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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게임 속 나혼자 플레이어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이찬솔
작품등록일 :
2022.09.15 01:46
최근연재일 :
2024.04.20 20:15
연재수 :
1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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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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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8,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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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14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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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각 잡고 뽑기

DUMMY

동훈은 ‘통찰’ 스킬이 단지 주가의 추이를 알려준다고만 생각하지 않았다.

분명 어떤 쓰임이 있을 것이고 그건 주가의 추이 추산에만 머물러 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사람 머리 옆에 더 벨룸에서 키웠던 캐릭터와 그 레벨이 나오는 걸 줄은 몰랐지만.


[난걍죽임ㅋㅋ] lv.45


유승용 원장 머리 옆에 선명하게 떠있는 닉네임과 레벨.


그건 분명하게도 더 벨룸에서 쓰이는 양식이었다.


큐메디 희대의 진상이자 이 동네 가장 오래된 병원의 원장인 유승용 원장이 게임할 때는 막피러? 그것도 ‘죽임 삼형제’의 막내?


어버버한 상태로 동훈이 서있자 유 원장은 자기 할 말을 다다다다 쏟아내기 시작했다.


“뭘 그렇게 뚫어져라 보는 거야? 아아, 됐고. 저번에 내가 몇 번이나 말했어? 이거 이상하다고. 오늘도 이래. 힘아리가 없어, 힘아리가.”


유 원장은 ‘큐메디’의 중개로 구매한 비강용 중고 의료기기에 달린 문어발처럼 수많은 부속 기구 중 흡입기 하나를 매만지며 동훈 앞으로 들이밀었다.


말랑말랑한 재질로 만들어진 흡입기에는 많은 사용감이 엿보였다. 닦고 관리한 티는 났지만 오래된 느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전 주인이 1년 넘게 썼고 지금 유 원장이 3년쯤 쓰고 있으니. 매일 같이 환자를 보는 업장에서 부속 기구 교체 없이 오래도 썼지.


유 원장의 말마따나 흡입기는 힘없이 흐느적거렸다.


“오, 그렇네요.”


너무 당황한 나머지 동훈은 자기도 모르게 동의하고 말았다. 영업 마인드로 대답해야 하는 것조차 잊고.


지금 동훈의 관심사는 의료기구 따위가 아니라 유 원장 옆에 떠있는 바로 저, 더 벨룸 캐릭터 정보였다.


“뭐가 ‘오, 그렇네요’야! 지금 이거 안 보이냐고! 어떡할 거야! 이거 때문에 내가 진료를 못 봐. 이게 빨아당겨야 진료를 봐줄 거 아냐. 이거 봐, 이거 봐. 눌러도 안 빨아당기잖아.”


위이잉, 위이이이잉


기계는 돌아가는데 맥없이 쳐진 흡입기가 제 역할을 못 했다.

흐느적거리는 그것을 이리저리 흔들며 유 원장은 열과 성을 다해 화를 냈다.


유 원장이 흥분해서 머리를 흔들 때마다 그 옆에 있는 닉네임과 레벨 역시 따라 흔들렸다.


“원장님, 혹시 더 벨룸 하셨어요?”


동훈은 더는 참지 못하고 물어버리고 말았다.


“이게, 이게. 응? 더 벨룸?”


동훈의 갑작스러운 질문은 유승용 원장의 허를 찌른 듯했다. 그는 흠칫 놀라며 화를 내다 말고 되물었다.


쐐기를 박듯 동훈은 재차 물었다.


“예, 더 벨룸이요. 하셨죠, 게임?”


재차 묻는 동훈의 더 벨룸 소리에 유 원장은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인상을 구겼다. 그러고는 버럭 성을 냈다.


“게임은 무슨 게임이야!”


이번엔 동훈이 놀라 물었다.


“하신 적 없으세요?”


설마 통찰이 틀린 건가? 한 번도 틀린 적 없던 통찰이?


