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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게임 속 나혼자 플레이어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이찬솔
작품등록일 :
2022.09.15 01:46
최근연재일 :
2024.04.20 20:15
연재수 :
122 회
조회수 :
53,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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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28,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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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10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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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반왕

DUMMY

왕의 축복.


동훈은 그 저주받을 이름을 보며 등골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러면서 동시에 설레는 기분이 드는 건 그만의 착각이 아닐 것이다.


‘왕의 축복’이라 함은 더 벨룸 플레이어들이 가장 욕하는 시스템이자 그럼에도 결제를 포기할 수 없는 시스템으로 일종의 소모 아이템이었다.


돈을 안 쓰고 싶어도 쓰게 만들어버리는, 남들만큼 성장해야 하는 라인의 혈맹원들은 반드시 사용해야 하는 게 바로 ‘왕의 축복’ 시스템. 줄여서 ‘왕축’이라 불리는 시스템은 더 벨룸의 악랄한 과금 방식을 대변하는 시스템이기도 했다.


대체 얼마나 많은 돈을 써야 하기에 그렇게나 많은 욕을 먹을까?


그건 바로 이 ‘축복’을 획득 경험치만큼 소모해 획득 경험치의 고정 배율을 올리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이다.


‘왕축’을 소모하면 올려주는 경험치 배율은 약 10배. 쓰지 않는 사람은 쓰는 사람보다 10배 닥사를 더 해야 같은 양의 경험치를 얻는 셈이었다.


그렇다면 안 사면 그만 아닌가? 10배 까짓거 안 받고 말지.


하지만 ‘붉은 여왕 효과’라는 것을 들어보셨나.


모두가 달릴 때 혼자 걷는다면 그건 뒤로 가는 것과 다른 바가 없게 된다.

모두가 ‘왕축’으로 10배 빠르게 뛰고 있는데 혼자 배율 1배로 걷는다면 그건 저절로 뒤로 가는 것과 다른 바 없다는 뜻이다.


라인 생활을 하면서 뒤쳐진다? 그건 혈을 나가겠다는 말밖에 되지 않았다.

상대 혈은 점점 강해지고 있는데 우리 혈의 전력을 깎아 먹는, 뒤로 가고 있는 플레이어는 혈을 배신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동훈 같은 행동대장들이 ‘왕축’ 결제를 하지 않는 혈원에게 넌지시 퇴출 통보를 내리고 말 것이다.


남을 뛰어넘지는 못해도 지금의 내 자리를 지키고, 제자리에 있기 위해서는 본인도 남들처럼 돈 써가며 10배로 뛰어야 했다.


그래, 뛰자고 결정했다손 치자. 그러면 가격은?


더 벨룸의 ‘왕축’은 강한 만큼 돈을 더 내야 했다. 경험치 3배율이 사실상 경험치를 먹을 때마다 소모됐다. 대충 1의 경험치를 먹으면 1의 왕축을 소모하는 식. 소모하면 구매하고 소모하면 구매해야 했다.

고레벨 유저들은 더 많은 경험치를 더 빨리 먹을 테니 그만큼의 ‘왕축’을 더 소모하고 구매해야 했다.


‘우리 혈 군주 형님은 왕축으로만 달에 거의 백만원이 나간다고 했던가.’


물론 동훈은 그 정도까진 아니었다. 그는 달에 약 5만원 정도 썼고 그 정도는 게임 월정액 개념으로 썼던 셈 쳤다.


‘왕의 축복’은 그런 시스템이었다.


==

현재 보유 왕의 축복

100/2500(최대치)

==


하루에 한 번씩 충전되는 100의 왕축은 저렙 구간에서조차 코딱지만한 수준의 양이었다. 이걸로 1렙업은 할 수 있으려나.

그래도 무료로 주는 거니 감사히 여겨야지.


