통 호재뿐인 뉴스. 주알못인 동훈이 봐도 며칠은 상한가를 찍고 남을 호재였다.


자세히 찾아보니 당뇨병의 원인을 치료하는 게 아니라 신체 말단 괴사를 치료하는 약을 개발 중이라는 것인데 그렇다고 해도 이건 상한가를 갈만한 장작이었다.


게다가 우명바이오 사측에서도 장작을 더 넣고 싶은 건지 소식을 여기저기 가져다 뿌리는 게 기민했다.


핸드폰으로 주식창에 들어가니 점심 전까지만 해도 꿈쩍 않던 주가가 폭등하여 30퍼센트 상한가를 찍었다. 순식간에 주식 계좌의 평가손익이 벌써 플러스로 40퍼센트였다.


총손익 +588,000원


‘200 넣은지 며칠이나 됐다고 60만원? 실화냐? 수익률 40퍼?’


동훈은 자신의 잔고를 보며 입을 틀어막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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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손동훈의 혈맹 22.10.10 628 13 12쪽
23 PK유저의 수수께끼 22.10.09 657 1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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