“더 벨룸이 도박이지 게임이야? 옛날에야 게임이었지 지금은 도박이지, 도박!”


유 원장은 신경질적으로 대꾸했다.


그럼 그렇지. 통찰이 틀릴 리 없지.


유 원장이 성을 낸 건 게임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의 게임, 더 벨룸에 실망했기 때문이었다.


유 원장 같은 사람은 많았다. 지금의 더 벨룸에 실망해버린 사람들.


동훈 역시 그랬다. 15년을 한 건 정 때문에 못 끊었던 거지.


유 원장이 [난걍죽임ㅋㅋ]의 본주였다면 그는 더 벨룸 1 때의 유저. 1 유저가 더 완고한 원리주의자라는 걸 고려하면 그때의 추억을 자극하면 이야기 꺼내기가 쉬워질 것이다.


“그렇죠. 요즘에야 돈만 밝히는 돼지들이지만 옛날에, 더 벨룸 1 오픈했을 때만 해도 좋았잖아요. 2 때도 괜찮았고요.”


동훈이 넌지시 2까지는 괜찮았지 않냐, 끼워 넣으려 했지만 어림도 없지. 유 원장이 툴툴거렸다.


“2가 뭐가 괜찮아? 더 벨룸은 1 때 끝났지.”


역시. 아주 완고한 더 벨룸 1 원리주의자셨구만.


가끔 있었다. 더 벨룸 1 때만이 낭만 있고 순수했던 때라고 여기는 원리주의자가. 그런 사람은 대개 더 벨룸 1을 열심히 플레이했던 유저들이었다.


“물론 더 벨룸 1이 최고였죠. 저도 동의합니다.”


누구도 더 벨룸 1의 영광을 부정하지 않는다. 동훈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때 하지는 않았지만.


동훈의 마음속에서 최고의 게임은 더 벨룸 2였지만 지금은 일하는 중이니까 그 정도 거짓말은 해줄 수 있었다.


“그렇지. 더 벨룸 1은 최고였어. 그 게임 해봤냐고 물었지? 내가 이 병원 열고 바빠도 틈내서 게임하러 피씨방 내려가고 그랬지. 이 밑에 층이 피씨방이었거든.”


지금은 피부과가 들어온 자리였다.

아주 오래전에는 피부과가 아니라 피씨방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유 원장은 밑층에 피씨방이 있던 그때를 추억하며 말을 이었다.


“마음 맞는 형님들하고 같이 게임하고 그랬지. 비란 서버. 맞아, 거기였어. 비란 서버 요즘에도 사람 많나? 아니지. 요즘엔 사람이 많을 리가 없지. 도박판에 사람이 많으면 나라가 잘 돌아가는 꼴인가? 있을 리가 없지.”


요즘도 사람들 꽤 하는데. 피씨판 리마스터 버전도 매출이 상당하고 모바일 버전에서의 스토어 매출도 적지 않고.


더 벨룸 1 당시의 상황보다 인터넷 보급도 보편적이고 게임에 대한 접근성도 높아져서 단순히 유저 수만 놓고 비교하자면 비란 서버에 있는 현재의 인구가 그때 더 벨룸을 하던 전체의 인구보다 많을 수도 있었다.

게다가 지금의 T-aging의 시가총액을 보라. 그때와 비교하면 차원이 다른 회사가 되어있었다.


그러나 더 벨룸 1을 추억하는 유 원장은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동훈은 그 사실을 지적하기보단 공감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땐 재밌었죠. 낭만도 넘쳤고요. 마음 맞는 사람끼리 하면 또 얼마나 재밌어요, 이 게임이?”


낭만.


더 벨룸의 초창기를 그만큼 잘 설명하는 단어가 있을까?


모험과 낭만은 더 벨룸이 출시하면서 내건 슬로건이기도 했으니 그때를 기억하는 유저라면 낭만을 붙잡고 놓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게임에서 사람들 많이 괴롭히고 그랬지. 게임이란 게 착한 놈들만 있다고 재밌는 게 아니니까. 나쁜 놈도 있어야 재밌는 거니까. 뭐, 나도 죽기도 많이 죽었고.”