왕의 축복은 구간별로 주어지는 보상이 달랐기 때문에 다 채워 넣고 그것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동훈이 구매한 패키지 중 왕의 축복을 충전할 수 있는 ‘천사의 다이아몬드’ 패키지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나머지 왕축을 채워 넣기 위해 캐시를 더 쓸 필요는 없기 때문이었다.


무료, 무료라? 동훈은 왕축을 충전하며 무료 왕축에 대해 생각하다가 뭔가 떠올랐다.


“잠깐만. 뭐야, 우편함이 없으니 무료 ‘왕축’도 못 받는 거 아냐?”


매일 우편으로 오는 푸시 ‘왕축’은 적은 양이었지만 그래도 꽤 쏠쏠한 보상이었는데.

현실이 된 더 벨룸에는 우편창이 보이지 않았다. 겜사가 뿌리는 게 없으니 동훈은 꼼짝없이 떨어지면 사야 했다.


이건 좀 꼬운데, 라고 동훈은 생각했다. 아무도 주겠다고 약속한 적은 없지만 계속 받아왔던 것이라 안 준다니까 내것을 빼앗기는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동훈은 고개를 저었다. 사소한 것에 욕심부리지 말자.


꼬운 건 꼬운 거고 왕축은 경험치 10배 이벤트나 다름없었다. 아니, 동훈에게는 마르지 않는 돈이 있으니 사실상 무료 10배 이벤트 아니던가?


공짜로 경험치를 10배 주는데 안 해?


동훈이 왕축에 관심을 끄자 왕축 게이지는 점점 줄어들어 동훈의 시야 우측 상단을 차지했다.

증강현실처럼 자리잡은 왕축 게이지는 동훈의 마음이 풍족하게도 가득 채워져 있었다.


왕축에서 시선을 뗀 동훈은 [템주면안죽임]을 끝장내는 반다르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 양반, 그냥 사냥꾼은 아니라니까. 어떤 사냥꾼이 기본소양으로 사람을 죽여. 저거, 저거 봐. 고문하려나?’


[템주면안죽임]을 처리하고 쓰러져 있는 [난걍죽임ㅋㅋ]을 깨우는 반다르의 모습은 이런 일에 익숙한 듯했다.

[난걍죽임ㅋㅋ]의 몸을 대충 일으켜 나무에 기대어놓은 반다르는 품에서 고문 도구라도 찾는 것처럼 뒤적였다.


다행히 그의 품에서 나온 건 물주머니였다.


팔이 잘린 [난걍죽임ㅋㅋ]은 쇼크로 정신이 왔다갔다 하는 것 같았다. 피를 많이 흘린 탓에 흐린 정신으로 눈에 초점까지 잃었으며 가끔 까무룩 정신을 잃기도 했다.


반다르는 물을 뿌려도 일어나지 않는 [난걍죽임ㅋㅋ], 결국 반다르는 뺨을 때려 그를 깨우며 신문을 시작했다.


“20년도 더 된, 오래된 농담이야. 이젠 기억하는 사람도 얼마 없을 테지. 그 농담, 어디서 들었나?”


공포에 질린 [난걍죽임ㅋㅋ]은 동훈과 반다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가 동훈을 향할 때 유독 흔들리는 것이 동훈의 무위에 헤아릴 수 없는 공포를 느끼는 것이 분명했다.


“나, 난 몰라! 우연히 만난 음유시인이었고 농담을 해보라고 한 것도 저기, 내 형님이 시킨 거라고!”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이미 죽어나자빠진 자신의 일행을 팔아넘겼다. 그래,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이거지.


반다르는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난걍죽임ㅋㅋ]의 얼버무리는 말을 하나하나 짚고 넘어가며 노련하게 압박했다.


“옆에서 같이 들었고, 말했을 텐데 모른다? 말하고 싶지 않다면 내가 조금 더 도와줄 수 있네.”


끝내 울음을 터뜨리는 [난걍죽임ㅋㅋ].

술술 토해내기 시작하는 그의 모습에는 체념이 가득했다. 그가 도적으로 살아오며 장난스럽게 죽여온 목숨들에 비하면 심하다 할 수 없는 대우일 것이다.