유 원장은 막피를 했었다는 과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 또한 추억이었으니까.

동훈도 인정하지 않았던가. 그들이 악역을 도맡았기에 재밌는 일도 많았더라고.


“병원 일이 바쁘셨을 텐데 용케도 게임을 하셨네요. 의사 일이란 게 오죽 바쁜가요?”


동훈의 맞장구에 유 원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빴지. 엄청 바빴어. 그땐 간호사도 열 명 넘게 썼었는데. 그때 나랑 가장 오래 같이 일한 간호사가 나 잡으러 피씨방으로 내려오기도 했어. 흐흐. 미쳤지, 미쳤어. 병원 내팽개치고.”


말로는 미쳤다고 하지만 유 원장의 입가에는 미소가 감돌았다.


“그만큼 게임에 진심이셨던 거죠. 저도 그거 한다고 수업도 빠지고 그랬어요. 중고등학생 때.”


그렇게 한참을 더 벨룸으로 이야기한 둘.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원장실에서 마치 게임을 함께 한 친구처럼 이야기를 나눴다. 더 벨룸이라는 공통점은 대화를 이어나가기에 더할 나위 없는 주제였다.

하물며 둘 모두가 일상을 잊을 정도로 좋아했던 게임 아니었던가. 동훈도 그렇고 유 원장도 그렇고 밤을 새가며 더 벨룸을 주제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공통의 취미 얘기는 마음을 풀어내렸다.


대화를 나누면서 유 원장은 과거의 추억에 사로잡혔던 자신을 담담하게 돌아볼 수 있었다. 그의 진상짓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을 테지만 이젠 적잖이 약해진 형태로 드러날 것이다.


유 원장은 비강용 흡입기를 잠시 내려다보며 말했다.


“시간 좀 봐. 내 별소리를 다 했네. 이렇게 친해져도 기계 하자는 안 봐줄 거야. 이건 보니까 그냥 오래돼서 그런 거 같네. 이건 컴플레인 꺼리가 아니야. 오늘은 가 봐. 손 대리, 나중에 술 한잔하자고. 자네하고는 마음이 잘 맞는 것 같어.”


유 원장은 비강용 흡입기를 잠시 내려다보며 말했다.


낡아버린 흡입기, 더는 존재하지 않는 추억. 현실과 과거의 괴리는 언제나 유 원장을 괴롭게 했다.

비단 젊지 않은 육체 때문에 오는 비애만은 아니었다. 손님이 많았던 시절, 손님들이 유 원장의 의술과 그것을 베풂을 인정하던 과거의 영광이 이제는 빛바랬다는 게 가장 컸다.


예전에는 진료도 잘 보고 승용 내과만 다녀가면 싹 나았다는 좋은 후기들이 각종 오진이며 무례하다는 악성 후기들로 바뀐 게 기구 문제라고 여겼는지도 몰랐다.


유 원장은 낡은 흡입기를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속 시원히 이야기할 사람이 필요했는지도.

오랜만에 게임을 같이했던 형님들이 보고 싶었다.


유 원장과의 뜻밖의 환담은 유 원장이 속풀이를 한 것에 이어 동훈의 퀘스트도 클리어했다.


===

퀘스트 완료!

[업적]인연-유스투스 삼형제


보상 : 스킬 ‘과거의 영광’(C), 축복받은 엘릭서

===


스킬 ‘과거의 영광’(C)

패시브 스킬로 상태이상을 1초 유예하는 독특한 효과를 지녔다. 이 또한 인게임에는 존재하지 않던 특별한 스킬이었다.


‘1초 유예라니, 사기인 듯하면서 아닌 것 같은 미묘한 스킬이야. 턴에 걸리면 당한 직후에는 괜찮다가 1초 이따 턴에 걸리는 거 아냐? 게임에서는 베르 탈 시간이 생겨서 엄청 좋은 스킬이지만 현실 서버에서는 잘 모르겠네.’


그나저나 동훈이 만난 것은 막내 유승용 원장뿐이었는데 나머지 형제들은 도매금으로 클리어했다고 처리되다니.


동훈으로서야 좋았다.

유 원장의 형님들을 물어물어 같이 보자고 어떻게 말해야 하나 싶었거든. 유 원장이 막내였으니 지금쯤 그 형님들은 나이 지긋하신 노인이 되어있을 텐데 말이다.



동훈은 기분 좋게 승용 내과를 떠났다.


***


마차 한 대가 펠리페 성의 남문을 지나 외성 안으로 들어왔다. 혈통 좋은 말이 힘찬 투레질을 하며 멈춰섰다.

겉은 질박한 디자인을 한 마차의 바퀴살이 돌아가는 것을 멈췄다. 쇠로 보강된 바퀴의 겉면이 쇳소리를 내며 정지했다.


그 마차에서 내리는 세 사람, 동훈과 반다르와 세마엘.


동훈은 가장 먼저 마차에서 뛰쳐나와 엉덩이를 붙잡았다.


‘어우 씨. 마차에는 쇼바를 돌로 만들어 쓰나 충격흡수를 내 엉덩이가 해야 하네. 다신 마차 타나 봐라.’


말도 못 하고 끙끙거리는 동훈을 향해 웃은 반다르가 괜히 동훈의 허리를 툭 치고 지나갔다. 그것도 못 견디냐는 듯.


아파죽겠는데 저 노친네가! 반다르를 향해 동훈이 눈을 흘겼다.


동훈은 분명히 볼 수 있었다. 반다르 또한 엉치뼈가 아파 약간은 뒤뚱거리며 걷는 것을.


멀쩡한 건 엉덩이에 살이 많고 마차에 익숙한 세마엘 뿐이었다.


풍부한 몸집을 씰룩이면서 다가온 세마엘은 자꾸 내려가는 바지춤을 추켜올리며 마차의 좋은 점을 설파했다.


“마차의 묘미는 바로 이런 것 아니겠습니까? 고상하게 말의 등 위에 올라 승마를 한 것 같죠. 하지만 바짓단에 튀기는 흙탕도, 몸을 적시는 눈비도 걱정할 필요 없이 고상함만을 누릴 수 있는 승마 말입니다.”


동훈은 그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동훈 또한 제주도에서 승마를 해본 바 있었다. 그때도 엉덩이가 조금 아픈 것 같았지만 지금 같은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았다. 이건 그냥 마차가 구려서 충격흡수를 못한 탓이지.


반다르는 세마엘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듯 낮게 욕하고는 그의 말에 반박했다.


“젠장, 세마엘 부회주. 승마는 고상함을 느끼기 위해 하는 게 아닐세. 마차는 말을 타며 느낄 수 있는 것을 하나도 느끼지 못하게 하지. 말과의 교감, 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해방감, 말의 움직임에서 느낄 수 있는 근육의 역동성도 느낄 수 없단 말이네. 마차는 승마의 안 좋은 점만 모아놓은 물건이야.”


반다르의 신랄한 비판에 세마엘은 과장되게 놀라는 시늉을 하며 대답했다.


“반다르 님과 이렇게나 입장이 다르다니요! 이 세마엘, 언제나 반다르 님의 의견을 존중한답니다. 하지만 저는 반다르 님이 이렇게나 마차의 좋은 점을 모르신다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군요. 반다르 님께 마차의 좋은 점을 반드시 알려드려야겠다는 의욕이 솟구칩니다! 저와 함께 마을을 몇 바퀴 돌고 오시는 건 어떨런지요? 제 훌륭한 마차로 말입니다. 끝내주는 산책이 될 겁니다.”


세마엘은 반다르를 향해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었으니 누가 봐도 반다르를 마차에 한 번 더 태우고 말겠다는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저 끔찍한 것을 또 타라고? 반다르는 세마엘과 입씨름하기를 선택했던 과거를 후회했다. 저 능글맞은 인사와 입씨름을 하려 했다니.