“어흐흐흐, 말할게, 말한다고! 그, 그 음유시인의 이름은, 미쇼네리! 그런 이름이었어! 그 이상한 이름을 끊임없이 중얼거렸지. 우리 형제는 그놈이 자신의 이름을 언제까지 중얼거릴 수 있을지 내기했어. 결국 첫째 형님이 그놈의 숨통을 끊어놓을 때까지 계속됐지.”


반다르는 그 이름을 듣자 덧붙여 되물었다.


“빌헬름 미쇼네리. 이렇게 말하지 않던가? 자기는 빌헬름 미쇼네리라고.”


[난걍죽임ㅋㅋ]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를 괴롭힐 때의 기억이 떠오르는 건지 중간중간 낄낄거렸다.


“맞아, 맞아! 바로 그거였어! 그렇게나 이상한 이름이었다고! 자기 이름이 무슨 대단한 것인 양 중얼거렸지만, 우리가 알게 뭐야! 그런 이름은 들어보지도 못했다고.”


반다르는 헛웃음을 치며 물었다.


“담도 크군. 남부 변방에서 반(半)왕의 사람을 건드리다니. 그의 기사들이 두렵지도 않던가?”


반왕이라는 이름을 듣자 크게 놀라는 [난걍죽임ㅋㅋ]이었다. 피를 많이 흘려 창백해진 얼굴에 공포와 불안이 깃들었다.


“뭐? 반왕? 우리가 언제 반왕의 사람을 건드렸어? 나, 난 그러지 않았어!”


반왕이 누구길래 다 죽어가는 [난걍죽임ㅋㅋ]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걸까. 눈앞에 있는 것도 아니면서.


반다르는 그 반응이 이해가 간다는 듯이 설명을 이어갔다.


“빌헬름 미쇼네리. 정말 모르나? 너희같이 아무것도 모르는 외지인이 이곳에 와 마음대로 사람을 죽이다가 끝내 죽이게 된 게 반왕의 선교사라니.”


이런 얄궂은 일이, 라는 듯이 반다르는 [난걍죽임ㅋㅋ]을 안쓰럽게 쳐다봤다.


그러자 완전히 패닉에 빠진 [난걍죽임ㅋㅋ]이 횡설수설하며 변명하기 시작했다.


“반왕의 선교사? 그게 뭔데? 나, 나는 서쪽 프랑크 군도에서 와서 몰라! 카에르령에서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반왕의 사람이면 말을, 말을 해야지. 그, 그 음유시인은 노래라고는 더럽게 못 하면서 알아듣지 못할 왕을, 신앙을 어쩌고 지껄였단 말이야! 짜증이 안 나고 배겨?”


음유시인이 노래를 못 불러 화가 났다는 [난걍죽임ㅋㅋ]의 변명을 듣던 반다르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중요한 것은 그가 반왕의 사람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하는 듯한 화법이었다. 상대를 압박 속으로 몰아넣어 더 많은 정보가 나오도록 만드는 반다르의 노련한 수였다.


“그 음유시인이 왕을 찬양하지 않던가? 그의 노래는 반왕의 업적과 힘을 찬미하지. 반왕은 자신의 나팔수들을 영지에 뿌려 사람들에게 우호적인 인상을 남기려 하네. 그들이 바로 반왕의 선교사야. 그들은 반왕의 이름 아래 보호받고 있지.”


반왕이라는 자는 이미지 작업에 열중인 듯했다.


뭐, 게임 더 벨룸에서도 이미지 작업을 하는 혈들이 있었다. 서버내 중립들에게 우호적인 이미지를 심기 위해 노력하는 라인들이.

자신들이 지배하는 서버가 저주섭이라고 불리지 않게 일명 농사를 짓는 것이다.


통제도 조금 풀어주고 가끔 이벤트도 열어주는 식으로 이미지 작업을 하곤 했는데 그렇게 중립들에게 우호적인 스탠스를 취했다.