“좋은 마차더군. 자네 많이 타게나.”


반다르는 세마엘의 제안에 학을 떼며 꽁무니를 뺐다. 그가 더 빨리 걸으려 하니 엉치뼈의 통증을 억누르지 못하고 조금 뒤뚱거리며 걷게 됐다.


동훈은 그런 반다르의 뒷모습을 보며 통쾌함을 느꼈다. 아까 그것도 못 참느냐고 허리를 치고 가더니!


동훈과 세마엘은 마주 웃음을 터뜨렸다.


한바탕 웃고 나니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펠리페 성은 사실 성이라고 부르기 부끄러운 규모의 도시였다.

목책을 쌓아 만든 외성벽과 돌무더기를 약간 쌓아 저택의 담처럼 지은 내성은 성이라기보단 변방에 이루어진 도시 중심에 큰 저택을 지어 놓은 것에 가까웠다.


변방의 너른 들판 한가운데에 지어진 큰 저택은 멀리서 볼 땐 통나무집에 불과했다. 마천루와 온갖 큰 건물에 익숙해진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더욱 그랬다.


하지만 통나무집도 통나무집 나름. 펠리페 성이라 불리는 저택은 ‘신목’이라 불리는 살아있는 거목을 기둥 삼아 지어진 정교한 건축물이었다. 살아있는 나무를 주위로 벽을 올렸기 때문에 구조가 사각으로 정형화되지 않고 독특한 형태를 이뤘다.


그 모습은 아주 아름답고 신비로웠는데 분위기가 저택을 성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었다. 분명 제대로 된 성을 본 사람이라면 펠리페 저택을 성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곳을 펠리페 ‘성’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곳의 주인이 성에 크게 집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명 펠리페 성주. 위대한 변방의 기사.


‘프로이도 경.’


옆에 용병들이 수군거렸다. 세 용병은 동훈이 지켜본 바, 서로를 동료로 받아들이고 용병단을 창설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 용병단이었다.

상단과 정식으로 계약된 건 아니고 안전을 위해 상단의 뒤를 따르는 보부상에게 개인적으로 고용된 것으로 보이는 용병들은 무장한 농민과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한 무장 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그들은 나이든 용병을 중심으로 젊은 두 용병이 뭉친 형국이었다. 나이든 용병은 아이 [zㅣ존영재z]의 아버지인 중년 용병을 향해 주의를 줬다. 불만을 표하는데 스스럼없는 그를 향해 특별히 한 번 더 당부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이 도시의 주인이 대륙 중앙에 진출을 시도하려던 기사였다는 건 스스로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사실이야. 그를 수식하는 시종들의 장광설에 꼭 들어가는 문구지. ‘발탄 평원을 질주하던 영예왕의 기사,’라는 건 펠리페에 한 번이라도 드나든 적 있는 이라면 기억할 수밖에 없을 걸세.”


그들의 수군거림을 옆에서 듣던 동훈은 혼자 킬킬댔다.

그 지역 사람은 다 아는 문구라면 가히 광고 아니겠나. 인천의 모 간호학원처럼 말이다. 자기자신을 광고하는 지역유지라. 어딘지 현대적이라 웃음이 나왔다.


늙은 용병은 마지막으로 그들이 진짜 주의해야 할 말을 강조했다.


“혹여나 도망자니 패배자라는 소리가 그에게 들어가지 않게 조심하게. 펠리페 마을이라는 말을 해서도 안 돼!”


동훈 역시 펠리페 성주 프로이도 경에 대해 알고 있었다. 펠리페 성에 주둔하는 NPC로 마을 중앙 저택에 가면 항상 볼 수 있는 NPC였다.

자신의 저택에 언제나 왕처럼 앉아 플레이어들에게 시덥잖은 퀘스트나 던져주는 별 볼 일 없는 NPC였으니 별달리 감흥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가 모시던 자에 대해 아는 것이나 그가 즐기는 식습관에 대해 아는 건 큰 도움도 안 되니까.