그렇게 우호적인 중립이 늘어나면 통제에도 크게 반발하지 않아 서버 관리도 쉬워지고 적대 세력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어서 은근 많이 사용되는 방식이었다.


이미지 메이킹이 중요하다는 사실이 익히 알려진 현대에서나 그런 일을 했지 여기는 중세나 다름없는 현실이지 않은가.


동훈은 그 반왕이라는 자가 꽤 똑똑하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단어 선정도 흥미롭군. 선교사라. 스스로를 신격화하는 걸까?


동훈이 그렇게 추리하는 동안 신문은 끝을 향해 치달았다. [난걍죽임ㅋㅋ]은 겁에 질린 데다 피를 많이 흘려 숨을 거칠게 쉬었으며 헛것까지 보는 듯했다.


“그, 그런 건 몰랐어. 몰랐다고. 형님, 형님. 반왕의 사람을 죽였대요, 우리가. 도망갑시다. 도망....”


[난걍죽임ㅋㅋ]은 숨을 깔딱대다 이윽고 숨이 끊어졌다. 과다출혈이었다.


[난걍죽임ㅋㅋ]의 시체는 초라했다.

어쩌면 PK 유저의 최후란 이런 걸지도 몰랐다. 싸우고 죽이기를 영원히 반복하다 이길 수 없는 적을 만나 죽게 되는 것.

게임에서는 부활이 있어 패널티를 받고 부활하면 그만이었지만 이곳은 현실이라....


[난걍죽임ㅋㅋ]이 죽고 반다르는 그 앞에 쪼그려 앉아있던 자세를 풀며 여상하게 허리를 툭툭 두들겼다. 마치 밭일이라도 끝낸 노인처럼.


“어이구, 허리야. 나이가 드는 게 서럽군. 그저 몸 푸는 일에 뼈가 삐거덕거리니.”


이들은 서부에서 흘러들어온 도적이라는 것, 그곳에서는 기사도 죽여본 거물이었다는 것, 반왕의 선교사를 모르고 죽였다는 것과 반왕을 두려워하는 PK범들이라는 것까지.


이렇게 놓고 보니 반다르의 노련한 추궁으로 많은 정보를 알아낼 수 있었다. 15년차 더 벨룸 고인물 동훈은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저들이 말하는 서부는 인간 스타팅인 프랑크 군도, 다투는 섬 근처인가 보네. 7레벨이 거물이랍시고 활약할 수 있는 곳이라면 스타팅 근처 지역뿐일 테니까. 무슨 령이라 말하는 건 처음 들어보지만.’


인간 종족 스타팅 ‘다투는 섬’이라. 동훈이 가장 많이 키워본 캐릭터들이 대부분 인간 종족이었으니 그곳은 동훈에게 가장 익숙하고도 인상 깊은 지역이었다.

동훈도 인간으로 시작한 셈이니 게임이었다면 그곳에서 시작했을 텐데.


슬슬 찌뿌둥한 몸을 풀어낸 반다르는 이제 출발하자고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개를 먼저 보내고는 동훈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동훈은 그제야 묻고 싶은 바를 물을 수 있었다.


“반왕이 누굽니까? 그가 이 땅을 지배하는 왕입니까?”


게임 더 벨룸에도 서버마다 서버를 지배하는 패자들이 있었다.

서버에 내로라하는 혈맹들이 맞붙어 항상 전쟁을 하는데 끝나지 않는 전쟁은 없다고 언젠가는 승자와 패자가 나뉘기 마련이었다.


수많은 혈맹을 제치고 단연 빼어난 혈맹이 결정지어지면 그들은 ‘성혈 라인’이라고 불리게 된다.


대개 성혈 라인을 중심으로 세력이 재편되며 그 이후는 두 가지 길을 걷게 된다.


라인의 지배 요건을 채워 서버를 지배하는 혈맹이 되든가, 그에 못 미쳐 또 다른 대적자가 대두되고 그와 싸우게 되던가.