펠리페 성, 초보자 마을에서 벗어나 만날 수 있는 첫 번째 마을이자 중앙지대로 진입하기 전 거쳐야 하는 2개의 마을 중 하나인 곳이었다.


유저들 사이에서는 펠리페 ‘짜가’ 성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했다.


말마따나 성의 규모가 야지에 있는 큰 마을과 비견할 수준이었고

중요한 부분은 플레이어가 공성전으로 얻을 수 있는 성이 아니란 점이었다.


공성이 벌어지지 않는 성은 플레이어에게 성이라 불릴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 더 벨룸의 유저들은 펠리페 성을 가짜성이라 부르길 주저하지 않았다.


그 부분은 게임 안에 존재하는 NPC들에게도 충분히 느껴지는 부분이었나 보다.


펠리페 마을이라는 말을 금지하는 건 그렇게 부르는 사람이 많았다는 뜻이잖아.


“세마엘 부회주, 여관을 물색해준 걸 고맙게 생각하네. 상단은 이곳에서 사흘을 머물고 떠난다니 내일 떠나는 우리와는 따로 가야겠군.”


“반다르 님과의 동행은 짧았지만 이 세마엘에게는 의미가 깊었습니다. 반다르 님이 언제든 저에게 도움을 청하시면 제가 달려가겠습니다. 반다르 님의 여정에 축복이 있기를!”


그렇게 반다르와 동훈은 세마엘과 헤어졌다.

세마엘은 아쉬움이 뚝뚝 흐르는 눈으로 마지막까지 반다르를 배웅했다.


반다르와 동훈은 세마엘과 헤어진 뒤 짐을 풀기 위해 여관으로 향했다.


세마엘이 수배해줬다는 여관은 꽤 깨끗했다. 이런 중세식 마을에 뭘 바라겠냐마는 동훈의 생각만큼 열악하진 않았다는 뜻이었다.


동훈은 여관에서 목욕재계를 하고 앉아 마음을 가다듬었다.

반다르와 여행 물품을 사기 위해 다시 만나기로 한 시간이 조금 남았기에 동훈은 미뤄놓았던 일을 할 작정이었다.


그건 바로 뽑기. 자세를 바로 하고 제대로 뽑아 보려 했다.


‘그래, 뽑기 제대로 해보자. 저번 뽑기도 190을 쓰긴 했는데 날림으로 한 경향이 없지 않아 있지. 뽑기는 원래 경건한 마음으로 하는 맛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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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보유 캐시

12,165,000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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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다, 적어.


1천2백만원이 넘는 돈이지만 더 벨룸에서 본격적으로 뽑기 좀 해보기에는 터무니없이 적었다. 하물며 물가가 10배 적용되는 현실 서버임에야. 10배 적용하면 120밖에 안 되잖아?


돈 번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배부른 소리를 하는 동훈이었다.


하지만 그의 배부른 소리와 별개로 정말 더 벨룸에서의 백이십은 그리 큰돈이 아니란 것은 사실이었다.


지금이야 그냥 영성이며 장비며 하는 것들을 무차별적으로 뽑으려는, 게임 좀 해보려고 인사치레 차 뽑기를 진행하는 것이기에 백이십이라는 돈으로 시도하는 것이지 나중에 진짜 이벤트들이 열리고 분명한 목적을 지닌 채 뽑기에 임한다면 백이십으로는 시도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못 먹을 떡이라며 손가락 빨면서 구경이나 했겠지.


‘서버에 5개씩 풀리는 포털키 같은 건 5천만원도 우스울 정도니. 10배 적용하면 5억? 부지런히 벌어야겠네.’


일전에 영웅 등급 칼을 뽑았을 때 한 뽑기는 인사치레가 아닌 거냐고 묻는다면 그때도 인사고 지금도 인사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인사는 원래 만날 때마다 하는 거지. 인사하러 가자.”