성을 먹고 서버 내에서 가장 강한 세력이 됐다는 건 라인으로서의 최소 요건을 충족했다는 뜻이었다.


다음 스텝이 바로 지배 요건.


각 서버에 있는 주요 성채의 4개 이상을 먹으며 각지에서 등장하는 보스몬스터에 대한 모든 권리를 행사해야 했다. 그게 지배 요건이었다.


지배 요건을 충족해야만 사실상 서버의 지배자나 다름없는 위세를 떨치는 것이다.

그 정도는 되어야 대적자들에게 돌아가는 자원이 없다시피 되고 지배자에 대항하려는 대적자는 스스로 말라죽어버리는 지경에 이르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1서버, 오블론 서버는 전통적으로 한 혈맹이 5개의 주요 성채를 모두 먹어 통일 군주, 서버 황제라고 불렸다. 감히 대적하려는 세력이 없었고 아주 오랜 기간 저주섭의 대명사로 불렸지.


요는 반왕이라는 자는 얼마나 대단한 세력을 가졌기에 사람들이 벌벌 떨 정도냐, 이 말이다.


반다르의 말에 따르면 참칭자, 군주 플레이어가 많다고 했으니 ‘왕’의 이름이 붙을 정도면 엄청 강한 세력을 가진 건가? ‘성혈’을 자처할 정도로?


반다르는 대체 이곳에 어떻게 오게 된 건지 알 수 없는 이방인인 동훈에게 차근차근 설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노예상에게 붙잡혀 온 거라 생각했는데 강한 무위를 보자면 그건 또 아닌 것 같단 말이지?


“자신을 왕이라 참칭하는 참칭자는 많네. 이상할 것도 없지. 그 무도한 놈들은 왕의 이름을 아무데나 가져다 붙이니까. 하지만 그런 이들 대부분은 자기가 왕이라고 이야기할 뿐, 남들이 왕이라 부르는 경우는 잘 없어.”


자칭 왕은 많다. 하지만 타칭 왕은 적다.


군주 플레이어는 많은데 라인의 주인이라고 할만한 군주 플레이어는 적다. 반왕은 적어도 라인이라고 불릴 정도의 군주라는 뜻이다.


“다른 사람들도 인정하는 왕이라는 겁니까? 잘 없다는 건 있긴 하단 말씀이시군요?”


“반왕 빌헬름은 분명코 많은 이들이 왕이라 부르는 자야. 그는 그만큼 왕에 가까운 자라고 할 수 있지.”


동훈은 왕에 가깝다는 말에 집중했다.


“왕에 가까워요?”


왕이라 불리지만 왕에 가까울 뿐 진정한 왕은 아니란 거 아니겠나. 동훈이 충분히 비벼볼만한 상황인 듯했다. 진짜 왕이었대도 포기하진 않았겠지만.


반다르는 마지막 말을 덧붙이며 반왕에 대한 평가를 마무리했다.


“어떻게 보면 가장 유명한 왕이기도 하지. 반왕이라는 칭호가 어느 유명한 학자가 붙여준 칭호이니. 요즘 같은 세상엔 그걸로도 충분하잖나.”


유명세를 가진 왕.


군주의 유명세는 라인 유지에 꽤 도움이 된다.


예컨대 서버 내 최강자가 가입된 혈맹에는 동맹 요청도 많고 쉽게 덤비려는 적도 없어진다.

유명한 인터넷 방송인이 언론플레이로 성을 먹은 사례는 아주 유명했다. 유명세는 쓰임에 따라 아주 유용했다.


다행인 것은 그 말고도 왕 후보는 많다는 거였다. 가장 유명한 왕이라 하면 다른 왕들도 있다는 뜻이잖아.


그렇다면 아직 지배 요건을 채운 자는 없다는 뜻. 그렇다면 얼마든지 기회는 있었다.


하여간 선교사들이 반왕의 언론플레이를 위한 나팔수라면 그들을 보호할 방도도 있기에 뿌리는 거 아니겠나?