실제 게임에서는 인사를 만날 때마다 못했지만 그건 인사성이 밝지 않아서라고 해두자. 돈 잘 버는 지금 돈 없던 시절 생각하면 눈물 나니까.


치킹!


돈 빠져나가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동훈의 다이아 보유량은 급격하게 늘어났다.


다이아는 더 벨룸에서 모든 유료 재화의 근간이 되는 재화였다. 다른 특별한 유료 재화를 얻을 때도 다이아를 교환해서 얻었다.


실제 돈으로 직접 결제해야 하는 패키지 아이템도 있었지만 지금, 바로 강해질 수 있는 아이템과 뽑기는 다이아를 통해야 했다.


동훈은 망설임 없었다.


결제, 결제, 결제!


치킹! 치킹! 치킹!


버는 것을 어려워도 쓰는 것은 쉽다.


‘10연차씩 하면 보너스로 1회 뽑기를 주는 거나 다름없으니 반드시 10연차로,’


어느 게임에서나 효율적으로 자원을 소모하는 법은 중요한 부분이었다.

더 벨룸에서는 유료 재화를 구매하는 것이 기본이므로 그것을 어떻게,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하느냐가 많이 중요했다. 그러지 못하면 미련하게 돈을 더 써야 했으니까. 같은 수준으로 강해지는데 더 많은 돈을 쓰고 싶은 사람은 없으니까.


‘무슨 뽑기를 먼저 해야 할까. 역시 장비? 초반에는 장비 만한 게 없으니까. 아니지. 영성도 대박이 뜨면 1개 장착만으로도 확 달라져. 영웅급 영성만 나와도 붙은 능력치가 장난 아니니까. 스킬도 너무 좋지. 통찰만 봐도 그래.’


일생일대의 고민이다. 뭘 먼저 뽑아야 할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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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컬렉션 22.10.18 536 16 20쪽
31 행운(2) 22.10.17 519 16 17쪽
30 행운(1) 22.10.16 529 8 16쪽
» 각 잡고 뽑기 22.10.14 554 15 21쪽
28 퇴사각(2) 22.10.13 551 18 20쪽
27 퇴사각 22.10.12 547 13 14쪽
26 함 뜰까? +1 22.10.11 576 12 17쪽
25 반왕 22.10.10 624 12 20쪽
24 손동훈의 혈맹 22.10.10 629 13 12쪽
23 PK유저의 수수께끼 22.10.09 657 11 12쪽
22 PK 유명인 +1 22.10.08 656 13 17쪽
21 과감하게 가자 쫄지 말고 22.10.06 659 15 16쪽
20 안녕, 다엘촌 22.10.06 722 11 18쪽
19 [내가니싸부] 22.10.05 765 11 19쪽
18 퀘스트 완료 22.10.03 818 11 18쪽
17 너, 마녀잖아 +1 22.10.01 859 12 22쪽
16 메인퀘스트 22.09.30 887 15 19쪽
15 자리 22.09.29 901 18 18쪽
14 공공장소에서는 큰소리를 삼가세요 +1 22.09.28 919 15 13쪽
13 게임과 현실 22.09.27 934 14 14쪽
12 Show me the money! +1 22.09.27 1,032 17 18쪽
11 LEVEL UP! 22.09.26 1,101 18 16쪽
10 또다른 플레이어? +1 22.09.25 1,171 17 14쪽
9 다엘촌으로 22.09.24 1,237 18 19쪽
8 마녀 구하기 +2 22.09.23 1,275 18 12쪽
7 퀘스트, 할 수 있으니까 22.09.22 1,335 22 17쪽
6 좆소 기업에 어서 오세요 22.09.21 1,388 26 19쪽
5 인생역전의 기회 22.09.20 1,437 23 14쪽
4 로그아웃? 국룰? +1 22.09.19 1,557 25 17쪽
3 꿈꾸는 더 벨룸 22.09.18 1,701 2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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