“반왕이 선교사를 뿌리고 그들에 대한 보호를 천명했다면 보호할 방법이 있다는 거 아닙니까?”


반다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한참 앞서가다 반다르와 동훈이 따라오지 않자 돌아온 반다르의 개가 이쪽을 향해 컹컹 짖어댔다.


“왕의 선교사들을 관리하는 선교회에는 파견한 선교사의 목숨과 연결된 마법의 아이템을 가지고 있다네. 그것으로 선교사의 안전을 확인할 수 있다더군. 선교사가 죽으면 아이템에 이상이 생기고, 선교회에서는 기사(騎士)를 파견해 무자비한 복수를 감행하지. 반왕은 두려움으로 자신의 선교사를 보호하네.”


필드 척살이 걸린단 뜻이군.


그들이 과연 선교사를 죽인 이를 어떻게 찾는지는 몰라도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자면 안심할 수 없었다.

마법이 사건의 전말을 어디까지 알려주는지 알 수 없으나 그들의 복수가 무슨 목적으로 이루어지는지 알면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그들이 복수하는 목적은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안기기 위해서였다.


공포심을 주기 위해 움직이는 그들이 복수할 법한 방식은 최악의 경우 닥치는대로 다 죽이는 방식이 될 터였다.


범인도 범인이지만 선교사가 죽은 곳에서 머지않은 이곳 또한 복수의 땅이 되지 않으리라 낙관할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여기서 멀어져야겠군요.”


반다르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짧게 설명해도 많은 것을 알아듣는 명민한 자는 드물었다. 그리고 그것을 들었을 때 겁먹지 않는 자는 더욱 드물었다.


아무리 반왕에 대해 잘 모르는 이라지만 기사까지 모르랴.

죽음의 화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기사가 온다는 말을 듣고도 겁먹은 기색을 보이지 않는 디올의 모습은 의연해 보이기까지 했다.


물론 동훈은 진짜 몰랐지만. 아무것도 몰랐지만.


“우선 펠리페 성으로 가세나. 우리가 이곳에 남아 있어 봐야 근처 마을들에 좋을 것 같지 않군.”


반다르는 동훈이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동훈도 나름대로 고민이 많았다.


어쭙잖게 라인에 찍히면 겜생 망하는 건 주지의 사실이었다. 동훈이 꽤 쎄고 앞으로도 쎄질 거지만 아직은 부족한 게 많았다.


펠리페 성이라면 진행상 중앙지대로 가기 전 중간 기점. 다크엘프 뉴비가 두 번째로 만날 수 있는 마을이었다.


“알겠습니다. 가시죠.”


앞에서 꼬리를 흔드는 개는 반다르와 동훈이 다가오자 궁둥이를 쭉 빼고 앞을 향해 납작 엎드린 자세를 취했다. 개가 장난치기 직전에 하는 전형적인 행동이었다.

과연 동훈과 반다르가 가까이 다가가자 녀석은 확 일어나 뒤돌아 막 뛰어가기 시작했다.


지평선을 향해 달려가는 개.


그 뒤를 따르는 장년과 청년.


더 벨룸의 생명력 넘치는 자연과 어우러져 풍경의 일부분으로 녹아들었다.


***


왼쪽, 펠리페

오른쪽, □□□의 탑.


왼쪽이 펠리페라는 건 분명했지만 오른쪽을 가리키는 표지판은 뭉개져서 무슨 탑이라는 것만 보였다.

낡은 표지판에서는 썩은 나무가 내는 토양의 냄새가 났다. 이런 표지판을 수리할 공무원이 있을 리 있나. 그저 표지판이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 판이었다.


동훈은 탑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디렌의 탑. 한 번 들러야 하는데. 보스가 아마 놀 치프였지? 템 보상이 짭짤하진 않지만 경험치는 꽤 많이 줬던 걸로 알고 있는데.’


동훈이 탑 방향을 보고 생각에 잠겨 있자 반다르가 그를 눈치채고 설명해줬다.


“이름이 잊힌 탑은 펠리페 성에 들렀다가 거쳐갈 곳이네. 그곳에는 개의 머리를 한 놀이라는 몬스터가 주변을 돌아다니긴 하지만 썩 괜찮은 야영지지.”


NPC들 사이에서는 이름이 잊힌 설정인가.


보물? 동훈이 알기로는 그곳에 별다른 보물 같은 건 없었다.


그곳에는 과거의 영광을 잃은, 반으로 부서진 탑만 있을 뿐이었다.


몬스터들이 점거한 필드 던전에 불과하지. 이름이 잊힐만도 하다.


“지금은 펠리페 성으로 먼저 가 물자를 보충하세나. 건량이 많이 떨어졌어. 남부 변경을 벗어나려면 많이 부족하네. 굶고 싶은 게 아니라면 말이야.”


반다르는 펠리페 성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먼저 이곳을 벗어나는 게 급선무. 펠리페 성으로 갔다가 던전 들렀다가 메인 필드인 중앙지대로 넘어가는 게 동훈의 계획이었다.

중간중간에 닥사 좀 해서 레벨업도 챙기면 좋고.


사람을 피할 필요는 없었지만 반왕이라는 라인이 주변을 수색한다고 생각하니 자연히 경계심이 올라가는 동훈이었다.

동훈이 가장 많이 죽은 것도 쟁 중에 척살조에 걸려 닥사하다 죽임을 당하는 사례였다.


라인이라는 집단과 얽히면 원래 복잡해지는 게임이라.


동훈의 귀가 한창 예민해졌을 때 귀에 걸리는 소리가 있었다.


‘말발굽 소리? 기사들은 말을 타고 다닌다지?’


다그닥, 다그닥.


관도를 따라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돌과 발굽이 부딪히는 일정한 박자는 멀리서부터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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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게임 속 나혼자 플레이어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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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행운(2) 22.10.17 519 16 17쪽
30 행운(1) 22.10.16 529 8 16쪽
29 각 잡고 뽑기 22.10.14 554 15 21쪽
28 퇴사각(2) 22.10.13 551 18 20쪽
27 퇴사각 22.10.12 547 13 14쪽
26 함 뜰까? +1 22.10.11 576 12 17쪽
» 반왕 22.10.10 625 12 20쪽
24 손동훈의 혈맹 22.10.10 629 13 12쪽
23 PK유저의 수수께끼 22.10.09 657 11 12쪽
22 PK 유명인 +1 22.10.08 656 13 17쪽
21 과감하게 가자 쫄지 말고 22.10.06 659 15 16쪽
20 안녕, 다엘촌 22.10.06 722 11 18쪽
19 [내가니싸부] 22.10.05 765 11 19쪽
18 퀘스트 완료 22.10.03 818 11 18쪽
17 너, 마녀잖아 +1 22.10.01 859 12 22쪽
16 메인퀘스트 22.09.30 887 15 19쪽
15 자리 22.09.29 901 18 18쪽
14 공공장소에서는 큰소리를 삼가세요 +1 22.09.28 919 15 13쪽
13 게임과 현실 22.09.27 934 14 14쪽
12 Show me the money! +1 22.09.27 1,032 17 18쪽
11 LEVEL UP! 22.09.26 1,101 18 16쪽
10 또다른 플레이어? +1 22.09.25 1,171 17 14쪽
9 다엘촌으로 22.09.24 1,237 18 19쪽
8 마녀 구하기 +2 22.09.23 1,275 18 12쪽
7 퀘스트, 할 수 있으니까 22.09.22 1,336 22 17쪽
6 좆소 기업에 어서 오세요 22.09.21 1,388 26 19쪽
5 인생역전의 기회 22.09.20 1,437 23 14쪽
4 로그아웃? 국룰? +1 22.09.19 1,558 25 17쪽
3 꿈꾸는 더 벨룸 22.09.18 1,701 2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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